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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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남편이 '그 인간'으로 변하면서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무엇이 아내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아내들의 폭풍공감을 부르는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실사판과도 같습니다. 책갈피로도 사용 가능한 독특한 책날개에다가, 반대쪽엔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이라는 기발한 부제가 붙었습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 남편들, 섬뜩해지나요~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구석구석 자리한 책 속의 한 줄과 일러스트.

 

 

 

경제적 이유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일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찾아오는 위기. 결혼 즉시 퇴사, 임신 해고, 육아휴직 해고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아내 몫입니다. 사회가 아내들을 버리고 있는데, 남편마저도 아내를 외면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 내 이혼 상태, 단순한 동거인, 섹스리스 부부 상태가 되는 건 시간문제.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은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에서는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인간아, 나가 죽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런 인간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그냥 내가 참자, 참아.'라는 생각을 하는 아내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 여기겠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이미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맞벌이를 하는 직장맘 아내의 분노 사례와 전업주부 아내의 분노 사례를 각각 다룹니다. 워킹맘의 경우 직장에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퇴근하고,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미안하다 고개 숙이고, 아이에겐 엄마가 늦어서 외롭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남편의 경우 아주 쉬운 일만 골라 하는 경향이 크다는 걸 통계로 보여주더군요. 아이의 등원이 아니라 하원을 담당하는 쪽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될 겁니다. 업무에 지장 주는 일은 대부분 아내 몫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전업 주부가 된 경우나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사례에서도 공통된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러다 잘리면 좋겠어?"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됐잖아."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애초에 육아와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성 역할 구분,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의 남편들은 아내의 무상 노동 시간을 무시하고 아내를 '먹여 살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연봉 차이로 인해 여자 쪽이 육아휴직하는 실태. 그런데 아내의 임시 전업주부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은 아내의 복직 후 닥치는 역할 분담을 오히려 더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남편은 동굴 속으로 숨어들지요. 아내는 숨어들 곳이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깨어있는 남편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어쨌든 육아기에 생긴 부부 분쟁, 온도 차, 오해, 엇갈림을 방치하면 해가 갈수록 부부 관계는 살벌해집니다.

 

퇴직한 남편과 온종일 함께 있는 베이비붐 세대 아내의 원망은 오싹할 정도입니다. 최대의 복수는 남편이 죽었을 때 할 생각이라는 한 아내는 "남편의 유골을 예쁜 상자에 넣어서 야마노테 선 안의 선반에 올려놓고 올 거예요!"라고 합니다. 갑자기 아내가 남편만을 위한 서재를 마련해줬을 때 무조건 좋아하면 안 됩니다. 당신을 버린 거니까. 집 안에서 마주치기도 싫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내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남편을 용서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으면 남편도 뒤따라 죽을 지경이지만, 남편이 없어지면 아내는 곧 생기를 되찾을 정도지요. 

 

 

 

자, 이제 남편의 입장도 들어봅시다.
육아휴직하고 싶어도, 일찍 퇴근하고 싶어도 회사가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기껏 2주간의 육아휴직 내는 것도 눈치 봐야 하니 말입니다.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일을 우습게 여긴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용 악화 현실이라는 걸림돌,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수입. 회사가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한들, 직속 상사가 여전히 옛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한 마디로 찍히게 됩니다.

 

하지만 육아도 매일이 전쟁입니다. 일과 육아의 가치는 그 비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가치 역시 동일합니다.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집을 부러워할 만큼 여전히 현실은 고됩니다. 남편이 죽기를 바랄 정도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않을까 싶죠. 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인가요? 과감히 새 출발할 수 없는 사회제도는 결국 지쳐버린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을 바라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를 남편이 읽는다면, 가정 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좀 하게 될까요. 아내가 살기를 품는 순간은 언제인지, 아내의 살의를 잠재우기 위한 남편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책에서 소개한 각종 통계와 실사례를 통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제도라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일 가정 양립, 육아휴직 등 사회적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어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는 맘고리즘 현상, 독박육아를 근절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귀가 기억에 남는군요.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야. 그 '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

 

자칫 자극적인 제목이 사별로 마음을 다친 분 등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지 공감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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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기관 서던 리치 시리즈 2
제프 밴더미어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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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환경 재해가 발생해 격리된 X구역의 비밀을 다룬 SF 소설 서던 리치 3부작.

