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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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백성들의 밥을 해결하는 것이다. 혁명이란 정치권력만 바꾸는 것이 아니고 밥을 해결하는 것이다. -13쪽

식시오관
·음식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노고를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라.
·자신의 덕행(德行)이 완성되었는지 결여되었는지를 헤아려서 공양(供養)을 받아야 한다.
·마음을 절제하여 지나친 탐욕을 없애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특히 맛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까탈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몸에 좋은 약으로 알고 몸이 파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먹어야 한다.
·군자는 도업을 먼저 행하고 그 다음에 음식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 -16~7쪽

소는 유교식 제례에서 천자의 제상에 올리는 희생이기 때문에 육류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다. 조선 사대부들이 소고기를 귀히 여긴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소고기는 조선 사대부들에게 기분 좋은 음식이었다. 그들이 문화적 본국으로 여겼던 중국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심적에 담긴 왕희지 이야기, 설야멱(雪夜覓)에 담긴 송 태조와 보(普) 사이의 군신 관계를 뛰어넘은 우정 이야기는 참 멋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에 조선 사대부들은 한껏 기분이 고양되어 소고기를 찾았다. 화롯불에 우심을 구우며 왕희지인 양 폼을 잡아 보고, 설야멱을 먹으며 송 태조와 보의 허물없는 우정을 떠올렸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소고기는 고귀한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고, 문화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음식이었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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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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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나지?" 라프토가 물었다.
"당신이 최고니까. 난 최고만 상대하거든."
"미쳤군." 라프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바로 후회했다.
"그건," 상대방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형씨도 미쳤잖아. 우리 모두 미쳤지. 다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불안한 영혼들이야. 영혼들은 늘 그렇지. 인디언들이 왜 이걸 만들었는지 알아?"
라프토의 앞에 선 사람이 장갑 낀 손의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토템폴을 톡톡 두드렸다. 토템폴 속에 조각된 인물들은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앞이 보이지 않는 커다른 검은 눈동자로 피오르 맞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혼들을 감시하기 위해서야."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그래야 영혼들이 길을 잃지 않으니까. 하지만 토템폴의 문제는 썩는다는 거지. 썩어야만 해. 그게 바로 토템폴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니까. 토템폴이 사라지면 영혼은 새 집을 찾아야 하지. 가면 속이 될 수도 있고, 거울 속이 될 수도 있어. 새로 태어난 아이의 몸속이 될 수도 있고." -80~1쪽

라켈은 깡마른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줄어든 것처럼, 그도 줄어들어 있었다. 한때 그토록 가까웠던 누군가가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를 껴안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 냉정하고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과 대조적으로 이상하게 부드러운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전화기 너머로가 아니라 직접 듣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예전처럼 말하는 동안 강도가 변하는 광채를 내뿜는 그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91쪽

올레그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이 아이가 언제 벌써 연할 살이 돼서 죽음의 다양한 단계며 소외감, 말세에 관한 음악을 좋아하게 됐을까? 어쩌면 이런 올레그를 걱정해야 할지 모르지만 해리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맞는지 입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옷들이 생기는 시작점인 것이다. 이제 다른 것들도 따라올 것이다. 더 좋은 것들. 더 나쁜 것들. -118~9쪽

둥그런 불빛 속에 들어가 어둠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전혀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숲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체가 된 탓에 벌거벗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나뭇가지가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낯선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더듬거리는 장님의 손가락 같았다. -134쪽

꿈에 그녀가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무의식이란 워낙 예측 불가능하니까. -139쪽

해리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범인의 냄새를 처음으로 맡을 때 늘 느끼는 전율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위대한 강박증이 뒤따른다. 그것은 모든 것이 공존하는 상태다. 사랑인 동시에 취기이며, 맹목적인 동시에 명료하고, 의미심장한 동시에 미친 짓이다. 다른 형사들도 수사를 하다가 가끔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고 들었지만, 이건 흥분과는 다르다. 뭔가 특별하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강박증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고, 이를 분석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사실은 이 강박증이 그를 도와주고 몰아붙이며,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164쪽

사실 엘리는 실제로 수다를 떠는 것보다 수다에 대한 생각이 더 좋았다. 대화는 늘 어딘가에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201쪽

"과학자들이 경험이 많은 권투선수들의 뇌 활동을 측정한 적이 있어. 권투선수들이 시합 도중에 꽤 여러 번 의식을 잃는 거 알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의식을 잃는다지. 그런데 몸은 마치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아는 듯이, 통제력을 발휘해서 다시 의식이 들 때까지 버틴다는 거야." 해리는 담배 끝을 톡톡 쳤다. "그 오두막에서 나도 넋이 나갔어. 단지 차이점이라면 오랜 경험상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내 몸이 알았을 뿐이야."
"하지만 첫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카트리네가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말했다.
"권투선수들처럼 맞는 대로 휘청거려야지. 저항하지 마. 일의 어떤 부분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린다면, 건드리게 내버려둬. 어차피 막아낸다 해도 오래가지 못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인 다음 댐처럼 풀어놔. 벽에 금이 갈 때까지 담아두지 말라는 말이야." -263~4쪽

