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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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열 번째, 춘분 지나고까지는 기존 소세키 장편소설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단편인 듯 장편소설인 이 책은 다양한 시점 변화를 사용해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느낌에다가, 추리소설 느낌도 살풋 났거든요. <춘분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은 이 글을 춘분 지나고까지 쓸 예정이라 붙여진, 참 허무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은 매번 그 소설이 쓰인 시기에 소세키가 살던 집이나 기억할만한 장소 등을 곁들여 소개합니다. <춘분 지나고까지>에서는 이 소설을 연재하기 전 한참 쉬었던 소세키의 정황을 알려주고 있어요. 평소 신경증과 위염 증세가 있던 소세키가 큰 고비를 한번 넘기는 시점입니다.

 

대학 졸업 후 취직 준비 중인 게이타로. 평범함을 싫어하는 로맨티스트며 모험을 꿈꾸는 자라 자처합니다.

제 눈에는 게이타로 같은 유형이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졸업 후 취직은 해야 하니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니지만, 취직이 어디 맘대로 되지는 않고. 점점 더 눈앞의 평범함이 자신의 무능력 때문인 것 같아 끙끙 앓기만 하기도 하고, 점집에 점을 보러 가듯 운에 빌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아주 강한 의욕도 그렇다고 포기도 아닌... 오히려 이 점이 더 보편적 인간상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그보다 먼저 뭔가 경탄할 만한 사건을 만나고 싶은데, 전차를 타고 이리저리 아무리 돌아다녀도 전혀 소용이 없네. 소매치기도 못 만난다니까" 하고 말하는가 하면 "이보게, 교육은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완전히 속박이네. 아무리 학교를 졸업해도 먹고사는 게 힘들다면 그게 무슨 권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지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뭣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느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일세. 지독하게 사람을 속박하네. - 책 속에서


 

게이타로는 지금껏 무엇 하나 자신의 힘으로 뚫고 나왔다는 자각이 없었다. - 책 속에서


그러다 친구 스나가의 친척에게 소소한 일을 의뢰받는데요, 바로 누군가의 뒤를 밟는... 게이타로가 평소 꿈꾸던 탐정과도 같은 일이었어요. 이때 점을 봐주는 노파가 말하길, 나아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은 손해라며 망설임을 콕 짚어내지요. 하지만 한번 그르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고도 합니다. 게다가 자기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것 같기도 한,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한 뭔가를 말하며 알쏭달쏭하게 합니다. 게이타로는 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막 움직이려던 차에 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생각하며 스나가 친척이 의뢰한 일을 맡게 됩니다.


한편 비범한 경험이 풍부했던 방랑자 모리모토라는 남자가 뱀 조각을 새긴 지팡이를 남겨두고 사라집니다. 평소 그의 경험담을 듣는 것을 좋아했던 게이타로는 점집 노파가 말한 알쏭달쏭한 예언을 뱀지팡이와 연결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뱀지팡이를 들고 다니지요. 자취를 감춰버린 모리모토에게 받은 뱀지팡이는 앞일을 추측하게 하는 매개체처럼 쓰입니다.

 


비 오는 날 」 챕터에서는 소세키 작가의 막내딸 죽음을 의미하는 글을 쏟아부으며 진혼곡처럼 펼쳐두기도 합니다. 소세키는 이 책을 쓰기 전 막내딸이 돌연사하는 아픔을 겪는데요, 그런 경험을 한 소세키의 상황이 의식적으로 담긴 책이었어요. 

 


게이타로 외에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스나가 라는 부잣집 도련님인데, 게이타로에게 스나가는 경멸과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스나가 역시 게이타로처럼 백수 신세지만 스나가는 일을 하려는 목적 자체를 가지지 않은, 소세키의 말마따나 고등유민에 속한 자입니다. 소세키 중기 삼부작 소설 중 하나인 <그 후>의 다이스케처럼 말이지요.


소세키의 소설에는 이런 고등유민 유형이 자주 등장하는데,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집안의 자식이지만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사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 고민이 대개 사랑과 관련되어 있지요. "내 머리는 내 가슴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p287)처럼 스나가에게 한 여인의 존재란... 썸에 끌려다니기 싫은 마음이 있는 한편 알게 모르게 사랑의 질투를 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입니다. 여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기도 하는데 대개 '이건 날 낚으려는 의도?' 이렇게 생각을 마무리 짓는 편입니다.


