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정원 - 좌우를 넘어 새 시대를 여는 시민 교과서
에릭 리우.닉 하나우어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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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를 넘어 새 시대를 여는 시민 교과서 <민주주의의 정원>. 경제와 정치 이야기를 어려워했던 분이라면 에릭 리우, 닉 하나우어 저자가 경제와 정치를 정원으로 묘사해 설명하는 이 책 추천해드려요. 청소년들도 읽을만한 책입니다.

 

<민주주의 정원>은 경제와 정치를 여러 가지 변화가 조합된 복잡 적응 시스템인 정원으로 표현합니다. 정원의 생태계를 가꾸는 정원사는 바로 시민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에서 제한적인 선택만 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중도를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편협한 선택, 오래된 패러다임, 제로섬 승부 등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정치와 경제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과 그에 맞는 새로운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정원>은 능력 있는 정원사가 되려면 어떻게 관점을 바꿔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관점은 기계형 지성이라 부르고, <민주주의의 정원>에서 제안하는 관점은 정원형 지성으로 구분합니다. 생각, 행동, 인식 면에서 어떻게 차이 나는지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들어맞았던 것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생각합니다. 예전 세계관과 오늘날을 비교해 설명하면서 인간행동의 추진력이 되는 사익에 관한 개념부터 바꿔버립니다. 이제는 진정한 사익은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을요.

 

 

 

경제는 완벽하고 스스로 교정이 가능한 기계가 아니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경제도 하나의 정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에 대한 생각, 시장에 대한 생각 등을 기계형 지성과 정원형 지성 간에 비교해보면 우리가 변화해야 할 관점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부의 편중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부유한 자본가로부터 보통의 시민들을 향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개념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우리는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 세계를 맞이하며 실감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왜 지금 이 순간 세금을 조금 더 내는 편이 결과적으로 좋은 투자인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부 담론에 관해서도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논쟁보다는 목표 설정과 달성 방식을 구분해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정부는 우리가 각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정부는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정치, 경제, 시민의식 등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나 한 사람만 바뀐다고 이 세계가 바뀔까?'. 결국 나 몰라라 손 놓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며 미루는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히면 나오는 생각이라는 걸 <민주주의의 정원>을 읽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전염학적 관점으로 해결합니다.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촛불시위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모방의 사슬이 되는 인간 행동은 결국 이 사회가 내가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일상의 아주 작은 리더십이라는 책임감을 가졌을 때 발휘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고하라는 게 <민주주의의 정원>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정원사는 정원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자연을 '만드는'것도 아닙니다. 대신 '가꾸는'겁니다. 이건 자신의 적극적인 손길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방식은 좌파, 우파, 중도로 나뉘는 게 아니라 보수적일 때도, 진보적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인간입니다. 상호의존, 상호협력, 상호이익을 인지해 건강한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진정한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손으로 이 세계를 돌보는 방법을 보여준 <민주주의의 정원>. 사회는 당신이 행동하는 대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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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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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바깥채, 100년 가까이 된 안채. 낡고 작고 불편한 오래된 제주 농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부부. 외관을 보면 차라리 허물어버리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게 나을법했지만, 박다비 저자는 남편 J와 함께 직접 집을 고쳐 살기로 합니다. 두 달간 고친 바깥채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할 안채가 번듯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오래된 집에 머물다>.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제주에서 이렇게 집을 고치며 막노동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 책 속에서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서고생도 시작. 겹겹이 쌓인 벽지와 합판을 뜯어내니 돌과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집의 태초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오랜 세월 이 집을 견디게 한 대들보와 서까래에 감탄하면서 자연의 것들은 생각보다 강하고 견고하다는 것을 목격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버림에 익숙하다. (중략) 과연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귀하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아끼고 보살피게 되는 것이다. 낡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그 무엇. 옛것들은 또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 책 속에서

 

 

 

미장 작업을 할 땐 미장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고, 보일러를 깔 땐 보일러 바닥 작업이 가장 힘든 일인 줄 알았고, 벽체 작업을 할 땐 그게 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더라고. 초보자에게는 그야말로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주 시골에서 살아야겠다는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준 박다비 저자와 남편 J. 공사의 대장정을 엿보면 마음마저도 느릿느릿해야만 할 것 같은 제주의 여유와 낭만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사소한 것 하나도 깊이 생각해보고, 아끼는 마음까지. 

