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007 시리즈 21편이 개봉함에 따라 문득 007 시리즈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 편씩 보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리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한 번 보니 007 시리즈만의 재미를 놓칠 수 없었던 것. 007 영화의 주된 요소라면 악당, 그리고 Q가 만든 신무기, 마지막으로 본드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한 두 명씩 나오는 본드걸들. 그 많던 본드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매 영화마다 007은 언제나처럼 새로운 본드걸과 함께 사랑을 속삭일 뿐이다. 그렇다면 예전 본드걸은 대체,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책은 그렇게 버림받은 본드걸 미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뉴질랜드에 여행을 갔다가 007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미미. 자신은 타고난 본드걸이라고 생각하며 으쓱하는 것도 잠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온 본드는 새로운 본드걸을 데리고 왔다. 복수심에 불탄 미미는 007을 쫓아다니지만 007는 그런 미미를 만나줄 생각도 안한다. 이에 미미는 결국 심부름센터에 정보국의 위치를 파악해달라는 일을 맡기고 우여곡절 끝에 정보국에 들어가 M을 만나게 된다. M에게 자신은 타고난 본드걸이다, 나를 계속 써주지 않으면 007 섹스 동영상을 유포해버리겠다라고 허풍아닌 허풍을 친다. 이에 M은 미미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제시하고 이를 성공하면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무사히 테스트를 통과한 미미는 그 때부터 스파이가 되기 위한 훈련에 돌입하고, 이윽고 본드걸에서 벗어나 살인번호 013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그녀는 과연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제임스 본드가 아닌 본드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고보면 그간 본드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없지 않았던가!)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에 당연히 스파이로서 '모험'도 하지만 그 모험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임무인지 생활인지 모호하게만 느껴진다.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도 구분하기가 모호한 상황,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 등을 통해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연애소설과 스파이소설이 가볍게 짬뽕된 소설이긴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 감춰진 층위가 이 책을 조금 묵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경쾌한 전 본드걸(현 스파이) 미미양의 계속되는 모험. 그녀 앞에 어떤 모험이 자리잡을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찾고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이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타파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3-04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4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4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1-01-19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됬네요 ^^


근데 주인장님 사진이 강아지 였다가 다른걸로 바뀌지 않았나요?

오랜만에 놀러왔는데 익숙한 안경낀 책 읽는 강아지 라서 반갑네요 ㅋ

이매지 2011-01-19 18:45   좋아요 0 | URL
강아지였다가, 야구 시즌에 오리로 잠시 바뀌었더랬죠 ㅎㅎㅎ
역시 한 이미지로 쭉 밀고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ㅎㅎ
예전에 이 책 시나리오 작업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듯한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

다이조부 2011-01-1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화 되면 더 좋을거 같아요 기대가 되는데요 ㅋㅋ

모던보이 도 원작이 소설인데 영화화됬잖아요 소설은 못 읽어봣지만 말이죠 ㅎ

최근에 마이 시스터즈 키퍼 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도 소설이 원작이더군요~


이매지 2011-01-19 21:43   좋아요 0 | URL
이번에 시크릿가든 끝나고 하는 <신기생뎐>도 소설이 원작이예요.
은근 드라마나 영화 원작 소설이 많죠^^

다이조부 2011-01-20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생뎐 이 원작이 있을줄은 몰랐ㄴㅔ요 헐

