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 - 포기하지 못할 꿈의 기록들
한유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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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활동가 한유리 에세이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 있어>. 언론에 기고했던 글과 웹 매거진,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글 그리고 비공개 에세이가 더해진 책입니다. 


저임금 노동 빈곤 여성의 녹록지 않은 삶을 살면서 그럼에도 글 쓰는 일만은 놓지 못하는 기록 노동자가 쓴 이 시대의 웃지 못할 농담이 스며든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 있어>. 이 시대 청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서빙, 주방 보조 알바, 콜센터, 공장, 과외, 편의점, 백화점... 고등학생 시절부터 열심히 어디에서든 일을 해왔지만 "나는 엄청 열심히, 많이 일하는데, 십 대 때부터 일했는데, 왠지 자꾸 돈이 없다."는 말은 남일 같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추가 수입이 생기면 딱 그만큼의 지출이 생긴다는 말에도 격하게 끄덕이게 됩니다. 


만성 우울증과 불면증을 안고 살아온 나날들. 주기적으로 휴식과 입원을 권유하는 병원. 하지만 어떻게 쉬어야 할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가족이 없고 주거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 빈곤 여성에게는 편히 쉴 방법조차 없습니다. 일을 쉬면 당장의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괜찮다는 의지만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하고, 아프다는 걸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병원에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입니다. 


일을 쉬지 못하는 이유에는 얼떨결에 맡아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동물 기니피그도 한몫합니다. 티라미수와 인절미라는 이름의 기니피그들을 수입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돌보다 보니, 남은 기력을 샅샅이 긁어모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밖에 없는 돌봄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동물권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보다 빈곤한 세대라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의 한탄을 알아달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춥니다. 대대적인 이슈가 될 만큼의 사건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성이기에 일자리에서 노출되는 다양한 성폭력의 일상화를 들려줍니다. '모기에 물려 가려운 수준의 꾸준하고도 은은한 괴로움'이라는 표현이 공감됩니다. 


어느 장소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허용 가능한 암묵적인 룰과 제도적으로 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미묘한 차이를 꼬집기도 합니다. 사무실에서 했다간 큰일 날 일을 토킹바에서는 슬쩍해봐도 되는 정도의 여자로 묶이는 것처럼요. 어디서건 성적 대상화 당하는 본질은 똑같았습니다. 


"울고 싶은 순간에는 상상 속에서만 조금 울었다. 눈물에도 체력이 녹아 있어 한 방울이라도 몸 밖으로 내보내면 결국 나만 힘들다." - 책 속에서


장애인권운동가 김형수 님과의 인터뷰도 큰 울림을 안겨줍니다. 이념적으로 갑론을박할 문제, 운동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에서 일상화된 활동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고 디지털 성폭력에 맞서 싸우고, 여성 노동자의 이슈에 뛰어드는 등 꾸준한 활동을 해온 유리 작가. 말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발버둥 쳐도 어차피 안 된다는 것에 처절한 자괴감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지해서 가능한 무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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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베트남 한 달 살기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김경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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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남부 나트랑, 무이네, 달랏, 호치민, 붕따우 지역 정보가 담긴 베트남 한 달 살기 가이드북.


카페, 맛있는 별미를 제공하는 식당 가까이에 백사장과 청록색 바다가 있는 베트남의 유명한 해안 도시 나트랑.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만큼 남부 해안에는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요. 고층 건물과 고급 호텔이 즐비한 해변을 벗어나면 좁은 골목길과 냐짱의 오래된 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매일 뭘 먹어야 하나 즐거운 고민도 해봅니다. 현지에서 길거리에 앉아 먹는 쌀국수 맛도 궁금합니다. 베트남 음식의 홍보대사인 쌀국수 외에도 분짜, 반 쎄오, 반미 등을 포함해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등 베트남 음식과 관련한 정보가 든든하게 있으니 미식 여행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현지인이 엄지 척 내세우는 반미 맛집, 다양한 해산물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 등 다양한 음식점도 소개합니다. 물론 한 달 살기를 할 때 필요한 라면, 캔 음료 등 마트 식품까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커피가 유명한 베트남인만큼 카페도 많습니다. 프랜차이즈 카페 외에도 특색 있는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도심 속 쉼터 같은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들이 많이 생겨 카페 투어의 로망도 만족시킬 겁니다.


