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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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가이자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이 기술과 인간 사이의 균열을 날카롭게 해부한 책 <경험의 멸종>.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직접 경험을 침식해가는지를 추적합니다.


기술 문명의 은밀한 폭력성을 고발하며, 인간 고유의 감각과 경험이 어떻게 디지털 시스템 속에서 무력화되는지를 탐사하는 도발적인 비판서입니다.


경험의 멸종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저는 의아했습니다. SNS에는 수많은 인증샷, 후기, 리뷰가 넘쳐납니다. 소비보다는 경험에 돈을 쓰라는 조언이 익숙합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경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우리의 경험이 점점 더 간접적이고 매개된 경험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직접 부딪히고, 느끼고, 실수하고, 감정을 겪는 살아 있는 경험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디지털 장치와 플랫폼이 만들어낸 표준화된 감각이 채우고 있다는 것. 겉으로는 경험이 넘치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과 마음이 개입된 진짜 경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경험의 멸종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감각의 붕괴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경험의 멸종>은 인공지능, 소셜 미디어, 비대면 플랫폼 등 기술이 일상의 모든 면에 스며들며 '경험'을 빼앗아가는 과정을 다양한 사회문화적 사례로 보여줍니다. 기술을 통한 삶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살아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요?


먼저 직접 경험이 어떻게 디지털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지 들려줍니다. 여행을 가서도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데 더 열중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오늘날 경험이 더 이상 '겪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콘서트에서는 휴대폰 카메라로 녹화하는 데 집중하고, SNS에 업로드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 경험의 깊이와 풍요로움은 얕은 디지털 재현으로 대체됩니다. "경험은 더 이상 겪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고 전시되는 것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감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경험은 육체 없는 감각으로 변형되고, 경험의 진정성은 광고와 마케팅의 전략으로 탈바꿈되고 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고 눈빛을 읽고 감정을 전하는 대면 소통은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이를 대신한 비대면 소통은 인간의 사회성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팬데믹 이후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되었지만 잃어버린 것들도 많습니다. 미묘한 표정 변화나 몸짓, 분위기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투명 인간들의 사회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감정이 필터링되고 공감은 알고리즘으로 계산됩니다.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사람을 읽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는 글쓰기조차 타이핑으로 대체했습니다. 저자는 손으로 쓰는 행위가 단순한 기록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손으로 쓰는 행위는 뇌의 인지 기능, 감정, 창의력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학습에서 이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화면보다 교사의 표정, 손동작, 교실의 소음 등 감각을 통해 학습합니다. 손글씨와 그림 그리기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인간적 사고를 형성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고, 영화를 보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기다림과 지루함이 사라진 세상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술은 '기다림'을 제거하려 합니다. 저자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인간이 성찰하고 상상하고 감정을 정제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지루함은 생각의 여백을 만드는 감정이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그 여백마저 메우려 합니다.


감정도 데이터화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감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감정 표현은 이모지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인간 내부의 감정 체계를 단순화하고 외주화한다고 봅니다.


"감정을 느끼는 일조차 우리가 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봅니다. SNS에서의 감정 표출은 진짜 감정일까요, 아니면 사회적 코드에 맞춘 의례적 반응일까요? 감정이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 좋아요를 위한 음식, 다시보기 가능한 라이브 콘서트. 저자는이를 픽셀화된 쾌락이라 부릅니다. 즉각적 만족은 늘었지만 쾌락의 진정성은 사라졌습니다.


공간은 기억과 감정이 깃드는 장소이지만 기술은 이마저도 개인화된 정보의 컨테이너로 만들고 있습니다. GPS, 앱 기반의 위치 추천, 맞춤형 광고는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획일화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동네나 광장을 잃고 필터 속의 장소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진짜 공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담지만, 개인화된 디지털 공간은 고립을 확장시킵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을 겪을 수 있는 존재로 남는 것이라고 합니다. 의식적으로 직접 경험을 선택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실제로 교류하는 경험을 쌓고, 기술 사용에 대한 의식적인 규칙을 세우는 등 다양하게 직접 경험의 가치를 되찾는 방법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험의 멸종>은 기술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기술로 인해 무엇을 잃었는가를 성찰하게 하는 책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본질까지 지배하게 둘 것인지, 주체적으로 다룰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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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 숲의 말을 듣는 법
김용규 지음 / 디플롯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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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항상 있어 익숙해져버린 존재, 숲. 익숙하다고 해서 우리가 숲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숲의 철학자로 불리는 김용규 저자는 20여 년간 숲을 스승으로 삼아 철학과 삶의 본질을 탐색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숲이 단지 풍경이 아니라 말 없는 스승이자 우리 존재의 거울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는 우리가 늘 곁에 두고 있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숲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무자천서(無字天書)'라 불리는 숲으로의 여정을 안내합니다. '무자천서'란 '하늘이 쓴 글자 없는 책'이란 뜻으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로 기록된 지혜의 책을 의미합니다.


