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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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팩트 폭격에 익숙한 시대, 우리 말은 왜 이토록 납작해졌을까. 우리 사회의 감춰진 구조를 집요하게 탐사해온 사회학자 오찬호 저자는 일상 속 ‘언어의 납작함’에 주목합니다.


<납작한 말들>은 말투나 표현의 문제를 다룬 책이 아닙니다. 무심코 주고받는 말들이 누군가를 눌러앉히고, 정당한 비판을 무력하게 만들며 결국 공론장 자체를 해체하는 현실을 성찰하는 사회적 보고서입니다.


젠더, 인권, 일상, 자기계발, 그리고 공공담론을 아우르는 다섯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일상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말이 무기화되고, 맥락을 지우며, 결국 사람을 지우는지 보여줍니다.


먼저 성차별을 이야기할 때 쏟아지는, 젠더 이슈에 얽힌 납작한 말들을 다룹니다. 여자도 군대 가라, 맘충 같은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언어는 논의를 단순화하고, 고통을 균등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억누르려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남자가 국가로부터 차별받는다는 핵심은 사라지고, ‘여자는 왜 차별 안 받냐!’는 괴상한 불만을 원초적으로 만족시키고자 하는 고통의 평준화에 대해 비판합니다.


이러한 발언들이 왜곡된 평등의 틀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병역과 가사노동을 연결 짓는 정치인의 발언 또는 맘충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확산 과정 등을 통해 보여줍니다. 진정한 평등은 고통을 나누는 데 있지 않고, 구조의 차이를 직시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장애와 인권을 둘러싼 잔인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장애인에 대한 착함의 요구, 난민 혐오 발언, 인권 교육의 왜곡 등을 다룹니다. 무엇보다도 자유, 공정, 국민저항권 같은 단어들이 어떻게 본래의 뜻을 잃고 반인권적 주장에 동원되는지를 짚어줍니다.


“공정은 시험 성적에 무조건 승복하라는 뜻이 되어버렸다. 자유는 혐오할 자유가 되었고, 국민저항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복으로 왜곡되었다.”라며 사회적 맥락이 제거된 언어는 결국 차별을 정당화하고 제도적 불평등을 유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언어의 전복을 경계합니다.


공감 결핍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MBTI, 다정함, 지역 사투리, 참교육 등 일상적인 감정 표현 속에 숨겨진 자기중심성과 폭력성을 살핍니다.


저자가 특히 비판하는 것은 “그쪽이 잘못했으니 나는 때릴 수 있다는 정서를 정당한 복수라는 논리로 둔갑시키는 곳은, ‘정글’이지 사회가 아니다.”라며 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보복성 행동입니다.


공감 없는 감정 표출은 타인을 소외시키고, 사회문제를 논의하려는 시도마저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다정한 말투 속에 숨은 무관심, 혹은 지역 사투리의 구수함이라는 언어적 소비가 어떻게 납작한 감수성을 만드는지를 읽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말들이 얼마나 타인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능력주의라는 프레임 안에서 모든 걸 해석하는 데 익숙합니다. 건강도, 기회도, 자원도 개인의 역량으로 환원되어 버립니다. “인간의 면역력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태아일 때부터 축적되어 형성된다. 하지만 ‘능력주의 공화국’에선 아픈 것도 실력이라는 말이 명언처럼 부유한다.”라고 말합니다.


공정과 노력이라는 납작한 프레임으로부터 배제되는 이들을 조명합니다. 고학력 여성, 저소득층 학생, 장애인 등 구조적 제약을 받는 이들은 능력이 없음으로 간주되고, 시스템의 모순은 철저히 가려집니다. 유명 강사들의 팩트 폭격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납작한 서사에 중독된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 언어와 공공 담론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왜곡을 다룹니다. 시험 공화국, 사교육, 자살률 그래프 같은 주요 키워드는 납작한 해석에 의해 철저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특히 “죽을 각오가 아니라 죽이겠다는 결의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용기가 아니라, 상대를 두렵게 하겠다는 폭력이다.”라며 국민저항권이라는 단어의 변질을 비판하는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MZ세대에 대한 마케팅적 고정관념, 교육에서 경쟁이 유일한 방식이라는 착각 등 납작한 언어는 사회를 단순화 시킨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복잡한 고통을 은폐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담론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고자 합니다.