베트남에서 아프리카 사막을 만나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무이네 사막, 정말 경이롭습니다. 나트랑에서 3~4시간이면 갈 수 있는 달랏과 4~5시간이면 도착하는 무이네는 '짠내투어'에서 방송되어 주목받은 이후 로망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화이트 샌듄, 레드 샌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고, 베트남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요정의 샘에서 멋진 자연을 만나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또 다른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베트남의 유럽으로 알려진 달랏은 식민시절 프랑스의 휴양지로 개발된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특히 크레이지 하우스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생각나게 하는 곳인데다가 온 가족이 좋아할 만한 곳인 것 같아요. 고원지대여서 여름에도 시원하게 여행할 수 있어요. 아기자기한 건축물이 많이 도시여행을 하기에도 좋고, 주변 산에서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 최고의 커피 생산지이기도 해서 카페 문화도 발달한 곳입니다.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달랏에서 여유로운 관광을 해보세요.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있는, 유럽인들은 아직까지 사이공이라 부는 호치민. 프랑스풍 건물이 가득한 호치민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로 베트남의 경제와 문화 중심지입니다. 230km에 이르는 사이공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 모습은 서울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일 정도네요.​ 호치민의 다양한 모습들 중 인상적인 장소는 '더 카페 아파트먼트'. 낡은 아파트 전체를 카페로 개조한 곳인데 어쩜 그렇게 컨셉이 다양한 카페들이 가득한지. 이곳만 몇 날 며칠 투어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비텍스코 사이공 스카이데크와 하이네켄 박물관도 콤보 티켓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다녀볼 수 있습니다. 


호치민에서 2시간 정도 해안 도로를 따라가거나 페리를 타고 이동하면 나오는 붕따우는 우리나라 땅끝마을처럼 땅끝 절벽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일몰 감상하기 좋은 붕따우는 베트남 대도시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근접성 덕분에 주말과 장기 여행을 위한 휴양지로 인기 있습니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예수상도 있는 명소라는 걸 가이드북에서 알게 되었어요. 휴양과 힐링, 로컬 문화까지 베트남 남부의 다채로운 여행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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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의 은퇴, 퇴사 후 자존감 여행
조대현.신영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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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퇴사 후 한 달 살기는, 의문을 설득해야 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담당할 은퇴, 퇴사 후 자존감여행. 관광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 현지에서 지내는 한 달 살기를 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간으로서의 자존감여행을 만나보세요. 인생 전환기에 떠나는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입니다. 


해시태그 여행 가이드북에서 먼저 만났던 지역의 에피소드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조지아, 아이슬란드, 모로코 그리고 우리나라 제주까지 그 사진이 이렇게 탄생되었구나 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여행 에세이처럼 흘러가면서도 자존감 회복에 도움되는 유명한 일화나 문장도 틈틈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여행을 한다면 더욱 뜻깊을 거예요. 여행의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깊습니다. 여행을 함으로써 맞바꿀 수 있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대부분 돈과 시간일 테니 여행에서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강박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놓친 고기에 연연하지 말고 여행을 평생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군가에게 비치는 '나' 대신에 그냥 '나'가 되는 최고의 방법은 여행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여도, 새롭게 발견하는 '나'일지라도 본연 그대로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여행의 가치. 매일 용기가 필요한 여행은 나에게 더 열린 마음을 갖도록 북돋아줍니다.


자존감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내 삶을 탄탄히 할 자존감에 집중한 <뉴노멀 시대의 은퇴·퇴사 후 자존감여행>. ​한 달 살기가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와닿습니다.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다는 것, 한층 성숙해지고 변화한 생각과 가치관을 얻는 여행이라면 인생의 한 기간을 날려먹는 게 아니라 나를 재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겁니다. 자존감여행이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비전과 내면의 자존감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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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소름 돋는 현실고증
김주형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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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춘추전국시대에 20년 차 예능 PD로 살고 있는 김주형 PD의 생존기 <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예능계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한 PD들도 같이 유명세를 얻지요. SBS 공채로 들어간 김주형 PD는 유재석과 <런닝맨>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멱살 잡고 싶은 PD 일명 멱PD로 불리며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폭풍 같은 변화가 몰아치는 멀티플랫폼 시대가 되자 퇴사 후 선배 PD들과 함께 예능제작사에서 여전히 예능 PD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현실고증 <재미지옥에 왔습니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김주형 PD의 찐 노하우가 담겼습니다. 