숲에는 바르고 윤택한 삶의 지혜가 새겨져 있고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가 흐르고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겁니다.





저자는 생명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단지 효용성이나 심미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타자의 대상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국을 그저 차나 술을 담그는 재료로 또는 화병에 꽂아둘 관상용품으로만 인식합니다. 이런 시선은 그 꽃의 존재 가치와 삶의 방식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산국은 왜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나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타자의 사연을 헤아리는 마음을 짚어줍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숲을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 이는 사물의 겉모습 너머, 존재의 이유를 묻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굴곡 없이 찾아오는 계절이 어디 있던가요. … 겪어내야 할 것들 다 겪으며 겨우 붙들어낸 것들만이 농익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삶의 진실 중 하나가 바로 온갖 풍상을 견디고 나서야 평화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냉이의 생존 전략 역시 이를 잘 보여줍니다. 키 큰 풀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냉이는 가을에 발아해 겨울을 견딘 후 꽃을 피우는 전략을 택합니다. 그 과정은 가혹하지만 절실합니다. 삶의 숙제는 그렇게 생겨납니다. 모든 생명은 불완전한 서식지에서 버티며 자라납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너무 쉽게 ‘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 익숙함이 정말 앎이 맞는지 묻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각자의 이유와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 다채로운 사연에 귀 기울이는 일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선 경청의 행위입니다.


여름의 강렬한 태양 아래 눈부시게 피는 여름꽃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합니다. 오동나무는 태풍이 잦은 환경에 맞서 살아가는 법을 진화시켰습니다. 이 모든 사연은 결국 삶의 방식을 묻는 질문이자 우리가 놓치고 사는 삶의 깊이에 대한 초대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는 숲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존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곧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산다는 건 자신에게 부여된 그 숙제를 차곡차곡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도 기어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서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가해자가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의 가해자와 오래오래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억울, 원망, 비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억울한 일이 없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의 방 안으로 가해자가 들어와 함께 살아가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 p170


왜 이 세상에는 삶의 숙제가 존재할까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자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양분이 풍부한 곳에는 햇빛이 모자라거나 바람을 맞기 어렵고, 햇빛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곳에서는 양분이 부족하거나 물을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곳은 없으며 설령 그런 곳이 있다 해도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연은 특정 생명에게 특혜를 주지 않으며 모든 생명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경에 적응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대나무는 속을 비움으로써, 또 다른 생명은 부드러움을 갖춤으로써 자연의 질서에 발을 맞춥니다.


저자는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다정한 인사말이 사실은 가장 허무한 인사말이라고 말합니다. "꽃길만 걸을 수 있는 세계는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의 삶이 그렇듯,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이죠. 오히려 오동나무처럼 역경을 다루며 살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2025년 여의도의 166배에 달하는 면적이 사라진 경북 일대 대형 산불을 언급하며 자연 파괴의 비극을 환기합니다. 실제로 파괴되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우려와 동시에 생명력을 잃고 피폐해진 인간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황폐해진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숲에서 찾습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인 질서, 먹고사는 일을 넘어서는 숭고하고 초월적인 삶의 모범, 더불어 사는 비결 등이 모두 숲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숲의 심부를 향해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의미가 소실되어가는 시대에 숲 생명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삶을 돌아보는 것은 생기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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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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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사에서 한국형 기병으로,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여기가 원본인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실험의 결정체 <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작가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대작입니다. 서양 판타지의 복제품이 아닌 아시아적 상상력이 깃든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역사학과 군사학 논문을 수십 편 참고하며 마목인, 초원, 온돌과 같은 요소를 고스란히 녹여냈다고 합니다. 판타지는 서양이 원본인 세계로 익숙하지요. 이제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병과 마법사>입니다.


영민하고 단단한 27세 여성 영윤해는 그 자체로 저항과 연대의 상징입니다. 윤해는 왕의 형인 영유의 딸로, 아버지가 동생인 왕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살아가는 가문에서 자랐습니다. 


강요된 혼사를 앞두고 잔혹한 약혼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도 몰랐던 마법적 능력을 발휘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힘을 일깨운 정체불명의 목소리. 이 장면은 억압된 주체가 자각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마법으로 커다란 곰개를 불러내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운명에 굴복하는 대신 각성의 서사가 시작됩니다.


