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집 살인사건 변호사 고진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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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집 살인사건>은 도진기 변호사가 부장판사 재직 중 쓴 소설로 변호사 고진 시리즈 첫 번째 소설입니다. 한국 본격 추리의 새 장을 연 변호사 고진 시리즈, 생각했던 것보다 퀄리티가 상당히 만족스러웠어요.

 

언덕 위 붉은 집 1층 서씨 집안과 2층 남씨 집안 간의 대를 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입니다. 처음엔 단순 상속 문제로 생각했다가 어둠이 감춰진 집안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사건은 꼬일대로 꼬여만 갑니다.

 

 

 

서씨와 남씨 집안의 가족사를 정리하는 것조차 몇 페이지 나올 정도로 배경, 인물이 복잡한 소설입니다. 각자의 자녀가 있던 상태에서 재혼했던 서씨와 남씨. 하지만 부부간의 살인 사건으로 의붓 자녀들만 남겨진 채 1층과 2층에 각각 자리 잡아 살아왔습니다.

 

1층엔 퇴역 군인 서씨와 자녀들이, 2층엔 남씨와 실명한 딸 그리고 남씨의 여동생이 살고 있습니다. 서씨의 아내는 강도 살인으로 사망, 남씨의 아내는 별거 후 병사해 대대로 아내복이 없는 집안이네요.

 

사건은 2층 남씨 집안의 가장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걸 여동생이 우연히 듣게 되면서 일어납니다. 1순위 상속인은 남씨의 딸로 지정했으나 2순위로 서……까지만 들은 여동생. 여동생 입장에서는 서씨 일가로 상속 재산이 넘어가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의뢰도 표 안 나게 귀신같이 해치운다는 어둠의 변호사로 알려진 고진 변호사에게 의뢰합니다.

 

 

 

고진 변호사는 서씨 일가와 남씨 일가의 기묘한 동거와 대를 이어 발생한 살인사건이 단지 우연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인 딸의 목숨까지 위태로워 보이지만 결정적인 뭔가가 없어 머뭇대다 결국 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실명 후 요양차 머물던 곳에서 실족사한 딸. 사고사라지만 분명 살해된 것으로 의심하는 고진 변호사. 그녀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일까 의심하지만 서씨와 남씨 가족 모두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2순위 서씨가 사람이 아닌 서울맹인복지회였다는 유언장 내용을 확인하게 되면서 사건 해결에 어려움이 더해집니다.

 

 

 

삼대에 걸쳐 살인사건이 벌어진 집안. 가족 중에 살인자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고진 변호사는 살인의 성향, 악마의 유전인자도 선별적으로 물려받는 게 아닐까, 이 집안에는 악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생각할 지경입니다.

 

뒷골목 변호사다운 면모는 추리 과정에서 줄곧 드러납니다. <붉은 집 살인사건> 소설 대부분의 분량이 고진의 가설과 실망의 반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혼자만의 작업이기보다는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고진 변호사도 찰떡궁합 형사의 도움을 받아 가며 사건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결국 추리의 완성은 고진의 머릿속에서 다 이뤄지는군요.

 

삼대의 살인 사건 각각에 숨어있던 비밀을 밝혀내면서 진정한 배후를 찾아내는 고진 변호사. 이 모든 그림을 미리 예상했다는 식의 우월함이 슬쩍 보여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어설픈 면은 없었어요. 얽히고설킨 배경만으로 독자를 정신없게 만든 치밀함이 대단한 소설입니다.

 

트릭이 상상했던 것보다 탄탄했습니다. 이래서 도진기, 도진기 하는구나 이해가 되는 소설이었어요. 고진 변호사 시리즈 첫 책으로 읽었는데 다음 소설이 자연스럽게 기대될 정도로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고진 변호사 시리즈 나머지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 <유다의 별>,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도 순서대로 읽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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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소화제 - 현대인의 답답한 마음을 위한 처방전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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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소화불량인 감정들의 원인을 찾아내고 처방하는 <마음 소화제>.

