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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읽는 만큼 성장한다고 하지요.
독서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며, 오로지 읽고 쓰는 삶 50년을 넘기는 동안 읽어 온 책 중 보물 같은 책들을 회고하는 <읽는 인간>에서는 그 책들이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 인생에 투영된 과정과 인간은 왜 읽는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중요한 책이라기에 읽기는 읽었는데, 인생에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던 책이 몇 권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이 빛을 발하게 될 때가 올 테니, 기대하고 계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 p13
오에 겐자부로 작가가 그리스 라틴 고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던 중 한 말인데요, 고전문학을 인용해서 서간 대화가 풍부해진 일화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일화를 보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인생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길을 내면서 '도움'을 받아가며 나아갈 길을 결정해왔다고 합니다. 책으로 향방이 정해졌었다는 걸 노작가인 지금 되돌아보면서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거죠.
고전은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새롭고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특히 노년에 이르러 그것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젊은 시절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두길 권하고 있습니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이 한 줄을 삶의 원칙으로 살아 올만큼 유년시절에 읽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영향이라든지, 자신의 작가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그 책의 번역자 와타나베 가즈오 아래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에 그가 있는 도쿄대 프랑스 문학과로 재수하면서도 결국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포 시집>, <오든 시집>, <엘리엇 시집>은 강력하고도 섬세한 문체, 아름답고 매력 있는 현대 문장의 매력을 남기며 오에 겐자부로만의 이상적인 소설 문체를 탄생하게 합니다.
이렇듯 시와의 인연도 상당한데, 나이를 먹으며 자기 내면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시를 읽어내는 방법도 변하는 것을 느낀다고 하네요. 인생의 습관이 된 독서의 기본 원리인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 원칙에 시만큼 적당한 것도 없다 합니다.
『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장 처음 책들을 발견했다면, 그것들을 하나로 이어 기틀이 되는 평면을 만듭니다. 그 뒤에는 이 책들이 불러들이는 다른 책들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죠. 』 - p33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리리딩, 재독에 관한 이야기도 새겨들을 만 합니다.
색연필 두 개로 정말 좋다 생각되는 부분과 부정적으로 신경 쓰이는 부분이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을 밑줄그으며 읽는다는데요, 번역서는 이후 원서와 대조해본다고 합니다. 일 년에 한 권만이라도 상관없다 해요.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재독은 자기 힘으로 읽는 노력을 한다는 의미인 셈입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 같은 레벨이 아닙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 - p49~50

원서와 훌륭한 번역을 함께 읽으며 그가 쓸 소설 언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해요.
새로운 문장, 새로운 언어와의 만남이 새로운 문체를 탄생시켰고 그것이 오에 겐자부로 소설 작가 인생의 시작입니다. 즉 독서에 대한 결실로 그는 소설을 쓰게 된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의 소설도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읽는 인간>을 통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의 인생관을 엿보면서 점점 매력이 보이더라고요. 노벨문학상 수상 시점에 맞춰 천황의 문화훈장을 거부한 점도 호감도 상승을 끌어올리긴 했고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말년의 작가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읽는 인간>에서 이야기한 책들은 오에 겐자부로의 '인생의 책'이었어요.
내 삶을 지탱하고 변화시킬 동력을 가진 인생의 책을 만난다는 것, 나만의 독서세계를 구축해나가는데 도움될 책을 만난다는 것. 상상만 해도 두근댑니다. 책이 인생에 어떻게 실질적인 작용을 했는지 일화를 여실히 보여준 <읽는 인간>을 보면, 책 한 권 읽으면서도 허투루 읽게 되는 법이 없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