전형적인 선택받은 자의 영웅상을 넘어섭니다. 윤해는 타고난 힘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혜와 결단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윤해는 유배와 다름없는 처지로 늘 전투가 일어나는 변방으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윤해에게 중요한 인물, 기병 다르나킨을 만나게 됩니다. 전통 판타지의 기사와 달리 몽골 기병을 떠올리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작가는 기사라는 외형을 기병으로 바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사 정신의 실천 방식 자체를 변형했습니다. 다르나킨은 절제된 무력과 단단한 신의를 상징하며 윤해의 조력자가 됩니다.


마목인 출신 다르나킨은 경작인 세계와 마목인 세계 양쪽 모두에 발을 딛고 있는 자입니다. 한편으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처지인 셈이라 윤해와 다르나킨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시대와 싸우는 동지적 연대로 구현됩니다. “대감께 세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윤해의 대사는 오랫동안 마음을 울립니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초원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거문담이라는 미스터리한 옛 유적과 세계의 파멸과 관련된 신비로운 주기 1021이라는 숫자입니다. 1021의 비밀은 북유럽 신화의 종말을 뜻하는 라그나로크를 떠올리게 됩니다.


거문담의 미스터리는 소설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이 거대한 인공물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윤해의 여정이 흥미진진합니다. 1021이라는 숫자는 세계관을 연결하는 비밀의 키워드로 작용하며 윤해의 존재와도 연결됩니다.


배명훈 작가는 인간 중심의 서사보다는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연대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고 말합니다. 이 세계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인물과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렇기에 책장을 덮을 무렵엔 윤해 한 사람의 영웅 코스프레가 아니라 연결과 협력의 가치를 잘 보여준 스토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윤해와 다르나킨이 싸우는 대상은 단지 괴물이나 전쟁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입니다. 권력이 어떻게 공포를 통해 통치하는지, 폭군 왕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에피소드는 판타지의 외피를 입은 정치 소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서양의 판타지 문법을 따라 하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기병과 마법사>. SF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즘 즐길 여유를 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그 재미를 만끽하며 읽었습니다.


전투 장면은 박진감 넘치며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세계관은 자족적입니다. 분명 중간중간 힌트가 있었음에도 아하! 하는 깨달음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얻게 되니 이 또한 끝까지 떡밥을 놓치지 않고 끌어가는 배명훈 작가의 노련함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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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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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악기, 아주 낯선 사운드. 해금으로 세계를 울린 음악가의 이야기 <음악을 한다는 것은>.  해금이라는 전통악기를 실험적 사운드로 풀어낸 뮤지션, 김보미의 치열한 음악적 탐색기이자 존재의 정체성을 악기와 함께 성장시켜온 한 예술가의 섬세한 내면 기록입니다.


30년 경력의 해금 연주가 김보미 저자가 해금을 처음 잡았던 중학교 시절부터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의 일원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현재까지를 두 축으로 풀어갑니다.


"아직도 어떤 곡을 연습하기 전에 한참이나 그 음악에 대한 사유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 p31


해금은 두 줄밖에 없는 단순한 구조를 지닌 악기이지만 그 안에서 무한한 감정과 서사를 끌어냅니다. 지판이 없는 해금의 특성상 정확한 음정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감각에 달려 있기에 해금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저자는 해금을 통해 자신의 소리를 찾게 되는 운명적 만남을 회고합니다.


국립국악중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며 수련과 다양한 연주 경험 속에서 해금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사유하는 연주자가 된 김보미 저자. 해금이라는 작은 악기를 통해 바라본 세계와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 책은 '음악한다는 것'과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해금 산조를 분석하는 방식에서도 저자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조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한 장단 한 장단이 그러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했다. 어떤 음이 울면 다음 음이 토닥여주는 선율의 인과와, 때론 허무하고 때론 관조하는 등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세세하게 분류해 산조에 늘어놓았다. 나만의 해석법을 찾은 것이다."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음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실어 연주를 사운드 스토리텔링의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산조라는 전통의 틀 안에서 허무와 관조, 토닥임과 분노라는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을 세세히 분류해 해석하는 방식은 그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전통이라는 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김보미의 예술적 지향점을 보여준 1부에 이어서 2부에서는 전통음악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는 도전의 연대기를 보여줍니다.





잠비나이는 김보미가 국악 밖에서 세계를 향해 내민 또 다른 해금입니다. 해금과 록이라는 물과 기름 같던 장르를 섞어낸 장르의 파괴자로서 실험을 이어갑니다.


