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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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가 신문에 소설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솔직히 볼까말까 많이 고민을 했었다. 김영하의 소설은 좋아하지만 한 번도 연재소설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야금야금 소설을 읽어간다는 것 자체가 왠지 적응이 안됐기때문이다. '어차피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으로 나오겠거니'하고 신문을 읽을 때도 퀴즈쇼가 실렸던 페이지를 애써 호기심을 누르며 넘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재되었던 <퀴즈쇼>가의 연재가 끝나고 이렇게 책으로 등장했다. 제법 두께감이 있는 책이었지만 한 페이지씩 넘겨가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최근 한국문학에도 젊은 작가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어서인지 유독 20대를 다룬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확실히 이전의 한국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지만(어떨 때는 일본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묘하면서도 반갑다. 이 책의 주인공인 민수는 80년생으로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닌'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을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외할머니가 유학을 보내준다고 했기에 어영부영 토플학원이나 다니며 어영부영 살아갔지만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할머니의 빚을 갚으라는 독촉, 여자친구와의 이별 등의 사건이 잇달아 터지며 그의 삶은 180도 바뀐다. 그렇게 끝없이 끝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은 그는 우연히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퀴즈방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벽 속의 요정'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스물 일곱해를 살며 겪은 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서서히 그를 찾아오게 되고, 그는 퀴즈를 통해 서서히 진짜 자신과 대면할 수 있게 되는데...

  확실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니만큼 이 시대의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도 비슷했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나 <퀴즈쇼>의 민수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물질을 향유하며, 같은 장소를 누비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단순히 문학 속의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술집에서 옆테이블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어 계속 귀를 쫑긋하고 듣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건 비단 내가 민수와 같은 20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차별, 소외, 편견 등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것은 영화 <타짜>였다. <타짜>나 <퀴즈쇼>모두 어느 면에서는 주인공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평범하게 살았던 인물이 어떤 계기를 통해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로 인해 진짜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고니가 도박을 통해 진짜 자신을 만나게 되었듯이, 민수는 퀴즈쇼를 통해 진짜 자신과 만난다. 뭐 민수가 경험하는 퀴즈쇼(말하자면 퀴즈를 대상으로 하는 도박이다)나 고니가 전국을 돌며 하는 도박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자간담회에서 "모니터 앞에서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져본 e청춘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라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랑은 이 시대의 20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나 또한 지금의 애인을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났고, 사귀기 전에는 이메일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해 파악해갔었으니 민수의 이야기가 영 낯설지만은 않았다. 물론, 이 책 속의 민수와 지원의 앞날이 꼭 평탄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인정하고 포용하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출간된 <88만원 세대>과 동일한 주제가 사실 이 책의 중심축이다. (아직 <88만원 세대>는 못 읽어보고 리뷰만 몇 편 읽어봤지만 이 책과 의도는 비슷한 듯)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그렇기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살아가는 20대들. 설사 일자리를 구했다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이 책에는 담겨있다. 편의점에서 얼마 안되는 돈을 받으며 점장의 멸시를 받고, 방세를 내지 않았다고 금새 방을 비워 다른 사람을 받는 고시원 주인, 면접에서 가족관계때문에 마이너스라고 말하는 면접관들은 더럽고 치사하다. 하지만 그런 더럽고 치사하다고 해서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인간들이 사회를 움직이고, 20대에게 돈을 지불해주는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것 같은 민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조금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시대에 대한 해결책은 여전히 부재하지만. (어쩌면 본질적인 해결책은 부재할 수밖에 없겠지만.)

  오랜만에 접하는 김영하의 소설, 그리고 그와 어느새 콤비가 되버린 듯한 이우일의 일러스트(사실 표지 처음 봤을 때 이우일의 그동안의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서 선뜻 못 알아봤었다)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현실이 왜 이따위냐고 불만을 갖고 있는 20대라면(나처럼 취직도 못하고 방황하는 20대라면 더더욱), 평소 김영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좀 더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도 그만뒀다는 김영하(재직하던 학교가 집 근처라 지하철 역에서 본 적이 있기에 혹시라도 또 지하철역에서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제는 글렀다)가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지 궁금해진다. <빛의 제국>에서 사실 조금은 실망했었는데 이 책으로 다시 점수를 만회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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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퀴즈쇼 | 김영하
    from lunamoth 4th 2007-10-29 02:05 
    "어떤 질문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퀴즈도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질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p. 70.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1"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를 읽으며 그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답변을 생각한다. "자기 대답을 갖고 있는 젊은이를...
 