<납작한 말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얼마나 맥락을 지우고 타인을 지우며, 비판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보여줍니다. 말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구조를 유지합니다. 그러니 팩트보다 맥락, 사이다보다 사유. 생각을 만드는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이 말이 혹시 누군가를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품게 될 겁니다. <납작한 말들>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의심할 줄 아는 눈을 길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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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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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던 <데미안>. 북하우스 출판사의 <데미안>을 다시 읽은 이유는 전혜린 번역 복원본이기 때문입니다. 1964년 '노오벨賞文學全集'에 수록되었던 전혜린의 번역본이 60년 만에 복원되어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혜린(1934-1965)은 60년대 지적 여성의 아이콘이자 번역가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하며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된 번역가입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 후, 헤르만 헤세를 비롯한 독일 문학의 정수를 한국에 소개한 선구자였습니다.


번역가의 정체성을 말을 옮기는 자에서 사유를 중개하는 자로 격상시켰습니다. <데미안>을 단지 독일어에서 한국어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신의 생을 이입했고 자아의 고통스러운 성장을 누구보다도 실존적으로 체화한 인물이었습니다.


최초의 독일어 원본 번역자의 숨결을 온전히 되살린 이번 복원본은 전혜린 번역의 원형을 최대한 가깝게 복원했습니다.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 오기, 띄어쓰기를 제외하고는 생전에 출간했던 판본을 그대로 되살렸다고 합니다. 이 판본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자 동시에 전혜린의 데미안입니다. 직역의 충실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미안>은 소년 싱클레어가 유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내면의 여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성장소설입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도덕과 죄의식, 종교적 억압 속에서 방황합니다.


그런 그에게 데미안이라는 신비로운 인물이 나타나 자신 안의 진실한 자아를 직면하도록 이끌고, 싱클레어는 점차 외부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해 갑니다.





<데미안>의 핵심은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카인을 악인이 아닌 표식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해석하는 데미안의 시각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젊은 세대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신학교를 도망쳐 나온 반항아였습니다.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출간했습니다. 작가 자신의 반항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인 셈입니다.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하면서 지어낸 사과 도둑 이야기는 성장 소설의 전형적 출발점입니다. "드디어 단지 불안에만 빠져 있던 나도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했다. 나는 어마어마한 도둑의 이야기를 꾸며 내고 나를 그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p.20)라는 이 장면에서 싱클레어의 심리적 동요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동시에 그것이 주는 일종의 해방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거짓말은 어른들이 만든 규칙에 대한 최초의 반항입니다. 싱클레어의 거짓말은 그가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상징적 사건이며 이후 데미안과의 만남을 예고하는 전조이기도 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p.158) 이 유명한 문구는 <데미안>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한 문장입니다.


성장이란 기존의 안전한 세계를 떠나는 것이며, 진정한 자아 발견을 위해서는 용기 있는 파괴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아프락사스(Abraxas)는 선악을 초월한 신을 가리키는 말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새로운 인식을 상징합니다.


헤세는 1차 대전 후 정신분석의와 상담하며 '자아의 분석'이라는 세계로 떠났고 <데미안>은 바로 이런 경험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그는 평생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구도자였습니다.





최초의 유학파 한국 여성 독문학자가 독일어 원문을 직접 번역한 최초의 번역본 <데미안>. 이 책에는 전혜린이 쓴 헤세 작가론과 "누구나 한 번은 미치게 만드는 책", "데미안은 확실히 우리 자신의 분신이다"라는 명카피가 등장하는 상세한 작품론이 실려있습니다.


