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이번 주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믿지 못하던데,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불면증이 있었다. 내 기억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아버지의 책장을 뒤져 한자가 드문드문 섞여있고, 글이 세로로 적혀있는 오래된 책들을 뒤적이곤 했다. 밤마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책장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그래서 아침이 늘 힘들었다. 아침을 먹지 않은 것도 중학생 시절부터였다. 아침엔 밥 먹는 것보다 단 1분이라도 더 자는 것이 중요했다. 밥 따위 먹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어차피 잠이 부족한 아침에는 입맛도 없었다.


자주 술을 마시는 원인 중에 불면증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저녁에 회의나 강의나 토론회 등 일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일정을 마치면 간단히라도 뒤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술자리가 엄청 자주 생기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혼자 밤 늦게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대부분 이유가 불면 때문이다.


밤 늦게 혼자 깨어 있으면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난 왜 이렇게 못난 걸까? 뭐하려고 이런 삶을 계속 사는 거지? 그냥 죽어버리는 게 어때?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면 멈춰야 한다. 더 나가면 위험하니까. 그럴 때는 그냥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틀어놓으면 그런 우울한 생각들이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잠이 잘 온다.


어떤 경우에는 48시간 이상 잠을 한 숨도 못자고 일을 했음에도 이제 편하게 자려고 누우면 막상 잠이 안 온다. 그토록 피곤했는데, 왜 발 뻗고 누워도 잠을 자지 못할까? 이런 날에도 그냥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마시면 그때서야 비로소 기절하듯 잠이 든다.


심지어 이번 주에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거의 매일 술 마시고 돌아온 후에 격렬하게 운동도 했는데, 막상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매일 아침이 괴로웠다. 아! 정말! 내 인생은 왜 이따위인 건지 모르겠다.


이번 글을 불면증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도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고, 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벌써 5일 연속이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한 주를 보내고도 잠을 자지 못하는 나란 인간. 대체 뭐냐?


팟캐스트 녹음


금요일인 어제는 오후 늦게 팟캐스트 녹음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노동넷이라는 라디오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 프로그램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딱 1달, 총 4회 출연이었다. 나름 말로 먹고 사는 입장이라 라디오 방송이라고 해도 크게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생방송이라 그랬는지 무지 떨리고 긴장되더라. 게다가 내가 출연하는 도중에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여성 리포터의 순서가 끼어 있는데, 방송 준비를 위해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언제나 그 리포터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연습하는 장면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어찌나 긴장하고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던지. 늘 그를 보고나면 나도 그 긴장감이 전염되어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암튼 팟캐스트 출연 제안을 받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일정을 통보 받았는데, 바쁜 와중이고 컨디션도 계속 엉망이어서 따로 내용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아무 준비없이 가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 미리 진행자에게 질문지나 대본이 있는지 물었는데, 뭐 그냥 대충 이렇게 가시죠 하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그래. 나 준비할 여유 없다고 세상이 나를 도와주는 구나. 나도 그냥 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쪽 분야에서 어지간한 질문에는 다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해 수치를 딱 제시해줘야 하는 질문에는 좀 어버버할지 몰라서 그런 데이터 준비를 하려고 사전에 질문지나 대본을 물어본 거였다. 막상 1시간 가량의 녹음 시간 동안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녹음이 끝나고 평소 나에 대해 조금 아는 진행자가 "역시 막힘없이 잘 말씀해주셨네요. 이건 뭐 편집이 따로 필요 없겠어요. 그냥 이대로 바로 올려도 되겠네요." 라고 말했다.


다만 나는 진행자의 질문이 계속 조금씩 아쉬웠다. 질문이 좀 더 체계적이었으면 내가 답하기도 훨씬 편하고,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도 훨씬 편했을텐데, 질문이 오락가락하니까 내가 답을 체계적으로 잘 해야겠다 싶어서 설명을 하는데, 도중에 또 진행자가 끊고 들어와 다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참 호흡이 안 맞구나 싶었다. 그런 것 치고는 그래도 선방했구나 싶었다. 일단 하고 싶은 말을 대체로 전하긴 했다.