 

 

 

아내가 '몹쓸' 아이디어를 내면 남편 J는 현실로 만들어내는 찰떡궁합 덕분에 여기저기 소소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휘하네요.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그 공간만큼은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장소입니다. 

 

 

 

직접 만든 흙화덕으로 피자 파티를 열고, 직접 만든 퇴비로 텃밭을 가꾸며 '지금 여기' 행복을 누리는 그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서고생 일색이었지만 그 여정이 부러워 보이는 건 왜일까요. 

 

나중에 거기 말고
지금 여기에 - 책 속에서

 

 

 

오래된 집 고치기, 시골 라이프 그리고 나만 알고 싶은 제주의 이곳저곳을 기록한 <오래된 집에 머물다>. 농가 고쳐 제주에서 살기를 낭만적인 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공사의 대장정을 보여주며 현실을 또렷이 보여줍니다. 대신 비포 앤 애프터를 통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들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꿈꾼다면 이만한 멘토도 없지 싶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디에서 살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박다비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각자에게 더 마음먹기 좋은 삶을 살면 그만이라고 말이죠. <오래된 집에 머물다>는 그저 오래된 집이 쓸모 있게 바뀌는 과정만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힘든 여정 속에서도 내 생각과 손길이 담긴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지금 내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오히려 감동 한 스푼, 두 스푼 더해져 왜 굳이 제주였을까, 왜 시골이었을까를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느리며 누군가는 크고, 누군가는 자그마하며 누군가는 대담하고, 누군가는 다정하며 그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기를. - <오래된 집에 머물다>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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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센스 4 -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겨울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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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SM을 일반인들도 유쾌하게 볼 수 있도록 실생활의 관계를 적절히 보여주는 코미코 연재 웹툰 <모럴센스>. 단행본으로는 4권까지 나왔는데요, 터닝포인트가 있는 4권에서는 특히 심쿵 장면이 수두룩합니다.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모럴센스>. BDSM 소재를 이토록 변태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만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남에게 부탁하는 걸 어색해하고 당황하면 더 냉정해지는 타입인 지우. 무표정이 극매력적인 지우는 일반인들 사이에선 까칠하고 냉정해 보여 거리감을 두게 하는 페이스를 가졌지만, 그 모습에 반해버린 한 남자 지후가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탓에 들키고 싶지 않은 택배를 지우에게 들킨 지후. 회사일에는 능력자이지만 소심하고 자기방어적인 지후는 지우에게 끌려 돔섭관계를 제안하는데.

 

 

 

3권에서는 이쪽 세계를 전혀 모르던 일반인 지우가 지후와의 관계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다면, 4권은 '주인님'이 된 지우와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를 신경쓰는 지후의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돔섭관계를 넘어 연애 감정을 느끼는 그들. 연애와 돔섭관계를 동시에 하게 되면서 지우를 주인님이자 여자친구로 바라보게 되는 지후.

 

 

 

마음은 간질간질 거리지만 서로 표현하길 어색해하고 여전히 돔섭관계에 매이다 보니 은연중에 서운한 일도 생깁니다. 지후를 위해 BDSM 세계를 공부하기까지 하는 지우는 섭답게 행동하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보다 지후 맞춤형 언어로 말이죠. ^^

 

이런 관계 이전부터 그를 마음에 담았던 지우의 속내와 지우에게 점점 빠져드는 감정을 당황해하는 지후의 모습이 살풋살풋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애틋한 로맨스를, 헛짓거리 상황에서는 배꼽 잡는 코미디를 볼 수 있는 <모럴센스>.

