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운데에 선 마지막 20세기 인간
임홍택 지음 / 도서출판11%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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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명문대 졸업생부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까지 9급 공무원 시험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임홍택 저자의 <90년생이 온다>는 바로 이 현상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사회적 변화의 신호였을까요?


이 책은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2010년대를 거치며 드러낸 행동 양식과 가치관을 분석한 사회 관찰서입니다. 저자는 90년대생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운데에 선 마지막 20세기 인간이라고 정의하며, 이들이 기성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포착했습니다.


기존 세대들이 경험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사회적 상승 경로는 90년대생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 앞에는 유리계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든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계단 말입니다.





저자는 이 세대가 태어날 때부터 경험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지적합니다. IMF 외환위기, 카드 대란, 리먼 쇼크 등 경제적 충격을 성장 과정에서 목격한 그들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급 공무원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에 매달리게 된 겁니다.


90년대생의 세 가지 특징을 일컫는 키워드는 간단함, 재미, 정직함입니다. 줄임말로 재구성된 소통 방식, 병맛 문화와 드립력, 신뢰의 시스템화를 뜻합니다.


90년대생들의 언어는 '좋아'는 '조아'가 되고, '재미있다'는 '잼있다'가 됩니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이 나타납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이들은 스압(스크롤의 압박)을 거부하고 세 줄 요약을 요구합니다. 책을 읽는 뇌 구조 자체가 변했습니다. 비선형적 사고에 익숙한 앱 네이티브 세대로, 기존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어냅니다.


구직자가 면접관을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관찰도 흥미롭습니다. 잡플래닛, 블라인드 같은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실상을 파악하고, 면접 점수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한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조직 충성도에서 개인 충성도로 권력의 이동 현상이 등장합니다. 평생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헌신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대신 자신의 커리어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세대의 등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칼퇴라는 말부터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는 예리합니다.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칼같이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의 변화를 관찰한 저자의 시선이 흥미롭습니다. 90년대생들의 퇴근 후 시간을 두고 기업들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분석이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강한 통제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대임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합니다. 적절한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존의 인내심 담론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무작정 버티라고 하지 말고,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명확한 기한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이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조언입니다. 이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를 입증하라는 역발상적 접근법도 보여줍니다.


소비자로서의 90년대생은 어떨까요?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이들은 더 이상 호갱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양극단적 태도도 갖고 있습니다.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철저히 인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지 않는 세대라는 관찰도 공감됩니다. 실시간 채팅, 카카오톡 상담 등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세대입니다. 연결이 권리가 된 세대라는 표현이 이들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부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들에게는 콘텐츠 접근성이 품질보다 우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90년대생도 결국 기성세대가 됩니다. 이제는 2000년대 출생자들이 사회에 나서고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적응과 공존의 문제라는 관점을 짚어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변화된 환경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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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의 맛
그림형제 지음 / 펜타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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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퇴근의 맛>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다큐멘터리만큼 생생합니다. 20편의 이야기 속 20명의 인물들은 변호사, 교사, 세일즈맨, 간호사, 군인, 배우, 엄마 등 다양한 직업군에 걸쳐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퇴근 후 식탁 앞에 앉는다는 점입니다. 식사는 일종의 정서적 해방이자 존재의 진심이 드러나는 무대가 됩니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짧은 분량이지만 강렬합니다. 하루치의 피로를 해체하고, 감정을 조리하며,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말 거는 순간. 그 모든 과정이 라면, 짬뽕, 된장찌개, 떡볶이 그리고 카레 한 그릇 등으로 형상화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회사원의 우동」은 피로감을 느끼는 직장인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하지만 정작 비효율의 결정체인 회사 시스템, 고달픈 현실에 이골이 난 주인공은 바보 같은 결정의 여파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우동은 그런 그에게 잠깐의 위로를 안겨줍니다. 맑은 국물, 익숙한 탄수화물, 반복적인 씹는 행위. 그의 하루는 그 맛을 통해 정리됩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지닌 사명감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인간 존엄성과 직업 안정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상미는 자극적인 짬뽕 한 그릇에 그 모든 갈등을 잠시 맡깁니다.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지 못하는 삶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는 임시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옴니버스 구조 속 은밀하게 이어진 캐릭터들의 서사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조연으로 스쳐 지나간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으로 전환됩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야기를 수놓는 방식은 일상의 연결성과 우연의 힘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삶도 누군가의 에피소드 안에 들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유쾌한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감정의 파고가 특히 깊었던 꼭지 중 하나는 「수의사의 똠얌꿍」입니다. 민아는 안락사 시켜야 하는 동물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요리에 빗대어 토로합니다. 매운 똠얌꿍은 그날의 울음을 삼키는 동시에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씁쓸한 위로의 맛을 상징합니다.