입사 14년 차 그는 첫 직장 SBS에 사표를 내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대표 예능도 생겼고, 흔치 않은 해외 합작 프로젝트 성공 경험도 있습니다. 한 해 앞서 나간 선배들이 있는 예능 제작사에서 제2의 예능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를 만들게 됩니다. 기존 방송과는 다른 시스템인 OTT에 맞춰 새롭게 도전합니다. 유튜브 숏폼에도 도전합니다. <파자마 프렌즈>, <위플레이>, <뇌피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이수근의 눈치코치>, <셀럽은 회의 중> 등 플랫폼에 맞는 다양한 도전을 이어갑니다. 






늘 새로움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는 엉뚱한 생각도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대부분은 폐기처리용이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한 것이 결국 기획안을 작성할 때 도움이 됩니다. <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에서는 예능 PD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면접 준비, 기획안 작성법 등 현장 PD의 노하우도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고 신선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들입니다.



공대생이 첫 직장으로 지상파 공채에 도전하게 된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방송국 편집실의 느슨한 분위기를 살짝 맛봤는데, 자유로운 출퇴근 직장인이라 착각(?!) 하고 PD에 슬쩍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전공을 살려 대기업 취업 준비를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방송 PD 특강마저 우연한 기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결국 그는 지옥의 문을 두드립니다.



교양 PD로 지옥의 조연출 생활이 시작됩니다. 예능국으로 보내달라하니 교양국에서 만드는 <한밤의 TV 연예>, <TV 동물농장>으로 보내버립니다. 그곳에서 예능의 맛을 좀 보긴 합니다. 그리고 5년 차에 드디어 왁자지껄한 예능국으로 가게 되었고, 편집이라는 후반 작업의 예술에 매료된 채 예능 PD 조연출 생활을 이어갑니다.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버라이어티 예능 PD 생활의 센 노동 강도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연출에서 연출이 된 입봉작은 <런닝맨>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보는 김에 슬쩍 함께 보는 수준이었는데, 제가 본 예능 방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바로 런닝맨에서 나왔습니다. 초능력자 특집 편 말입니다. 다시 봐도 오글거리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기획이 와닿았거든요. 



출연자마다 담당 VJ가 있고, 수십 대의 카메라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예능 PD나 스탭이 등장하는 게 어색하지 않고, 흔들리고 저화질이어도 눈감아줄 수 있는 신기한 예능 시스템에 익숙한 시청자들. 우리는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기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종편, 케이블, 위성방송, 넷플릭스,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해도 예능의 본질은 재미와 의미라고 짚어주는 김주형 PD. 예능 PD로 살아남기 위한 그의 행보는 즐기는 사람은 못 이긴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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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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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치매를 앓는 사람,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을 위한 책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가 있어도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2014년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 진단받은 저자는 20년간 영국국민의료보험에서 일했지만 사회나 병원 모두 치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치매활동가로 살게 됩니다. 저자가 치매 환자를 대표하진 않지만, 간병인 없이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8년여를 살아가고 있는 치매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나이프 대신 숟가락, 찻잔은 머그잔으로 바꾸어야 하는 생활. 치매 진단 이후 그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하얀 접시에 색이 흐릿한 음식을 주면 치매 환자는 접시에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맛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양손이 더 이상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자르는 일도 힘들어집니다. 고기를 씹을 때 얼마나 오래 씹었는지 얼마나 더 씹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뜨거운 음식도 인지하지 못해 입안에 알게 모르게 화상 자국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면 그저 치매 환자는 까다로운 사람이라 판단해버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서로 힘들어집니다. 패턴 있는 카펫은 방향 감각을 상실해 넘어지지 않으려 바닥을 보느라 시간을 낭비합니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은 수영장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검은색 매트는 싱크홀처럼 느껴집니다. 카펫과 벽의 색이 같으면 걸어 다니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감각 왜곡에 대한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도 이 책을 읽고서야 치매의 증상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앗아가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치매는 이렇게 일상의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오감에 대한 왜곡이 심해집니다. 우리는 뇌 안에서 복잡한 질병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인지 기능, 감각 경험, 운동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치매를 진단받은 저자는 부끄러워하기보다 대처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펜을 불 위에 올리는 요리보다 데워먹는 간편식 위주로 음식을 먹고, 모든 생활에서 알람은 필수로 설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사 시간을 알지 못하고, 얼마나 걸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감각에 대해 환각을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면 저자는 30분 테스트를 하기도 합니다. 자리를 떠났다가 30분 후에도 그대로면 환각이 아니라는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거라는걸요. 환자가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 순간 그에게는 정말 그 냄새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치매 환자와 간병인 간의 관계 맺음이 원활해집니다. 