이매지 2011-01-20 09:43   좋아요 0 | URL
전 원작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임성한 작가가 쓴다고 해서 갸웃했었어요 ㅎㅎ
조만간 저도 찾아서 읽어보려구요 :)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며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소감을 밝힌 작가. 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런 말을 할꼬하는 궁금증에 이 책 <캐비닛>을 집어들게 되었다. 아니, 그런데 이야기의 제일 앞에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캐비닛이다."라는 말이 쓰여있다. 대체 캐비닛이 어쨌단말인가하고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호, 이거 꽤 재미있네'하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최근 한국문학에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들은 제법 유머러스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박민규나 김영하, 박현욱 등의 젊은 작가들이 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류에 이 책의 저자 김언수도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신인치고는 꽤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의 연구소에 취직한 주인공. 하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할 일이 없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싶어 직장상사에게 물어봤지만 '원래 그렇다. 그냥 자리를 지켜라'라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너무 무료했던 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13호 캐비닛과 만나게 된다. 다른 캐비닛에는 없는 자물쇠를 떡하니 달고 있는 13호 캐비닛. 과연 그 속에는 무엇이 들었기에 자물쇠를 채워놨을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그는 4자리 비밀번호를 하나씩 맞춰가고 결국 자물쇠를 풀고는 그 안에 든 문서를 접하게 된다. 그 문서는 심토머라고 불리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존재가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람들에 관한 것. 몰래몰래 심토머들의 파일을 보던 그는 어느 날 심토머를 연구하는 권박사에게 불려가게 되고 그의 협박아닌 협박에 권박사의 보조로 일하게 된다. 기이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 13호 캐비닛에는 이런 것들이 가득 쌓여 있다.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와 같은 궁금증이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내의 그것처럼 무럭무럭 커져만 갔다. 마치 작가는 자신만 불행한 것 같다고, 자신만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심토머들보다는 이 도시에서 견딜만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뭐 이런 진지한 생각을 굳이 하지 않고 심토머들의 그럴싸한 이야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결말부분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기존에 등장한 유머러스한 작가들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 작가가 과연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찾아올 지 궁금해진다. 신인다운 신선함이 오히려 득이 된 것 같은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2-0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정말 옥의 티라고나 할까요.

이매지 2007-02-0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그렇게 떨어뜨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더군요. 갑자기 고문이나 당하고 말예요. 으음.
 
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이 기존에 성석제의 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리뷰를 슬쩍 보고는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확실히 기존과는 다른 글에 놀라게 됐다. 성석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재치있는 입담꾼'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기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분위기는 찾기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빠른 건 언제나 같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로 모른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성석제답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런 이중성을 가진 책이라 생각됐다.

  총 7편의 중단편이 모인 이 책에는 사회에서 비주류인생이라 할 수 있을 법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비주류적인,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박탈당하고 소외당한 인생을 그는 이번만큼은 해학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때문에 읽는 사람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대체 사는 게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며 '참말로 좋은 날이구만'이라고 말을 내뱉지만, 그것은 '운수 좋은 날'이 그렇듯 어디까지나 반어적인 의미로 작용할 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비참하게 느껴지고, 그게 현실이라는 사실에 더 비참하다. 읽는 이도, 겪는 이도, 쓰는 이도 모두 무거운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성석제는 이런 무거운 상황을 마냥 무겁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현실적이긴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설정을 통해 그는 무거움을 조금은 해소해보려는 시도는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성석제의 이야기이면서, 아니기도 한 느낌인 것이다.

  비참하고 무거운 이야기의 한 켠에는 현대 사회의 저속함이나 가벼움, 극단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고귀한 신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웰빙 라이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굵고 길게 살고 싶어하는 이 사람은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먹고, 다 하는 사람이다. 이런 그는 '한때 혼자서만 잘 먹고 오래 살려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평가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무해하고 자신에게는 유익한 것들을 조용히 추구했을 뿐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누구나 할 수 있다면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니 원래 그랬던 것이 노골적으로 담론화되었다. 그는 그러한 성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분야의 선구자로서, 다른 사람의 오해와 모멸을 무릅쓰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변한 것은 그가 아니고, 그를 둘러싼 상황일 뿐이다. 좋게 말하면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모두가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웰빙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그도 결국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마니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상황인가!

  이와 같은 내용은 <집필자는 나오라>에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숙종 때 끝까지 충을 다한 박태보라는 인물을 통해 충과 효라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충이나 효라 카는 기 꼭 젊은 아들한테마 안 통하는 기 아이라. 요새는 늙은이들도 그런 이야기는 싫어해. 돈하고 술하고 놀음이라는 말만 들으마 심봉사맨쿠로 눈을 번쩍 떠민서. 뭐 시속이 나쁘다는 기 아이고 역사를 자세히 보마 그 속에 있는 사람들한테서 한 분은 들어볼 진리가 있으이. 사람다움이라는 기 뭐냐, 그때 자기가 꼭 안 해도 되는데 나서게 하는 힘이 뭐냐. 이런 걸 어렵고 까시롭기 여길 거 없다."라고 세태를 비난하고, 젊은이의 입을 통해 "요새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싫어해요. 손가락 끝하고 눈꺼풀하고 입만 움직이려고 하는걸요. 아, 혀도, 끝만."이라고 함께 이 세태를 비난한다.

