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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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음악평론가이자 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과 래퍼 12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으로 힙합 문화를 슬쩍 구경해 봅니다.

 

음악과 취향 없는 저로서는 힙합은 정말 낯선 세상입니다. 힙합 아티스트 12인 중 이름 들어본 사람이라곤 달랑 한 명뿐이니. <쇼미더머니>도 관심 없고, 랩배틀은 왜 하는지 모르겠고. 취향 차이를 넘어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어봤습니다.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겠다는 김봉현 음악평론가를 믿고 말이죠.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에 등장한 12인의 래퍼는 김봉현 음악평론가 나름의 기준에 들어맞는 인물들입니다. 베테랑일 것, 부지런히 이 길을 걸어왔을 것, 자기만의 입장과 철학이 있을 것, 훗날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성취를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을 '살아왔을' 것.

 

음악, 문화, 삶의 방식으로서의 힙합을 대표하는 12인은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JJK, 타이거JK, MC메타 입니다.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스타' 도끼는 부자 래퍼로 알려져 있는데, 언뜻 자랑과 사치 같은 노랫말 속에 담긴 철학을 엿볼 수 있었어요. 셀프메이드를 실천하며 자기의 실제 삶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규칙. 이것은 힙합이 부정적인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음악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희망을 심어주니까요. 현재를 희생하며 돈을 모아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투자해보는 것이 값진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실천하는 래퍼입니다.

 

늘 내면의 깊이를 따르며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지금까지도 멋지게 살아남은 래퍼 더콰이엇. 철학이 동반된 라이프 스타일로 한국 래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래퍼인 동시에 최전선의 젊은 예술가이자 청년 세대의 아이콘 팔로알토.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고 음원차트 1위를 한 유일한 래퍼라고 합니다.

 

 

 

정치적 메시지, 사회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래퍼 제리케이. 세월호에 대한 노래와 시국선언을 랩으로 발표한 거의 유일한 래퍼로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논란을 안고 다니는 래퍼 스윙스는 힙합의 여러 정수를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거나 제대로 선보인 래퍼입니다. 이 바닥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김봉현 음악평론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프리스타일 래퍼인 동시에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러 허클베리피. 힙합은 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돼'라고 말해준 유일한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극적인 데뷔와 극적인 배신을 (저자는 이해할 생각 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만 배반이었다고 말합니다) 오간 래퍼 산이. 힙합 신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가 발라드랩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라는군요.

 

커리어 동안 랩 스타일이 계속 변화하는 래퍼 딥플로우. 클래식을 보유한 래퍼입니다. 세대 간의 힙합 이해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수호자이자 힙합의 길거리 문화와 프리스타일 랩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래퍼 JJK. 랩 레슨을 하는 대표적인 래퍼입니다.

 

 

 

김봉현 음악평론가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인물 중 한 명인 드렁큰타이거의 타이거JK. 선구적 시도로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높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의 리스펙트를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힙합에서 가장 나이 많은 래퍼인데도 에너지 레벨은 하늘을 찌르는 MC메타. 랩을 언어 자체로서 이해하고 통찰하는 래퍼라고 평합니다.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의 래퍼 12인은 다들 평범하고 내세울 게 없던 이들이 힙합을 만나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랩 네임의 의미, 랩을 하게 된 계기, 어떻게 'Keep It Real'을 지키는지, 랩 작법 과정, 랩톤 그리고 힙합이 삶에 끼치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고유한 멋과 매력이 있는 힙합 문화를 보여준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삶의 태도이자 방식으로서의 힙합과 영감의 원천을 이야기한 래퍼 12인의 이야기는 힙합이 지닌 긍정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삶을 바꾼 힙합. 한국에서 힙합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힙합의 진면목을 보여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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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자살 - 개정판 변호사 고진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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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고진 시리즈 세 번째 <정신자살>. 그냥 자살도 아니고 정신자살이라니. 신체는 그대로 놔두고 정신을 자살하면 식물인간처럼 되는 건가? 지능이 떨어지게 되는건가? 호기심 동하게 하는 제목이죠.

 

1년 전 찾지 말라는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돌연 가출한 아내. 아내 한다미가 사라진 후 인생의 의미가 없어진 남편 길영인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이지만 살 욕심도 없고 존재 자체가 괴로운데 차마 자살은 못 하는 어중간한 인생을 하루하루 살고 있죠.

