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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과학과 그 너머를 질문하다 ㅣ 작은길 교양만화 메콤새콤 시리즈 3
박영대.정철현 지음, 최재정.황기홍 그림 / 작은길 / 2015년 5월
평점 :
낯설고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만화로 봤습니다. 작은길 출판사의 메콤새콤 시리즈는 만화로 보는 과학사와 과학을 다루고 있답니다. 19~20세기 과학적 성과 중 현대과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업적을 가려 그 업적을 대표하는 과학자 10인의 삶과 연구 과정, 결과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는 기획 의도를 가진 책이랍니다.

그 유명한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
그의 대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 패러다임이란 용어가 나온 이후 이제는 분야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죠. 쿤은 그 책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 물음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쿤 이전과 쿤 이후로 나뉠 정도로 과학철학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물리학도로서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으며 전쟁의 도구로 전락한 과학의 미래를 고민한 쿤.
그는 과학이 그저 전쟁의 도구일 뿐인가 하며 과학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과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되고요.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제기하며 미래의 과학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과학철학이라고 합니다.
쿤 이전에는 분석적 과학철학이었다면, 쿤은 과학이 갖는 역사성에 주목합니다. 과학적 지식형성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밝히며 이런 변화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요.
즉, 과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과학의 비전을 제시하는 철학적 접근을 함께 시도하는데 이건 결국 과학적 지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작업이라고 해요.

쿤은 과학과 인문학 소양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전후 하버드대에서는 기초과학 양성을 위해 인문학도를 위한 과학교양 교육프로젝트를 했다는데 거기에 쿤이 안성맞춤 인물이었죠. 과학사 수업을 하며 그의 과학철학 연구 인생이 본격화됩니다.
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도 정말 놀라웠어요.
그동안 교양 철학서를 읽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는 말을 이해한 척했던 내용을 이 책을 읽으며 이해했네요. 지금 패러다임에 놓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했으니 이해가 안 되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운동'이란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씨앗이 나무가 되는 게 운동이라고 했는데, 저는 단순히 위치이동만을 운동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개뿔 같은 소리로만 들렸던 겁니다.
『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틀리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대인의 오만입니다. 이건 바로 승리자의 견해대로 역사를 마구 왜곡하는 잘못된 역사관이 아닐까요? 』 - p80
쿤은 과거의 이론이 폐기되었다 해서 그 이론들이 비합리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한 겁니다. 다른 이론들을 하나의 같은 기준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사용했어요. 패러다임이란 용어와 더불어 이 용어도 이후 많은 논란이 되었죠.

과학이 원리와 사실로 이루어진 체계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낯설고 어렵게 다가오는데요. 쿤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인식의 전환) 위에서 이루어진 과학 '활동'이라고 해요.
과학의 역사는 점진적이고 누적적 발전이 아니라 계단 형식처럼 단절이 있다는 게 그의 주 논점이었어요.
이때 단절은 바로 혁명을 의미하는데 커다란 개념적 틀의 변혁을 뜻합니다. 쿤은 이걸 패러다임 전환이라 명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혁명 사이에 점진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절(과학혁명)이 있었다는 거죠.
패러다임은 한 시대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의미합니다. 무의식적인 암묵지처럼 이미 공통된 합의가 감각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지요.

이 패러다임이 변화하려면 뭔가 큰 이슈가 그 균열을 깨뜨려야 하는데, 저절로 패러다임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라 '설득'이라는 개념이 추가됩니다. 설득이 그저 말로 하는 설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합리적으로 대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합류하는 현상이 상당히 많긴 하더라고요. 단절의 순간에는 비합리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혁명'이란 개념을 썼다고 해요. 새로운 패러다임은 워낙 강력해 비판하기 거의 불가능한 인식의 틀로 보면 됩니다.
어쨌든 과학의 발전에는 이런 일정한 구조가 있더라 하는 것이 쿤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입니다.
그렇기에 쿤은 과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동적인 과정에 주목합니다. 주요 이론을 탄생시킨 유명 과학자들을 인터뷰 하다 보면, 교과서에 적힌 이론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고요. 과학자들이 어떻게 과학적 지식을 창조하는지, 그 생성과정을 탐구합니다.

『 다른 학자들의 비판에 열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고 수정해 가는 것. 이것이 진리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쿤의 철학적 작업이었던 것이다. 』 - p238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판한 시기는 1962년.폐암으로 1996년 사망하기까지 그는 점점 성숙한 과학철학자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과학철학계에 미친 영향은 강력했습니다.
쿤에 의해 1960년대 새로운 과학철학이 탄생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쿤의 과학철학이 한 단계 성장하길 제안합니다.
쿤이 말한 정상과학은 포스트 정상과학으로, 과학자 공동체는 시민들이 함께하는 확장된 공동체론으로 말이지요. 다시 한 번 패러다임 전환할 시기라는 거지요. 쿤이 말하고자 했던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현재 과학이 미래 과학을 놓고 고민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과학혁명의 구조> 책을 읽으려는 분이나 읽다가 포기한 분이라면 이 책 추천하고 싶고요, 평소 교양과학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교양만화 수준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제 리뷰만으로 쿤의 대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말고 직접 읽어보세요. 쿤의 인생과 쿤의 업적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도 읽어내기 좋은 구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