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힘 -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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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다들 어떻게 보내세요? 멍하게 시간 때우기도, 휴식을 취하기도... 끝없는 허무감에 허우적거리며 은둔형 외톨이로 있기도... 오타쿠적 기질을 발휘해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 사람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은 다를 겁니다. 난 마냥 편하게 밀린 잠이나 자는 게 좋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폐인 생활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혼자 있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고독과 마주해 고독을 즐기며 인생의 내공을 쌓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사이토 다카시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살펴보니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를 쓴 저자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고독을 즐기는 방법 중 책에 관한 이야기가 제법 비중있게 다뤄지기도 합니다. 선, 태극권 등 정신수양에 관한 이야기나 일본 문인들 이야기도 사례로 나와 일본 색채가 짙어 독자에 따라 그 부분은 거북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도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 읽을만했던 것은 고독을 정신적인 성장,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발판으로 삼으라는 기본 바탕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혼자 놀기의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하고 읽는 분은 심드렁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네요 ^^;


“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 '자신을 치유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우는 시간을 좀 더 찾자고 말하고 싶다.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다. ” - p8


사이토 다카시 저자도 소위 부적응자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입 실패부터 의미 없는 대학원 생활 이후 무직에 아이까지 있던 시기를 암흑의 10년이라 부를 만큼 초조함과 불안감을 안고 정신적 균형을 잃은 상태로 생활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결국 고독을 극복하고 오로지 혼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뭔가를 배우거나 공부할 때는 먼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 - p31


인간의 강인함은 단독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해요. 집단 속에 묻히는 게 아니고요. 따돌림 당할까 봐 혼자 있는 게 두려워지는 습관이 몸에 배면 혼자 있을 때 마음이 불안정해져서 결국 점점 혼자 있는 상황을 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이토 다카시 저자가 말하는 고독은 주변 사람들과 잘 사귀면서도 혼자일 때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혼자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집단에 끌려다니면 그게 주체적인 내 삶인지, 남의 결정에 따라다니는 삶인지. 혼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세계를 즐기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의 기술을 되도록 일찍 익혀두라고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말하는 고독을 즐기는 법의 그 첫 번째는 나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거울 보며 대화를 하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고, 독서를 통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교양을 쌓아야 하고,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나만의 일기를 쓰면서 나를 파악하는 거죠. 그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지, 매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내 자리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는 겁니다.

 


고독을 품고 있되, 고립되지는 않은 진정한 혼자 있기의 힘.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는 사람은 능숙하게 생각과 감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속으로만 되뇌면 자신을 상처내는 칼이 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자신의 몸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혼자가 되었을 때 외로움에 사로잡히기 쉽다고 해요. 나에게는 소홀하고 주변에만 신경 쓴 결과이기에 그렇답니다.



 

10대 사춘기 시절의 고독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끌어나갈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시기에 고독을 즐기는 기술을 익히면 고독도 내 감정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고독의 긍정적인 면을 살릴 수 있게 된다고 말입니다. 여러 기술 중 문학은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표현해왔기에 특히 책을 으뜸으로 칩니다.


 

자아확립한 후에 다른 사람들과 유연하게 관계 맺고 감정 교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에 따라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인지 그저 시간 떼우기식 혼자만의 시간인지 질적 차이가 나게 됩니다.


평소 고독에 괴로워하는 이라면 이 책은 고독을 자기 성장을 위한 고독으로 즐겨야 할 이유를 알게 될 테고, 고독을 나름 잘 포용해왔던 이라면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읽으며 나는 지금 생기 있는 삶을 사느냐고 묻게 됩니다. 고독을 허무감에 사무친 시간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정신적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면 자신만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는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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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2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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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창작에 관한 이야기예요. 창작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는데, 작가수업 1탄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의 다음 질문인 그렇다면 어떻게 라는 방법론을 이번 책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큰 주제에서 작가라는 대상을 지정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도움되는 내용이 많아 읽고 나서 무척 만족스러웠던 책이었어요.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는 글쓰기의 실제에서 사용되는 마술 같은 비법을 알려주는데, 그 비법이 단순히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을 다루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글이 탄생하기까지 바탕이 되는 '삶'을 중심으로 합니다.


