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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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종차별이 있다, 없다? 대부분 없다는 쪽에 손을 들 겁니다. 있더라도 그저 일부의 이야기, 다른 나라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인종주의자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테고요. 우리 사회의 인권, 차별, 통합 문제를 고민하는 정회옥 교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 한국인의 인종 콤플렉스를 들려줍니다. 인종 문제에 콤플렉스가 붙는다는 게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


인종과 관련해 경멸하여 부르는 '멸칭'. 짱깨, 쪽발이, 똥남아, 흑형, 외노자, 튀기, 개슬림... 한 번은 불러보았거나 들어본 단어들입니다. 평소엔 우스개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유명 스타에게 외국인들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할 땐 언론 보도로 들썩이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한국에 인종차별은 없다는 말을 당연시할 정도로 한국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회피하고 사회적으로도 비가시화된 상황임을 짚어주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저자는 한국식 인종주의가 언제, 왜 생겼는지 근현대사를 통해 하나씩 보여줍니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역사를 대면할수록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인종 차별과 혐오의 그림자를 만나게 됩니다. ​​


한국식 인종주의는 불평등조약으로 일방적인 개항 이후 비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서구 인종주의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서구의 인종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회 담론의 중요한 소통 통로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모두가 말입니다. 미국을 부강하고 경이로운 문명을 갖춘 나라로 그리며 미국 숭배에 진심인 행태를 보이는 보도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태생적 특징인 피부색을 절대시 하며 인종적 위계 의식을 품게 되는 인종주의는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문제는 위계적 인종 개념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겁니다.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비판의식도 마비시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과 한국인은 동병상련인데도 되려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고방식으로 많은 개화기 엘리트가 이렇게 서구의 인종 개념을 수용합니다. ​​미개한 조선인, 열등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국인. 이 열패감은 숭미사상과 함께 그래도 한국인이 흑인보다는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집단적 열등감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더욱 깊어집니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상적 차별이 한국인에게 자기비하, 수치심, 열등감으로 스며들었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한편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적 민족주의처럼 우리 내부에서 대두된 민족주의는 분노의 공동체가 되었고,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됩니다. 왜곡된 민족주의 서사는 단일민족, 우리와 그들로 구별하는 습관으로 이어지며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의 트라우마가 회복되기도 전에 한국전쟁으로 반공, 멸공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척합니다. 분단과 냉전으로 반공주의적 세계관을 적극 수용하였고, 반공교육으로 획일성과 배타성이 점철된 일원주의를 양산합니다. ​​





과대 성장한 국가의 개입 아래 경제적 성공에 가치 부여하는 근대화 서사에도 민족주의가 이용됩니다. 잘살아보세는 우리'만' 잘살아보자는 의미일 뿐, 경쟁 제일주의 아래에서 한민족은 이상한 방향으로 뭉치게 됩니다.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도 국가경쟁력 강화는 외부 민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교과서에 실려 달달 외워 시험 쳤고,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그 긴 문장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국민교육헌장. 개인은 희생되고 집단과 민족만 남은 '우리'의 시대였습니다. 내 엄마 대신 우리 엄마, 내 나라 대신 우리나라가 됩니다. '우리'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


2021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중국 84만 명 이상, 베트남 20만 명 이상, 태국 17만 명 이상, 미국 14만 명 이상... 193개국 중 110개국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친백인성이 있는 한국인에게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철저히 타자화되었습니다. ​저자는 한국인의 무의식에 스며든 한국식 인종주의가 발현되었음에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간 다양한 미디어 사례를 짚어줍니다. 한국 사회의 배타적 태도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상화된 차별과 배제를 보여줍니다. 반창고 색은 왜 베이지색인지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에 녹아있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수많은 편견과 혐오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


일본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을 향한 제노사이드처럼 이 땅에서도 제노사이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를 겁니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말이죠. 왜곡된 보도로 인해 당시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200여 명의 중국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타이완 국적의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화족과 달리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국계 중국인입니다. 하층 계급이라는 이미지로 계급 차별이 더해진 조선족.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인은 개인행동으로 국한해 비난하지만, 조선족일 경우 집단 전체를 비난합니다. 


