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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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출간 이후 자연과학 분야 최장기 베스트셀러 <털 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The Naked Ape)>. 50주년 기념판의 한글 번역판에서는 우리나라의 대중 과학서 저술가인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님과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와의 인터뷰 전문이 실려 있어 뜻깊습니다.


이 인터뷰에는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초판 표지에 실린 그림이 바로 데즈먼드 모리스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둘은 선후배 관계로 '이기적'이란 단어로 고민하던 리처드 도킨스에게 조언도 해줍니다. 평생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그림을 그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이기적 유전자> 계약 시 받은 선인세를 몽땅 투자해 작품을 구입해서 표지로 사용했더라고 합니다.


반세기가 흘러도 구닥다리 지식이 아닌 명쾌한 인간 해석을 보여주는 <털 없는 원숭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 교양서로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스티브 핑거,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이후 대중 과학서 세계를 연 의미 있는 책입니다. 저자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이 압권이라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라면 인간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날카롭게 관찰한 인간 종 보고서 격인 <털 없는 원숭이>를 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지금 시대에는 털 없는 원숭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절묘한 비유여서 피식 웃게 하는 정도일 뿐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제목이었습니다. '털 없는'이란 단어는 외설적으로 받아들였고, 인간을 동물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인성 모독이었던 거죠. 종교인들의 공격은 기본이었습니다. 게다가 대중 과학서라는 목적으로 저자가 의도한 거였는데도 책에 참고문헌과 각주, 색인이 빠졌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로부터 공격받았습니다. 그리고 일개 동물학자가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의 전문 분야를 침범했다며 공격받았습니다. 당시엔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건 애초에 배제된 시대였고, 인간의 성생활이 사회에 영향 미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개정판을 낼 때마다 수정한 건 숫자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가 초판 당시 30억에서 개정판을 낼 때는 40억, 50억... 현재 80억에 이르는 그 숫자만 수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긴 세월 동안 유전적 요인의 영향력을 과학계가 인정해가는 현실을 즐겼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털 없는 원숭이>는 인간을 관찰한 사실만을 전하는 글입니다. 오랫동안 다른 동물의 행동양식을 연구해온 동물학자로서 특이한 영장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양식을 고찰한 책입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외계인이 인간 종을 관찰한다면 딱 이런 구성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저자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더 기대감을 안고 읽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 - 첫 문장 


<털 없는 원숭이>에서는 다른 동물들도 하고 있는 일들, 음식을 먹고 몸을 손질하고 잠자고 싸우고 짝짓고 새끼를 돌보는 활동에서 털 없는 원숭이는 어떤 점에서 독특하고, 그 독특함은 진화의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들려줍니다.


잔털이나 머리카락이 있어도 인간의 털은 기능적으로 완전히 벌거숭이와 다름없습니다. 혈통은 영장류지만 육식동물의 생활방식을 채택한 인간. 우리는 다른 종인 것처럼 오만함에 빠져 있지만, 숲을 떠난 원숭이의 성공담이라는 시니컬하지만 명쾌한 비유가 인상 깊습니다. 연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만드는 동물로 진화하면서 사냥하는 원숭이로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가 되었습니다.


열매 따먹는 영장류에서 사냥하는 육식동물로 바뀔 때, 성적 특성의 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한 쌍의 암수 관계를 형성한 남녀 사이를 형성합니다. 인간은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왜 새로운 형태의 암수 관계를 만들어냈는지, 우리의 성행위 방식이 우리의 생존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지금 읽어도 놀랄 만큼 노골적인 성에 대한 묘사는 그가 의도한 대로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우리의 행동양식이 가진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해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는 <털 없는 원숭이>이니까요.


동성연애에 대한 당시 기준으로서는 쇼킹했을 법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번식이라는 주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도 생물학적으로 결코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번식이라는 의미에서는 동성연애자뿐만 아니라 수도승, 수녀, 노처녀와 노총각도 변종이지 않냐고 합니다. 수도승이 변종이 아니듯 동성연애자도 변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폭넓게 오랫동안 부모의 부담을 짊어지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보면 모방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모방함으로써 배우는 겁니다. 게다가 인간은 가장 뛰어난 기회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늘 탐험하며 환경에 재빨리 적응할 줄 압니다. 침팬지와 우리의 차이를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어린이와 침팬지 세계는 놀랍도록 공통적인 놀이 탐험을 하지만 침팬지는 딱 그 수준에서 머무르지만, 인간은 어느 단계를 벗어나면 탐험 행위가 별개의 충동으로 발전합니다.