작가란 글쓰기의 내적 저항과 싸우는 것이 일상화된 존재여서 신념과 분열의 경계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작가들에게서 불안증이 흔히 나타나는 사례는 최근에 읽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반비> 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만큼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내적 저항과 천부적 재능 때문에 나타나는 신경과민은 떼려야 뗄 수 없나 봅니다.


“ 삶이 문학의 주석이고 문학이 삶의 주석이다. ”​ - 러시아 평론가 벨린스키


그러다 보니 먼저 가치관의 중요성부터 이야기합니다. 이게 늘 몸에 지녀야 할 창작자의 기본자세거든요. 창작에 임하는 가치관을 정비하지 않으면 시작부터 꽝이란 말이죠. 글 쓰는 자신을 창작의 주체로 인정해 자신을 공인으로 생각해야 하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창작의 과정을 풍요롭게 하며, 빛이 아닌 어둠 속에 있어야 아픔, 어둠, 슬픔이 꿈과 빛과 기쁨의 가치를 알게 하고, 잃는 만큼 얻는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합니다.


“ 삶으로 지불하지 않은 사람은 글로 없을 게 없어요. ” - p43


 


가치관을 정비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창작 출발에서 완료까지에 해당하는 구상과 집필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김형수 저자는 창작을 연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으로 비유하는데, 흔히 작품을 만든다는 말보다 작품을 낳는다고 하듯 잉태에서 출산까지의 과정이 작가에게는 상상력이 무르익어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이라고 합니다.


 

“ 훌륭한 상상력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기초한 상상력을 통해서 나온다. ” - p69



 

 


첫 문장의 중요성도 언급하는데요.

보통 첫 문장은 신이 내린다고도 하고, 작가는 마지막에 첫 문장을 쓴다는 말로 첫 문장의 가치를 드러내지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전10권 창작보고> 에 언급된 말이나, <토지> 박경리 작가의 메모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모든 것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담겨 있다는 것이 바로 '작가는 마지막에 첫 문장을 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 과정이 잉태에서 출산까지의 과정입니다. 충분한 잉태 과정을 거쳐 실타래처럼 얽힌 것 중 첫 문장을 찾아내면 줄지어 나오게 된다고 해요. 


 


집필 과정에서는 막심 고리키의 <나의 문학수업>을 언급하며, 표현의 순차성을 다룹니다.

느낌의 순서를 잘 살리라는 의미인데 글 쓰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필요로 하는 훈련이라고 해요. 필사보다 더 뛰어난 것은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하는 사람의 말을 녹음해 글로 적어보는 연습이 참 좋다고 하네요. 실감 나게 재현하는 언어의 성찬을 맛보려면 먼저 느낀 것에서 나중에 느낀 것으로 문장을 쌓아가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걸 몇 가지 사례와 함께 언급하는데 독자로서 책을 읽다 흔히 말하는... 실감 난 묘사, 술술 읽힌다고 느끼는 그 부분인 것 같아요.

 


잘못된 표현과 바른 표현을 비교해보니 그동안 특별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구나 싶었어요.

정말 큰 영향력을 나타내는 문제인데도 말이죠.


삶의 새로운 측면을 밝혀내지 않은 소설은 아무리 새로운 의상을 걸쳐도 낡은 소설인 것이고, 새로운 세상과 사회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성격, 행동양상을 드러낸 글은 새로운 소설이라는 얘기에요. ” - p152

창작 실제에 필요한 기술도 물론 다루고 있습니다.

긴 안목에서 필요한 기술적 문제와 눈앞에 맞닥뜨린 요령론 수준의 문제들까지 두루두루. 이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버무려지면 우리는 이 작품이 잘 쓰인 소설, 시라고 느끼는 거죠.


읽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부분도 콕 짚어주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이참에 정리되더라고요. 항상 작품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암호해독 하듯 분석하려 들지는 말라고 해요. 각자의 다른 경험으로 작가가 하는 말을 못 알아먹는 경우도 있긴 하고요 ㅎㅎ 이런 경우엔 자칫 별 볼일 없는, 이해 잘 안 되는 작품이라고 섣부른 평가를 하기 쉬워집니다.