소세키식 사랑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의 책을 소개할때 조금씩 언급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송태욱 번역가의 한 마디가 대박 공감되었어요. "통속도 소세키를 만나면 통속성을 잃는다." 처럼 소세키 손에만 들어가면 뻔한 사랑도 묘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삼각관계가 나오지만, 말로 뭔가 딱 짚어 표현하긴 어려운데 이건 소세키식 사랑이라고 할만한 느낌이랄까요.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면서 사실 이번 이야기는 소세키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파악이 또렷하게 되더라고요. 각자가 이 사회를 사는 모습을 보여주되 일상잡변기라고나 할까요. 이 책 해설을 맡은 정혜윤 라디오 PD의 말처럼 더 오래 생각할수록 뭔가 알 것만 같다가도 그 알 것 같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오리무중인 심정에 공감할 정도였어요.

이 책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 뱀지팡이는 부활을 의미하는 뱀으로서, 어둠을 포용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러고 보면 스나가는 마지막에 여행을 떠나는데요. 소세키의 소설 <문>에서는 문을 열고 넘어서지 못한 인물을 그렸다면, <춘분 지나고까지>의 스나가는 한 발 내디딘 셈이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이 책이 신선했던 건 시점 변화가 많아서였기도 했네요. 단편인 듯 아닌듯한 분위기였다 했는데, 처음과 끝은 게이타로 3인칭 시점이고 중간에는 여러 인물이 1인칭과 3인칭 시점으로 왔다 하며 하나의 장편소설 안에서 다양한 시점 변화를 볼 수 있답니다.

조금은 독특했던 <춘분 지나고까지>. 일상 묘사 위주로 강한 임팩트는 없어 좀 밍밍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책 덮고나서도 재미없었어 말은 안 나오는걸 보면 소세키식 소설에 이쯤이면 제대로 빠져들어 있다고 해도 될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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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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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랍니다.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유전적 유산을 보는 시각을 확 바꿉니다. 유전이라 하면 고스란히 물려받는 고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DNA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연한 유전이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저자 샤론 모알렘은 인체생리학, 신경유전학 및 진화의학 박사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견으로 수많은 상을 받은 과학자라고 합니다. 특히 희귀 유전병과 관련한 연구를 통해 생명공학 관련 특허를 열아홉 개 획득하기도 했다는군요.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희귀유전병의 사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다루고 있어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글이기에 의사로서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개인적인 이야기와 버무려 쉽게 설명해 읽는 맛도 좋았고요. 이야기 도중 살짝 옆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유전병을 진단하는 것은 간단하고 미묘한 단서만으로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해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외양이 유전적 혹은 선천적 질환을 가졌는지 진단할 수 있는 신체의 단서들. 손, 눈, 코, 입, 턱... 이런 것을 통해 유전병을 알아내기도 한다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콩 실험은 누구나 알고 있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떤 형질이 전해진다는 것을 발견한 멘델. 하지만 그의 실험에서는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바로 유전 발현의 다변성입니다. 같은 유전자여도 다른 발현이 있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멘델식 유전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 당신 세포들의 핵 속에는 자물쇠고 꽉 잠긴,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그리고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백과사전이 있다. 여기에는 또 당신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단서도 있다. ” - p42



 

 

균형식단을 했지만 결국 간암으로 이어진 제프의 사례는 과일과 채소가 맞지 않은 경우였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피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제프도 유난히 과일과 채소를 쳐다보지 않고, 육류 위주 식습관이었는데 의사의 조언에 따라 균형 잡힌 식단으로 바꾼 것이 그에게는 독이 된 겁니다. 유전병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원래 지니고 있던 거였고요. 그전까지는 유전병이 있는 줄 몰랐다가 뒤늦게 밝혀진 상황입니다. 그동안은 잠잠하게 있던 것이 왜 하필 균형식단 때문에 발현되었을까? 내 유전적 구성에 절대 맞지 않는 몇 가지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특정한 유전적 유산에 꼭 들어맞는 방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례는 제프처럼 평균 또는 대부분이라는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는 사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대다수에 속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샤론 모알렘은 묻습니다.


“ 당신의 행동이 당신 유전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고' 또 '결정하기 때문'이다. ” - p51


동일한 DNA도 어떤 요인에 따라 유전자 발현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후성유전학.

꿀벌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자가 같지만, 여왕벌이라는 유전적 발현은 단지 로열젤리 때문이라는 것. 어찌 보면 허무하기도 하네요. 로열젤리가 일벌로 만드는 유전자의 발현을 줄이도록 도운 거라고 합니다. 발현의 문제였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유전자를 켜고 끄고, 혹은 발현량 조절 방법까지 고안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 주는 것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바로 약,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등 우리 삶의 경험입니다. 집단 따돌림을 예로 들며 설명한 걸 읽고는 정말 놀라웠어요. 나는 기억 못 해도 유전자는 기억한다니...