엄마라는 직업은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니며 업무 매뉴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떡볶이」 편에서는 소정이 육아에 지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떡볶이와 맥주 한 캔 그리고 TV라는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유후!"라는 외마디 감탄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한 인간이 다시 자신으로 회귀하는 복원력의 징후입니다.


「작가의 카레」는 퇴근 이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피로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냉소적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일상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 노동의 핵심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카레 한 접시에 기대어 그 모든 정신적 피로를 털어냅니다. 이 카레는 현실의 고단함을 직시하되 그것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고자 하는 마지막 저항이자 의식입니다.





이 책은 말 많은 위로보다 더 효과적인 침묵의 온도를 알고 있습니다. 대놓고 감정 소비를 강요하지 않고, 작은 디테일과 단단한 묘사를 통해 진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각각의 꼭지는 하나의 짧은 소설처럼 읽히면서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직장과 삶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책 말미에 소개된 작가 추천 맛집은 이야기의 여운을 현실로 연장시킵니다. 실제로 그 장소를 찾아가 주인공이 되었던 인물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게 만듭니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고 묻는 모든 직장인을 위한 <퇴근의 맛>. 직업의 종류나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삶의 언저리에서 위로 한 숟갈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감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음식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관계, 자아, 정체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감정의 여백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이 잘 어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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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라이언 풀패키지 - 스스로를 찾아가는 라이언의 모험, 캐릭터 포토카드 + 포스터 + 캐릭터 북마크 + 컬러링 엽서 세트 + 이모티콘 캐릭터 스티커 + 박스
카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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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카카오프렌즈 프리퀄 웹툰 <그래도, 라이언>. 하나의 정통 서사를 품은 첫 오리지널 웹툰이자 그래픽노블입니다. 단행본과 굿즈 구성의 풀패키지로 만나봅니다.


<그래도, 라이언> 풀패키지는 단행본 + 캐릭터 포토카드 4매 + 미니 포스터 + 둥둥섬 캐릭터 PET 북마크 4매 + 컬러링 엽서 세트 10매 + 라이언 이모티콘 캐릭터 투명 스티커가 박스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라이언이 갈기 없는 사자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자 갈기를 씌운 라이언 인형을 본 기억이 납니다. 갈기 없는 것이 라이언의 콤플렉스였고, 이렇게 라이언의 장대한 스토리가 펼쳐지니 정말... 카카오프렌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어요.


프렌즈를 만나기 전, 우리가 알기 전의 라이언은 사실 왕위 계승자라는 놀라운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둥둥섬 왕국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동화처럼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 담긴 갈등 구조는 꽤나 현실적입니다. 갈기가 없다는 설정은 그저 외형적 특징이 아닌, 이야기 전체의 심리적 토대를 이룹니다. 라이언은 외형적 결핍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의심받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결핍이야말로 라이언이 타인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이유가 됩니다. 오히려 더 유연하고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결핍은 단점이 아니라 질문과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완벽한 주인공 대신 불완전한 존재로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래도, 라이언>. 갈기가 없다는 설정 하나로 ‘나는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타인의 기대와 자기 욕망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고자 떠나는 이 작은 사자의 여정은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어른들에게도 울림을 줍니다.


자기 삶의 모험가로서 떠나는 라이언. 우리가 알고 있는 카카오프렌즈 세계관과 연결되면서 캐릭터 서사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선으로 이어줍니다.


