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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9월 24일 개봉 영화 <에베레스트> 원작이라고 해서 읽었는데요, 중간에 잠깐 손 놓는 것도 아쉬울 정도로 저는 완전 몰입해서 읽었답니다. 산악문학 명저다워요.
재난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빼먹지 않고 보는 편인데, 간혹 느끼는 억지스러운 면을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상상의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실화 에세이거든요. 영화 <에베레스트>가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자연만 볼거리로 남을지, 아니면 원작소설에서처럼 팀원들의 심리와 산악인의 사고방식을 얼마나 잘 묘사할지...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나서라도 책으로 꼭 읽어보셨음 좋겠어요.

<희박한 공기 속으로> 책에는 사건 당일 사진이 생생하게 실려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등반 과정에서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힐러리 스텝 구역을직접 사진으로 보니 더 실감나게 다가오네요.

<희박한 공기 속으로> 에서 참사가 벌어진 바로 그곳.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사진을 보니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가슴이 저릿저릿해집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1996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참사가 있던 그 날, 살아 돌아온 존 크라카우어의 목소리로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존 크라카우어는 아웃사이더 편집장의 요청으로 가이드가 딸린 등반대 일원으로서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베이스캠프 정도까지만 둘러보고 상업화된 에베레스트 등반 풍조에 관한 기사를 쓰는 것이었지만, 존 크라카우어는 정상까지 오르지요. 하지만 하산 과정에서 살인적인 폭풍이 몰아쳐 동료 다섯 중 넷을 잃습니다. 당일 함께 한 다른 등반팀에서도 사망자가 나왔고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으로 그의 삶 뿌리가 뒤흔들린 채 고통에 사무치다 그들을 기리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1852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발견한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 역사를 소개하면서 에베레스트 등정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어요. 등반에 큰 관심 없어 지식이 전혀 없었던 저도 산악 등반사를 조금은 알게 되었네요. 에베레스트 발견 후 101년만인 1953년. 힐러리와 텐징이 최초로 정상을 밟게 됩니다. 이는 달 착륙과 비교될만한 사건이었다고 해요.
왜 위험요소를 무릅쓰고 도전을 하는 것일까요.
이 책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 <원 마일 클로저> 저자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최연소 영국인 제임스 후퍼는 삶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도전의 의미를 말했고,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도 삶의 목적이 상실되어갈 때 위험요소는 오히려 목적의 중요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어려움에 대한 도전, 동지애, 사명감 등이 길을 잃어버린 기운을 채워주는 거죠.

인간은 에베레스트를 기어코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관광지처럼 전락되어버리고, 영리 목적의 등반대가 늘면서 에베레스트는 상업화되어가지요. 돈은 많지만 높은 산들을 제힘으로 오르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몽상가들이 대거 몰려듭니다. 존 크라카우어는 바로 그런 상업화한 에베레스트 등반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죠.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읽으면서 몰랐던 점을 참 많이 알게 되었답니다. 셰르파를 노예처럼 대하는 부분이 나올 때는 분개도 하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을 도와주는 셰르파족의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순식간에 훅 등반하는 줄 알았는데 고산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고요. 정상에 가기까지 제2캠프에서 제4캠프까지 단계가 있네요. 희박해져 가는 공기에 적응하려고 베이스캠프에서 어느 고도까지 오르락내리락 반복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지막 정상 공격에서 빠지는 팀원도 나옵니다.

그나마 그의 팀은 다른 팀에 비해 꽤 훌륭한 편이었어요.
베이스캠프에서 고도 적응을 하며 몇 주 동안 서로 의지하게 될 팀원들의 면면을 확인합니다. 처음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일 뿐이었지만 점점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공감하며 동료애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 감싸들듯 묘사하진 않고 최대한 관찰자 입장으로 서술했기에 처음 기사와 책이 나왔을 때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 나는 물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계속 헐떡이면서 희박하고 싸늘한 공기를 들이마셨고 그때마다 폐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 p125
서로의 몸을 연결하는 전통적인 등반 기술 대신 이제는 독자적으로 등반하는 시스템인데, 무섭지만 매혹적인 등반 과정에서 두려움조차 잊게 하는 등반의 순수한 기쁨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 거센 바람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눈가루의 소용돌이가 해변에 부서지는 흰 파도처럼 로체 사면을 휩쓸고 내려와 내 옷을 하얀 서리로 뒤덮었다. ” - p183

세 명의 가이드, 여덟 명의 고객(그중 다섯은 중도에 돌아섭니다), 네 명의 셰르파. 총 열 다섯 명으로 구성된 로브 홀 팀. 그날 등정한 다른 팀까지 해서 모두 서른세 명이 정상을 향해 출발합니다. 존 크라카우어는 등반 실력이 꽤 있는 편이었어요. 뒤처지는 일 없이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정상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산소통 걱정에 일찌감치 하산한 것이 결국 그의 생명을 살린 셈입니다.
예상했던 시간에 정상을 밟고 하산을 해야했건만... 고정밧줄의 설치 지연, 저산소증으로 판단이 흐려진 상태 등 사소하고도 작은 잘못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에서 자연은 절대 너그럽지 않았습니다.

하산 과정에서 탈진 상태가 되어, 눈폭풍에 갇힌 동료들을 다시 구하러 갈 수 없는 몸 상태였던 존 크라카우어.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던 가이드와 동료를 뒤로 한 채 하산했기에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그는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한 발짝 건너왔던 겁니다.
낯선 지명과 산악 용어에 익숙지 않아 읽어내기 좀 까다롭지 않을까도 싶었는데, 독자에게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존 크라카우어의 상세하면서도 생생한 묘사가 단번에 절 홀려버렸어요. 산악인들의 사고방식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에서는 본질적으로 모든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장엄한 대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도전과 욕망, 거기에 어리석은 자만감이 한데 섞이면 산악재난은 피할 수 없는 길일지도요.

로브 홀이 이끄는 팀과 베이스캠프에 들렀던 도보여행자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다들 웃고 있지만, 며칠 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설 줄은 몰랐을 테지요. 존 크라카우어의 팀에서는 더그 한센, 앤디 해리스, 로브 홀, 남바 야스코가 그날 사망했습니다.
1997년 첫 출간 이후 산악문학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 저는 2015년 영화 <에베레스트> 개봉에 맞춰 나온 2판 8쇄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