영장류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은 계급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를 사용할 줄 알고 고정된 기지를 갖고 서로 협력하는 사냥꾼이 되면서 새로 획득한 육식동물의 역할에 걸맞게 수정되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공격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공격에는 어떤 행동양식이 뒤따르는지, 우리는 남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요. 공격자와 피공격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경쟁자들은 패배하는 게 아니라 무차별 살해당하며 인류가 어떻게 스스로 파멸로 몰고 갔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재미있습니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단맛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에는 무엇이든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단것에 좀처럼 저항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털손질 대신 몸손질을 하게 된 인간. 흥미로운 건 몸손질을 유도하는 질병의 유래였습니다. 성공을 누리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잘 적응한 사람에 비해 위로받은 싶은 욕구가 격렬한 이들은 감기, 두통, 인후염 등 병의 증상이 심해진다니 놀랍습니다.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신기합니다.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생 관계인 개를 비롯해 우리 인간의 특수한 자질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자극을 발산하는 동물을 애정합니다.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통해 인간이라는 종을 폭로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참하게 격하시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동물입니다. 인류가 이런 방식으로 진화해왔으며, 우리가 자연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특성이라는 걸 하나하나 짚어주는 <털 없는 원숭이>. 모든 것들에 수많은 생물학적 기본 원칙이 적용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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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로운 선택 - 청년 자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김현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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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청년기본법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청년기본법. 청년 연령은 19세 이상 34세 이하로 정하고 있습니다. 취업, 교육, 주거 지원, 금융 지원 정책을 나름 하고 있다지만 실효성이 없고 정신건강 정책은 제대로 있지도 않습니다. 그마저도 지방대졸, 고졸, 독서, 비숙련, 비정규직, 여성은 소외되어 있습니다.


전체 인구 자살률은 감소하는 추세인데도 성별과 연령대를 들여다보면 심각한 수치가 발견됩니다. 청년 자살률이 오히려 증가한 겁니다. 90년대생 후반으로 갈수록 더 심각합니다. <가장 외로운 선택>은 정신건강의학자, 인류학자, 보건학자, 사회복지학자, 상담사, 통계학자가 모여 오늘날 청년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 청년 자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급격히 증가한 청년 자살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우리 모두가 가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솔직히 살만한 곳이라는 말이 이젠 나오질 않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오히려 분노라도 할만한 에너지가 있을 때 터져 나왔지만 이제는 분노를 내비칠 여력조차 소진된 상태로 보입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이자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인 김현수 저자는 "기성세대의 병적 나르시시즘, 제도와 정책의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청년들이 겪는 고통의 원천이라고 짚어줍니다.


밈이 된 "라떼는 말이야~"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대 간 소통 불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입니다. 신체 건강한 청년이 뭐가 부족해서 자살이냐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라떼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기성세대는 빈곤이 문제였으나 이제는 인정의 문제입니다. 사회적 구조로 인한 내적 고통이 증가한 청년의 고통을 공감 없이 나약함이라는 이름으로 짓누릅니다.