예전에 잡지나 지역 신문에 기사를 쓰기 위해 나도 인터뷰 작업을 가끔 했는데, 인터뷰는 질문을 얼마나 잘 준비하는 지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진행자가 질문을 잘 뽑지 못하고, 제대로 묻지 못하면 그 인터뷰는 그냥 실패다.


양꼬치에 한라산


팟캐스트 녹음 내내 떠들어서 체력 소모가 컸다.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큰 아이는 시험기간이라고 공부를 더 하다가 밤늦게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작은 아미만 데리고 나와서 어디서 뭘 먹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한 주 내내 잠을 못 잔 탓에 엄청 피곤했고, 엄청 배가 고팠고, 컨디션이 너무 엉망이었다. 


집 근처에 갈만한 식당이 뻔해서 아이랑 여기저기 얘기해보다가 단골인 양꼬치 집으로 갔다. 양꼬치 2인분에 한라산 소주를 시키고 한 잔 들이켰더니 갑자기 컨디션이 확 좋아졌다. 그렇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슈퍼에 들러 이것저것 먹거리들을 좀 사고 집으로 왔다. 잠시 운동을 하고, 작은 아이를 씻기면서 나도 씻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니, 이렇게 아이랑 함께 씻을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국제 대화(채팅)


다 씻고 몸을 말리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외국인들과 대화하며 외국어를 익히기 위한 어플이었다. 이 어플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 처음에 앱을 깔고 등록할 때, 반드시 나이와 얼굴 사진을 등록하게 되어 있는데, 자신의 모국어와 익숙한 언어를 입력하고, 다시 자신이 배우고 싶은 언어를 입력하면 원하는 언어를 잘 구사하는 네이티브나 능숙한 사람들을 연결시켜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등록하고, 영어를 중급으로 설정하고 배우고 싶은 언어로 중국어를 올리면, 영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확실히 한류 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 전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등록한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영어를 익숙하게 잘 하는 이들이었다. (물론 간혹 나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타 언어권 사람들도 있긴 하더라.) 이게 작년에 참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잠시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면 어려서부터 편지 쓰길 좋아해서 펜팔도 종종 해왔고, 군대에서도 통일전망대 근무 설 때 사진을 찍어간 여중생과 제대하고도 몇 년을 더 펜팔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그 친구가 대학 가서도 한동안 연락을 주고 받았으니, 5년 이상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사진 한 번 찍었던 인연으로는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내가 막 제대했을 때 세상은 군대가기 전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제 더이상 삐삐를 쓰는 사람은 없었고 대부분 휴대폰을 갖고 다녔다. 피씨 통신만 알다가 군대에 갔는데, 나오니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고, 게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퍼져있었고, 후배들은 더이상 술을 먹거나 당구를 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게임방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곤 했다.


같이 술 마실 사람도 없어졌고, 갑자기 너무 변해버린 세상을 탓하며 영어 공부나 하자고 회화 학원을 다녔다. 그때 영어가 빨리 늘려면 자주 써야한다는 충고를 듣고 좋아했던 팝 가수 홈페이지를 뒤져 영어 펜팔을 구했다. 각 대륙별로 1명씩 펜팔을 만드는 게 목적이어서 국적을 잘 살펴서 영어 메일을 십여통 보냈다. 그중 3명 정도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다가 나중에는 캐나다에 사는 필리핀 출신 여고생 1명만 남아 꽤 길게 연락을 주고 받았다. 


이 대화앱을 깔고 사용하면서 약 20년 전 그 시절 생각이 계속 났다. 그 필리핀 출신 캐나다 고등학생은 잘 살고 있을지, 5년 가량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이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지금와서 그들의 행방을 추적할 방법은 없으니 잠시 그냥 궁금해하고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 앱을 꾸준히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대화 상대와 연결되면 처음 며칠은 서로 흥미를 갖고 열심히 대화하다가 곧 공통 관심사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고 금방 지루함을 느낀다. 게다가 내 언어 밑천이 얕으면 얕을수록 계속 같은 표현, 비슷한 문장만 구사하게 되어 스스로 지겨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았거나, 지금도 주고 받고 있는 몇몇 분들을 간단히 떠올려보자.