혼혈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순결하지 못한 잡종이라는 폄하의 의미라고 합니다. 순혈주의 신화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극도의 배타성에 대해 들려줍니다. 다문화라는 단어도 우리는 왜곡해서 사용합니다. 서구 출신 백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하면 다문화로 여깁니다. 순수 한국인 가정은 일반 가족이고, 외국인이 포함되면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는 걸 망각한 채 외국인으로 타자화합니다. ​​


백인-한국인-흑인-동남아시아인으로 이어지는 인종적, 민족적 위계가 존재하는 한국. 백인 교수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주 노동자는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듯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시작해 중동 국가의 건설 노동자로 이미 한국인이 해외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했음에도 이제는 이 땅에서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점철된 무슬림도 있습니다.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으로 반무슬림 정서를 부추기는 언론 보도는 여전합니다. 이처럼 우리 안의 타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례를 낱낱이 짚어줍니다. ​​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둔감성을 지적한 <한 번은 불러보았다>. 식민의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이 아닌 아래 세대들에게 대물림되는 한국식 인종주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역사에서 한국인은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난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K-컬처라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으며 자부심과 만족감을 얻는 한국인들에게 왜곡된 우월감에 대한 경고를 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150여 년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며 한국식 인종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충격의 쓰나미를 맛봤습니다. 잘못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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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 선사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인싸이드 과학 2
프랑수아 봉 지음, 오로르 칼리아스 그림, 김수진 옮김 / 풀빛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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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흥미로운 과학 속으로. 풀빛의 교양 과학 시리즈 인싸이드 과학 두 번째 책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선사시대부터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사피엔스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지구에서 유일한 인간 종 사피엔스. 약 30만 년 전에 출현한 사피엔스는 어떻게 끝끝내 살아남았을까요.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사피엔스의 기원, 인구 증가의 원동력, 생각 표현 방식, 사피엔스가 일군 사회 등 사피엔스의 특성을 짚어가며 우리가 지나온 흔적을 따라가봅니다. 선사학자 프랑수아 봉의 맛깔나는 스토리텔링, 딱 보자마자 프랑스 책이란 걸 느끼게 해주는 오로르 칼리아스의 멋진 그림이 곁들여졌습니다. 


아프리카, 유리사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남극 그리고 달까지. 인류의 발자국은 우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의 직계 후손으로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사피엔스, 유럽에서 활동한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아시아의 데니소바인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피엔스만이 남았습니다. 


인류는 창의력을 발휘하며 대부분의 지구 환경에 적응해왔습니다. 이 성공은 오로지 사피엔스 단독으로 일구어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자는 행동의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공진화로 사피엔스의 생존기를 설명합니다. 사피엔스의 행동과 생명 유지 활동을 연결시킨 적응 과정이 현재의 인류를 낳았습니다. 중간중간 고고학자와의 대담과 토론을 통해 과거의 사피엔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짚어주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고유전학 발달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행방도 짐작해 봅니다. 현생 유럽 인구 가운데 4%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 게 밝혀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상상력 중 하나였던 사피엔스의 범죄는 소설과도 같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졌던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으로 종 분화가 이뤄졌었지만 사실 둘은 기술적 행동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고 합니다. 둘은 긴 세월 동안 섞였고, 현종 혈통에게 생긴 Y 염색체의 부재로 생식 능력이 없어져 네안데르탈인은 서서히 낙오되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수만 년간 지속된 세 차례의 빙하기, 온난기를 겪은 종입니다.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 시절을 상상해 보게 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은 오감을 자극할 정도로 맛깔나게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정말 그런 이유였을까? 하면서요. 죽음을 표현한 선사시대 인류의 행동에도 의문을 던집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최초의 무덤은 약 10만 년 전에 등장했는데, 매장과 관련된 의식의 이유를 여전히 명쾌하게 밝히긴 힘들다고 합니다. 매장 관습과 식인 풍습의 흔적이 동시에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공인된 최초의 무덤보다 앞선 3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유적도 고인류학계의 격렬한 논쟁 거리인 점을 짚어줍니다. 