해리는 체념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FBI에서 범인을 잡는 데 10년 이상 걸린 사건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대개 사건을 해결한 것은 아주 사소한 단서였다. 그러나 사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포기를 몰랐던 그들의 집념이었다. 15라운드를 다 뛰고도, 상대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으면 다시 싸우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근성이었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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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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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품절


"다들 잘 알아 둬. 이런 댓글을 쓰는 인간일수록 자기 삶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어.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을 남한테 하는 거야."
자신의 댓글 밑으로 그런 글이 달려 있다.
아케미는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 삶은 엉망진창.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꿰뚫어보고 있단 말인가? 인터넷 안에서 가상의 자신이 한 발언마저 읽는 이들에게 속내를 간파당하고 있다면, 현실의 자신이 하는 언행과 태도에서는 훨씬 더 여실히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뜻이 아닌가. -149쪽

"그치? 살인을 저지르면 아케미도 끝장인걸. 날 죽여 봐야 아케미한테 남는 게 없으니까."
남는 게 없나? 번민의 씨앗이 사라지며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뭐였지? 남는 게 없는 짓이었나. 이 남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잘 피하면 경찰에 체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세상의 많은 살인자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 따위는 자신은 답습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혹독한 취조를 당해도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 지식과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었다.
안일했다. 아케미는 그제야 자신의 계획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왜 방금 전까지는 그런 안일한 계획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믿고 있었을까. 그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확신했을까.-241~2쪽

전화를 끊고 나서 카와쿠보는 추락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생각했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출혈에 신음을 토하며 자신의 생명을 스멀스멀 뺏어 가는 한기에 벌벌 떨고 있을까. 아직 의식은 있을까.
미안하다. 카와쿠보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구출하러 갈 수 없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 우리 인간은 너무 무력하다. -351쪽

카와부로는 창가로 가서 실외 온도계를 확인했다. 영하 4도였다. 정말 추워졌다. 물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1월의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정전이 돼도 동사자가 몇 명이나 나올 추위는 아니다. 문제는 눈보라다.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모두 중지시킬 정도의 맹렬한 눈보라. 폭풍에 폭설까지 함께 몰아친다.
카와쿠보는 난로 곁으로 가서 난로 위에 얹어 둔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조난 및 사고 관련 신고 전화가 4시 이후로 한 통밖에 없었다. 허나 실제로 한 건에 그쳤을 리가 없었다. 내일은 바빠지리라. -404쪽

카와쿠보는 울컥했다.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관할 구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젯밤 그 신고를 받고도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또 도주 중인 살인범에 대해 조직에서는 조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범인의 도주를 방치하게 된다.
나 혼자라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마을의 주재 경관이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책임을 지녔다. 조직이 시간 맞춰 움직일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해야만 한다. 범죄 발생 현장인 펜션은 내 관할 구역 내에 있다.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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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구판절판


시차 증후군의 첫번째 증상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아일랜드 사람이 술에 취하거나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이 냉철하게 생각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중략)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시차 증후군의 증상을 기억하려 애를 썼다. 지나친 감상주의, 청각 장애, 피로. (중략) 다른 증상은 뭐였더라? 엉뚱한 말이나 행동, 굼뜬 대답, 침침한 시력. -23쪽

"거의 40년 전에 멸종한 생물을 보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이 끝을 좀 잡아 봐." 돌로 만든 홈통의 끝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모든 것'이 다 놀라워요. 사실 여기에 '있다'는 자체가 놀라움의 시작이죠."
"아니면 그 종말이거나." 나는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30쪽

"만약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더 빠르게 잘 돌아갈 거야." 공작 부인이 거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루이스 캐럴 -35쪽

"그저께만 되었더라도 저는 행운이란 건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풀밭을 걸어가며 테렌스가 말했다. "하지만 어제 오후부터 저는 행운을 믿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요. 페딕 교수님이 기차를 혼동하셨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여기에 계시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당신이 강이 아닌 다른 곳에 가려고 했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보트를 빌릴 만한 돈이 없을 수도 있었으며, 아예 역에 없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 저와 시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운명은 실을 쥐고 인간은 운명의 조정하는 대로 움직일 뿐, 성공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114쪽

"'운명아 마음대로 하려무나. 숙명이란 어쩔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려무나.' 운명이여, 우리가 왔다." -114쪽