기존의 퓨전 국악이나 크로스오버 음악의 한계를 짚어가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전통음악에 서양 악기를 덧입히거나, 반대로 서양 음악에 국악기 소리를 장식처럼 가미하는 방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교집합을 찾고자 했던 고민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해금을 단지 연주의 수단으로 보지 않습니다. 음악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이자, 사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해금 산조의 장단에서 삶의 리듬을 찾고, 잠비나이의 무대 위에서 고통과 환희의 교차점을 포착합니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에서의 공연 후기들이 흥미진진합니다. 글래스톤베리, SXSW, 코첼라 등 세계적 무대에서 해금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 충돌이자 융합의 순간입니다.


잠비나이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선보인 ‘소멸의 시간’ 퍼포먼스는 한국 음악의 새로운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장면이었고 정체성의 확장이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음악이란 결국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관객과의 만남, 청중의 사연, 무대에서 마주한 얼굴들 속에서 음악의 의미는 재구성됩니다. 이 책은 음악과 삶, 전통과 실험, 고요와 폭발 사이를 오가는 김보미 저자의 내면 여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과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보미 저자가 '음악을 한다는 것'의 본질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 전공자나 잠비나이 팬뿐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진솔한 여정의 기록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익숙한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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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민쌤의 챗GPT&AI 수업 실전서 - 오늘 배워서 내일 수업에 바로 쓰는 진짜 쉬운 챗GPT&AI 활용 가이드
원정민 외 지음 / 한빛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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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 4인이 전하는 수업 혁신의 실전 가이드 <열정민쌤의 챗GPT&AI 수업 실전서>.  AI 도구를 교실에 적용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집약해 놓았습니다.


에듀테크 연수 100회 이상, AIEDAP 마스터 교원 등의 경력을 가진 원정민, 권혜영, 신명진, 이채연 네 명의 현직 교사들이 현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AI 도구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용 가이드입니다.


수업-평가-기록-학급 경영이라는 교육의 전 과정에서 AI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챗GPT를 수업에 써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던 교사들도 방향을 잡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챗GPT에 대한 기본 이해부터 프롬프트 작성법, 교과 수업 적용 사례를 소개합니다. AI는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수업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존재라는 관점으로 진행합니다.





국어 수업에서는 챗GPT를 활용해 학생들과 함께 문해력 사전을 만들고 퀴즈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인물과의 가상 대화, 역할극 수업 대본 제작, 토론 주제 구상 등도 챗GPT로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수업은 교사 주도하에 이뤄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챗GPT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교사의 안내와 중재가 필수적인 겁니다.


AI가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분야는 단연 시간 단축입니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AI 활용법에도 초점을 맞춥니다. 평가 문항 작성, 채점 기준표 구성, 생활기록부 작성 등 업무의 효율화를 도와주는 프롬프트 예시가 잘 나와있습니다.


Gamma라는 프레젠테이션 제작 툴을 통해 수업용 PPT를 간편하게 만들고, 그림 생성 기능으로 시각자료를 제작하는 등 수업 콘텐츠 제작의 부담도 덜어줍니다.


실제로 교사가 수업에 AI를 적용하려 할 때 가장 큰 허들은 어떤 도구를 선택할지입니다. 이 책은 교과별로 적절한 AI 웹/앱을 소개하고, 사용법부터 수업 흐름까지 꼼꼼하게 안내합니다.​


국어 시간에 글쓰기 피드백을 자동화하고 싶다면 키위티를, 환경 수업과 AI 교육을 결합하고 싶다면 AI for Oceans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AI 학습지 제작 플랫폼인 미래엔 AI클래스는 전 교과에 활용 가능하며, 리포트와 피드백 기능이 있어 학습자의 성장을 추적하는 데 유용합니다.





음악과 미술 등 문화예술 교과에서는 생성형 AI가 창의적 표현을 도와주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SUNO와 투닝 같은 툴을 이용해 AI로 음악을 생성하거나 이미지 창작 활동을 도입하는 법을 소개합니다.


이때 생성형 AI는 예술 교육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학생들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욱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AI 윤리 교육의 중요성을 놓쳐선 안 됩니다. 챗GPT, 딥페이크, 생성형 AI 등 AI 기술은 윤리적 고려 없이 사용할 경우 학생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AI는 도구일 뿐이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와 목적이야말로 진짜 교육인 겁니다. AI의 양면성과 함께 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 스스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도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수업 자료입니다. 수업용 PPT, 활동지, 프롬프트 모음집 등을 바탕으로 바로 AI 수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업이 달라지는 보너스 페이지 코너에는 교실에서 안전하게 AI를 활용하는 방법, 교사를 도와주는 추가 AI 도구 등 실용적인 팁들이 담겨 있습니다.


현직 교사 4인의 AI 수업 노하우 <열정민쌤의 챗GPT&AI 수업 실전서>. AI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AI를 이미 활용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는 더 다양한 활용 방법을 만날 수 있어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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