작가수업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에서 말하는 것을 지키면 평소 쓰던 작품보다 두어 단계 높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자신하네요. 독자로서도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독자가 되겠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작품이란 결국, 삶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여러 사례와 함께 알려주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은 책이네요. 글쓰기 책 찾으시는 분이라면 저는 이 책도 권하고 싶어요. 느낌 오는 책~! 3탄도 예고하고 있어요.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존재인지 작가관에 관한 문제를 다룬 작가수업 3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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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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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발견을 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통념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현생인류가 되었다, 혹은 유럽인의 조상이다는 방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몸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간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고생인류 DNA 연구자 스반테 페보에 의해 공방이 일단락된 이 사건을 다룬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이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DNA 연구 과정을 스반테 페보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어,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발표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요.

 



왜 네안데르탈인일까.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멸종한 다른 형태의 인류입니다. 멸종한 형태의 인류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길래... 그들은 멸종했고, 우리는 문화혁명을 이루어내고 있는 걸까요. 즉,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현생인류를 인간답게 만든 본질을 묻는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 연구의 중요성이 담겨 있습니다.


스반테 페보는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서열 해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는 이후 진행될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의 핵 DNA 연구보다 앞선 연구였는데요, 그 결과가 참 놀라웠습니다. 전 세계 현생인류 어떤 인간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변화들을 가진 DNA 서열을 발견했고, 유럽인의 조상이라고 믿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오늘날 유럽에 사는 어떤 집단과도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인류학 연구 분야에서 10년 넘게 벌어졌던 싸움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우주 탐사 역사의 달착륙과 같은 사건이라고 하니 그제야 이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더라고요.


 



 

스반테 페보의 DNA 관심은 30년 전쯤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동 걸렸습니다.

고대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그의 행동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고자 하는 목표 때문입니다.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기원을 밝혀 인류 역사를 쓰고 싶었던 겁니다. 그의 표현으로 치면 "진화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라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에 어떤 변종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보며 고대 인류의 DNA 서열에 나타나는 변이를 조사함으로써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잡는다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DNA를 잡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영화 <쥐라기 공원>의 폐해가 여기서 나타난. 호박 속에 갇힌 모기의 DNA를 너무 쉽게 추출하는 걸 봐서인지 DNA를 회수하는 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네요. 특히 현대인의 DNA에 오염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동안 숱하게 매체를 통해 알려진 대부분 연구결과가 사실은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는 제대로 된 연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려 한 사람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DNA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해결 과정도 상세히 다뤄 이후 다양한 연구 분야에 응용되게끔 길을 깔아 준 사람입니다.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는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든 변화들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전체 게놈서열 중 단 0.003%로 시작했는데, 뼈 한 조각에서 얻을 수 있는 DNA양이 100%가 아니라 겨우 4%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미생물 등의 DNA나 현대 DNA 오염 등이다 보니 정말 지루한 과정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막힐 때마다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처음에는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라고 해요. 익숙하지 않은 기술에 대한 거부, 반발 작용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묘안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더라고요. 뼈 한 조각에서 얻을 수 있는 DNA 양이 겨우 4%만 실제 있는 게 아니라 해독 과정의 기술만 높이면 20%가 나오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물관에 뼈가 있어도 실제 DNA 존재를 기대할만한 보존상태의 뼈는 극히 낮은 데다가 그나마 있는 DNA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수준의 기술력이었지만, 기술혁명의 시대와 맞물려 과학발견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DNA 염기 서열을 알아내 DNA 정보를 책처럼 읽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온 거죠. 이론과 기술이 함께 움직일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걸 생생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 연구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비아프리카인에게 작게나마 유전적 기여를 했다는 증거가 나오게 됩니다. 유전자 이동의 의미는 이종교배로 생식능력 있는 자손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 북극곰과 회색곰이 만나면 자손 생산이 가능하지만 다른 환경에 적응되어 있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유럽인뿐만 아니라 아시아계까지 비아프리카인 모두에게 비슷한 비율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전달된 이 수치는 그동안의 이론을 수정해야 할 결과였습니다.


이제 이 결과를, 오용될 여지를 최소화하고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 개념은 무식하고 힘만 센 사람을 비꼬듯 표현할 때 사용할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릴 만한 일이 생겼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니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팀은 독립적인 추가 증거들을 찾는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특별한 반란 없이 패러다임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 게놈 논문 발표 이전에,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연구가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어요. 시베리아 남부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뼈를 분석하면서 데니소바 개체는 현생인류도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완전히 다른 인류 집단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게다가 데니소바인 게놈 분석 결과 이들 역시 네안데르탈인처럼 그들의 작은 일부가 아직 오늘날의 사람들 안에 살아있다는 것. 특히 파푸아뉴기니인에게 4.8% 유전자 이동을 확인했으니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합쳐서 약 7%가 초기 형태의 인류에게서 유전자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왜 멸종했고, 우리는 왜 살아남았는가를 풀기 위한 길을 제시한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