자살은 구조적 힘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며 방치하고 있습니다. 청년 둘 중 하나는 자살로 죽는다고 합니다. 무려 54.3%입니다. 나머지 청년 중 한 명은 4일마다 일하다 죽습니다. 코로나로 20대 알바생들의 일자리가 끊기면서 청년 빈곤층의 수입원이 전무해졌습니다. 코로나는 기존에 만연했던 고통을 우울증, 자살로 이끈 트리거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이 급증했습니다. 역차별 프레임까지 내세우는 정치권과 세대 간 갈등을 통해 20대 여성이 경험하는 무력감과 절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으니 연애 본능은 감소하는데도 20대 여성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 출산율 높아질 거란 헛소리가 나오는 세상. 어떻게 죽고 싶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여성들이 늘어났습니다.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가 없지만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자살 예방 원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고,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나 작업이 있고, 누군가 만나서 상호작용한다면 자살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기본은 갖춰진 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그렇지 못합니다. 유례없이 높은 청년 자살률에 담긴 의미를 짚어주는 <가장 외로운 선택>. 빈곤을 개인 책임으로만 여긴다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청년 세대 특성에 맞는 접근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부처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난 청년 정책이 필요합니다. 청년을 대상화하는 정책이 아니라 청년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정책이어야 합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위기상담 전화 1577-0199. 자살 및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상담합니다. 이곳으로 걸려온 전화 중 몇 가지 대표 사례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미 자기 나름의 방법들을 한동안 찾아 헤맸던 이들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공시생이 대교 위에서 울면서 서성이는 상황에서는 이런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내 아이의 모습으로 생각되어 가슴이 찢어집니다.


모든 나라가 코로나를 겪으며 정신건강은 악화되었는데 일본과 우리나라는 유독 청년 자살이 늘어났습니다.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첫 세대인 청년들. 고독생으로 사회에 머물다 고독사하는 세대입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우리는 변했어야 했습니다. 개인 치유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청년 자살과 관련한 정책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제시한 <가장 외로운 선택>. 청년들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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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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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안쪽으로 살짝 굽은 채 굳어 버렸다." 20년 동안 오른손을 험하게 다뤘더니 결국 탈이 났습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아프고 나서야, 움직일 수 없게 되어서야 후회합니다. 필요적으로 섬세하게 손을 써야 하는 기술자였기에 그 고통은 컸습니다. 균형이 깨진 손을 마주하며 이제 균형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고생했던 오른손은 좀 쉬게 놔두고 왼손을 서툴게 사용해 봅니다.


아프고, 슬프고, 절망스러웠지만 왼손에 펜을 들고 왼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일하고, 왼손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1년의 기록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불안한 마음과 육체를 보듬어가며 다시 몸과 마음에 근육이 생기는 여정을 그린 1세대 쇼콜라티에 카카오봄 대표 고영주 저자의 에세이입니다.


저도 엄지손가락과 손목까지 고루 아파본 경험이 있는데 머리 묶는 것부터 옷 입기, 설거지 등 일상의 모든 동작에서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지대한 작용을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던 경험을 톡톡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직업 위기에 처할 수밖에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고 하던가요. 본격적으로 왼손을 훈련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몰스킨 그림일기로 유명한 밥장님의 줌 수업까지 들어가며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당연히 처음엔 생각처럼 안 그려지고 글도 삐뚤빼뚤합니다. 그런데 고영주 저자는 섬세한 손을 가져서인지 제 눈에는 첫 왼손 일기도 무척 훌륭해 보였어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왼손으로 써봤는데, 자세도 안 나오고 획 하나 긋는 것도 힘없이 비실거리더라고요.


사실 예쁘게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따로 있었습니다. 머릿속의 생각과 쓰기가 비슷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왼손으로 쓰다 보니 생각과 쓰기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아 조금만 지나도 뭘 쓰려고 했었는지 생각이 뚝뚝 끊기길래 정말 힘들었답니다.


그동안 아픈 날에만 쉬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이제라도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로 합니다. 제주 올레 트레킹을 하러 한 달의 휴식 시간을 가진 겁니다. 20년간 일하느라 삐걱대는 몸이다 보니 놀멍쉴멍 올레길을 걸어도 중간중간 쑥뜸을 뜨러 병원을 다녀와야 할 지경입니다. 결국 발목까지 접질려 완주는 하지 못했지만, 제주 올레 트레킹을 하며 얻은 즐거움은 컸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자신과 화해하며 스스로를 보살피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저 현실 도피하듯 떠난 여행이 아니라 더 즐거운 현실로의 여행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멀리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지 못하더라도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마음의 근육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를 읽다가 글씨가 갑자기 예뻐지고 그림도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쓴 티가 팍팍 나는 페이지는 어김없이 초콜릿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초콜릿 전문책을 세 권이나 낸 1세대 쇼콜라티에인 만큼 직업으로서의 쇼콜라티에 스토리를 들려줄 때는 고영주 저자의 애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 같아요.


