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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평점 :
스콧 스토셀 저자는 30년 넘게 심각한 불안장애를 앓아 온 중증 환자입니다. 몸소 체험한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제가 불안을 직접 겪는듯한 느낌이었네요. 저자 본인의 병을 용감하게 내지르고 있지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불안 강도더라고요.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역사, 철학, 과학, 문학, 종교, 문화, 최신학술을 넘나들며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어갑니다.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처절한 느낌.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하는 '불안'은 삶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데이트, 시험장, 면접, 이동, 여행, 그냥 거리를 걷다가도... 평범한 날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덮쳐오며 무너져내리지요.

저자 스콧 스토셀이 결혼식 때 경험한 일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불안 증세는 복통, 두통, 어지럼증, 팔다리 통증 같은 신체증상으로도 나타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수치심까지. 이런 증상들이 강박증처럼 되어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합니다.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악순환의 반복이죠.
스콧 스토셀은 어린 시절 분리불안, 여섯 살 때 특정공포증, 열한 살 때 사회공포증, 10대 후반 공황장애, 청년기 초기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을 보이며 진행경과가 교과서적인 케이스라고 합니다. 삶 자체가 공포증에 지배되어 있습니다. 불안하면 배가 아프고, 배가 아프면 더 불안해지면서 순식간에 공황상태로 갑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 예민 덩어리 그 자체로 살아야 한 그의 삶을 보면, 그런 문제 없이 사는 제가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절로 드네요.

그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30년간 온갖 방법을 써봤습니다.
하지만 삶을 처참하게 만드는 불안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는 방법은 없었다고 해요. 이제는 체념 대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로 합니다.

불안의 정의에 대해서도 의견이 참 다양합니다.
프로이트조차도 불안 개념에 모순을 보였고요. 불안이 의학적 질환인지 철학적 문제인지, 심리적 문제인지 정신적인 병인지... 불안을 생물학적 기능인 동시에 철학적인 기능,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성이라는 다양한 접근법으로 바라보며 불안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합니다. 문화와 시대에 따라 불안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관점이 달라져 왔기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불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안증세는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불안과 관련한 병명이 생기기 전에는 신경쇠약으로 통칭해 불렸고, 이후 불안증세는 다양한 병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불안이 병을 재촉한 원인으로 등장하며 공포에 대한 현대적 연구를 촉발했고, 공포가 구체적인 생리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찰스 다윈 역시 신경증적 위장에 극심하게 시달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쓰메 소세키 작가는 본인이 앓던 신경쇠약을 책 속 인물들에게 죄다 이입할 정도였지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연설가로 알려진 키케로마저도 무대공포증이 있어 "말을 시작하려 하자 창백해지고 팔다리와 정신까지 온통 후들거렸다."며 도중에 무대에서 내려온 일화가 있습니다. 그 외 많은 지식인이 불안 증세를 보였더라고요.

'그건 의지의 문제일 뿐이야' 라는 심리문제에서 뇌 화학적 변화로 보며 몸의 병으로 인식하기까지 불안의 역사는 참 다사다난합니다.
정신의학계에서 불안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변화는 공황발작 증세를 없애주는 이미프라민 연구에서 시작합니다. 약리학이 불안의 역사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건이라고 하네요. 약에 대한 반응이 병을 정의한 셈입니다. 이미프라민이 공황을 낫게 하니까 공황장애는 존재한다 식이죠.
약에 취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그 자신이 새로운 안정제에 열렬한 전도사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은 대표적인 불안 치료제(신경안정제)로 자리 잡아왔고, 제약 산업의 이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불안을 약으로 달랠 때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일지도 생각해봅니다. 불안은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신호인데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철학적 물음을요.

불안증 환자는 지나치게 상상을 잘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 부정적 인생관, 낮은 자존감, 자기혐오에다가 이런 자아상을 감추려는 절박함, 수치심이 한데 섞여 처절해지지요. 실제로 겪어본 이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가는게 오히려 덜한 공포감이라고 합니다. 이런 증세를 몸소 겪은 스콧 스토셀 저자는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을 내놓습니다. 열 살 때부터 치료받았으니 그동안 온갖 정신치료요법과 정신약리학의 일시적 유행의 수혜자 겸 희생자로서 말입니다.
“정신과 약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일에 이념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제약회사의 주장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고, 인구가 약을 대규모로 소비한다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우려할 수 있고, 정신과 약을 먹음으로써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 어떤 손실이 있을지에 신경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297

불안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는 어린 시절 돌봄의 영향에 따른 애착이론도 있습니다.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후천적으로 생긴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자의 자녀들에게도 저자가 시작된 시기와 비슷하게 불안 증세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는 딸의 불안 기질이 유전된 것일까요. 양육태도를 바꾼다 해도 어떤 유전자들이 전달된다는 의미라면 이제는 엄마 탓이라고 하기보다 유전자 탓이 더 그럴듯해진 상황입니다. 저자는 나의 '나다움' 전체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유전적 요인 탓으로 돌려도 좋은지 고민합니다.

만성 스트레스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극심한 불안이든 약한 불안이든 감기보다 흔하게 '불안'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제 불안장애가 우울증을 제치고 지구 상에서 가장 흔한 정신질환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지식인이 불안증세를 안고도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것을 보면 한편으론 불안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삶을 황폐화할 정도로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하지만요. 불안한 사람들은 늘 주변을 살피기 때문에 아드레날린 중독자들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사회적 신호에 더 민감하다고 하지요. 불안증세가 심했던 새뮤얼 존슨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생산적으로 글을 써 회복탄력성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최근에는 회복탄력성, 수용력이라는 심리적 특질이 불안과 우울을 막는 중요한 역할로 등극했습니다.
스콧 스토셀이 불안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은 집요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더라고요. 명쾌한 해답은 없습니다. 그게 바로 불안이지요. 답이 있으면 불안할 이유가 없어지거든요.
책을 쓰면서 마주한 자기의 불안. 이 책을 완성함으로써 어떤 종류의 능력, 끈기, 생산성, 회복탄력성이 있음을 드러낼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내내 힘들게 한 '불안'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철학, 심리학, 의학적으로 불안의 뿌리를 이야기하는 르포르타주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불안의 역사와 과학, 자신의 불안 경험과 함께 파고드는 개인적 이야기는 이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