 

 

 

베스트셀러 <생각 버리기 연습> 저자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이 직접 그리고 쓴 그림 에세이 <마음 소화제>는 동자스님, 짹짹이, 곰돌이, 꼬마 아가씨, 야옹이 등을 중심으로 한 4컷 만화입니다. 그림마다 스님의 담백한 에세이가 곁들여져있고요.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지만 너무 일상적이라 잊고 지내기 쉬운 사소한 마음의 이야기들입니다. 답답하기만 하고 소화불량인 감정들이지요. <마음 소화제>는 내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 처방한 마음 치유법 책입니다. 감정은 그저 눈에 보이는 한 가지 감정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더라고요. 감정의 부메랑을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4컷 만화는 무척 간략하지만 그 속에 많은 걸 품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어요. 내가 하는 행동 속에 감춰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요. 나의 괴로움을 깨닫는 것이 첫걸음이었어요.

 

노여움은 불안과 외로움의 에너지로 이어지며 막연한 부정적 상태가 지속되고, 구체적 대상이 있을 땐 공격성과 원한으로 연결됩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폭발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추악하게 만드는 온상인 거죠.

 

분노의 카르마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데,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노의 카르마를 쌓을수록 화가 나고 오해하는 성격이 몸에 붙어 결국 스스로 에너지를 바꿀 기회도 찾아오지 않게 됨을 알려줍니다. 마음이 장기적으로 어떤 법칙으로 작동되는지 알면 번뇌는 줄어든다는 게 <마음 소화제>의 기본 원칙입니다.

 

 

 

<마음 소화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오만함'입니다.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역시 마음의 낡은 패턴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더라고 합니다. 미리 예상하고 착각에 빠지는 오만함의 번뇌를 들려줍니다. 연애에서든 일상에서든 부정적인 관계의 원인은 오만함의 번뇌였어요. 주도권 놀이는 결국 관계를 망치는 길입니다.

 

솔직히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했다가 4컷 만화와 글을 보며 그제야 깨닫기도 했어요. '네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니까 나도 같이 해줄게'라는 태도, '이제 그만둘까?'라는 말속에 숨은 의미를 짚어줍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다 상대의 행동이 눈에 안 찰 때 노여움이 생기게 되고,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할 때도 상대가 말려줄 것을 은근 원하고 있다는 거죠. 상대가 약속을 깼을 때에도 '나보다 다른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니.'라는 생각에 자존심 상하는 것 역시 오만함의 번뇌입니다.

 

 

 

내 마음을 꿰뚫어봤다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은 빛의 속도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거든요. 오만한 마음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이건 내 오만함이야.'라고 평정을 찾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 냉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대하다가 역시 아니지 않을까 하고 접어버리고 그래도... 싶어서 또 기대하고. 기대와 환멸의 모순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겁니다. 생각의 연쇄고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자금, 여기'에서 일단 몸을 움직여보고 그 동작에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마음 소화제>에서 제대로 건진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자기계발서에도 흔히 얘기하는 건데 과거의 나보다 성장했다는 말을 에너지 삼잖아요. 그런데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전과 비교해 자신은 좋게 변하고 있다'라는 말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꼬집습니다. 자기만족으로 인해 정체하고 싶은 욕망은 아닌지 점검하라고 말이죠. 전진했다느니 깨달았다느니 등의 자만한 생각으로 오히려 멈춤이 되는 걸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사용한 심리적 해석에 따라 멋대로 자동완성하는 버릇을 멈추고 오만함의 번뇌를 알아차린다면 부정적인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다스리고, 흘려보내는 방법을 이야기한 <마음 소화제>는 내 감정에 숨겨진 속내를 파헤치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마음을 후련해지게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어요. 상쾌한 행복을 위한 조언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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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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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항구와 200킬로미터 길이의 수에즈 운하를 숨기고, 탱크를 트럭으로, 철도 차량을 모조 잠수함으로, 폐선박을 대형 전함으로 속여 독일군을 농락. 그리고 전쟁 역사상 가장 대단한 마술로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꿔버린 전쟁영웅이 있습니다.

 

 

 

히틀러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실존 인물 재스퍼 마스켈린. 역사상 가장 사악한 적,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마술의 힘을 선보인 영국의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전쟁 소설 <전쟁 마술사>.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2018년 영화 개봉 예정입니다.

 

 

 

소설 <전쟁 마술사>는 북아프리카 사막 전쟁의 명운을 가른 1942년 엘 알라메인 전투를 배경으로 합니다.