 
lees 2007-10-2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의 제국에서 내가 아는(알지도 못하지만) 김영하가 맞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명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매지 2007-10-27 22:16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오빠가 돌아왔다>와 같은 이전의 책과는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빛의 제국>보다는 좀 더 김영하다운(?) 책이었어요 :)
 
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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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악몽의 주인공인 잭의 인형을 들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김중혁의 사진을 보며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최근 부쩍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젊은 작가들 중의 한 명인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인 <펭귄 뉴스>는 갓 나왔을 때부터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됐다. 전반적으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잘 오고가며 기발한 부분들도 있어 흥미롭게 읽어갔다. 

  첫 작품인 무용지물 박물관에서는 레스몰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이 우연히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방송국의 DJ를 맡고 있는 메이비를 알게 되며 사물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메이비의 설명으로 하나씩 하나씩 머리속에 그려내는 과정을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물의 실체를 털어내고 온전히 설명에만 의존해 사물을 머리 속에서 조금씩 조립해가는 과정. 그 과정은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을 정말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실재하는 것은 100프로 동일한 것이 아니기에. 

  두번째 이야기인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에서는 개념발명가인 이눅씨를 만나는 사진기자의 이야기가, 세번째 이야기인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는 지도 오차 측량원인 주인공이 어머니를 잃고, 외국의 삼촌으로부터 이상한 나무 조각을 선물받게 되면서 겪는 일들이 그려진다. 그 다음 이야기인 <멍청한 유비쿼터스>에서는 해커가 등장해 너무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기업 보안에 대해 보여준다. 사람들의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를 이용해 태연하게 기업 내부에 들어가 해킹을 하는 주인공이 전하는 유비쿼터스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회색괴물>에서는 키보드 디자인을 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중고 타자기 한 대를 구입하면서 겪는 이야기가, <바나나 주식회사>에서는 친구가 자살하면서 남긴 한 장의 지도를 가지고 바나나 주식회사를 찾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사백 미터 마라톤>에서는 사백 미터만 뛰고나면 더는 뛸 수 없는 육상 선수와 그의 친구의 이야기가, 마지막 이야기인 <펭귄 뉴스>에서는 우연히 비트 해방 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전반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이제는 지워진 아날로그적인 물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옛 것에 대한 추억이 아스라히 느껴진다. 이 때 옛것이라는 것은 끽해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일상에 있었던 것이지만. 작은 것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 등에 대해 적당히 흥미롭게 잘 풀어간 듯 싶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이다보니 박민규와 비교가 되는 것 같은데 박민규의 경우가 허무맹랑한 그야말로 소설같다는 느낌이라면 김중혁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코믹한 부분이 있긴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현실에 있을 것 같기도 한 이야기라 오히려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집을 읽을 때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을 갖고 읽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너무 비슷비슷한 맛의 음식들이라 그 점은 다소 아쉬웠다. 각각의 직업이나 설정은 다르게 등장하지만 기본적인 인물의 성향이나 갈등의 배경은 엇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난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굉장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수작은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적당히 괜찮다는 느낌 정도) 뒤로갈수록 왠지 작품의 질이나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구성이 역순이더라. 이왕이면 발표된 순서대로 만들어놨다면 한 작가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는 신문사의 기자(음식/여행 기사 담당이라고)가 되어 "지금은 기자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소설을 쓰고 싶어질 것", "긴 인생에서 소설이 아닌 신문에서 잠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는 그의 말처럼 언젠가 다시 좋은 소설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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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10-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집을 읽을 때면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을 갖고 읽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너무 비슷비슷한 맛의 음식들이라 그 점은 다소 아쉬웠다."