문제는 이런 왜곡 감각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무도 경고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각의 변화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환자 개개인의 문제이기에 치매와 감각 변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게 아직 부족한 현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해결책을 결국 다 마련합니다. 치매 의사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청각 과민증을 겪을 땐 특정 범위의 소음을 차단하는 보청기를 마련했습니다. 훨씬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치매 환자와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구성하느라 눈에 잘 띄는 노란색 테이프를 붙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두 딸을 키운 싱글맘으로 가족 간병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가족 간병인. 환자마다 기능 감퇴 속도가 달라 예측 불가능한 진행성 질병을 안고 새로운 미래를 헤쳐나가야 하는 치매 환자와 간병 문제에서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의 부재를 몸소 경험합니다. 공공 부분이 맡아야 할 일을 자발적 조직에 의존하게 하는 실상을 짚어줍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을 영위하길 바랐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엄마이고 싶었다는 저자의 솔직한 마음은 쓸모 있음에 대한 존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생활하면서 마주하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계속 찾아 나선 겁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오히려 매일 치매를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환자의 회복력을 키우고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실제로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치매 친환경적인 지역 사회처럼 말입니다. 


치매 활동가로 사는 그를 섣불리 판단하며 비판하기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는 그 행사장에 방금 등장했다 싶지만, 실제로는 몇 주 전부터 경로를 짜고, 가는 길에 지나갈 수 있는 랜드마크 이미지를 인쇄하는 등 준비하는 데만 무척 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 책이 치매 환자가 쓴 기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겁니다. 


여러분은 치매 환자를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인가요. 치매를 보는 인식은 대부분 노망, 정신 착란, 짐, 산송장 같은 이미지 아니던가요. 육신만 남은 겉껍데기라는 이미지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 치매입니다. 그렇기에 치매 친환경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건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겁니다. 치매의 전통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는 경우, 전문가들조차 진단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치매 환자에 대해 모른다고 짚어줍니다. 


치매 병원조차 건물이 엉망입니다. 옅은 색 배경에 은색으로 박힌 표지판처럼 애초에 디자인 단계부터 치매 환자들이 참여한다면 훨씬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중증 치매 환자들이 이용하는 치매 마을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저자는 소셜미디어 활동도 하고, 줌 모임도 가집니다. 어린이용 사이트처럼 직관적인 사이트면 인터넷 활동도 가능합니다. 공공 좌석, 화장실 시설, 떨어진 연석, 건물 경사로, 적절한 도로 표시, 보행자 횡단보도 신호 시간 등 노인 친화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사항들을 들려줍니다. 네덜란드에는 230여 개 이상의 치매 카페가 있습니다. 대만은 치매 친화적 상점들이 있습니다. 중국은 GPS 추적 장치가 내장된 노란 팔찌 프로젝트를 시행합니다. 노르웨이의 전통 농장을 개방한 그린 케어 모델의 유용성도 알려줍니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내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 " - 책 속에서


저자 이외에도 치매 진단 2년 차, 8년 차... 진단 이후에도 여전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치매의 부정적 선입관을 깨뜨리게 해주는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미화하지도 않고 병의 진행 추이에 따른 감정들을 진실하게 기록하며 변화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유독 상태가 나쁜 날도 있습니다. 진행성 질병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진단받기 전의 나와는 다릅니다. 치매는 분명 사람을 황폐화시킵니다. 하지만 최후를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압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아주 멀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느라 담당 의사의 서명을 받아낸 저자는 멋지게 스카이다이빙을 해냈습니다. 남이 보면 엉뚱해 보일지 몰라도 언제나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치매를 활용할 줄 아는, 오늘을 살아가는 저자입니다. 


치매 같은 질병에 관해서는 태도가 싸움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도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의 변화는 치매 환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부터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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