 

삶의 본능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깨는 데에는 막대한 음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게는 그런 정도의 의욕도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살아 있다. - 책 속에서

 

 

 

그러던 차에 정신자살연구소를 발견합니다. 정신의 치유는 어렵고 더디나 파괴는 쉽고 한순간이라며 육체의 죽음이 두려운 사람에게 정신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데. 육체의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유혹이 됩니다.

 

육체를 보존한 '정신'만의 '자살'이라니. 삶과 죽음의 끝없는 고뇌를 할 것인가, 정신을 파괴한 삶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인가의 기로에 선 남편. 자살할 용기가 없는 남편 길영인은 결국 그 시술을 받으러 갑니다.

 

 

 

4년 전 판사직을 그만두고 오직 뒷길에서만 사건 의뢰를 받는 고진 변호사. 정공법보다는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번에는 펜션 살인 사건에 얽히는데요.

 

우연히 펜션에 하루 머문 고진 변호사는 그곳에 투숙했던 여자의 피살 사건으로 이유현 경감(드디어 승진!)과 뭉칩니다. 처음엔 단순히 부부 싸움 끝에 벌어진 우발적 살인으로 생각했다가 피살자의 남편이 사라진 한다미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부 두 쌍의 치정 문제로 얽힙니다. 연적인 남편들끼리 살인이 있던 밤 통화를 했다는 기록까지 나오면서 이들의 악연이 심상찮아 보입니다.

 

피살자의 남편마저도 살해되면서 결국 한다미의 남편 길영인이 강력한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잘 도망 다니는지 이유현 경감과 고진은 매번 허탕만 칩니다.

 

 

 

용의자 길영인이 고객인 정신자살연구소도 훑어야겠죠. 그런데 정신자살연구소 소장 이탁오 박사는 고진과 이유현 경감과 이미 몇 년 전에 인연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당시 내담자에게 살인하도록 부추긴 의심을 받았던 이탁오 박사. 증거가 없어 사건은 흐지부지되었지만요. 이탁오 박사와 고진 변호사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인간 본성을 꿰뚫어보려는 왕성한 호기심 덕분에 범죄마저도 유희적인 놀이처럼 다루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악을 선택해. 각자의 저울은 천차만별이라도 그 눈금은 하등 다르지 않은 게 인간이야. - 책 속에서

 

소설 <정신자살>에서는 고진 변호사와 이유현 경감의 콤비 비중은 덜해 그들의 쿵짝놀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살짝 심심했지만, 인간의 바닥까지 꿰뚫어 들어가는 차가운 시선을 가진 이탁오 박사의 섬뜩함은 인상적이었어요.

 

 

 

이번엔 사회파 소설 분위기를 안고 가는군요.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거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자살 원인을 분석해봤자 자살률은 조금도 줄지 않기에 사고의 전환을 해봤다는 이탁오 박사. 아픔의 근원인 마음을 고칠 수 없다면 마음을 파괴해 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마음을 죽임으로써 고통도 사멸한다는 정신자살. 그 이론만큼은 은근 끌리는걸요.

 

결말은 뜬금없이 호러로 진행되어 헉!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고진과 이유현의 콤비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나름 진지모드인데, <정신자살>의 결말은 일 푼어치도 생각 못 한 결말로 흘러가 나름 충격 먹었어요. 결말은 독자에 따라 취향 많이 탈 것 같아요. 와... 도진기 작가님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하다니. 점점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다섯 작품 중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까지 세 편 읽었습니다. 이제 영화화 된다는 <유다의 별> 읽을 차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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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
제임스 F. 웰스 지음, 박수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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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핏!

너무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 헛된 목표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 어리석음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로 역사의 새로운 해석을 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역사 속 어리석음의 사례를 나열한 수준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정신이 번쩍. 탐욕, 부패, 권력을 지향하는 한 축으로서 인간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흔히 악인이라 평가하는 자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나폴레옹 등도 이 저자 앞에서는 무참히 깨집니다.

 

 

 

그리스인들의 어리석음은 도시국가와 철학적 사고의 상호작용이라고 합니다. 장점으로 알고 있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 겁니다. 최고의 영예인 동시에 치명적 한계를 가진 거죠. 도시국가는 사고의 정체성 발달을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고, 우리가 숭배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기하학적 사고가 오히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2000년 동안 지속하게 할 정도로 사고를 정지시킨 원인 제공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도덕적 편향으로 이어져 아테네 철학자들이 서양의 어리석음에 기여한 공로는 무척 크다고 평가합니다.