최근에 읽었던 <생명 그 자체> 책에서는 우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니, 뼈가 남아있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 지구 역사 안에서도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은 사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만만하게 보기도 했네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DNA가 많이 남겨진 뼈를 찾는 과정에서 박물관과의 협업, 경쟁자들과의 눈치싸움, 발표를 어느 과학전문지에 할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 등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다양한 문제를 솔직히 다루고 있어 그 생생함은 최고였어요.

낯선 과학용어가 많았지만, 한 파트 끝날 즈음 딱 궁금하게 만드는 문장을 집어넣어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중간에 손 놓지 못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치고 그걸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독자로서는 흥미진진했어요. 아주 내밀한 사생활도 풀어놓고 있는 걸 보면 문화적 차이도 확연히 느꼈고요.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는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직계 조상인 완전한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기원을 연구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해부학적으로 현재의 인간과 뚜렷하게 다른 모습을 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정보를 통해 멸종한 그들과 확연히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는 현생인류의 무엇이 인간답게 만든 본질인가를 찾는 여정입니다. 스반테 페보 팀이 밝힌 게놈 정보가 앞으로의 다른 연구에 도구로 이용될 테니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든 변화들이 무엇인지는 하나씩 밝혀지겠죠. 근데 그걸 완벽히 밝혀내게 된다면, 현 인류는 멸종하고 새로운 인류 탄생의 날을 초래할 것만 같은 SF소설 같은 공상도 하게 됩니다. 그건 좀 오싹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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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낭 - 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풍몽룡 지음, 문이원 옮김, 정재서 감수 / 동아일보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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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지낭 - 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마오쩌둥과 장제스가 탐독하며 고금의 지혜를 현실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구한 <지낭>.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몰랐던 생소한 고전인데요. <지낭>은 수천 년 처세의 교훈을 담은 중국인의 꾀주머니로 동양의 탈무드라 불릴만한 명작이라고 합니다.

 

 

<지낭>의 저자 풍몽룡은 고전소설집 <삼언 三言>, <열국지 列國志> 등 민간문학 방면의 문호라고 해요.

중국 요순시대부터 명나라에 이르는 지혜를 주제별로 엮은 <지낭>은 명나라 때 첫 출간 되었는데, 지혜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둬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용적 가치가 두드러지는 저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풍몽룡은 지혜를 보는 관점이 조금 달랐는데요.

군자의 지혜도 모자람이 있을 수 있고 소인의 지혜도 뛰어날 수 있다며 지혜와 인품을 별개로 두고 보는 관점을 내비칩니다. 큰 지혜는 큰 지혜대로, 작은 지혜는 작은 지혜대로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지낭>을 통해 알려줍니다. 당시에는 인품이 뛰어난 자의 지혜를 본받는다는 시점의 시대였기에 풍몽룡의 관점은 획기적 발상이었다고 해요.

 

 

 

 

<지낭>은 지혜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고, 풍몽룡의 의견이나 관련 고사를 덧붙이는 구성입니다.

지혜를 현명하게 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낭>은 원본 전문이 실린 것은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사례를 선별해 실은 책이라고 합니다.

 

 

 

<지낭>에서 최고로 친 처세는 크게 보고 멀리 보는 지혜였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핵심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미래까지 대처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실천한 역사적 인물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 인정에서 벗어나는 짓을 하는 사람의 속내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 ” - p42

 

 

 

미래를 예측하는 선견지명은 지식이 아닌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해요.

사물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꿰뚫는 선견지명으로, 모든 일을 통찰력과 순발력의 힘으로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지혜라고 합니다. 선견지명과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선견지명은 앞서 나가는 총명함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자신의 총명함을 감추어야 할 때와 드러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면 화를 부릅니다. 선견지명은 사소하지만 분명한 징조를 감지하고, 실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 모두 동시에 발휘될 때 유효한 의미가 있다고 해요. 화를 피하는 방법을 듣고도 화를 당한 송나라 한탁주 일화로 생생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낭>은 총 9개의 주제로 나뉘어있는데 장마다 들어가기에 앞서 문이원 역자의 해설이 있습니다. 고전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는가, 옛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어요.