  다른 성석제의 소설보다 읽으면서 양심에 찔리고, 껄끄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그 까칠까칠함마저도 성석제의 방식으로 만나니 더욱 더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이 모습이 그가 앞으로 써나갈 책들의 과도기적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런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나갈 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 - 옛 선비들이 밤낮으로 즐긴 재미난 이야기들, 패설집 겨레고전문학선집 18
성현.어숙권 외 지음, 홍기문.김찬순 옮김 / 보리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은 패설을 묶은 패설집이다. 패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이 책에 대해 파악하기가 더 용이할 것이다. 패설이란 말은 원래 곡식 가운데서 가장 쓸모가 없는 곡식인 돌피와 같이 보잘것없고 가치없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글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개념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간단히 '비주류문학'이라고 파악하면 좋을 듯 싶다. 선비들이 하는 격식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소설형식이 패설에서 갈라져나온 것이고, 여행기, 수필, 야담, 시평 등의 산문문학이 예전에는 패설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니 그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대개가 자유롭게 서술된 문학이라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와 교훈이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책에는 여러권의 패설집에 담긴 이야기들을 뽑아 수록한 것으로 주로 <용재총화>와 <패관잡기>의 내용이 많은 편이다. 각 패설집의 내용을 싣기 전에 각 패설집에 대해 3~5줄 정도의 간략한 설명과 특징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틀을 잡고 시작할 수 있는 듯 싶었다. (물론, 이 부분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즐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대개 평민들의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추측했지만 정작 이야기를 읽다보니 강감찬, 최영, 황희, 맹사성, 박연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위인들의 일화가 많이 실려 있어서 아이들에게 읽어줘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비들의 소박한 즐거움이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종종 맥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뒤에 붙은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심윤경은 '비주류 작가'이다. 이것은 비단 그녀가 문학이나 글쓰기를 전공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단편이 난무하는 한국문학에서 장편으로 승부를 걸고 있고, 쿨함을 외치는 감성에 치우친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인간다운 따스함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 전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달의 제단>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는지, 얼마나 폭이 넓은 작가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런 그녀가 '연애'라는 제목이 붙은 책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연애'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연애가 절대 아니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영혼을 기록한다면 영매를 떠올리겠지만 이진은 영매가 아니다. 게다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측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다만 그녀를 찾아오는 생령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또 기록할 따름이다. 한 편,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 이현은 결혼과 이혼을 세번씩하고, 이진과 네번째 결혼을 하는 순간을 즐기는 남자이다. 어린 시절 이진의 엄마에게서 느낀 살구꽃 향기에 넋을 빼앗긴 이현은 주저없이 이진과 결혼하려고 하고, 머뭇거리는 이진에게 3년만 계약결혼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의 사랑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이야기는 이현의 이야기와, 이진이 기록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이야기는 이후에는 이현과 이진의 삶과도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다. 복선처럼 이야기가 깔리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지 못한다. 그게 길가면서 스치는 사람이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던. 우리는 다른 사람을 100프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만 보며 살아간다. 그들의 영혼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마치 영혼을 기록하지만 영혼이 없는 여자 이진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고 말랑말랑한 연애가 아닌, 연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 <이현의 연애>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전에 보아온 연애를 소재로 한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심윤경이 혹 이 작품으로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다가서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책을 놓고 나니 묘한 울림에 잠시 멍한 기분이 들며, 여전히 믿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심윤경 작가와 같은 비주류 작가가 주류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6-12-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픈데 읽을 거 많아서 계속 안사고 있어요.

이매지 2006-12-2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으시면 제꺼 가져가세요~ 저도 알지에서 받아서 본거라^^

구름의무게 2006-12-2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읽다가 너무 묵직한 느낌이 버거워서 반납해버렸는데, 매지님 평 읽고 보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이매지 2006-12-25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덜 묵직해요^^ 다른 연애소설들보다는 묵직하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