기성 질서에 대한 의문, 진정한 자아 찾기, 개성과 집단 사이의 갈등 등 <데미안>이 다루는 주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고전이 갖는 생명력을 고스란히 전한 전혜린의 번역 문체도 매력 있습니다.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저는 다른 종류의 알 속에 갇혀 있었고, 그 껍질을 깨는 일은 언제나 아프고 고된 여정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그럴 때마다 성장통은 단 한 번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반복되는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기에 <데미안>을 몇 번씩 읽어왔어도 지난번과는 또 다른 읽기 경험을 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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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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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파리누쉬 사니이의 세 번째 장편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은 이란에서 금서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현대사의 균열 속에서 산산조각 난 감정과 정체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이 어떻게 해체되고 복원되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시도입니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의 이력이 작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국가와 제도의 폭력으로 인해 분열된 한 가족의 열흘간 재회를 통해 집단 트라우마의 치유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이 소설은 장소의 이동 없이 오직 이란 접경 국가의 바닷가 도시라는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열흘 동안 한 공간에서 머무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품어온 오해와 분노, 상실과 그리움을 날 것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날부터 열째 날까지 열 개의 고백, 열 개의 서사, 그리고 하나의 가족 이야기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하루씩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형식입니다. 열흘간 가족이 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구성은 심리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돌아가며 독백을 쏟아내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작가의 의도적 연극적 구성은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날것으로 전달합니다. 심리학적 서술이 아닌 대사 중심의 구조로 직접 자신의 상처를 말하게 함으로써 읽는 이 또한 그 고통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도키의 내레이션은 이야기들의 중심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도키의 정체성 혼란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이 가족 전체가 겪는 분열의 집약체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의 사회적 격변기입니다. 작가는 가족 해체의 원인을 개인주의나 산업화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슬람 혁명이 개인의 삶, 특히 가족의 구조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란에 남은 사람들은 히잡 착용, 도덕 경찰의 감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떠난 이들은 정체성 혼란, 문화 충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겪습니다. 각자의 고통은 다르지만 고통의 깊이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침묵하고 오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소설은 “떠난 사람들은 우리를 배신했어.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버리고 떠났으니까.” (p.154)와 “논리적으로 보였던 변명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말이 안 돼.” (p.193) 이 문장들 사이에 놓인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떠난 자들이 품은 죄책감과 남은 자들의 상실감, 그 중첩된 감정의 궤적을 추적합니다.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문화적 유대감입니다. 소설은 지리적 거리보다 더 깊은 단절의 원인을 공동의 기억과 문화를 공유하지 못한 데서 찾습니다.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탓하며 내세운 진실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저마다의 고백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이자 전체의 구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각입니다. 이들이 겪은 고생담은 억지 눈물 유발이 아니라 공감과 성찰을 요구하는 고백으로 기능합니다.


이 가족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론 비겁했고 때론 무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상처가 없는 이들의 결합이 아니라 상처를 마주하고도 함께 있으려는 자들의 연대임을 이야기합니다.


이산과 해체의 시대에 건네는 작가의 연대와 화해의 선언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눈물겨운 고백 뒤에 함께 아파하는 공동의 정서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이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가족임을 일깨워줍니다. 고백의 문학을 통해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받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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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ON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송현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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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송현 작가의 <스위치 ON>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이지만 단지 자라고, 극복하고, 견뎌내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람'의 물리적 궤적을 스포츠라는 극한의 환경 위에 배치해 더욱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전작 『일만 번의 다이빙』에서 공포를 뚫고 뛰어내리는 십 대 선수들의 도약을 다뤘다면, <스위치 ON>에서는 얼음 위를 질주하는 세계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링크장을 배경으로 팀의 캡틴으로 성장한 이방인 소년의 여정과 좌절 그리고 회복을 강렬하게 담아냅니다. 동시에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십 대의 의지를 그려냅니다.





주인공 다온은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계 학생으로 고등학생 아이스하키 팀에서 최전선에서 뛰는 선수입니다. 외적으로는 팀의 핵심이지만, 그 이면에는 차별과 모욕, 외로움이라는 두터운 얼음장 위에 서 있는 아이입니다.


이민자 청소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얼음 위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펼쳐 보입니다. 다온은 “내 두뇌는 모욕을 견디도록 학습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내 근육은 모욕을 견디기에 역부족”이었기에 결국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스위치 ON>은 좌절 후 재기 서사의 전형을 비틉니다. 다온은 경기력 회복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늘 골대만 보고 달릴 필요는 없겠지?”라는 깨달음은 이제 아이스하키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무대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방향을 잃었다고 해서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다온. “달리면 되지.”라는 말은 성장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목표 상실이 곧 삶의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다온은 이제 누가 정해준 궤적이 아닌 자신만의 얼음 위 궤적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이와 짝을 이루는 인물이 피겨 선수 해인입니다. 해인은 점프에 대한 공포로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인 역시 깨닫습니다. “나도 점프만 생각하면서 뛸 필요는 없겠지?”라며 완벽함이나 승리를 위한 점프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빙상 위의 시간 자체를 다시 붙잡기로 합니다.