만드는데 5분밖에 안 걸리는 초간단 초콜릿 잼 레시피도 알려주고, 초코티라미수 레시피도 등장합니다. 수제 초콜릿과 젤라또를 만드는 기술자로서 각 재료의 역할을 이해해야만 구현해낼 수 있는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만의 진솔한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장사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는 일이라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업력은 쌓이는데 기술적인 문제 외의 고민들이 끊이질 않는 자영업자이니까요. 그럼에도 생각하는 손을 가진 기술자로서 그가 원하는 일과 삶의 방향을 놓치지 않고 변함없이 한 길을 걷고 있으니 정말 대단합니다.


쉼 없이 달려온 그를 위해 엄지손가락이 이제 조금은 쉬어야 한다고 탈이 났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뒷방으로 물러나진 않았습니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왼손을 사용하며 좋아하는 일을 지켜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니까요. 물론 이제는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말이죠. 초콜릿 만드는 흰머리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쇼콜라티에의 길을 걷는 고영주 저자의 앞길을 응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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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I와 일한다 - 인공지능 시대에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전승민 지음 / 위너스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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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분야 전문기자 전승민의 베스트셀러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직장인 버전 <나는 AI와 일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한 몸처럼 사용하는 20~30대 직장인을 위한 책입니다. 디지털과 친해 변화에 잘 적응할 것만 같지만, 오히려 지금 사회초년생들은 3차 산업혁명의 지식으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맞서야 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의 편리함으로 일상생활이 풍요로워지고 효율적으로 되는 건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업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인공지능은 정말 인간의 경쟁자일까요. <나는 AI와 일한다>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일어나는 일자리 변화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인공지능이란 사람이 만든 지능이란 뜻입니다. 예전엔 사람이 일일이 코딩해야 했다면 이제는 개발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일 수 있고,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을 기계에 시킬 수 있습니다. 제한적인 조건 안에서는 인간 이상의 역량을 보이는 인공지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알파고처럼 말이죠. 하지만 현시점의 인공지능 수준은 아직 자아가 없고, 학습의 결과에 따른 판단만 가능한 상태입니다. 인간의 지시에 따라 동작하는 겁니다.


현대 인공지능은 생각은 하지 못하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최적의 판단을 하는 일만큼은 인간 이상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심지어 창의력, 직관력과 근접한 능력을 보이기도 하죠. 그만큼 압도적인 데이터를 충분히 취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큰 힘을 가졌지만 인간이 이용해야 할 유용한 도구일 뿐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건 아직 출현 가능성 없는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지레 두려워하기보다 이미 실용화된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면서 말이죠.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우월한 면은 바로 범용성 지능이라고 짚어줍니다.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흉내 내 구현한 기법이 딥러닝입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개발한 것이기에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합니다.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과 굴삭기로 파는 것의 차이가 크듯 그런 차이입니다. 좋든 싫든 단순노동은 인공지능에 맡겨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인력을 자동화, 자율화 로봇으로 대체해 비용 절감과 효율을 높이려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와닿는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 세상에 새롭게 나타난 직업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유튜버, 웹툰 작가처럼 인터넷 발달로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미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직업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지도 앱에서 대장간을 검색하면 여전히 주변에서 검색되고, 쿼츠에 밀려 사라졌던 태엽식 시계가 이제는 명품이 되어 있고, 시계공도 있습니다. 직업의 비율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정되고 있을 뿐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영업직이 굳이 코딩을 공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개발자와 사용자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게 우선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직장인에게 필요한 건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주관적 업무태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짚어줍니다. 인간이 할 일과 인공지능이 할 일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아, 의지가 필요한 경우는 반드시 인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최종 판단은 결국 인간이 합니다.