A / 중국인 / 중국 거주 / 20대 / 초반 / 여성

한국어로 먼저 말을 걸어왔음. 작년에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은 이. 우리말을 꽤 잘하는 편이라 영어로 소통이 불편하면 그냥 한글로 대화할 수도 있었다. 중국어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으나, 내 실력이 워낙 일천하여 인사말을 나누는 수준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계속 중국어를 익혀 실력이 늘면 좀 도움을 받겠다 싶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앱에 접속하지 않았다. 이 친구는 카톡 아이디도 있어서 카톡으로도 아침 저녁으로 대화를 주고 받기도 했는데, 이 앱에 접속을 끊은 시점부터 카톡도 답이 없더라. 나중에 한참 나중에 무슨 중요한 시험 때문에 연락을 못 했다고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는데, 그때는 또 내가 바빠서 앱에 접속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결국 인연이 더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 물론 서로 앱을 지우지 않았다면 언제라도 다시 연결될 수 도 있는 상황이다. 가끔 "은빛씨"라고 음성 파일을 보내와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사람.(일부러 본명을 쓰지 않고 은빛이란 이름으로 등록함)


B / 터키인 / 독일 거주 / 20대 중반 / 여성

먼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와서 대화를 시작함. 영어, 독일어, 터키어를 아주 능숙하게 구사함. 천성이 무척 친절하고 착한 사람. 다른 사, 람을 먼저 잘 챙겨주고, 자신이 원하는 답도 잘 묻고 잘 챙기는 편. 주로 영어로 대화하고, 가끔 그의 질문에 답할 때만 한국어로 대화하고, 아주 가끔 내가 예전에 배운 독일어 단어 몇 마디 시험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반쯤 농담으로 터키어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진짜 진지하게 터키어 기본 문법을 막 가르쳐줌. 헐! 난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그냥 어어. 그랬는데, 나중에 진짜 제대로 터키어를 배우기로 마음을 바꾸게 만든 사람. 근데 터키어 발음 너무 어렵다. 최근에는 서로 대화가 소강상태. 터키어로 문장을 구사할 정도가 되면 말 걸어봐야지 생각중. 작년부터 최근까지 비록 중간에 공백기가 길었지만, 그래도 기간으로 보면 1년 이상 인연을 이어왔다.


C / 폴란드인 / 폴란드 거주 / 20대 중반 / 여성

프로필 사진이 예뻐서 먼저 말 걸었는데, 대화가 잘 이어져서 한동안 대화를 많이 나눴음.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있고, 인사를 비롯한 간단한 표현을 할 수 있음. 주로 영어로 대화함. 서로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 대화를 나눴지만, 둘 다 영어가 짧아서 한계가 있었다. 작년에는 끊길듯 말듯 하며 계속 대화가 이어졌으나, 올해는 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는 상태


D / 중국인 / 한국 거주 / 20대 후반 / 여성

먼저 말을 걸어왔음. 영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잘 하고, 한국어도 무척 잘 하는 편. 한국어로 대화해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음. 나와 중국어로 대화하기를 원하는 듯 했으나, 내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니, 초기에 친절하게 가르쳐주다가 나중에는 조금 지겨워 진듯한 느낌. 결혼했다고 밝혔는데, 대화가 목적이 아닌 여성에게 접근하려는 의도의 남성들이 많아서 짜증난다는 투로 반응했다. 아마 찌질한 한국 남자들이 그랬을 것 같아서 한국 국적 남성이라는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다.


E / 중국인 / 홍콩 거주 / 10대 후반 / 여성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와서 거의 영어로만 대화함. 한국어를 제외하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주로 유럽 언어들을 잔뜩 배우고 싶다고 등록해 놓았음. 한국 연예인 중에 박보영을 좋아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다 챙겨본 팬이라고 함. 박보영의 연기와 영화의 완성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이 기억에 남는 사람. 작년에 내가 그랬듯이 한참 이 앱에 재미 붙였다가 실증이 난 듯. 올해는 더이상 접속하지 않는 상태


F / 중국인 / 중국 거주 / 20대 중반 / 여성

헬스장 트레이너. 운동하는 프로필 사진 보고 운동 얘기 나누고 싶어서 말 걸었는데, 잠시 대화해보니 머신 운동 중심으로 가르치는 입장인 것 같아서 더 대화를 깊게 나누지 못했다. 이 앱을 깔고 처음으로 대화가 잘 통했으면 하고 기대했던 사람이었는데, 많이 아쉬웠음.