 

그 누구도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고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X구역. 32년 전, 어떤 사건으로 주위 환경이 변했고, 보이지 않는 장벽 혹은 경계가 생겼습니다. 유령 같은, 투과성 경계선이죠. 경계 너머 비밀을 밝히려고 서던 리치가 생겼고, 탐사대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X구역의 비밀은 모호함 그 자체입니다. 그저 '원시 상태의 황야'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1권 소멸의 땅 편에서는 네 명의 여성학자들로 구성된 12차 탐사대가 X구역에서 경험한 기이한 일들을 다뤘습니다. 생물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죽음에 이르며 끝났는데...

 

 

 

"저들이 생존자인가요?"

세상에... 2권 <경계기관> 첫 문장에서부터 멘붕.

 

생물학자, 심리학자, 측량사, 인류학자 네 명의 탐사대원 중 심리학자를 제외한 생물학자, 측량사, 인류학자가 돌아온 겁니다. 이전 탐사대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X구역의 경계를 통과해서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돌아오지 못한 심리학자의 정체도 놀랍습니다. 그녀는 서던 리치의 국장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실종된 서던 리치 국장을 대신해 온 남자. X구역에 대해 아는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요원 출신 가족에서 자란 그는 컨트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일명 해결사 역할로 서던 리치에 오게 되었습니다. <경계기관> 편은 컨트롤이 서던 리치 조직 내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유독 생물학자에게 신경 쓰이는 서던 리치 신임 국장 컨트롤. 뭔가 그녀의 기억은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전 국장의 책상 서랍에는 X구역에서 온 죽지 않는 식물도 방치된 채 있고, 국장실에 숨겨진 비밀공간에는 1권 <소문의 땅> 편 탑 벽면에 적힌 기이한 문장의 일부가 고스란히 적혀있습니다. 탑과 등대에 관한 뭔가가 있음을 암시하는 단어가 많이 나왔는데 2권 <경계기관>에서 등대에 관한 스토리는 살짝 들려주네요. 등대지기 손 에반스를 등장시키며 이 부분의 비밀은 완결편 <빛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X구역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는 건드리면 그 너머로 끌려들어 갑니다. 바다 위에도 있는 경계. 등대를 기점으로 내륙으로 이어졌고, 위로는 성층권까지 달합니다. 통로가 몇 군데 발견된 이후 서던 리치에서는 그 통로를 이용해 탐사대를 보내왔던 겁니다.

 

하지만 통로는 우리가 그곳으로 건너가는 공간이 아닌, X구역의 무언가가 이쪽으로 나오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는 컨트롤. 경계의 존재가 뭔가를 들여보내기 위한 건지, 내보내기 위한 건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X구역은 더욱 미스터리 하기만 합니다.

 

충격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6미터 높이에 3.5미터 너비의 통로가 있어야만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 책 속에서

 

 

 

등대와 탑의 관계, 일렁이는 거대한 경계, 경계의 휘몰아치는 불빛, 첫 탐사대 생존자가 찍어 온 불가해한 영상, 그 문을 통해 무단으로 몰래 넘어간 전적이 있는 실종된 전 국장의 비밀, 거기에 컨트롤이 전화로만 보고하는 성별도 모르는 의문의 보이스, 컨트롤이 서던 리치로 오게 된 숨은 배후의 존재, 자신은 생물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 서던 리치 조직 일원인 휘트비의 알쏭달쏭한 발언들...

 

<경계기관>편에서는 서던 리치 내 비밀과 음모가 마구 뿌려놓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휘트비라는 인물이 은근 거슬리는데요. 그가 주장하는 테루아 가설이 뭔가 떡밥 같단 말이죠. 지리적 위치나 토양, 기후 같은 어떤 장소의 특징을 의미하는 테루아. 포도와 와인의 관계에서 나온 용어인데, 장소의 성질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테루아 개념을 휘트비는 X구역에 대입해본 겁니다. 

 

후반부에는 소스라치게 놀랄 오싹한 장면 덕분에 심장 떨어질 뻔하기도 했어요. 스티븐 킹 작가가 이 소설을 두고 "오싹하고 대단히 흥미롭다"라고 평하는데 기여한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네요.