 

이쯤 되니 오올~! 신선한 느낌이 마구 들더라고요. 서양의 피상적인 유치함과 동양의 무기력과 정체를 마구 지적질하질 않나, 어두운 이면을 거침없이 꺼내들며 아주 통쾌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줍니다.

 

물리적 성공이 지적인 실패에 잠식당한 로마의 어리석음. 특히 호기심을 악덕으로 생각했던 로마 교황청의 신학자들에 의해 분석적 사고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됩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것은 로마인들의 정신과 지식에 무관심한 태도, 힘의 원천이 너무 다양성화되면 정체성을 와해시킨다는 것을 간과한데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어리석음이 로마와 닮았다고 합니다. 의식적인 계획과 비전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오른 상황이 유사합니다. 하지만 둘 다 도덕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중세는 기독교의 어리석음으로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통치행위로서 교회가 기능했습니다. 로마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는 낡은 고정관념으로 허상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만 치우쳤습니다. 중세 어리석음의 극치는 정의의 이름으로 약탈, 살육을 감행한 십자군전쟁이 있지요.

 

행동가의 시대 르네상스는 서양의 인식 세계가 중세적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물이지만, 역설적으로 탐험, 발명, 치국, 의술, 예술, 전쟁 등에서도 어리석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회의 후원을 받는 인문주의자들에게서 종교개혁을 바라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때문에 이제 모두가 잘못된 정보는 얻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구시대적 사상을 보전, 전파하는 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은 중세적 삶의 공식적 신앙으로부터 서양의 지성을 해방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민족주의 같은 세속적 종교를 낳습니다. 불관용, 미신, 편협성, 잔인성을 띠게 됩니다.

 

지식의 신학적 기반이 가라앉는 대신 자연현상의 과학적 설명이 떠오른 이성의 시대. 하지만 마녀사냥 등 비이성적으로 전락한 시기입니다. 모두가 거짓말을 선택하고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의 시대라기보다는 속박의 시대였죠. 갈릴레오조차 교회 관계자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계몽주의에도 어리석음이 담겨 있습니다. 세속적 합리주의를 인간사에 적용하며 시작한 계몽주의는 혁명으로 막을 내립니다. 세계를 개선했지만 방종과 탐욕 같은 해악이 등장합니다. 기술적 진보는 가난한 자들의 운명 개선 대신 착취에 활용됩니다. 상식이 정치 논리에 희생되는 부조리의 전형적인 사례로 영국 인지세법, 보스턴 차 사건 등 식민정책의 오류를 듭니다. 한편 나폴레옹의 활약은 권력과 어리석음 사이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준 사례이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짐을 짚어줍니다.

 

산업화 시대엔 오히려 시계를 거꾸로 돌려 군주제가 복원되기도 합니다. 기술 발달은 행정, 상업과 관련한 어리석음의 범위를 확대합니다. 산업시대의 모순은 기술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장벽을 세운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효율적이되 윤리적이는 않았습니다.

 

20세기는 인적 자원, 자연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와 침해 시대입니다. 기술=진보 등식으로 인간은 오만해집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합니다. 당면한 상황과 문제에 부적절한 스키마를 고집하는 것을 뜻하는 어리석음. 학습에 의해 변질된 학습으로 인간 본성에 자기 기만적 측면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언어적 프레임을 통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희생양과 변명거리를 찾아내지요.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서도 이뤄집니다. 전쟁으로 드러난 집단사고의 허점은 진주만의 재앙을 부릅니다. 미국의 외교적, 정치적 어리석음은 쿠바 침공 결정,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거쳐 9.11 참사로 이어집니다.  만사가 잘 굴러간다는 착각은 기술적 오만을 불러 챌린저호, 체르노빌 사건을 야기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을 우주에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점이다." - 책 속에서.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미신, 종교, 기술, 과학은 우리의 자기파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를 묻는 저자. 우리의 타고난 믿음과 뿌리 깊은 편견이 우리만의 특별한 문화적 맹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에 아직 우리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에덴보다 아마겟돈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으니 서로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보편적 인권, 국제법, 자연환경에 대한 존경심이 구원의 토대가 될 거라며 마무리 짓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 인문교양서이지만 초반은 전문가의 논문 도입부를 읽는 것처럼 낯선 용어가 난무하며 딱딱한 느낌이라 지레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만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도 한몫하고요. 그래도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1장을 넘어서면 역사 속 사례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어리석음에 집중했고 동양의 어리석음에 관해서는 초반에만 잠깐 언급되는데 동양의 어리석음의 역사도 무척 궁금합니다.