 

"사소한 걸로 불안해하거나 쩔쩔매지 마세요. 성향 때문에 여태 자존감을 깎아먹었든, 자존감이 낮아졌든... 그런 건 다 어떻게든 하세요. 명령이니까. 내 귀한... 섭이잖아요. 답게 행동하세요." - 책 속에서

 

 

 

지우의 명령(?)에 탄력받은 지후는 서로의 역할을 잠시 바꾸기로 해보는데.

역할 스위치를 앞두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지후. 다음 권의 기대감을 더 높입니다.

 

 

 

돔과 섭의 관계는 생각보다 심오하더군요. 그저 주도권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유지해 주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물론 수직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타입도 있지만요. BDSM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변태스러운 행위이면서 비정상으로 취급했다면, <모럴센스>의 지후와 지우의 관계는 여느 보통의 애정 관계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일반인은 정상, 그들은 비정상이 아니라 그들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코미코 연재 웹툰에서는 볼 수 없는 미공개 에피소드도 수록되어 있는 <모럴센스> 단행본. 4권 보너스 장면은 지우와 지후의 첫 만남 에피소드여서 어머어머~! 역시 그들은 인연이었다는 ㅎㅎ.

 

지우와 지후 외에도 다양한 BDSM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간의 썸도 꽤 기대됩니다. 게다가  지우에게 관심 두는 직장동료의 등장으로 지후를 더 애간장 태울 듯.

 

<모럴센스>를 보면서 보편적인 도덕 감정의 기준이란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세계의 자극적인 스토리만 내보였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실생활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럴센스>.

 

자존감에 영향받는 콤플렉스가 되기도 하는,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성적취향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한 웹툰입니다. 무척 기대되는 건 <모럴센스>가 영화화 진행 중이라는 소식. 유쾌하면서도 생각거리 던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탄생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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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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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사신 치바> 등으로 유명한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미스터리 추리소설 쪽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던데 이 책은 통통 튀는 유쾌함 속에 뜻밖의 감동이 담긴 소설입니다. 전 이 책으로 이사카 고타로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꽤 만족스러웠어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해피해피한 감정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 수록된 다섯 편의 스토리가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가 되면서도 다섯 편을 관통하는 인물과 인연이 얽혀 하나의 큰 스토리를 완성하는 연작소설입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탓에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한 집안이 해체되는 날입니다. 이사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온 이상한 메일. 뜬금없이 친구하자며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자는 메일에 "뭐 어때?" 한 마디로 승낙해버리는 가족. 그리고 그 가족과 드라이브를 하고 밥도 같이 먹게 되는, 메일을 보낸 당사자인 오카다.

 

의심스럽고 어이상실할만한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큰 고민 없이 덥석덥석 받아들이는 가족의 분위기도 황당, 그런 가족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오카다의 행동도 황당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오카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오카다와 미조구치는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로 함께 일합니다. 이제 오카다가 그 일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데. 평생 친구 하나 없었다는 오카다에게 지금 당장 친구를 만든다면 보내주겠다는 미조구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어쨌든 그 가족 덕분에 이제 정식으로 백수가 된 오카다.

 

오카다에 관한 이야기는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카다의 영향력은 등장인물들에게 꽤 크게 전달됩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면서도 스스로는 선뜻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오카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상황이 나오네요. 우연히 만난 소년에게서 학대 당한 흔적을 발견한 오카다. 오지랖 넓은 오카다는 폭력 아버지를 상대로 일을 꾸미는데, 캬... 정말 절묘하게 사기를 치더군요.