G / 인도네시아인 / 인도네시아 거주 / 20대 후반 / 여성

먼저 우리말로 말을 걸어왔음. 영어 강사여서 영어를 상당히 잘 함. 아직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는데, 열심히 배우는 것이 느껴짐. 우리 드라마와 영화는 많이 보는 편. 특히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함. 올해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은 사람으로 간밤에도 이 사람을 비롯한 서너명의 여성과 대화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음. 우리말의 존댓말과 반말 문화에 대해 많이 헷갈려해서 한글을 가르쳐본 경험도 없으면서 막 가르치려고 애썼음. 나한테서 우리말에 대해 제일 많이 물어보고 배우려는 사람. 대중 문화와 음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특히 어제는 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혼자 술 마시냐고 묻더니, 또 혼자 사냐고 물어서 이혼했고 애들이 엄마집과 우리집을 오간다는 사실까지 이야기 하게 되었다. 본인은 아직 결혼 전이고 가족과 함께 산다고 함.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아마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물어보지는 않았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H / 브라질인 / 브라질 거주 / 20대 후반 / 여성

프로필에 한국어로 인사를 적어놓았길래 말 걸었다가 대화가 잘 통해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 앱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은 사람. 영어 수준이 나와 비슷하다. 하지만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잘 한다고 한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등록했다. 한국어 철자를 묻거나 받아쓰기 결과를 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내가 빨간 소주(참이슬 클래식)를 주로 마신다고 말했더니 곧바로 그 빨간소주를 손에 쥐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그 순간 그 술을 먹고 있던 중이라서 완전 깜짝 놀랐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여성이 같은 시간에 같은 술을 손에 쥐고 있다니! 우리나라와 거의 12시간 차이라, 서로 대화 시간이 쉽지 않은데, 나도 늦게까지 안(못) 자는 날이 많고, 그도 그런 날이 많은 듯. 의외로 대화를 많이 했다. 술 좋아하고 성격이 화끈한 면이 있는 점 등이 나와 닮았다 싶어서 잘 통하는 듯하다. 그가 잘때 나는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 내가 잘 때 그가 일어나 일하러 나가니까 마치 연인처럼 서로 잘 자라고 인사하고, 일 잘 하라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하고 있다. 이것도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I / 인도인 / 인도 거주 / 20대 중반 / 여성

이 앱에서 처음으로 접한 인도인이라 얼른 말 걸었다. 인도 영화 좋아하고 힌디어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잘 알겠다고 편하게 대화 나누자고 답이 왔다. 아직 거의 대화를 못 나눈 상황. 힌디어 문자를 익혀야 힌디어로 한 번 말을 걸어볼텐데, 너무 어렵다.


J / 브라질인 / 브라질 거주 / 20대 초반 / 여성

먼저 말을 걸어오더니 갑자기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내고 1년 3개월 된 자기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싱글맘이고,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애들 사진 보여주고, 나이도 알려주고, 이혼 얘기까지 다 했다. 직업도 환경운동가라고 말해줬더니 폭풍 칭찬을 하길래, 그렇게 칭찬 받을 일은 아니라고 했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인데, 영어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닌듯. 물론 나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고, 자기 동네에 한인 가게도 있다고 했다. 현재 일하는 항공사를 옮길 예정이며, 브라질을 떠나 유럽쪽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대화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툭툭 던지는 것이 좀 의외다. 계속 얘기나누다보면 재밌는 상대가 될 수도 있을듯.