 

인간 보편의 어리석음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이성의 시대, 계몽주의 시대,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기기만이 심해지면 어리석고 부적응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자기반성 없이는 자기기만의 희생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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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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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잡지 기자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병가 겸 퇴사한 김나랑 저자. 당시엔 쉬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기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남미는 더운 나라인 줄 알고 성급히 떠났다가 얼어 죽을 뻔. 누구도 남미의 가을이 이렇게 춥다고 하지 않았다며 추워서 오들오들 떠는 장면이 꽤 자주 나와요. 남들은 라마 스웨터라도 샀는데 ㅎㅎ.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밀어 넣고 싶었다. - 책 속에서

 

"이렇게 힘들다고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지?"

예쁘고 멋지고 설렘 가득한 시작... 따윈 없습니다. 6개월 동안의 남미 여행 첫 코스부터 제대로 고생입니다. 페루 북쪽 고산지대 트래킹. 백두산이 2,750미터인데 69호수는 4,600미터. 무거운 배낭조차 적응되지 않은 초짜의 발악은 과연 남미 여행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될까 싶을 정도입니다.

 

 

 

볼리비아 명소 우유니 소금사막은 기사 속 사진 같은 분위기 대신 수증기 낀 욕실 거울처럼 뿌옇기만 하더라며 실망하다가, 다음 날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의 모습을 잠깐 목격할 수 있었다 합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으니 한 번 가보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여행 중 어려움이 닥칠 땐 긍정의 기운들로 극복하고 싶은, 어쩌면 멋지고 강인한 여행자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고민하는 장면에선 일상의 불안과 나약함을 남미 여행 중에 떨쳐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강박도 여행이 일상이 될 때 그제서야 조금 느슨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볼리비아 숙소에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작곡하던 청년을 보며 몰두할 작은 예술을 로망하게 되고,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는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깨우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말이죠.

 

 

 

세상엔 안 해서 후회되는 게 더 많다. - 책 속에서

 

일정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여행에서 우연은 축복이 되곤 합니다. 남미의 다채로운 풍경은 그곳에 간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김나랑 저자는 '행복이란, 휴식이란, 삶이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감정을 만끽합니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책에는 유명 관광지 사진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유독 좋아한 사진들을 모아보니 유적지나 관광지 사진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이더라고요. 빛깔이 수채화 물감을 푼 것처럼 정말 아름답죠~

 

여행 후반엔 여행 레임덕으로 '에라' 모드가 발동해 택시도 과감히 타면서 남미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심신이 지쳐있다 그곳에서 그제야 행복하다, 아름답다, 좋다란 말이 나오더라고 하네요. 하고 싶은 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 6개월간의 남미 여행. 그동안은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곳에 시간과 돈을 쏟아왔었다며 보고 싶은 것, 믿는 것 하나를 위해 남미로 떠났던 그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잡지 에디터로 다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끝에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지만,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의 마음은 달라져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여행을 꿈꾸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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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스토리
황장석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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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과 혁신의 공간 실리콘밸리. 수많은 정보기술 기업 관계자들이 발도장 찍는 그곳. 세상은 이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과연 실리콘밸리는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실리콘밸리를 파헤치는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

 

창업과 혁신적인 기업 문화에 초점 맞춘 기존 실리콘밸리 분석을 넘어 이 책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쌓아온 실리콘밸리의 경험과 역사, 문화에 초점 맞췄습니다. 실리콘밸리 문화를 이끈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두운 이면까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샌타클래라밸리 지역에 설립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에 빗대어 이 지역을 실리콘밸리라 부르기 시작했었다네요. 이 용어는 1971년 주간지 <일렉트로닉 뉴스> 칼럼을 통해 공식적으로 기사화되었고 이후 기술과 혁신을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 잡히게 됩니다.