루크는 다온의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같은 꿈을 꾸는 파트너입니다. 낯선 땅에서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다온은 루크와의 관계를 통해 다름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고, 스위치를 다시 켜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루크의 환대는 동정이 아니라, 다온이 빙판 위에서 자신을 회복하고 발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입니다.


생생한 빙상 묘사가 매력적입니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스포츠의 감각을 문장으로 옮겨내며 얼음 위를 직접 질주하는 듯한 리얼리티한 리듬감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스포츠의 물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인물의 감정과 세계관,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는지, 스포츠 묘사가 곧 감정 묘사이자 정체성의 드러남으로 작용하도록 스포츠 문학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자기를 확인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스포츠를 이야기합니다.


빙판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도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견뎌야 하는 것이 다른 각각의 청춘의 풍경을 포착한 <스위치 ON>. 다온과 해인은 같은 얼음 위에 서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달려갑니다.


목표를 잃었던 다온의 가슴에 불을 지핀 건 익스트림 스포츠 크래시드 아이스(Crashed Ice)입니다. 혼자 힘으로 얼음 위를 뚫고 나가는 거침없는 주행, 비틀거리고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생생한 감각에 이끌립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방식이자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은유로 작용합니다.


<스위치 ON>의 아이들은 목표를 잃었을 때 비로소 즐거움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나만의 궤적을 그려가고 싶은 십대 청춘에게 추천합니다. 방향 상실과 목적 상실의 순간이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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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 모두의 반려질병 보고서
강영아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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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적당히'라는 단어에는 체념이나 무기력 대신 스스로를 탓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씩씩하게'는 반려질병과의 동거 안에서 발견한 명랑한 생존의 기술과도 같습니다.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워킹맘 11인이 들려주는 반려질병과의 동거 보고서입니다. 저자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성들입니다. 이력은 다채롭지만, 이들의 고통은 공통된 질문으로 모입니다. "왜 아픈데 아프다 말을 못하니?"


사회적 습관으로 굳어진 침묵이 어떻게 우리를 더 아프게 만드는지를 다룹니다. 질염, 임파선염, 삼차신경통, 신장이식 같은 이야기가 단지 병명 나열이 아닙니다. 여성 질환이나 내밀한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렸던 과거와 달리, 이 책은 병을 말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삼차신경통이라는 생소한 질환의 이름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에피소드도 공감백배입니다. 동네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숱하게 돌아다녀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던 시간들. 의료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믿었기에, 오히려 통증에 붙잡혔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병명을 모를 때와 알 때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그 통증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면, 그제야 자기 이해의 출발이 시작됩니다.


일과 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내적 혼란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열심히 일한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대상포진, 갱년기 조기 진입, 혹은 암이었습니다.


질병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보고서를 쓰고, 회의에 참석하고, 아이를 등원시켜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병이 주는 역설적 자유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병을 계기로 삶을 재정렬합니다. 그렇게 병은 고통인 동시에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제 병을 '반려'라는 이름으로 품습니다. 질병은 언제든 재방문할 손님이며, 어쩌면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일 수 있습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허리디스크, 비염, 노화 같은 익숙한 질환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질병을 기피하지 않고, 조련하듯 다루며  삶의 리듬을 맞춰가는 그들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용기와 유머, 그리고 연대를 길어올립니다. 열한 명의 저자들은 환자로서,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살아낸 경험을 풀어놓습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이해로, 자기혐오가 아니라 자기연민으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병을 혼자 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열한 명의 엄마들이 병과 공존하며 배운 생존의 기술은 중년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지혜가 아닙니다.


모두가 언젠가는 병을 맞이할 것이고, 병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는 우리의 내일에 대한 매뉴얼이자 치유의 동료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저도 매일 아침 손가락 마디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눈을 뜹니다. 기름칠 안 된 것처럼 뻣뻣하면 오늘은 타이핑 작업을 덜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습니다. 매일 아침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시는 분, 만성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분이라면, 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들의 유쾌한 고백에 귀 기울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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