샤론 모알렘은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생활습관을 좋은 쪽으로 유도해 스스로 삶의 선택을 하는데 유용하게 쓰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음식을 찾아 최근 우리 조상이 먹은 것처럼 먹고, 활동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합니다.



유전학, 음식, 특정 미생물의 조합에 따라 유전자 발현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평범하게 쓰이는 약품이 독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사례도 나옵니다. 약품 권장량은 유전적으로 다수의 규정에 맞을 뿐, 유전적 소수자들의 요구는 무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평균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유전자에 따라 그 좋다는 오메가3가 독이 되기도 하고, 성장호르몬 역시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다분한 점을 일깨워주기도 했고요.


 

흥미로운 또 다른 사례로는 고산병이 거의 생기지 않는 고산 지대에 적응한 셰르파 이야기였어요. 에베레스트 산에서 등반가들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사는 셰르파. 그들에게는 산소가 부족한 고산에 유리한 특정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셰르파 사례를 보며 미래에는 유전적 급수에 따라 경쟁하는 스포츠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예측에 공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피 속에 적혈구가 더 많은 유전병은 극한 스포츠에 아주 유리하거든요. 그런 유전자가 없는 사람과 그 종목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경쟁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사회가 아니지 않겠어요? 미래에는 선수들에게 유전자 검사가 필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유전자를 가지고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반-가타카 법이라 해서 유전학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에는 적용이 안 된다니 반쪽 법안입니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의 문턱이 낮아졌고 검사 비용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인 데다가 기술은 더욱 좋아질 텐데, 그와 관련한 도덕적 사항들은 여전히 SF영화 가타카에서 본 유전에 따른 차별 세상을 방지하긴 힘든 수준이군요.


 

셰르파 사례에서처럼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바람에 고산 적응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 그런 유전적 유산 없이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거나 고산병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를 성취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 결국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달렸다기보다, 하루하루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선택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 - p212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위험하고의 문제가 모두 유전학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며, 유전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잘 이용하면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될 수 있다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군요. 내가 받은 유전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 위험한 발현을 막을 수도 있고, 좋은 쪽으로 발현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 매력적이네요. 수동적인 운명론 극복이군요.

이렇듯 나를 온전히 나로 있게 하는 건 아주 작은 유전자 변화입니다. 내 행동으로 내 유전자 운명을 결정한다니.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자신의 유전적 유산을 스스로 잘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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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 - 일본편 보육 현장 탐방기 1
김은주.이하정.임지연 지음 / 학지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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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현장 탐방기 첫 번째 일본 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은 일본 유아교육 현장을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하루 1시간 이상 바깥놀이 하게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참 어렵다고 해요. 준비해 나가는데 시간을 다 써버릴 지경입니다. 바깥놀이를 하게끔 했으면 그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유치원, 어린이집 환경이 어디 바깥놀이 할 만한 환경이던가요. 그저 일회성 체험 수준의 놀이밖에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흙 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 책을 보는 내내 어찌나 감탄사가 나오던지요. 너무 부럽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답니다. 이 책은 유아교육 관련 전공자 외에도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연과 놀이의 결핍 세대입니다. 청년들 3포 세대라는 말이 아이들에게도 별다를 바 없지요.

<흙 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에서는 자연 속에서 아이다운 생활을 통해 아이들이 자라는 힘이 제대로 발휘된다는 것을 보여준 일본 보육 현장을 소개합니다. 읽기 전에는 솔직히 내심... 이 책에 소개된 환경도 우리나라 일부 생태유아교육을 하는 곳처럼 극소수겠거니 했는데 일본의 보편적 보육론이라는 데서 깜짝 놀랐어요. 물론 일제식 보육, 공부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일본은 자유로이 장기간 놀이를 보장하는 곳을 흔하게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실내에 있는 시간보다 놀이 시간 자체가 매우 긴 일본 보육원과 유치원.

여기서 놀이의 의미도 학습놀이가 아닌, 정말 자연에서 말 그대로 노는 거였어요.

 


일본 보육의 핵심은 자自, 신身, 식食, 육育, 심心, 연然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이 핵심을 사례와 함께 소개합니다. 스스로 하는 힘을 기르는 아이들, 온몸으로 자연을 품고 자라는 아이들, 전통의 참맛을 익히는 아이들, 맨발로 같이 뛰노는 선생님, 그림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빈 교실과 자연을 담은 놀이터를 풍부한 사진으로 볼 수 있어 좋더라고요.


 

실내와 실외 구분이 없다시피 한 시설은 정말 부럽더라고요.