 

1권 <소멸의 땅> 비밀 중 아주 작은 일부만을 2권 <경계기관>에서 감질나게 해결해주고선, 또다시 음모론을 잔뜩 펼쳐놓으며 의문을 더하네요. 안개 같은 모호함 속에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내 상상력을 넘어서는 스토리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천천히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눈치 못 챈 X구역의 확장으로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결말은 더 짐작하기 어려워집니다. 연약해 보이면서도 맹렬한 생물학자와 의문의 도가니 한가운데 던져진 컨트롤. 이 둘의 여정이 완결편 <빛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경계기관>편은 비밀 기관 서던 리치 조직의 요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환상 SF 소설 속 첩보물까지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서던 리치 3부작 중 첫 번째 <소멸의 땅> 촬영 중인 영화 원작 소설이라는 걸 잊을 수 없어, 2권 <경계기관>을 읽는 중에도 이 사람은 어떤 배우가 맡을까, 이 장면은 영화관에서 다들 심멎하겠네... 상상하며 읽어내려가는 맛이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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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바꾸는 질문들 - CNN 백악관 출입기자 프랭크 세스노의 전략적 질문법
프랭크 세스노 지음, 김고명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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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앵커, 백악관 출입기자, 토크쇼 진행자로 활약하며 에미상 등을 수상한 언론인이자 인터뷰 전문가 프랭크 세스노.

 

질문을 업으로 삼으며 겪은 다양한 상황들은 질문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단기적 목표를 위한 질문 외에도 질문을 활용해 의욕을 일으키고 탁월한 성과를 거둬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진단형, 전략형, 공감형, 가교형, 대립형, 창조형, 사명형, 과학적 질문 그리고 면접용, 유희형, 유산형 질문. 프랭크 세스노는 질문 유형을 11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고, 삶을 바꾸는 질문이 있기도 합니다. <판을 바꾸는 질문들>에서는 생활과 업무에서 어떻게 질문을 하고 활용하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가득합니다.

 

 

 

진단형 질문은 구체적 문제를 파악할 때 유용한 질문입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문제, 원인, 대책을 파악하는 질문들을 해야 진짜 중대한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진단형 질문은 탐색의 기본입니다.

 

큰 그림에 초점 맞추는 전략형 질문은 의사결정이 바뀌는 사례를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직업적 차원이든 개인적 차원이든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챙겨야 할 질문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호기심, 교감, 공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맺기를 할 때도 질문의 힘이 발휘하죠. 질문을 통해 공감 관계를 형성하려면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의미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관점 바꾸기로 시작합니다. 말 외에도 몸짓과 표정 등을 통해 온정과 관심 표현이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질문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하고 창조적 사고와 혁신을 추진할 수 있을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조형 질문도 관심 많았는데요. 습관적 사고 패턴 대신 야심찬 질문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질문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질문입니다. 뻔한 답변 대신 황당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자극을 하는 질문이죠. 지시 대신 도전의식을 부릅니다. 때로는 고독과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일종의 놀이로, 과제로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은 창조형 질문입니다.

 

 

 

프랭크 세스노의 질문 유형들을 보면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청. 질문하는 요령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말을 적극적으로 깊이 듣는 자세. 이 두 가지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잘 듣고 내 것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체득해야 합니다. 질문을 통해 원하는 뭔가를 끄집어내는 걸로 끝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까지가 질문의 완성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질문 사례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공감, 신뢰 만들 상황 없이 답을 듣는 게 급선무일 때, 주로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흔한 경우에도 전술이 필요하더군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 한 기자에게 발언권 안 줬다며 무시하던 유명한 장면. 회견장에서 쫓겨 나갈 때까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던 그 기자는 기록으로 남길만한 장면을 선사했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구경거리를 만들어줬죠.

 

발명왕 에디슨에게 몰려든 구직자들의 면접용 질문도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백과사전식 질문으로 많은 수를 걸러낸, 황당한 질문 일색이더라고요.

 

상황에 따라 더 극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묻지 않고 묻는 "더 얘기해봐요.", "그것 좀 설명해주세요." 같은 물음표 없는 질문도 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우고 싶을 땐 열린 질문 대신 짧고 날카로운 예/아니오 질문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유산형 질문도 의미 있습니다.

의미, 감사, 실수, 역경 등 우리가 성취하거나 변화시킨 것, 우리의 손길이 미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질문은 인생 막바지에 많이 하지만, 일찍부터 이런 질문에 익숙해지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균형을 모색하게 된다고 합니다. 