라고 쓰신 걸 보니까 저의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무엇이었는지 설명이 되어요. 저도 기대를 (많이) 갖고 읽었는데 뭔가 밍밍한 것 같아서 서운했거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역시, 참 잘도 쓰셔. :)

이매지 2007-10-06 13:2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접했을 땐 신선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뒤로갈수록 정말 밍밍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별 셋과 넷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ㅎㅎ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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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생 작가. 80년대에 태어난 작가를 만나는 것은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지만 아직까지 괜시리 질투가 난다. 변변한 글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있는 내게(사실 달리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문학상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물론, 그 재능도 부럽지만. 어쨌거나 시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다소 얇은 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문학에서도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등장인물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박주영의 <백수 생활 백서>에서는 아예 책만 읽는 자발적 백수가 등장했다면 이 책 속에는 정말 글을 쓰고 싶은데 번번이 언론고시에서 고배를 마시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그마치 5년, 차라리 1차부터 안됐다면 공부를 더 하면 되지만 3차시험인 작문시험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상황. 주인공은 굴욕으로 가득찬 삶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자살을 결심하고, 감기약 200알을 구입하여 온다. 하지만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전 할머니에게 불려가 미국에 있는 가출한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엉겹결에 밀명을 받고 떠나게 된 주인공. 그 곳에서 고모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돌게 되는데...

  이야기는 주인공인 은미의 이야기와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어요?"라는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은미는 기자가 되어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꾸고, 은미의 친구인 민이는 여자로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인간은 여러가지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꿈꾼다. 저마다의 목표에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마치 노랗게 보이는 달의 원래 모습처럼 회색빛이다. 목표에 도달했을 때 그에 대해 '차라리 꿈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걸',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찾은 사람, 예를 들어 고모의 경우에는 그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꿈꿔온 것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도달은 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실망했을 때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그것이 이야기의 끝에서 은미의 머리에 보송보송하게 난 솜털처럼 내 마음에도 조금은 자라게 된 것 같다.

  작가가 처음 써보는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처음치곤 제법 매끈한 느낌이 들었다. 구성도 나쁘지 않았고, 문체도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젊은 작가라 그런지 왠지 깊이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글에 대한 재능은 있지만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은 작가의 손에서 나온 글이기에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작가 내면의 깊이가 생긴다면 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써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젊은 작가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탈적이고 개성있는 글쓰기(나쁘게 말하면 일단 튀고 보는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젊은 작가만의 감각과 애정은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글을 만날 수 있을까 조금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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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8-2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작가의 신선함을 만나 보고 싶네요.^^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면 그 상 이름값은 할테죠?
잘~ 읽고 가요. 추천도!!!

이매지 2007-08-27 21:54   좋아요 0 | URL
에고고. 추천 감사합니다 :)
이 책도 방출할 것 같은데 쬐금만 기다려주세요 ㅎㅎ

나란히 2007-09-0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그림 정말 웃겨요. ㅎㅎ

이매지 2007-09-0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웃기다니 -_ㅜ
나름 진지한 강아지라구요! ㅎㅎㅎ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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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을 때만해도 사실 큰 관심은 없었던 책이었다.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권신아씨의 일러스트만 흘끔보고 글은 읽지 않고 지나갔었다. 사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들은 매일매일 챙겨보기보다는 나중에 책으로 나왔을 때 읽는 게 소설의 완성도면에 있어서나 집중도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재물을 잘 안 읽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일러스트로 이미지만 남았던 소설이 책으로 나왔지만 이상스레 계속 미뤄오다 선물로 받아 뒤늦게나마 읽기 시작했다. (선물 보내주신 멜기세덱님께 감사를!) 
 
  이 글의 주인공 은수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30대 미혼 여성이다. 최근에야 서른 살을 넘기고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예전보다는 눈치가 덜 보인다고도 하지만 은수는 먹어가는 나이와 내 인생의 반쪽을 만나지 못한 초조함, 부모님의 잔소리 앞에 우왕좌왕한다. 그렇게 방황(?)하던 은수는 젊은 시절 만난 애인의 결혼식날 진짜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자신보다 7살 어린 태오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연인이 된 두 사람. 하지만 젊기에 미래가 불안한 태오는 은수의 마음에 100% 차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겉모습도 평범하고 그야말로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남자 김영수를 소개 받는다.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가진 그지만 왠지 '한 방'이 없어 그 또한 뭔가 아쉽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남자친구까지. 은수는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르는 이 연애를 조금씩 저울질해보기 시작한다. 