여하튼 한 사람의 소멸을 기리는 최초의 의식이 등장하고, 현재 인류 보편의 행동인 사회적 특성들이 하나씩 등장합니다. 상징적인 생각을 장신구와 같은 사물로 구현해 몸치장을 한다든지, 눈부신 벽화 예술도 등장합니다. 미술과 장례는 현대성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경멸적인 의미로 원시적이라고 평가했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재평가된 부분을 알게 해줍니다. 선사시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구석기 시대에 이미 현생 인류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원칙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후 인류사의 주요 터닝 포인트가 된 신석기 시대에 이르면 진정한 사피엔스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인구 폭발이라는 결정적 한 방을 만든 요인들을 짚어가며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함께 진행하는 공진화를 보여줍니다. 


단 한 장으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사피엔스까지 정리한 도표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고방식을 짚어준 책이었습니다. 행동적, 생물학적 차원에서 영향을 받는 방식이 하룻밤 만에 생겨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이제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고 우주 궤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과거처럼 수 세기와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더욱 어떤 방향으로 사피엔스가 진화할지 기대됩니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기 좋은 수준의 인싸이드 과학 첫 번째 책은 달 기지부터 화성 테라포밍까지 과학자들의 지구 이전 프로젝트를 다룬 <지구인의 우주 살기>입니다. 사피엔스의 다음 목적지를 가늠하는 데 도움 되는 책이어서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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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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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물, 이산화탄소로 양분을 만들어내 살아가는 식물. 그동안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도 광합성 기계를 아직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기후 위기 대처에도 획기적인 대처법이 나오는 셈이죠. 그만큼 식물의 광합성은 놀랍고도 경이롭습니다. 


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일생을 살아가는 식물.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고개를 빼꼼 내미는 식물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 재주가 대단한 식물입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진옥 저자와 식물과학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소지현 저자가 함께 쓴 책 <극한 식물의 세계>에서 극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식물 31종을 만나보세요. 


약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1년으로 바꿔보면, 대략 146년이 1초가 되는 셈이라고 합니다. 1월 1일 0시 지구 탄생 이후 11월 24일이 되어서야 최초의 이끼식물이 출현합니다. 바다의 해조류에서 시작되어 습한 육지로 올라온 이끼식물은 이후 육지화에 적응하는 식물의 출현으로 이어집니다. 11월 27일쯤 되면 고사리식물이 등장하고 겉씨식물도 나타납니다. 12월 21일에는 드디어 현재 지구상에서 전체 식물의 91%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번성하고 있는 속씨식물이 등장합니다. 까마득한 오랜 옛날부터 지구에 적응하며 진화한 식물들. 어떤 방식으로 적응했을까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다 보니 극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진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타이탄 아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차례를 가진 식물입니다. 꽃대에 달린 꽃 전체가 3m에 달한다고 합니다. 워낙 크다 보니 에너지 소모도 많아 몇 년에 한 번 간신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독면 없이는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풍깁니다. 우리가 흔히 시체꽃이라 부르는 바로 그 꽃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로 열을 발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냄새가 데워져 더 멀리 퍼져나갑니다. 썩은 고기 냄새를 좋아하는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꽃가루받이를 위한 전략의 결과입니다. 