K / 프랑스인 / 프랑스 거주 / 20대 초반 / 여성

어제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내용이 황당했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내 안경이 멋있다고. 헐! 내 안경은 그냥 평범한 검은색 뿔테 안경인데. 프랑스엔 이런 뿔테 안경이 없나? 그럴리가! 나는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살피다가 웃는 표정이 예쁘다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또 매일 이를 잘 닦아서 자기 웃음이 예쁜 거라도 답이 왔다. 음. 이 반응 의외인데 재미는 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나도 매일 이를 닦지만 웃음이 예쁘지는 않다고 답을 해줬다. 그러자 그가 내 웃음도 예쁘다고 답했다. 음, 내가 웃는 표정의 프로필 사진을 올렸던가? 내가 이 앱에 올린 사진 3장은 모두 셀카로 웃는 표정이 있을리 없을텐데 하고 확인해봤다. 음. 오키나와에서 찍은 살짝 웃는 표정의 사진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지금까지 경험상 그리 오래 대화를 이어갈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스쳐간 인연이 부지기수였다. 근데 보기 드물게 프랑스인과 연결이 된 점과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로 치고 들어오는 대화 방식이 재밌어서 계속 대화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하다.


L / 중국인 / 홍콩 거주 / 30대 초반 / 여성

이번에도 어제 갑자기 인사도 없이 곧바로 주말에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헐! 아이와 놀러갔다가 맛있는 음식 먹고 돌아와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거라고 했더니, 자신은 온천에 갈 예정이라고 답한다. 음, 어제가 이상한 날인 거겠지. 암튼 이 엉뚱한 느낌의 사람도 왠지 대화해보면 재밌을 것 같긴 하다.


그 외에도 긴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30대 베트남 여성과 40대 아르헨티나 여성도 있었는데, 이들이 탈퇴하면서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지워졌다. 누가 먼저 말 걸었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주로 했는지가 남아있지 않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경우도 많은데, 그 경우는 대체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는 대체로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 경우다. 언급한 경우가 모두 여성인데, 그럼 남성들과는 대화를 안 하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근데 이상한 건지 당연한 건지 모르겠지만, 남성들과의 대화는 정말 몇 마디 나누고 끝인 경우가 많다. 또 언급한 대부분의 연령대가 20대인데, 실제로는 30대도 좀 있었고, 아주 가끔 40대도 있었는데,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20대더라. 이 앱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그렇게 분포되어 있는 듯. 


마지막으로 궁금한 건, 그들이 보는 화면에 분명 40대에 흰 머리가 보이는 밋밋한 얼굴의 안경 쓴 아저씨가 보일텐데, 먼저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라는 것. 분명 우리나라 사용 인구도 많고, 젊고 잘생긴 남성들도 많을텐데, 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을까? 음 그들이 젊고 잘 생겨서 오히려 먼저 말을 안 걸고, 외모가 별 볼일 없는 나같은 아저씨한테 먼저 말을 거는 걸까?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언어 천재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아직 주문을 못 하고 있다. 책 한 두 권을 계속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뺐다가 고민을 반복하느라 그랬다. 빨리 주문해서 읽어야지.


15개 국어를 번역할 수 있는 신견식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쓸 때, 사람이 과연 저럴 수가 있나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중세 영어와 중세 프랑스어라는 이미 잊혀진 언어까지 다룬다고 하니. 더욱 믿기지 않을 수 밖에. 근데. 이 분의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나서 매일 깨닫는다. 이 사람 진짜 언어 천재다. 대체 모르는 언어가 없는 듯. 


나는 사실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하나 정도였음 좋겠고, 중국어, 일본어, 터키어, 힌디어 등은 영화나 드라마 볼때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싶다. 한때 일본 애니나 드라마를 주구장창 봤던 시절이 있어서 일본어는 조금은 가능한데, 나머지 언어는 모두 완전 초짜이다. 중국어는 재미도 있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끔씩 열심히 해봐야지 마음을 먹곤 하는데, 꼭 그러고는 금방 잊어버리고 산다.


지금 헤어진 애들 엄마가 어쩌면 언어 천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와서 독일어 번역을 하는데, 나보다 한참 늦게 영어를 시작했는데, 정말 짧은 시간에 내 수준을 훌쩍 넘어버리더라. 그리고 스페인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제법 실력이 늘었을 것 같다. 요새는 프랑스어에도 손을 대는 눈치던데. 얼마나 더 많은 언어를 섭렵할 지 모를 일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언어에 대한 감각은 타고 나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럽다!