실내외를 잇는 데크가 있는 곳, 마루를 지나면 바로 맨발로 흙을 밟을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바로 바깥으로 튀어나갈 수 있는 환경입니다.


 

사진을 쭉 보면서 느낀 점은 일본 보육원은 주로 단층 건물에 아주 넓은 마당이 있는 형태에 가까웠어요.

우리 아이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의 시설을 생각해보면 나름 자연생태 체험활동을 많이 하고 옥상에 수영장도 있던 곳이었건만... 정작 흙을 밟기는 힘들었었답니다. 자연을 만끽하려면 시설 외부에 별도로 마련된 곳으로 나가야만 체험이 가능했지요. 그런데 일본 보육 시설은 앞마당이 자연 그 자체였어요.


 

우리나라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만약 이 사진처럼 목재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고, 헌 타이어 굴러다니고, 무슨 공사판처럼 해둔 상황이면 대부분의 엄마 가만있을까요. 이게 감당이 안 되는 게... 현재 우리의 현실입니다.


일본 보육 현장은 교실과 놀이공간의 경계가 없더라고요.

공부, 학습이 강조된 우리 유아교육. 뭔가 할 거는 참 많아요. 하라는 것도 많고. 놀이 하나 하는데도 완벽하게 갖춘 프로젝트로 하는데 얼마나 반복할까요? 반복 안 하죠. 일회성 체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 사진이 어디 체험활동 하러 간 게 아니라 그냥 보육원 마당 한쪽이에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흙 놀이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 유아교육기관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잘 노는거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교사와 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 - p75


 

뭣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서 놀란 부분이 또 있는데요.

선생님들 모습이 농사짓다 잠깐 쉬는 차림새 같았어요. 대부분 트레이닝복에 맨발로 다니는 것도 허다하고요. 우리나라 같으면 교사 이미지 실추시킨다고 난리치는 맘들도 있지 싶습니다만. 아이들과 놀아야 하니 일본 보육교사는 체력이 필수여야겠더라고요. 그런데 그저 노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아이가 어제보다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작은 성취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칭찬하는 거죠. 그러면서 어떨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역할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학지사의 <흙 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

아이답게 놀게 하는 아동중심, 놀이중심 유아교육의 본보기를 볼 수 있었어요. 사실 이런 기본은 우리가 다 아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제 보기 힘든 현실이란 게 안타깝네요. 가르침보다 '기름'에 집중하는 일본 유아교육. 앞에서 이끌기보다 함께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잘하는 현장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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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2 - 나선 밀리언셀러 클럽 81
스즈키 코지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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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 링 원작소설 1, 2권을 다 읽었네요.

1권은 정말 전통 호러물답게 오싹오싹 전율이 흘렀다면, 2권은 1권에 비해 공포감은 덜하고 과학적인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SF소설 분위기까지도 나더라고요.


 

링 1권의 부제는 바이러스. 바이러스의 증식을 이용한 비디오테이프의 비밀을 파헤치는 게 1권이었다면, 링 2권의 부제는 나선. 바로 DNA 이중나선 진화 개념을 통해 링이라는 바이러스를 다룹니다.


1권에서 비디오테이프의 저주가 끝났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뭔가 정말 이게 끝난 걸까? 하는 의문이 살짝 남아있었는데... 결국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을 2권에서 볼 수 있어요.


링 2권 나선 편에서는 1권에서 죽은 류지를 검시하는 검시관 안도의 시점으로 진행합니다.

류지를 해부하면서 이미 세상에서 박멸된 바이러스인 천연두 바이러스와 비슷한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죽은 류지가 보내는 미스터리한 암호를 이용해 링이라는 바이러스를 발견합니다. 천연두 발진은 감염 후 7일 정도 지나면 최대로 퍼진다니 링 1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본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일주일이란 기간이었는지 이해되더라고요.


 

그런데 1권 마지막 장면을 보면 분명 살았어야 할 1권의 주인공 아사카와의 아내와 딸마저 죽게 됩니다.

비디오테이프의 저주를 풀었던 게 아닌 거예요. 류지의 제자 마이 마저도 마지막 남은 비디오테이프를 본 이후 행방불명 상태였다가 출산의 흔적을 가진 채 사망 후 발견되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멀쩡했던 처녀가 출산했다니. 뭔가 슬슬 촉이 오지요.


 

새로 발견된 링 바이러스는 천연두 유전자와 인간 유전자가 합쳐진 상태였습니다.