우리가 가려던 곳은 분기점 근처였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곳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증폭, 파급되며 사소한 일 하나, 예를 들어 잘못 걸려 온 전화 한 통이나 등화관제 아래에서 켜진 성냥불 하나, 서류 한 장, 또는 찰나의 순간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버릴 만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의 운전사가 잘못해서 프란츠 요세프 가로 접어드는 바람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에이브러험 링컨의 경호원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사이 평화가 파괴되었다. 편두통에 시달리던 히틀러는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때문에 연합군 측의 D-데이 공격에 대한 보고를 18시간이나 늦게 받았다. 중위가 전보에 '긴급'이라는 단어를 빼먹고 보냈기 때문에 킴멜 장군은 일본군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제때 받지 못했다. '못 하나를 원하다가 신발을 잃고, 신발을 원하다가 말을 잃고, 말을 원하다가 기수를 잃은' 꼴이었다. -186쪽

오버포스 교수가 주장하는 맹목적인 힘, 즉 날씨, 질병, 기후의 변화, 지각의 변동 같은 사건들은 페딕 교수가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역사를 이루는 요소였다.
문제는 물론, 수많은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오버포스 교수와 페딕 교수의 이견 모두가 옳다는 점이었다. 이 둘은 단지 혼돈 이론이 알려지기 1세기 전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둘의 생각을 결합할 수 없을 뿐이었다. 역사는 개개인의 특성과 용기와 배신과 사랑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도 조종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고와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도. 그리고 유탄(流彈)과 전보와 팁에 의해서도. 그리고 고양이도.-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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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2-2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재미있는 책이죠.

개인적으로는 둠즈데이 북이 더 좋았는데... 생각해보면 읽은지도 오래되었네요. 한번 다시 읽고 싶네요. 어떤 박스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지만.(이럴때는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보는게 속편하죠...--;;)

이매지 2012-02-27 13:52   좋아요 0 | URL
어떤 박스에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지만...이라는 말이 왜 남의 얘기 같지 않은 걸까요.
저도 사실 그래서 못 읽고 있는 책이 몇 권 있어요. ㅠㅠ
추천받아서 읽고 있는데 수면부족으로 시달릴 때 읽기 시작해서인지 시차 증후군에 심한 몰입을 하고 있는. ㅎㅎㅎㅎ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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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날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가끔 "사냥이 시작되었네, 왓슨!"이라고 하는 그 낯익은 대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시달린다. 그 소리를 듣고 나면 믿음직한 리볼버를 손에 쥐고 어두컴컴한 베이커 가를 휘감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 일이 두 번 다시 찾아올 리 없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따름이다. 모든 인간의 운명이라 할 수 있는 그 거대한 어둠 너머에서 홈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면 솔직히 나도 그의 곁으로 건너가고 싶다. 해묵은 상처가 나를 끝까지 괴롭히는 가운데 끔찍하고 무의미한 전쟁이 이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제는 더 이상 납득하지 못하겠다. -15쪽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난이 아이들에게서 앗아 가는 첫 번째 값진 보물은 어린 시절이다. -78~9쪽

내가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처믕 만난 것은 그가 사악한 범죄자 부부와 얽혀 버린 이웃의 희랍어 통역관과 관련해서 도움을 청했을 때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홈즈에게 일곱 살 많은 형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 할 수 있건만 나와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 고향 혹은 베이커 가 이전의 생활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으니 생각해 보면 희한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천성이 그랬다. 자기 생일을 기념한 적도 없어서 나도 부고를 보고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알았을 정도다. 선대가 지방의 대지주였고 친척 하나가 상당히 유명한 화가라는 이야기를 한 번 한 적 있었지만, 보통은 식구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지내는 쪽을 더 좋아했다. 자기 같은 천재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계 무대에 등장한다는 걸까. -165~6쪽

그는 걱정스러워하는 나를 남겨 둔 채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고는 점심 무렵에 돌아왔지만 끼니를 걸렀다. 짜릿한 수사에 돌입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전에도 자주 접했던 모습이다. 그를 보면 가슴 높이에서 풍기는 냄새를 쫓아 달리는 사냥개가 생각났다. 사냥개가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듯 그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인 먹을거리, 물, 수면조차 생략할 수 있을 만큼 사건에 몰입하기 때문이었다. -176~7쪽

작가로서의 인생이 막바지에 이른 이제 와 돌이켜보면 신기한 것이, 나는 악당의 정체가 드러나거나 체포되는 것으로 모든 연대기의 끝을 장식했고, 궁금해하는 독자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그 이후 그들의 운명에 지면을 할애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마치 범죄가 그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사건이 해결되면 그들이 더 이상 살아 숨쉬는 심장과 낙심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 회전문을 지나 이 음침한 복도를 걸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괴로웠을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거나 구원의 기도를 드린 사람이 있었을지, 끝까지 싸운 사람이 있었을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내이야기와 별개의 문제였다. (중략) 나는 요즘 사람들이 탐정 소설이라고 부르는 작품을 썼다. 어쩌다 보니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가장 위대한 탐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와 대결을 펼친 상대 덕분에 위대한 탐정이 될 수 있었을 것일 텐데, 내가 그들을 너무 홀대했던 것이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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