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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 백 마디 불통의 말, 한 마디 소통의 말
김종영 지음 / 진성북스 / 2015년 1월
평점 :
불통 vs 소통
소통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하고 듣기에 대해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데다가 자판만 두드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불통의 시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불통의 시대에 필요한 수사적 소통을 이야기하는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책은 수사학이란 무엇인지, 수사학이 왜 소통에 필요한지, 필요하고 중요하다면 어떻게 써먹을지 알려주고 있어요.

수사학修辭學은 고대 아테네에서 태동한 무려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유물 같은 학문이 글로벌 시대에 실용적으로 쓰이게 되다니. 수사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수사학의 알레고리'라는 목판화 속에 엄청난 스토리가 담겨 있더라고요.
수사학의 본래 의미를 밝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 가운데 여자가 수사학의 여인입니다. 그 주변으로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시민대법전을 완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도덕윤리 사상가 세네카, 역사가 살루스티우스, 웅변가 키케로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사학이 여러 학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뜻이라네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수사학의 의미는 그저 꾸며주고 장식하는 언어적 표현 방식을 뜻하는 수준이지만, 서구의 수사학은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라는 세 가지을 모두 다루고 있다 합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들이 수사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소개하는데,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이야기는 특히 인상 깊었어요. 키케로는 말의 기술보다 말하는 사람에게 더 비중을 두며 이상적인 연설가의 덕목을 강조했고, 퀸틸리아누스는 말을 잘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교육을 통해 정신의 모든 덕성을 갖춘 인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사학이 그저 리더의 자질로 필요한 기술이 아닌, 불통의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을 인류 최고의 서사시 일리아스, 각종 명연설, 개그콘서트까지 들여다보며 수사적 소통의 위력을 알려준답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사적 소통은 상대의 생각을 바꾸게 하고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는 설득지향의 수사학이 아니라, 참다운 소통을 모색해 소통을 지향하는 수사학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조화시키는 소통 학문인 수사학. 리더나 정치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 능력인 수사적 소통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글을 쓸 때와 큰 줄기는 비슷합니다.
먼저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생각의 발견이 우선입니다. 논거를 발견하는 거죠. 다음으로 이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 그리고 생각과 말이 만나는 표현 단계로 언어에 옷을 입히면 내용을 장악해 기억하고 목소리와 몸짓 등을 활용해 전달하는 것. 이것이 수사적 소통의 원리랍니다.

이런 수사적 소통의 원리를 잘 적용한 글도 소개합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수상으로 취임하며 했던 명연설, 스티브 잡스의 연설, 대통령의 공식행사 연설, 변호사의 변론 등 단계마다 꼼꼼히 소개하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더군요. 다양한 사례를 읽으면 읽을수록... '불통'하면 대표적인 누군가가 자꾸 떠올라 씁쓸함이...

『 "저 사람이 진정 우리의 리더일까?"라는 회의가 밀려올 때 두 가지만 떠올려보자. 우선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인지 따져보자. 듣는 사람을 위한 말이라면 지도자일 확률이 높다. 자신을 위한 말이라면 대개 선동자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마음 상태를 잘 관찰해보라. (중략) 마음이 편안해지면 지도자일 확률이 높다. 복수나 증오 따위의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선동자일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 - p60~61
듣는 입장뿐만 아니라 내가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먼저 세계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 대학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3가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저 3가지 이야기입니다."
수사적 소통 원리의 시작 단계 사례로 소개한 스티브 잡스의 연설 시작 부분인데,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말로 청중의 호감을 사고, 세계적인 CEO가 대학을 안 나왔다고 말하니 청중의 관심을 끌게 되고, 자신이 앞으로 펼칠 이야기를 3가지로 압축해 청중의 몰입을 끌어내고 이해를 돕고 있다고 하네요.

사안과 연설 목적에 따라 재치있는 연설의 사례로 소개한 뉴질랜드 의원의 연설은 참 독특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유쾌한 연설을 정치판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서 부럽기도 했고요.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며 남들과 소통하는 사람인 수사적 인간.
말을 잘할 뿐 아니라 정신의 모든 덕성을 갖춘 진정한 수사적 인간으로 거듭나야 할 시기입니다. 용기의 심리학으로 알려진 아들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는데, 사회적 삶에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해법으로 참다운 수사적 소통의 중요성은 더 강해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