천연두 바이러스가 살아남으려고 변형했던 거죠. 그게 1권에서는 비디오테이프를 인간의 손을 빌려 복사하는 방식으로 바이러스 증식의 과정을 거치게 했는데,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하는 방식은 확산하는데 시간이 느린 단점이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비디오테이프를 없애버리면 끝나버리는지라... 이 바이러스가 점점 똑해져 갑니다. 이제는 비디오테이프에서 다른 무언가로 매개체를 바꾼 상황입니다.


사다코의 원념이 낳은 비디오테이프는 없지만 출산 흔적이 있던 마이에게서 답을 풀 수 있어요.

마이의 뱃속에서 태어나 짧은 시일 내 죽기 전의 나이로 성장한 사다코.

게다가 새롭게 탄생한 사다코는 자웅동체여서 스스로 증식 가능한 몸이 되었네요. 비디오테이프 대신 빠르게 확산시킬 뭔가도 있게 되니 이제 현인류에서 신종으로의 교체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구인류에서 현인류로 넘어올 때도 특정 돌연변이가 우세해져 기존의 것이 멸종하고 돌연변이가 결국엔 정상이 되는 것처럼... 돌연변이 개념이 진화 매커니즘의 핵심이듯 이제 사다코라는 돌연변이가 진화의 중심에 서 있게 된 겁니다.


이런 개념을 생각한 것 자체가 링 원작소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더라고요. 그저 컬트 호러물이 아닌 과학 개념을 버무린 공포소설, 매력적이었어요. 소설 링 2 는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았다는군요.

없애도 없애도 나타나는 끈질긴 사다코의 원념이 결국 인류를 멸종에 이르게 할지... 열린 결말이지만 찝찝함은 없었어요.

1권 읽고 며칠 동안은 밤에 방 밖으로 나가기 무서웠던지라 내용을 이제는 뻔히 알고 있어도,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 때문에 다시 못 읽겠어요. 오죽하면 책을 읽고 있는 저도 그 묘사에... 읽는 것만으로 링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까지 나타납니다 ;;;

“ 일단 그 기색을 느끼고 나면 뒤돌아서 환상을 쫓아 버리기 전까지, 괴물은 공상속에서 비대해진다. ”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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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 3~7세, 내 아이의 인성과 공부력을 키우는 시간
이임숙 지음 / 더난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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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유아기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능력과 인성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입니다.

육아하는 부모의 태도가 다양한 만큼 아이들의 문제도 다양하다는 것. 아이들의 모든 심리적 문제는 유아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하는 책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유아를 둔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 나이는 이미 지났지만 초등 학부모들도 읽어보면 좋은 육아서로 추천하고 싶어요.


 

아동발달의 단계마다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그중 유아기만큼 결정기인 시기도 없죠.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는 크게 두 가지, 인성과 공부력에 관한 부모의 올바른 교육과 훈육을 위한 자세를 다룹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이 아이와 애착을 잘 형성해왔더라도 공든 탑이 무너지는 사건이 이 시기에 생기기도 합니다.


바로 학습 때문입니다.

엄마 입장에선 억울할 지경이겠죠. 하지만 공부를 시키면서 보여 준 태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해요.

 

 

 

“ 엄마가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사랑을 핑계로 마음대로 휘두르니 괴로운 것이다. ” - p24


 

문제 행동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성장 과정에서 받은 영향으로 나타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새겨야 할 것 같아요.

도대체 어떤 말과 행동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의외인 것은 이 정도 말이라면 모범적인 말인 것 같은데 생각한 것도 정답이 아니더라는 것이었어요.

 


“ 유아기는 학습의 방향이 시작되는 시기다. 조금 느리게 가도 방향만 올바르면 목표에 정확히 도달한다. ” - p35


우리 아이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싶으면 무엇이 아이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부모의 좋은 생각과 행동에서 아이의 좋은 생각과 행동이 나오는거죠.


부모가 노력하는 만큼 아이는 잘 자란다고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놀 줄 아는 능력, 맘껏 상상하는 능력, 약속을 잘 지키는 경험. 이 세 가지라고 해요. 이런 경험을 한 아이는 인내력, 자기 조절력, 만족지연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합니다.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에서는 인성 발달을 위해 이야기의 힘을, 공부력을 위해 방향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인성이든 공부력이든 중심을 잡는 것은 그림책이었어요. 이야기의 힘이 유아기에 재미있고 효과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할 테고요, 말이 글이 되는 경험을 통해 유아 글쓰기와 관련한 내용도 좋았네요.


이 책은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겁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경험하게 하는가가 아이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잘하려고 한 건데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시작이 된다면 고쳐야죠. 놓치거나 부족한 게 있으면 지금부터 다시 채워가면 됩니다.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로 아이 키우는 지혜를 얻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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