아파트 39층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진 레드우드도 쭉쭉 뻗은 모습이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햇빛을 잘 받으려고 자랐는데 너무 키가 크다 보니 다른 문제가 생길 법하지요. 뿌리에서 줄기, 잎까지 물을 보내는데 에너지 소모가 커집니다. 그래서 또 진화합니다.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말이죠.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진화를 합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돌연변이가 생겨나야 그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섞이는 씨앗 번식도 유리하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살아남는 식물들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발로 서식처가 줄어들고, 급속히 변하는 환경에 미처 변화할 시간이 부족한 식물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오랜 기간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온 식물들에게 미안해집니다. 메마른 땅이어도, 추운 곳이어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어도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리 잡은 식물. 어떻게 이런 곳에서까지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극한의 시스템을 장착한 다양한 식물들을 만나며 감탄사만 터져 나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정확히 아는 똑똑한 식물입니다. 그저 조용한 식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는 텍스트, 그림, 사진 자료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전태형 일러스트레이터의 직관적인 일러스트는 컬러풀한 색감에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1초에 약 238m를 날아가는 마하 속도의 꽃가루를 방출하는 식물, 항공기 개발에 영향을 줄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씨앗을 가진 식물 등 번식을 위한 식물의 다양한 전략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단 1g으로 성인 1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강한 독을 품은 식물, 나무를 태운 연기만으로도 피부염과 실명을 일으키는 죽음의 나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식물 등 독한 식물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위험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공기 정화 식물로 한창 유행했던 틸란드시아는 착생 능력의 최강자이기도 합니다. 어디든 달라붙어 살아가는 이 식물의 비밀도 이 책에서 알게 됩니다. 식충식물 마니아들도 많을 텐데요, 양분이 부족한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가진 형태로 진화한 식충식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2월 31일 밤 11시 58분 51초에 신석기 시대가 열리며 인류 문명이 시작된 사피엔스. 식물의 진화 역사와 비교해 보면 아주 짧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할지 그 심각성이 더 확 와닿습니다. 오늘날 지구 환경은 이 식물들에게 또 어떤 진화를 겪게 할까요. 현대의 빠른 환경 변화는 진화의 원동력이 아닌 멸종의 지름길이 되고 있다고 짚어줍니다. 경이로운 재주를 보여준 극한의 식물들조차 이제는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생물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생존을 위한 이유 있는 식물의 진화를 보여준 <극한 식물의 세계>. 외국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식물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더 친근합니다.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계의 끝판왕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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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푸꾸옥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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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다낭, 나트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푸꾸옥. 진주 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와 자연의 매력을 한껏 품고 있는 삼림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베트남 최남단에 있는, 우리나라 제주처럼 베트남인들의 휴양지 섬입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매일 항공편이 있어 베트남의 다른 도시와 연계 여행하기에도 편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직항이 개설된 이후 푸꾸옥은 새롭게 주목받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발 빠르게 한식당이나 카페도 생기면서 한 달 살기 하기 좋은 곳으로도 인기 있습니다. 


청정 자연을 품고 있는 베트남의 떠오르는 관광지 1순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2014 최고 겨울여행지 3위, 미국 허핑턴 포스트 선정 '더 유명해지기 전에 떠나야 할 여행지', CNN이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 사오비치까지 푸꾸옥을 수식하는 찬사만으로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섬의 주요 도시인 즈엉동 마을에서 낮에는 해변을 둘러보고, 일몰의 풍경을 즐기고, 해가 지면 야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갈 것 같습니다. 진주 농장, 후추 농장, 느억맘 공장, 와인숍, 꿀벌 농장 등을 방문하거나 폭포와 사원 등 꽤 쏠쏠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즈엉동 타운을 시작으로 푸꾸옥 섬은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대규모 마트나 쇼핑타운은 없지만 푸꾸옥만의 시내 관광 매력이 또 있더라고요. 먹자골목 등 활기찬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푸꾸옥 야시장은 그야말로 입맛에 딱 맞을 겁니다. 야시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레스토랑도 있고, 다양한 디저트 가게도 있어 단조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네요. 


푸꾸옥 국립공원이 있는 푸꾸옥 북부도 멋집니다. 생물권 보존지역인 만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고, 예스러운 마을을 지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섬의 해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북부에는 빈펄 랜드도 있어 가족 여행에도 제격입니다. 워터파크,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사파리 등 환상적인 테마파크인 빈펄 랜드도 놓칠 수 없습니다. 