영업·서비스직, 제조업·기술직, 사무·관리직 등 업종별로 인공지능을 어떻게 도입해 미래에 대비할 것인지 짚어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계장치가 덜어줄 수 있는 육체노동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주사를 놓거나 붕대를 갈아주는 로봇이 여전히 없습니다. 손재주가 필요한 숙련공의 일은 사실상 대체가 힘들다고 합니다. 현재 3D라 부르는 노동들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입니다. 제아무리 건축설계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해도 건축설계사 직업이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합니다. 단 요구받는 역량 그 자체는 변화합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이 부분입니다. AI 시스템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능력과 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옹호하는 로봇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로봇을 통해 얻은 부가가치 중 일부는 로봇세 명목으로 걷는 제도가 나타날 거라고 합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별화의 핵심으로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전승민 저자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쓰는 AI는 이미 등장했습니다. 최고의 일인자가 아닌 이상 고만고만한 능력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AI와 협업해 빠르게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이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을 내 일의 무기로 사용하는 겁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존재로 맞이하는 겁니다. 결국 창의력보다 더 중요한 건 주체성과 실행력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나는 AI와 일한다>. 막연한 두려움은 던져버리고 현실적인 앞날을 예견해 대비하는 자세를 짚어주는 직장인을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입니다. 산업혁명의 변화부터 인간과 인공지능이 가진 각각의 가치를 쉬운 설명으로 알려주고 있어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무리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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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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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에만 가지는 그리움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며 쌓아가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사실 그리움이라는 키워드로 예상되는 약간의 뻔한 감성을 안고 읽었다가, 44편의 글을 한 편 한 편 읽으며 취향저격 당했습니다. 호기심을 안고 읽게 만드는 도입부와 진한 감정이 묻어있지만 담백하게 표현하는 전명원 작가 특유의 문체도 맛깔납니다.


지나온 추억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언제나 앵두나무가 있던 어린 시절 옛집을 추억합니다. 왜 하필 앵두나무를 심었는지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도 알려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부모님과 살면서 가족 모두가 함께 했던 마지막 집은 이제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의 우리는 추억 속에 함께 있음을 압니다.


전명원 작가에게 수원은 아빠의 고향이자 작가가 자라 결혼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수원 토박이인 셈이죠. 같은 수원이어서 반가움이 더해집니다. 저는 이곳 토박이가 아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이곳이 나고 자란 고향이 된 곳입니다. 우리 아이도 세월이 흘러 작가님처럼 수원을 추억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되겠지요. 나중에 아이가 긍정적인 공간으로 기억할 수 있게끔 하루하루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간절해졌습니다.


과거의 기억 속 그리움은 일상이 모여 만들어낸 기억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일상 속 소소한 감상과 함께 쌓아가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달라지는 것 없이 무심한 하루 같아 보여도 변화무쌍한 공간의 흐름을 들려줍니다.


일생 출근하면서 돈벌이하던 생활에서 여행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삶으로 인생의 변화를 시도한 이후 출근을 핑계로 귀찮아하던 것들을 이제는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보걷기를 하면서 거닐어보는 동네는 매일 다른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일하느라 바빴던 시기에는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이젠 걸음의 속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하루하루 쌓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날 테지요.


경기히든작가 공모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작가로서 사인을 해본 경험을 쑥스러워하면서 꺼내듭니다. 글은 또 다른 나이기에 솔직하고 진심인 글을 쓰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가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사색을 던져주는 건 진솔하면서 깊은 감정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글을 쓰는 인생으로 전환하기로 결심한 건 부모님이 떠나신 이후입니다. 작가가 담석증으로 입원하면서 딸과 남편이 찾아왔다 떠난 후 병실의 침묵을 경험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근한다고 병실을 나오고 난 후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병실에 계셨을까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둘째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지 못하는 인생살이가 더 많습니다. 꿈을 영원히 꿈으로만 남겨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인 것 같아요. 용기 있게 시도한 작가님의 변화는 꿈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일 겁니다.


"그리운 마음은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언제든 꺼내어 다시 돌아보며 달랠 수 있다." - 책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며 기억할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할 때 부모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려지는 물건을 보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더불어 살아 있을 때 내 마음이라는 공간 정리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음속에 쌓인 뒤엉킨 것들을 털어내고 정리하는 마음 정리 정돈을 하면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마음들을 다시 들여놓아 더 풍족해질 거라 믿습니다.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를 읽는 내내 그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건져올려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맞아, 그땐 그랬지. 그런 일들이 있었지 하면서 추억의 방 스위치가 탁 켜지는 느낌이었어요. 언젠가의 그리움의 조각으로 남게 될 오늘 지금이 더 소중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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