 

 

 

마술사 집안에서 태어난 재스퍼 마스켈린.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기교를 가진 그는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합니다. 전쟁에 마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마술을 강력한 힘이나 다른 형태로 활용하면 전투에서 가치 있는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깨닫지요. 힘의 과시가 실제 무기만큼이나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쟁 기계라 일컬어지는 독일 군대를 속일 수 있을까요. 처음엔 다들 허튼소리로 치부합니다.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위장술 장교로 입대한 재스퍼 마스켈린. 영국 육군 공병대 소속 마스켈린 중위 신분으로 교수, 범죄인, 목수, 만화가, 화가, 정규병 등 범상치 않은 괴짜들과 함께 소규모 마술단을 구성합니다.

 

 

 

이집트 수에즈로 간 그들은 북아프리카 전투에 활용할 위장술을 준비합니다. 그곳은 사막의 여우 로멜의 전차부대와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던 곳이었습니다.

 

탱크가 적의 정찰에도 트럭처럼 무사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일부터 독일 공군 시야에서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숨기는 일, 가짜 군대를 만드는 일을 하며 점차 인정받는 마술단. 전쟁에서 가짜 무기를 가져다 두는 건 이미 심심찮게 있었던 일이었지만, 실제 탱크를 위장하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재스퍼 마스켈린은 전쟁 마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원리를 이용한  마술 기술은 그 후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상상력과 지식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 책 속에서

 

 

 

영국 보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인 수에즈 운하를 숨기기도 했습니다. 무려 200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길이의 수에즈 운하를요. 폭격기를 따돌리기 위한 위장술은 환상이 실제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요청조차 재스퍼 마스켈린은 실현시킵니다.

 

재스퍼 마스켈린은 마술 외에도 첩보 장치를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MI9에서 일하며 만든 탈출용 키트는 이후 군과 정보기관에서 실제로 사용할 정도로 유용했습니다.

 

재스퍼 마스켈린이 얼마나 유명해졌냐면 히틀러도 언급한 바 있을 정도입니다. 팬저 군단의 지휘관 로멜에게 독일 군대는 영국군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마스켈린 같은 자는 필요치 않다고 말한 일화가 있더라고요.

 

 

 

마술 기술을 활용한 수많은 위장술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훌륭했지만, 재스퍼 마스켈린에겐 여전히 뭔가가 부족해 보입니다. 피날레를 위한 회심의 한 방을 계획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으로서 할 일이 있을 때면 밤낮없이 일하지만, 그게 끝나면 쉬고 노는 게 마술단의 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선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필요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놀이나 했던 마술사쯤으로 각인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를 대신해 강연 갔다 돌아오던 마술단 멤버가 독일 전투기 공격으로 비상착륙 중 폭발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괴감에 빠진 재스퍼 마스켈린은 단 몇 분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내화성 크림 연구에 매달립니다. 크림을 발라 이번엔 마술이 아닌, 불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크림의 효과를 선보여 모두를 경악하게 만듭니다.

 

총을 들고 실제 전투 현장에서 싸우지 않은 마술단으로서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를 경험하고 목격하면서, 진짜 전쟁을 갈망하기만 했던 과거를 교훈 삼게 됩니다. 전우의 황망한 죽음, 사막에서 길을 잃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네가 마술 지팡이를 챙겨왔기를 바라네.
우리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거든." - 책 속에서

 

이제 북아프리카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몽고메리 지휘관에 의해 마지막 전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몽고메리는 전쟁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술을 요구합니다. 탁 트인 평원에 15만 명의 병사와 1천 문의 포와 1천 대의 탱크를 숨겨야 합니다. 독일군 몰래 말이죠.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릴만한 마술입니다. 재스퍼 마스켈린은 최후의 에이스 카드를 준비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북아프리카 전투에 참여한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 마술의 힘으로 나치 독일을 무찌른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승승장구하는 독일군을 상대로 마술의 힘을 겨뤄 전쟁 마술사로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 소설인 만큼 전쟁 용어가 많아 전쟁 소설 취향 아닌 독자에게는 낯설게 읽힐 수 있고, 600페이지 넘는 방대한 분량에 글씨마저도 빽빽한 편이라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기 치듯 적을 현혹하기 위한 온갖 속임수를 구현하는 장면 묘사와 재스퍼 마스켈린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너무나 좋아서 참을만했어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 The War Magician에서 영상으로 재현될 재스퍼 마스켈린의 전장매직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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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삽질 중 - 열일하는 미생들을 위한 독한 언니의 직장 생활 꿀팁
야마구치 마유 지음, 홍성민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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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만 하면 다 잘 풀릴 줄 알았지. 당당히 아메리카노 들고 거리를 활보하기는 개뿔~! 멍한 정신을 차리기 위한 생존의 커피를 연거푸 돌이킬 줄이야.