 

수동적 교육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꽤 어려워합니다. 질문 시간만 되면 벙어리 되기 일쑤니 질문을 하더라도 상대방조차도 인지 못했던 것을 끄집어낼 만한 제대로 된 질문 기술이 부족하고요. 질문을 한다는 건 나와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관심, 배려 때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을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결국 인생 탐구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대화의 물꼬를 틀고,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진 질문.  11가지 유형별 질문 노하우와 경청하는 노하우까지 들려주는 책 <판을 바꾸는 질문들>. 이 책 읽는 내내 손석희 앵커가 떠오를 정도로 질문 파워가 대단한 저자라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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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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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is를 실현한 꿈같은 일주일 간의 여정.
2010년 <파리는 나를 사랑해> 개정판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미얀마 여행지에서 만난 소피와 여행 에피소드를 나누던 중, 지하철 파업으로 힘들었던 고생담 덕분에 다음에 파리에 오면 자신의 집에 머무르길 권한 소피. 그리고 드디어  파리를 찾은 저자는 꿈에 그리던 In Paris를 실현하게 됩니다. 

 

 

 

소피네 집에 머물며 여행자라기보다는 파리지앵처럼 살아본 일주일. 여행작가 직업병은 어딜 가지 않아 파리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명소 외에도 파리인들이 자주 찾는 로컬 식당 등을 찾아내며 일상을 채웁니다.

 

파리 시에서 만든 친환경 교통수단 벨리브를 타고 공원에서 광합성을 즐기기도 하고, 여느 파리지앵들처럼 이른 아침 빵집에서 줄 서서 빵을 사기도 하면서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파리지앵의 일상을 보는 듯한 풍경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파리는 영화 속 배경 장소로 많이 등장해 영화 촬영지를 찾아 누벼보는 여행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아멜리에>의 생 마르탱 운하와 몽마르트르, <노트르담 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비포 선셋>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물랑 루즈>의 카바레 등 영화에 나온 스폿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파리하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듯 키스를 부르는 파리의 장소들은 제법 유명하기도 하죠. 낭만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시청 앞에서의 키스> 사진 덕분일까요.

 

 

 

일상 에세이만으로 그치지 않아 더 좋았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의 진실, 혁명의 두 얼굴 등 프랑스 역사가 숨 쉬는 장소를 둘러보기도 합니다.

 

 

 

특색 있는 파리 시의 메트로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어요. 120여 년 된 만큼 노선마다 역사적 의미의 특징을 살려 내부를 꾸몄다고 합니다. 메트로의 연주자들을 눈여겨보게 되고, 도심에서의 로컬 푸드와 시장을 경험하는 등 파리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합니다. 노천카페 문화가 발달한 파리에서 그들처럼 따라 하려다 뜨거운 햇살과 지루함에 결국 손들었다고.

 

 

 

파리지앵들의 식습관에도 동참해봅니다. 아침, 점심 대부분 빵이라니... 빵순이라면 정말 딱인 곳이겠어요. 풀코스 저녁 대신 점심 세트 메뉴를 선택해 점심을 푸짐하게 먹는 게 가격 부담이 덜하다고 하니 참고해야겠습니다. 

 

여행자라면 그저 스쳐지날법한 장소들이 많은데,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어도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럴까요. 눈에 더 잘 띄나 봐요. 눈살 찌푸리게 하는 그라피티가 아닌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을 주는 파리의 그라피티 문화를 통해 파리 예술의 현재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다른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볼 수 없는 정보와 풍경이 많답니다.

 

 

 

카메라를 도난당하고 머리채를 붙잡히는 아찔한 경험도 했지만 그럼에도 프랑스를, 파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여전한 이유는 뭘까. 그 속엔 도움의 손길을 내민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의 기억은 결국 그곳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시티바이크 벨리브를 타기도 하고, 열심히 걷기도 하면서 파리 곳곳을 누빈 일주일. 일주일간의 기록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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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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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까.

작품 탄생의 비화라든지 작품에 묻어나오는 작가의 가치관은 한두 가지 요소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영감의 원천 중 하나가 박물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도시의 유명 박물관보다는 소박하고 작은 박물관이 대부분이고요.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끌리는 박물관>은 세계 문학상을 휩쓴 유명 작가들이 박물관에서 느낀 성찰을 담은 책입니다. 짧고 개인적인 글이지만 박물관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경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총 38명의 저명한 작가들이 살아오면서 인상 깊었던 박물관을 다시 찾아갔고, 자신에게 영감을 준 박물관에 대해 썼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인텔리전트 라이프>에 '박물관의 저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실렸던 글 중 24편을 묶은 책 <끌리는 박물관>. 건물 자체보다 작품과 그들의 관계를 다룹니다.