<그래도, 라이언>은 도망이라는 행동을 비겁함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면 용기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라이언의 행동을 회피가 아닌 선택,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대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감정을 읽고 상황을 해석하면서 서사를 따라가는 방식입니다. 일러스트의 섬세함과 장면 간 전환의 연출력 덕분에 재밌습니다.


카카오프렌즈는 말 그대로 브랜드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라이언은 그 대표 캐릭터이자 가장 인간적인 사자로 사랑받아왔습니다. <그래도, 라이언>은 캐릭터 상품 이상의 정서적 연결 고리를 안겨주면서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의 라이언은 그저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깊은 고민과 선택의 과정을 거쳐 온 존재로 바라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캐릭터들의 과거사도 궁금해집니다.


갈기가 있든 없든, 왕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어떤 세계를 선택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삶을 이어가느냐를 보여주는 <그래도, 라이언>. 선택의 무게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따뜻한 응원이 되어줍니다.


성장이란 결국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라이언의 여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각자의 둥둥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프렌즈 시티를 찾아갈 용기가 아닐까 합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껴안고 또 한 발짝 나아가는 모든 이들의 성장담.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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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X 원리 도감 - 외우지 않는 편안함 영어 도감
김형탁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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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달달 외웠건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홀랑 까먹는 영단어. 그래서인지 '외우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끕니다. 단어가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머리가 나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암기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영단어 해방선언 <영단어 X 원리 도감>. 국내 최고 영단어 전문가 김형탁 저자는 우리의 뇌는 의미 없는 정보보다 스토리가 있는 정보를 훨씬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영단어 학습에 적용합니다.


다의어를 통한 접근법으로 시작합니다. 각 단원의 시작 부분에 단어나무를 배치해 하나의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마치 가족사진처럼요. 서로 관련된 단어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board라는 단어를 외울 때 우리는 판자, 위원회, 탑승하다 등의 뜻을 개별적으로 암기하려 듭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의미들이 '평평한 표면'이라는 하나의 핵심 이미지에서 파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판자는 말 그대로 평평한 널빤지이고, 위원회는 판자에 다리를 달아 만든 탁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안건에 대해 토론을 하는 사람들로 확장되었고, 탑승하다는 판자로 만든 마차에 사람을 태우는 행위에서 유래했다는 식입니다.


이런 접근법의 장점은 하나의 핵심 이미지만 기억하면 여러 의미를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charge는 '채우다'라는 기본 의미에서 출발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요금을 부과하는 것, 책임을 지우는 것, 돌진하는 것까지 모두 '무언가를 가득 채운다'는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이처럼 의미들 사이의 숨겨진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아내 직관적인 이미지와 함께 보여줍니다.


이어서 발음 변화를 통한 단어족 학습법을 소개합니다. 영어라는 언어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market과 price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drink와 drop이 왜 비슷하게 들리는지에 대한 설명은 마치 언어 고고학자의 발굴 작업을 보는 듯합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자연 현상에서 wind와 swing 두 단어의 연결고리를, food와 health와 관련된 단어들의 관계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영어 건축의 설계도라 일컫는 접두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un-, in-, ex-, de-, trans- 등의 접두어들이 각각 고유한 방향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처음 보는 단어라도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어근들을 묶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치 언어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보는 작업과 같습니다. fer와 port가 모두 '나르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알면 transfer와 transport, prefer와 import 등의 단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하다'는 의미를 가진 dic(t), fa, loq의 경우도 재밌습니다다. dictionary는 '말을 모아놓은 것', famous는 '많이 회자되는', eloquent는 '말을 잘하는'이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겉보기에 전혀 다른 단어들이 실제로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어의 중심을 이루는 어근을 잡아내면 단어의 뜻을 추론하는 기술이 생깁니다. 학습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어근만으로도 수십 개 단어를 의미망으로 연결할 수 있으니 단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습관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대 의미를 가진 어근들을 대비를 통해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특성을 활용해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manu(손)와 ped(발)의 대비는 직관적입니다. 손으로 만들어내는 manufacture과 대통령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탄핵을 뜻하는 impeach까지 확장합니다.