 

 

 

세 번째 이야기는 오카다와 함께 일한 미조구치가 등장하는데요. 놀고 자빠졌네 싶을 정도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어요. 지금까지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스토리가 등장하다 보니 외전 분위기도 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오카다가 등장해요. 영화 속에서 고문을 당했던 주인공이 '바캉스'를 생각했다는 고백 장면을 본 오카다 역시 "싫은 일이 생기면 바캉스를 생각하기로 했어."라는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현실도피와도 같은 말이지만, 그때의 생각이 이후 오카다의 삶에서 이정표가 됩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 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오카다. 상대방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그렇다면 앞으로는 상대가 기뻐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조직의 일에서 오카다가 발을 빼자마자 미조구치는 그를 배신해버렸고, 이후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합니다. 어느새 오카다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카다를 그리워하며 미조구치는 무언가를 계획하는데.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뭐하나 잘 되는 게 없던 인생이었어요. 가진 것도 없고 인생이 필만한 상황도 아닌 그저 그런 삶. 하지만 오카다는 삶을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희망 없음이 아닌 오히려 현실적인 태도였어요. 오카다의 대책 없는 긍정이 미조구치에게까지 전염됩니다.

 

오카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조구치와 오카다의 미래는 흔히 성공이라 부르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가진 것 없는 인생도 딱 이만큼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성공 스토리 못지않은 감동을 주더라고요. 더 현실적인데다가 소소한 말 한마디에서 받는 위로가 꽤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골때리게 비정상적인 설정으로 배꼽 잡다가도,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감동 포인트가 매력적인 묘한 소설입니다.

 

미래는 그때가 닥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요. 가능하면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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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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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는 내내 울컥울컥. 몇 년 전에 읽었다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역시 인연 책은 때가 있나 봅니다.

 

흔한 고전 서평 모음집이 아니었어요. 청년 유시민을 만든 책들을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며 느낀 소감을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 대학생이 된 딸에게 헌정했을 만큼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모든 청춘에게 권하는 지혜가 담긴 <청춘의 독서>.

 

 

 

2009년 출간 후 새 옷 입고 나온 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이 책에 소개한 14권의 고전은 유시민 작가가 청춘 시기에 꽂혔던 책입니다. 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이, 20세기 유럽과 미국 지식인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했던 고민과 사색이 담긴 책이자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모습을 만든 바탕이 된 고전들입니다.

 

"나에게 『죄와 벌』은 열병과 같은 정신적 흥분을 안겨준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 책 속에서

 

 

 

뭣도 모르고 가입한 학생써클 덕분에 만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지식인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으로 사는지를 배웠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 선언문 『공산당 선언』은 그의 영혼을 울렸습니다.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읽고 열렬한 푸시킨 추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다르게 읽히다니, 그렇다면 그때 본 건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며 기억한 것과 크게 달라 당황하기도 했다는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 청년 시절엔 그저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사회 현실 비판 소설로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수준이 매우 높은 지식인 소설이자 경험의 질적 차이로 당시엔 내면에 접수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런, 열 번도 넘게 읽은 대목인데, 또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콧날이 시큰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감성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 - 책 속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고 가슴 설레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다윈을 읽으라고 말하는 유시민 작가. 약간 생뚱맞아 보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다윈의 『종의 기원』은 오남용의 위험을 내포한 책인 만큼 제대로 올바르게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손꼽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읽어 지금까지 여섯 번을 읽었다는 어떤 책은 청년 시절 생각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고 합니다. 바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유시민의 가슴을 두드렸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세요.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책도 있고,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한 책도 있고,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허덕이는 삶을 다룬 책을 읽으며 유시민의 꿈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 마지막 단란에 인용한 네크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글귀는 스물여섯 살 때 구치소에서 읽은 책,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서두에 실린 편집자의 글 덕분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지혜, 더 나은 내일을 그리는 가슴 벅찬 여정을 담은 <청춘의 독서>.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며 깨달은 점은 읽는 이가 아는 만큼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때 놓쳤던 부분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고전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 책들이 어떻게 지금의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해부해봅니다. 썰전과 알쓸신잡 방송에서도 다양한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청춘의 독서>를 읽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몇몇 포인트에서는 절제된 슬픔과 분노를 담은 조곤조곤한 그의 말투가 떠올라 더 울컥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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