 

일할 맛 안 나는 미생, 하는 일마다 망하는 미생, 눈치 없다고 혼나는 미생, 연애와 일 둘 다 놓치기 싫은 미생. 지금 직장생활에서 어리바리한 나 대신 직장의 신이 되고 싶은 미생들에게 권하는 책 <오늘도 삽질 중>.

 

베스트셀러 <7번 읽기 공부법> 저자 야마구치 마유의 신작 <오늘도 삽질 중>. 직장 생활 노하우 자기계발서라는 흔한(?) 주제지만, 구성은 제 맘에 쏙 들었어요. 노하우를 소설 속에서 찾고 있거든요.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미생에게는 스릴러의 거장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 <아이콘>에서 처방을 찾습니다. 돈이나 출세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에 소신과 긍지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거든요. 늦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 집중력을 짜내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명예나 출세,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만족감이 원동력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자신만의 프로의식이 일할 맛을 나게 하는 비결입니다. 모든 것에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지금 맡고 있는 일에서 느낄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해요. 나에게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라고 할 만한 게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알게 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입니다.

 

 

 

존재감 제로인 미생의 처방책은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소설 <끝없는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입사 2~3년 차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일에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어이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기 딱 좋은 시기라는데요. 중국 역사소설 <중원의 무지개>에서 입버릇처럼 "메이파쯔"를 내뱉는 상황을 정면으로 저항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쩔 도리가 없다고 포기하는 메이파쯔는 무력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변명만 계속 맴돈다면, 결국 실수를 인정할 때 돌파구가 보이는 법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어쩌면 직장 생활을 하며 정말 두려운 것은 상사의 질책이 아니다. 질책을 피하려는 자세,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 책 속에서

 

 

 

야마구치 마유 저자는 도쿄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수석 졸업에, 첫 직장은 재무성에서 출발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편인데요. 이런 그녀도 (네, 저자가 여성입니다)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타이틀을 가지고서도 일 못하는 신입이란 소리를 듣기 싫었기에 숨 막힐 지경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그녀의 처방책은 사토 겐이치의 소설 <쌍두의 매>에 등장한 구절이었다고 합니다. 자기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타고난 천재뿐이라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생에 걸쳐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면 되니까요. 한 걸음 물러서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 좁아진 시야 때문에 멈춰버린 나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끝없는 도전에 지친 청춘들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이때 중요한 마인드는 어떤 사태에도 자처해서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 거였어요. 자존심이 바닥을 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입사 3년 차쯤 되면 성장이 주춤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때 그녀에게 도움 된 책은 테니스 만화 <에이스를 노려라>였어요. 누군가를 이긴 사람은 자신에게 진 사람의 몫까지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이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간절히 바랐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임을 명심하면서 작은 성취로 자신감을 쌓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직장생활이 힘들어 퇴사 생각을 하는 경우 생각보다 회사 밖은 춥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낭만을 꿈꾸며 일을 그만두면 무조건 실패한다고 말이죠.

 

 

 

일하는 여성으로 사회생활하면서 겪은 노하우에서는 특히 일과 연애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퓰리처상 수상작인 앨리스 워커의 <더 컬러 퍼플>은 흑인 여성의 차별에 관한 책을 소개하면서 유리 천장 아래 갇힌 여성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앞으로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들이다. 세상에는 많은 고정관념이 있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옭아매선 안 된다."

 

 

 

사회생활의 달인이 되려면 부정적 감정도 기분 좋은 자극제로 전환할 줄 아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늘도 삽질 중>은 작은 응원과 위로가 삶을 지속시킨다는 걸 보여줍니다. 힘들고 지치지만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이 시대 미생들을 위한 직장 생활 꿀팁을 이야기 한 <오늘도 삽질 중>.