전체 단어를 정리한 휴대용 단어장을 온라인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짬짬이 볼 수 있어서 실용적입니다. <영단어 X 원리 도감> 한 권으로 약 3,000개의 표현을 익힐 수 있다고 합니다. 단어의 원리를 이해하면 처음 보는 단어라도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읽는 맛이 아주 좋은 영어 단어 공부책입니다. 어원으로 읽는 영단어 족보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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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시대가 온다 - 차이와 차별을 넘어 모두에게 이로운 생존 가치, DEI
정현천 지음 / 트로이목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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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분열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정현천 저자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시대가 온다>는 도덕적 당위를 넘어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관점에서 DEI를 바라보는 책입니다.


DEI는 Diversity (다양성), Equity (형평성), Inclusion (포용성)의 약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조직, 사회, 국가 차원에서 서로 다른 배경, 정체성,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가치 원칙이자 실천 전략입니다.


정현천 저자는 SK그룹에서 38년간 전략기획, CSR, ESG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책임지며 축적한 실무와 통찰을 바탕으로 DEI를 단순한 도덕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DEI는 수많은 사례와 역사적 전환점 속에서 입증된 성공과 실패의 분기점이라는 점을 일깨웁니다.


인류사의 굵직한 사건과 흐름을 통해 포용의 유무가 한 문명의 존망을 갈랐다고 설파합니다.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의 대비 사례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DEI를 왜 절박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조명합니다.


한 예로, 유방의 포용적 인재 등용이 어떻게 초나라 귀족 출신 항우를 이기고 400년 한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는지를 통해 출신을 가리지 않는 포용이 얼마나 강력한 전략이 되는지를 들려줍니다.


유방의 사례는 오늘날 기업의 인사 전략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외형적 이력보다는 잠재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사 시스템이 곧 DEI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짚어줍니다.


정치와 리더십에서 DEI는 더욱 뚜렷한 실천 기준이 됩니다. 링컨이 정적을 포함한 라이벌 팀을 만들어 미국 내전을 극복하고, 오바마가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사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해나갔던 사례는 포용적 리더십이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영에 있어 DEI는 선택이 아닙니다. 저자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DEI는 구조적 생존전략임을 역설합니다.


조직 내 다양성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위기 앞에서 다각도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이자 미래를 감지하는 레이더입니다. 팔라디움 선물 거래로 인해 큰 손실을 본 포드자동차의 사례는 동질화된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흔히 포용은 문화적, 사회적 가치로만 여겨지지만 저자는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으로까지 확장합니다. 미토콘드리아의 기원, 유성생식의 다양성 확보 메커니즘, 면역체계의 라이브러리 전략 등은 모두 다양성이 생존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라는 근거가 됩니다.


포용이란 진화를 위한 구조라는 이 시각은 DEI에 대한 편협한 도덕주의적 접근을 탈피하게 합니다. 생명체조차 다양한 데이터를 내부에 축적하고 유연한 대응체계를 갖출 때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은 조직과 사회가 포용을 통해 적응하고 진화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DEI를 방해하는 8가지 덫을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연고주의에 대한 통찰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지점입니다. 연고주의뿐만 아니라 완벽주의, 타성, 도그마(독단), 휴브리스(오만), 동조화, 편견 등이 복합적으로 DEI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유도합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시대가 온다>는 DEI의 구현을 위한 10가지 가치를 소개합니다. 자아 확장, 여유와 기다림, 뒤섞기, 경청과 관찰 등 구체적 실천으로서의 체크리스트가 펼쳐집니다.


인상적인 건 '나를 포용하기'입니다. 먼저 자신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자신의 한계와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다름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DEI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 책은 그 도구를 어떻게 설계하고 작동시키는지를 설명하는 사용설명서와 같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법으로 전개하고 있어 읽기 편했습니다.


8가지 덫을 피하고 10가지 가치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포용성은 크게 향상될 겁니다. 기업 실무자뿐만 아니라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다양성 감수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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