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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 - 논술과 토론에 강해지는 바칼로레아 철학 토론서
배진시 지음 / 탐구당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암기 중심의 교육 시스템에 익숙해진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질문하는 용기를 선사하는 철학 토론서 『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
정답은 없다는 말이 정답인 시대, 왜를 묻는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 책은 정답 강박의 굴레를 깨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사유하고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철학적 질문들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개념을 주입하는 철학 교재가 아니라,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의 언어로 가득 찬, 사유의 기술을 보여줍니다.
배진시 저자는 토머스 쿤, 파스칼, 사르트르, 칸트 등 거장들의 사유를 일상의 고민으로, 청소년이 겪는 현실적인 고민과 철학적 질문 사이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사유의 자유를 열망하는 학생에게는 철학적 나침반을,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 염증을 느끼는 교사에게는 질문하는 교실이라는 해법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장 '진리와 인식'은 우리 시대의 앎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모든 진리는 최종적인가?"라는 질문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 개념을 빌려와, 한 시대의 진리가 다음 시대에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외워야 할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이 실은 특정한 시점과 관점에서만 유효한 잠정적 합의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저자는 진리 탐구의 과정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 사회적 토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진리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는 곧, 내가 믿는 바가 타인과의 신뢰와 정의라는 가치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모험입니다. 파스칼, 데카르트, 존 로크의 사유를 따라가며 이성과 경험의 한계를 고찰하는 과정은 자신의 인식론적 기반을 견고하게 다지도록 돕습니다.
이어서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인가?"라는 루소와 칸트의 질문은 자유가 단순한 방종이나 욕구 충족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청소년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자기중심적인 자유의 함정을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빛나는 자유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저자는 자유가 타인을 위한 절제와 자신에 대한 책임에서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자유롭기 위해선, 너도 자유로워야 한다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절제된 자유는 아름다운 자유라고 선언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질문인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를 다루면서, 자유로운 선택 뒤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강조합니다. 자유란 정해진 답이 없는 삶을 자신의 의지로 채워나가는 용기 있는 행위임을 체화하게 됩니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의적절한 질문들을 다룹니다.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을 확장하여 "노동은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묻고, 기술에 대한 철학자들의 비판적 사유를 통해 기술의 양가성을 탐구합니다.

기술은 분명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육체노동의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기술이 인간을 도구적으로 만들고, 기술의 진보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이 퇴화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권터 안더스의 통찰을 청소년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기술이 주는 해방은 자칫 기술에 대한 의존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속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노동이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만 전락할 때 인간은 오히려 자아실현의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마르크스적 성찰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조명합니다. 스마트폰, AI 등 익숙한 기술 환경을 철학적으로 재검토하며, 자신이 기술의 주체인지 객체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예술은 규칙 없이 가능한가, 예술 작품은 항상 의미를 지니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질문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해석의 자유를 선사합니다.
이 장의 핵심은 롤랑 바르트의 '작가의 죽음(la mort de l’auteur)' 개념을 통해 예술 작품의 의미가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에게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문학이나 미술을 접할 때 작가의 의도만을 찾으려는 수동적인 감상 태도를 비판하며, 스스로 능동적인 해석 주체로서 작품에 참여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지는 사회에서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바탕으로 도덕적 행동이 개인의 이익과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되는지를 탐구하기도 하고, 몽테스키외, 토머스 홉스, 존 롤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사회계약론자와 정의론의 거장들의 이야기를 건네며 정치철학을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고전적인 명제부터 시작하여,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 그리고 데이비드 흄의 기억과 정체성 문제 등 모든 철학적 질문이 귀결되는 최종 지점인 나 자신에 대한 탐구를 마지막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현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기틀을 마련해 줍니다.
각 주제마다 생각해 볼 문제 포인트, 토론용 질문 등을 제시하며 세상을 자기만의 말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실용적인 철학 토론서입니다.
외운 지식은 사라져도, 스스로 던진 질문은 삶이 됩니다. 『외우라고 했지만 왜라고 했다』는 사유의 시작, '왜'를 묻는 법을 보여줍니다. 질문, 토론, 핵심정리 프레임을 통해 스스로 사유의 경로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구성이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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