“ 우리의 앎은 결코 정보 축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믿음'이 자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이 맹목적인 것은 아닌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어느 순간 빗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점검하는 자세이다. ” - p199


<지낭>에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삶을 윤택하고 풍족하게 만드는 경제 관련 지혜도 있고, 공평하고 공정한 송사와 관련한 지혜도 있고, 속임수를 쓰는 기만책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상대의 특성과 상황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 달성하는 사례를 보면서 우회적 방법을 이용해 상황을 역이용하는 법이라든지 (이 분야의 최고봉은 제갈량이 아닐까 합니다), 유연한 대처와 계책으로 누구에게도 화를 입히지 않고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면 기만책 또한 삶의 기술이라고 소개합니다.

 

 

 

 

 

<지낭>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가 담긴 테마는 바로 '처세'편입니다. 다양한 처세술 중에서도 저는 거리두기 기술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처세의 의미도 이참에 다시 번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윈-윈 전략으로서 말이죠.

 

 

아직도 서양고전에 비하면 낯선 동양고전, 그중에서도 더 생소했던 이 책 알게 되어 뿌듯하네요. 현재의 고민이 그 시대에도 똑같이 고민된 부분이었기에 고전은 낡은 유산이 아닙니다. 각종 처세술도 현명하게 운용해야만 의미가 있듯 수천 년 삶의 지혜 주머니를 살짝 열어보고, 응용할 부분을 고민해 보는 것 자체가 유의미한 일인 것 같아요.

우화인 탈무드에 비해 훨씬 현실감 넘치는 <지낭>의 일화는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주제별로 먼저 끌리는 것부터 읽으면 됩니다. 두툼한 책인데다가 '나, 인문 고전이오' 티를 팍팍 내는 딱딱한 비주얼에 지레 겁먹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탈무드 읽듯 읽는 재미가 아주 좋았던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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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만 수학사전 - 초등에서 중등 개념까지 와이즈만 사전 시리즈
박진희 외 지음, 윤유리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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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초등수학사전이 세 권 있는데, 가장 사전다운 사전이 와이즈만 수학사전입니다.

초등에서 중등 개념까지 다룬 와이즈만 수학사전은 아이가 직접 수학 용어를 찾아서 스스로 이해가능한 수준이라 초등생 눈높이에 맞는 수학 개념어 사전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요.


 

와이즈만 수학사전은 우리가 아는 사전 방식 그대로 표제어를 가나다순으로 했어요.

그럼 이게 당연하지 다른 사전도 있나 싶죠? 초등 수학사전류를 보면 이 방식이 의외로 귀해요. 대부분 교과개념 순서 또는 백과사전식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와이즈만 수학사전은 가나다순이라 아이가 궁금해하는 그 순간, 그 용어를 바로 찾을 수 있어요. 찾고자 하는 단어를 바로 찾는다는 것은 실제 공부할 때 시간낭비없는 유용한 방식이고요.

와이즈만 수학사전은 초등수학에서 중등수학을 아우르는 용어 308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초등 수학 전학년 용어 모두를 일단 뽑아 정리한 다음, 연관된 중학 수학 용어를 뽑아 선정한 단어라고 하네요. 표제어는 한자와 영어 병행 표기되어 있어요.

 

표제어 아래에는 핵심 문장 한 줄이 나오고, 직관적인 삽화를 이용해 그림의 비중이 제법 큽니다.

초등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편집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전으로 주제 학습을 길게 하는게 아니라 사전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임팩트있는 본문 편집에 신경 쓴 부분이 와이즈만 수학사전의 장점입니다.

일러스트가 핵심을 다시한번 알려줘 그저 의미없는 삽화가 아닌 개념 정리에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수학 공식은 별도 정리해 눈에 잘 띄게 해두었네요.

 

와이즈만 수학사전은 아이와 이 엄마 모두 만족감을 줬어요.

찾으려는 단어 그대로 찾으면 되고, 아이가 알아서 보고 이해할만한 수준이예요. 책 두께는 다른 것과 비슷하고 속종이 두께는 그렇게 얇지 않은데도 책 자체 무게는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하드커버로 되어있어 탄탄한 느낌이라 책꽂이에 꽂아만 두기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기 좋아요. 집에 있는 수학사전들 중에서 우리 아이 눈높이에는 이게 제일 적당한 수학사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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