 

점차 실리콘밸리라 부르는 곳이 넓어졌습니다. 골드러시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공한 샌프란시스코도 포함됩니다. 금융의 도시에서 2008년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스타트업의 도시로 변모해 트위터, 우버, 에어비앤비, 핏빗 등의 본사가 이곳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는 자유분방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1939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인 HP의 금요일 맥주 파티는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사례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캐주얼한 근무 복장, 근무시간 유연제, 수평적 의사소통, 커피 타임 등의 선구자 역할을 한 HP는 차고 창업의 대표적 선례로도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는 차고가 없어서 실리콘밸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리콘밸리에서의 차고 창업은 애플, 구글 등 흔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차고 창업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습니다. 차고 창업은 기술 기업이 창업 초기에 제품을 개발, 생산, 판매하는 것부터 추후에 투자를 받는 것까지 창업자가 회사를 키워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차고 창업이든 재학 중 창업이든 창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실리콘밸리 기업과 상생하며 인재를 키워내는 스탠퍼드 대학은 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상당하고 교수들도 창업한다고 하면 적극 권장합니다. 문제 해결 방식을 고안하는 스탠퍼드 D 스쿨(디자인연구소) 같은 실사구시 학풍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후, 구글, 스냅챗, 인스타그램,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 창업가들이 모두 스탠퍼드 대학 출신입니다.

 

 

 

벤처 투자의 오랜 전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투자가로 존경받은 유진 클라이너와 세쿼이아 캐피털을 설립한 돈 밸런타인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합니다. 구글에 투자한 유진 클라이너는 제품만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투자하라는 클라이너의 법칙을, 애플에 투자한 돈 밸런타인은 수요 많은 기존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투자의 방식과 취향은 다르지만 기술을 이해하며 창업자와 멤버의 핵심 역량을 아는 만큼 투자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실리콘밸리는 IC 위에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도계와 중국계를 뜻하는 IC입니다. 실리콘밸리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아시아 이민자들. 1세대 이민자와 달리 이들은 기술을 들고 온 고학력 엔지니어 중심의 2세대 이민자들입니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는데요. 강남 8학군에 비견될 만한 학군 좋은 도시로 유명한 쿠퍼티노에서의 아시아계 비중, 중국보다 더 심한 부모 교육열로 대치동 엄마를 능가할 수준인 인도계 부모의 교육열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면도 함께 끄집어 냅니다. 가족이 명문대 출신에 고액 연봉자들이다 보니 실리콘밸리 명문고 자살 문제가 심각한 편이었어요.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판자촌, 홈리스 문제도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성장과 더불어 고액 연봉자들이 많아지자 물가가 함께 뛰어 원래 주민들의 생활이 힘들어졌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조차 비싼 월세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니까요.

 

 

 

어두운 이면을 지녔지만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를 이끌고 비즈니스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곳은 클라우스 슈밥이 언급한 4차 산업혁명 개념보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자동화란 개념이 더 보편적이라고 합니다. 실리콘밸리는 기본소득 실험, 쇼핑몰의 경비 로봇, 자율주행차 등 인공지능이 대세임을 일반인들도 체감할 정도입니다.

 

 

 

인사이드 실리콘밸리 코너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소소한 가십을 소개하는데요. 실리콘밸리 문화와 역사를 이끈 인물 스토리, 실리콘밸리 기업의 세금 회피 전통, 기술 절도 사건 등 흥미로운 가십이 눈길 끕니다. 『아날로그의 반격』 책에서 실리콘밸리의 아날로그 방식을 언급한 부분도 소개되었네요.

 

<실리콘밸리 스토리>에서 분석한 실리콘밸리의 숨겨진 컬처 코드 속에는 부러워할 만한 점도, 씁쓸한 점도 있습니다. 회사를 성장시켜 더 큰 회사에 매각하는 엑시트와 처음의 사업을 다른 사업으로 변화시켜나가는 피벗이 일상인 실리콘밸리. HBO 드라마 <실리콘밸리>에서 보여준 인수 전쟁은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하네요.

 

살벌하지만 기회의 땅이 된 실리콘밸리. 돈과 기술, 아이디어가 어떻게 연결되어 선순환을 창출하는지, 기술 발전과 혁신의 원동력이 된 실리콘밸리 특유의 문화를 살펴본 <실리콘밸리 스토리>.

 

국내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12년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지낸 후 현재 실리콘밸리에 정착해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황장석 저자의 목소리는 생생한 현실감으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경영전략을 배워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 실리콘밸리 유학을 준비하는 분, 저처럼 막연하게 알던 실리콘밸리에 대한 호기심을 풀고 싶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경제경영 교양서로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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