 

 

 

박물관 이야기라고 해서 약간은 따분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작가의 글은 딱히 끌리지 않을 거야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역시 유명 작가 타이틀은 그냥 주는 게 아니었어요.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어서 제각각 개성 있는 문체와 매끄러운 필력을 선보여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맛도 무척 좋았습니다. 유머와 감동은 기본입니다. 자기만 알고 싶은 박물관이라는 티를 은근 내비치는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는데요. (이젠 나도 안다!) 흔한 여행 책에서는 접하기 힘든, 특이하고 재미있는 박물관 목록이 하나씩 늘어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끌리는 박물관>에 등장한 박물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북유럽과 남유럽 등 세계 곳곳의 작은 박물관이고, 주제도 참 다양합니다. 주택 박물관, 두레 공방, 실연 박물관 등 별의별 박물관이 다 나옵니다. 편당 글이 길지는 않아서 작가별로 한 편씩 끊어읽기 딱 좋습니다. 

 

 

 

15년 만에 세 번째 발길을 한 로디 도일 작가의 주택 박물관 탐방기.
그곳은 유명인이 살았던 곳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 살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이 되었을 만큼 사연이 깃든 곳입니다. 그 사연이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주택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도 손을 댄 것은 없습니다. 5층짜리 공동주택이었던 이곳은 겹겹이 붙여진 벽지와 칠 벗겨진 페인트 벽에 사람들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헤밍웨이도 살았던 쿠바의 낡은 도시 아바나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주택입니다. 이름은 주택 박물관이지만 이곳은 삶이 깃든 흔적입니다.

 

이곳에는 방치에 딱 들어맞는 이유, 심지어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건 결코 방치가 아니다. 존경이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의 삶이 있다. - 책 속에서

 

 

 

앤티크 인형 덕후 작가의 인형 박물관 탐방기는 잔잔한 향수를 불러옵니다.

가족 대대로 인형을 사랑해 이번에도 모녀가 함께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재클린 윌슨 작가에게 인형 박물관은 작은 안식처입니다. 작가 발자크는 인형의 집 세트의 인형들을 몇 개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허구의 인물을 창조하기 쉬워진다고 말했을 정도라죠.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다. - 책 속에서

 

 

 

맨부커 상 수상작가, 줄리언 반스는 특이하게도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줄리언 반스 작품을 읽을 때 배경으로 음악이 흐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역시. 줄리언 반스 특유의 분위기를 여기서 고스란히 맛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내 이름을 딴 '아이놀라'로 명명한 시벨리우스의 집을 방문한 줄리언 반스는 그곳에서 순수예술과 현실의 삶을 음미합니다.

 

나에게 그곳은 언제나 이중의 엇갈린 평판, 창조와 파괴, 음악과 침묵의 장소다. - 책 속에서

 

 

 

박물관은 내게 낯선 도시에서 숨 쉬고 존재할 초점과 요점을 제공했다. - 책 속에서

 

유년기에 부모님 손에 끌려 지루하게 박물관을 방문했던 그 많은 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존 란체스터 작가의 글은 빵 터질 정도로 웃음 코드가 가득합니다. 예술은 18금이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생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감동을 망칠 수도 있다고 말이죠. 고문 장소였던 박물관이 어떻게 경탄의 연속인 나날로 지속할 수 있게 바뀌었는지, 내적 성장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작품들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작품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지 못해서입니다. 작가들도 첫 숨에 박물관에 매혹된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근원적인 감정들이 모인 박물관의 매력을 그들도 천천히 깨달았습니다.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 원작 소설가 앨리슨 피어슨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처음 깨달은 곳으로 파리의 로댕 미술관의 한 작품을 선택했고, 영화 <밀리언즈> 원작 소설가 프랭크 코트렐-보이스는 약탈과 보물이 아닌 인종과 민족성을 컬렉션한 피트리버스 박물관 전시물들을 보며 물건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은 독창적인 생각 그 자체에 매료됩니다.

 

알리 스미스 작가는 관람객이 전시물 주위에서 인간적이 되는, 세상에서 몇 안 되는 박물관으로 절벽 끝에 지어진 악셀 문테 박물관을 손꼽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든 <워 호스>를 쓴 아동작가 마이클 모퍼고는 벨기에 플랑드르 필즈 박물관에 전시된 말 덕분에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작품 배경이 된 스토리,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을 담은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끌리는 박물관>.

그들이 소개한 박물관은 핫플레이스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에 끌렸던 걸까요. 공개적인 공간이면서 사적인 이야기가 맞물린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쓱 훑고 넘기는 흔한 박물관 탐방이 아닌, 그 속에 깃든 삶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물 같은 작은 박물관에서 작가의 스토리가 얽혀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읽으며, 내 사유가 더해진 나만의 박물관을 찾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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