  2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내 나이 서른에는...'이라는 생각을 해볼 것이다.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들이 있었지만 20대 초반에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떠올리면 과연 서른까지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은수처럼 30대는 아니지만 슬슬 2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다보니 더 현실적이고, 더 냉정하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30대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을 나와 만원버스(혹은 지옥철)을 타고 저마다의 목적지로 전투를 하듯이 나가는 모습, 연애를 할 때 사람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준으로 재보는 모습, 회사에서 불의(?)를 당하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는 모습 등은 대개의 사람들과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20대인 나도 은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소설은 말랑말랑하고 한국 소설은 딱딱하고 왠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텐데 이 소설은 그런 면에 있어서 일본소설같은 느낌을 풍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은수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실재하는 요소들을 소설에 집어넣고 있고, 이야기도 가볍고 말랑말랑하게 이어간다. 읽고나서 딱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며 가볍게 읽기는 좋은 것 같다. 최근 유행하는 칙릿 소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류)의 일종이라는 느낌도 많이 들었기에 문학이라면 자고로 뭔가 교훈을 줘야하고, 잘못된 사회를 고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것도 소설이라고. 쯧쯧'하실 수 있겠지만 젊은 세대의 구미에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부와 중반 초반까지는 괜찮았는데 중후반부터 이야기가 너무 엉성해서 실망스러웠다. (영수와의 관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너무 이상하게 흘렀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생각보다는 가벼운 드라마 한 편 본다는 생각으로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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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8-25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읽으셨네요...ㅎㅎ

이매지 2007-08-25 01:10   좋아요 0 | URL
읽고 있는 다른 책이 진도가 느려서 ㅎㅎㅎ
워낙 빨리 넘어가는 책이기도 했군요 ㅎㅎ
멜기님 덕분에 즐거운 독서했어요 :)

비로그인 2007-08-2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쌉싸름하다는 말이 맞는것 같네요.
저도 웬지 아쉬운 느낌으로 끝냈어요.
저는 신문에 연재될때 매일 읽었죠,스크랩하며 하루에 몇 번씩.

이매지 2007-08-25 13:09   좋아요 0 | URL
전 요새 연재되고 있는 김영하씨의 퀴즈쇼도
'그냥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보지 뭐'하고 미루고 있어요.
연재소설 읽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아쉬웠어요. 정말.

비로그인 2007-08-2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거지같았습니다 :)

이매지 2007-08-26 00:06   좋아요 0 | URL
책 읽고 괜찮으면 9월에 학교에 강연하러 온다길래
한 번 가볼까했는데 지금은 글쎄 어쩔까 고민하는.
체셔님의 거지같았다는 말에 순간 픽 웃었어요 ㅎㅎ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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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만에 출간된 황석영의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황석영의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물론, <삼포가는 길> 정도는 대입을 준비하며 본 적이 있으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처음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공지영은 이 책을 보고 "절망 이길 힘을 보았다"라고 했다지만 나는 되려 이 책을 보면서 왠지 허망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의 바리데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에는 바리데기 공주처럼 온갖 고생을 겪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낳았다하면 딸인 상황에서 일곱번째 딸로 태어난 주인공. 그녀에게 가족다운 사랑을 나눠주는 것은 할머니와 강아지 칠성이 뿐이다. 바리데기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서, 바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먹고 살 정도는 됐지만 체제의 몰락과 기근, 그리고 외삼촌의 일들이 복합되어 결국 북에서는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된다. 각각 흩어져 살아가게 된 가족. 바리는 할머니와 언니와 함께 미꾸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간다. 바리는 그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고난도 겪으며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밀입국을 하게 된 바리. 영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이야기 속에는 실제 우리가 보아온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일성의 죽음, 북한의 대기근,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영국의 지하철 테러 등의 사건들이 바리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그리고 바리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 죽음의 의미를 말해보라',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악한 것들이 승리하는지' 알려달라고 그들은 바리에게 외치고 있다.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바리는 결국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다'고 대답한다. 결국 인간 스스로 고통을 만들었고, 인간이 만든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생명수는 인간뿐이지만 과연 인간이 스스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압둘 할아버지의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라는 말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어쩌면 모래알 같은 가망성이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리데기가 그랬던 것처럼 바리의 행적도 북한에서 중국으로, 그 곳에서 다시 영국으로 이어져 가는 기나긴 고난의 여정인데 반해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속도감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가독성도 좋아서 금새 읽어갈 수 있었지만 서술 관점도 가끔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연재물이어서 그런 걸까?) 짧다면 짧은 이야기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좀 아쉬운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휘의 선택이나 묘사 부분은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또, 전통의 변형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고전이란 그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임으로 그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을 혼란한 현실 속에 '생명수'를 찾는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직접 건내주지는 못해도, 그것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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