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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에 누운 시인들의 삶과 노래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으로 감상하는 세계의 명시
이병욱 지음 / 학지사 / 2015년 2월
평점 :

이상이 상식을 뛰어넘는 난해시를 쓴 까닭, 민족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숨은 의미, 일생 실연의 아픔에 시달린 예이츠의 러브스토리, 코리아를 위해 동방의 등불 시를 쓴 타고르의 속사정... 영국, 독일, 러시아, 라틴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나라별로 세계적 명시를 쓴 시인의 삶을 정신분석 하는 <카우치에 누운 시인들의 삶과 노래>
단테 신곡에 비견될 만큼 영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는 <실낙원>을 쓴 밀턴, 20세기 최대의 시인이 일컫는 영국 시문학의 거장 T. S. 엘리엇, 20세기 독일 문학 대표작가 헤르만 헤세, 중국 당시를 대표하는 두 거장 이백과 두보, 일본 하이쿠의 대가 바쇼와 이싸, 천 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방랑 시인 김삿갓, 민족시인 김소월, 동양인 최초 노벨문학상 받은 인도 시인 타고르 등 어마어마한 거장들이 줄줄이 카우치에 대기합니다.

시인의 뜨거운 혼이 담긴 주옥같은 명시. 단 몇 줄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시작(詩作)의 압박감을 이겨내고, 압축적이고 상징적 작업의 진수인 시를 쓰는 시인의 삶. 시인을 이해하지 않고는 시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카우치에 누운 시인들의 삶과 노래>는 시인들을 카우치에 눕히고 정신분석을 하듯이 이면에 감춰진 정신적 고통을 살펴보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명시가 탄생한 외부적 배경과 시인의 심리적 배경을 알면 시를 곱씹는 맛이 더욱 좋아지네요.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어 있더라"고 말한 바이런은 문란한 사생활에 동성애 스캔들까지, 카사노바보다 더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답니다. 시인의 사생활을 알지 못했다면 시가 그저 표면적으로만 읽혔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해석이야 자기 마음이긴 하지만 그들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통해 시인의 고뇌를 엿보면 왜 그런 시가 탄생되었는지 그 시의 본질에 접근하게 됩니다. 바이런의 경우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와 위대한 정열의 시인이자 만인의 연인인 관점이 대치되더라고요.
『 시인은 적절한 공간 배치와 시어의 선택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적 메시지를 미지의 독자들에게 전한다.』 - p69


위대한 작품을 남긴 시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 또한 반드시 위대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거장이 헉 소리 날 만큼 문제소지를 많이 안고 있더군요. 시란 그 시인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 갈등과 병리를 표출하고 승화하는 치유 작업의 일종이기도 하다는 사례도 많이 나왔고요.
T. S. 엘리엇 시인의 출세작 <황무지>는 무려 5장으로 구성된 시인데 그리스 신화와 비극, 셰익스피어 고전, 그리스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 성 아우구스티누스, 석가모니, 헤세, 바그너 등을 인용하며 보편적 심성에 울림을 주는 일반적인 시와는 달리 방대한 고전에 관한 지식과 냉철한 지성을 요구하는 시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최악의 시점에 나온 작품으로 개인적 위기를 자신이 처한 시대 전체의 위기로 일반화한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더군요. 매우 소심하고 신경질적이고 강박 성격의 소유자였던 엘리엇의 삶의 위기와 정신적 혼란을 이해해 왜 그런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수수께끼를 풀고 있습니다. <황무지>는 낭비된 삶의 절망적 상황을 나타내 엘리엇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하네요. 즉 <황무지>란 엘리엇 자신의 정신적 황무지라는 의미라고요.

저자는 그들의 심리적 미숙함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어두운 이면과 모순을 절감하며 창조적 열정을 불태웠던 작가들을 보면 삶의 모순에서 비롯된 상처가 창작 활동에 몰입하게 만든 원동력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 셈이니까요. 물론 끝이 좋지 않았던 시인들도 있어서 안타까움이 서리기도 했습니다.
정신분석 용어에 낯선 독자를 위해 책 뒤에는 용어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알차더라고요. 오로지 현학적인 차원에서 감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시의 외면만을 피상적으로 다루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카우치에 누운 시인들의 삶과 노래>는 시인들의 굴곡진 인생 역정을 예술로 승화한 명시 제대로 맛보기에 딱 좋은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