푸꾸옥 동부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해변이라는 사오비치가 있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힐 만큼 소문난 해변입니다. 수심이 얕아 가족여행객의 물놀이 해변 장소로도 금상첨화라고 합니다. 푸꾸옥 남부에서는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 활동이 특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호핑 투어,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해양 동물이 있는 투명한 바닷속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섬이지만 관광, 휴양, 해양스포츠, 야시장, 리조트 등 다채로운 분위기를 선사하는 푸꾸옥. 섬 곳곳에 베트남의 슬픈 현대사를 담은 장소도 있는 만큼 베트남 다크여행도 빼놓지 말고 함께 하면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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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 예의 바른 무관심의 시대, 연결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이점들
조 코헤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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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른 무관심이 고립과 단절을 강화하는 고독의 시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리를 하며 우리는 더욱 교류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비대면화로 인해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다정함의 쓸모와 친절의 이유를 찾아 나선 저널리스트 조 코헤인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사회성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 한편, 낯선 사람이 사이코패스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놓인 현대인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딜 가든 친구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사 모임에 참석해서도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가 두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성격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우리는 낯선 이들을 경계와 의혹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사회조직은 탄생되었고 사회관계망은 확대되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침팬지는 낯선 상대를 적대하지만 보노보는 낯선 상대를 환대한다고 합니다. 둘의 유전자는 거의 일치하는데도 낯선 상대를 대하는 태도는 상반됩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도시가 예의 바른 무관심을 지시한다고 합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규범이 강화된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요즘 스마트폰에만 집중합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걸 허용치 않고 그게 정상이라는 듯이 행동합니다. 많은 이들이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배려하는 겁니다. 이는 냉담한 무관심의 표현보다는 독특한 형태의 협력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과부하에 대처하도록 돕는 셈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하루 종일 인간과 접촉하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점점 낯선 이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성 약화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어리둥절해하거나 어색해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고 낯선 사람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도와주는 사람도 결국은 낯선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왜곡된 위협감은 신뢰 능력을 손상시킵니다. 신뢰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오히려 친화력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어떻게 고신뢰 사회가 친화력이 낮고, 저신뢰 사회가 친화력이 높을 수 있는지 짚어줍니다. 예의 바름의 역설인 거죠. 


"낯선 이와의 대화는 단순히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남는 전략이다." - 책 속에서





저자는 낯선 이에게 말 걸기를 옹호합니다. 우리는 낯선 이와 대화함으로써 개개인의 한계를 확장하여 새로운 기회와 관계, 이점을 얻는다고 합니다. 낯선 이와의 관계에 대한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커다란 문제 해결까지, 낯선 이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에서 다양한 사례와 최신 심리학 연구 결과를 알려줍니다. 뜻밖의 결과들이 많았습니다. 낯선 이에게 말 거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이 실제 실험을 한 이후에는 편견을 내려놓게 됩니다. 대화를 시작하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쉬웠고, 성격 유형과는 무관했다고 합니다. 지레짐작했던 부정적 편견의 장벽은 쉽게 허물 수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는 요인과 말을 걸게 만드는 요인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예의 바른 무관심의 시대 속에서 연결이 가져다주는 이점들을 짚어줍니다. 영국은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운동의 중심지입니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고독감과 싸우기 위해 2018년 고독 담당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수다 카페를 영국 전역에 900군데 넘게 설치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넘어 바깥 세계 사람들과 만나게 합니다. 약해진 사회유대의 시대에 결속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낯선 사람이라는 경이로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목적은 낯선 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규범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면 이상한 시선을 받으리라는 두려움 없이 말 걸기를 연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도서관, 공원 등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공공장소가 최적입니다. 저자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백인 남성입니다. 거절당하기도 하고, 방어적이거나 겁먹은 것처럼 상대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행위를 습관화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가 경험한 사례와 연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의 모범 사례와 유의해야 할 사항, 서먹하지 않게 대화를 시작하는 몇 가지 공식을 알려줍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안녕하세요"라는 대답은 예의 바른 무관심의 대표적인 인사말일 겁니다. 이제는 "10점 만점에 7.5점이라고 할게요."라는 대답으로 각본에서 벗어나 보자고 합니다. 왜 7.5점인지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고 상대에게도 안녕하냐고 되물으면, 인간의 거울 반응 심리 덕분에 상대도 대답이 달라질 겁니다. 상대가 6점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8점이 될까요?"라고 묻는 겁니다. 이처럼 유대감을 쌓아올리는 대화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상대의 눈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연결감은 물론이고, 주의를 기울여 이해하려 애쓰는 경청의 중요성과도 맞물립니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감정, 효과들은 개인의 사례를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분열과 불만이 가득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편견, 분열의 방어책으로서의 호기심과 대화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희망이 없다고 여길수록 시작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낯선 이가 가진 반짝이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그와 동시에 내 세계를 확장하는 일을 시작해 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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