 

야마구치 마유 저자는 첫 직장 생활 이후 기업 법무 변호사로 활동했고, 하버드대 로스쿨 과정을 마친 후 현재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미생 시절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오늘도 삽질 중>은 서툰 사회 초년생에게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일에 노련해지기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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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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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서도 감동의 여운이 오래 이어집니다.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작가가 아날로그 손편지를 통해 힐링을 안겨줍니다. 치유와 사랑의 드라마 <츠바키 문구점>.

 

오래된 가옥에서 혼자 사는 포포.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전통 있는 대필가 집안입니다. 가업으로 여성이 대대로 이어온 서사 書士. 포포는 십일 대째 서사입니다. 츠바키 문구점이라는 표면상으로는 문구점이지만 알음알음 대필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선대가 돌아가신 후 이곳을 물려받은 포포.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그녀는 엄한 할머니의 교육을 감당하지 못하고 반항하며 집을 뛰쳐나간 후 해외에서 방랑하며 살았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필가라는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신을 구원해준 것은 글씨 쓰기 재능이었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대필 작업에는 안부 엽서, 조문 편지, 절연 편지, 거절 편지 등 대필 의뢰자의 사연이 각양각색입니다. 결혼 십오 년째에 맞은 이별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이혼 보고 편지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는 계절인 가을엔 유난히 대필 의뢰가 늘어납니다.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평범한 편지 대필 의뢰도 들어오는데, 오히려 사연 있는 편지보다 더 쓰기 어려운 게 평범한 편지인 것 같아요.

 

 

 

돌아가신 선대와의 관계가 엉망이었던 포포.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고, 그전에도 외면하기만 했던 그녀로서는 츠바키 문구점 곳곳에 자리 잡은 선대의 흔적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가라앉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건네받는데. 그 편지에는 포포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포포는 할머니께 답장을 씁니다.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요.

 

 

 

소설 <츠바키 문구점> 뒷부분에는 포포의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온 편지들이 모두 수록되어 있어요. 글씨체, 도구, 편지지 등은 편지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글로만 묘사하던 부분을 실제 편지 형식으로 보니 더 실감 납니다. 할머니의 옛 편지에서는 눈물 자국까지도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요.

 

 

 

츠바키 문구점은 일본 가나가와 현 가마쿠라 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하고는 가마쿠라에 있는 실제 명소가 그대로 등장합니다. <츠바키 문구점> 드라마 여행하러 가마쿠라로 가고 싶어지네요.

 

 

 

소설 <츠바키 문구점>은 NHK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는데요. 소설 속 주요 틀은 같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더 길게 다뤘더군요. 츠바키 문구점의 '츠바키'는 동백나무란 뜻입니다. 문구점 앞에는 포포가 좋아하는 동백나무도 있어요.

 

 

 

소설에서는 대필 작업을 할 때마다 다양한 문구들이 등장합니다. 종이 질감, 펜 종류, 잉크 색깔, 봉투 크기, 우표 그림 등 편지 내용에 따라 신중히 고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볼펜, 만년필, 붓펜, 붓의 느낌이 전혀 다르기에 어떻게 편지 쓸지 이미지가 떠오르면 필기구 정하기부터 시작합니다. 조문편지에는 평소보다 먹색을 훨씬 옅게 해 씁니다. 그중에서 가장 신기한 펜은 유리펜이었어요. 투명하도록 선한 마음을 전할 때 사용한 필기구입니다.

 

 

 

이메일과 SNS로 해결 가능한 세상에서 손편지를 쓰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있던 빨간 우체통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들 세대에서는 특히나 우표를 실제로 보지 못한 경우도 흔할 겁니다.

 

<츠바키 문구점>은 점점 잊혀가는 아날로그 손편지를 되살렸습니다. 편지는 그 사람의 말투, 느낌, 냄새까지 전해지는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 편지는 쓰는 사람의 분신 같은 것이니까요. 2017 일본서점대상 4위에 오른 <츠바키 문구점>. 손편지를 쓰는 포포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배려의 마음으로 보내는 편지의 힘에 공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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