음, 지금 나 대체 몇 시간을 잠 한 숨 안자고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24시간은 아까 넘었다. 이제 곧 애들 밥을 챙겨 먹여야 하고, 낮에 아이랑 놀러 가기러 약속이 되어 있으니, 오늘 저녁때까지 잠자기는 어렵겠지. 어쩌면 36시간 이상 잠 못자는 기록을 오랜만에 세우겠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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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7-0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간하면 잘 자고, 일어나는 것도 잘 일어나는 편입니다. 개운하게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을만큼은 충분히 회복하는 것 같구요. 이런 안온한 밤도 축복이겠지요. 아니, 나는 잘 잔다고 감은빛님을 놀리려는 건 아니었는데요, 그저 이 글을 읽다보니 제 자신이 기특해져서요...

감은빛님의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나도 좀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왜 이모냥이냐.... 하고 있었어요. 일도 열심이시지만 특히 운동에서 그래왔는데요. 이젠 언어 영역까지 진출하셔서 syo의 자괴감을 자극하시네요ㅎㅎㅎㅎ

감은빛 2019-07-06 21:38   좋아요 0 | URL
아이고! 자괴감이라뇨? 늘 syo 님 글을 읽을 때마다 자극받는 간 오히려 저예요.

잘 자고 잘 일어나는 편이라니 부럽습니다! 저도 늘 못자는 건 아닌데, 요 며칠 좀 유난히 심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7-0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뿐이어서 그냥 만족하고 삽니다..ㅎㅎ

감은빛 2019-07-06 21:3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유창하게 할 수 있는건 한국어 뿐입니다. 영어는 그냥 조금 해본 것 정도이고, 나머지는 재미로 단어를 익혀보는 정도이죠.

그런데 외국어를 하다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부러진 칫솔


며칠 전 아침에 이를 닦으며 하루 일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이해 못할 말을 늘어놓으며 일을 막고 있는 한 공무원과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음 순간 툭 하고 칫솔이 부러졌다. 칫솔을 사람에 비유해 솔이 머리라면 바로 목 부분이 부러졌다. 순간적으로 손이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이겠지.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구를 떠올리며 칫솔을 부러뜨렸는지 궁금하네.


다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혹시 이 이야기를 지금 구상중인 소설에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이를 닦다가 문득 잊고 있던 어떤 이를 떠올리다가 칫솔이 부러졌는데, 그날 저녁 우연히 그이를 만났다가 사건이 벌어진다. 뭐 이런 이야기. 음, 괜찮은 소재인 것 같다.


음주 운동


여름 휴가가 다가오니,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약 3개월 간 워밍업 기간이었다면 7월에 들어서서부터는 슬슬 본운동에 임한다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오랫동안 운동을 쉬었던 탓에 그동안 무리하지 않고 다시 운동을 잘 하기 위한 몸을 만드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한 덕에 어느 정도 내가 하고 싶은 동작과 들어올리고 싶은 무게를 감당할 만한 몸이 만들어진 듯 하다. 물론 옛날 생각을 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이 워밍업 기간 동안 일부러 술도 많이 줄였다. 술을 마시면 확실히 근육성장이 느리고, 술로 인한 피로 때문에 일상생활과 운동까지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술도 못 먹으면서 운동을 해야하나 싶었지만, 조금 노력해서 다시 예전처럼 몸을 만들어놓으면 술도 마시면서 운동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버텼다. 지나고보니 운동으로 인한 피로와 적당한 근육통이 음주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대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는 계속 술 마실 약속이 생겨서 집에서 차분히 운동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서 밤 늦게 혹은 새벽에 운동을 했다. 이른바 음주 운동이다. 사실 꾸준히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 술을 마셔도 간단히 철봉에 매달려 딥스와 풀업 등을 하고 자는 날은 많았지만, 그 정도 몸을 움직인 걸로 운동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이번 주에는 그보다 본격적으로 운동에 임했기에 정말 음주 운동이라고 부를 만 했다. 특히 그제와 어제 이틀은 평소보다 운동강도를 더 높였기에 그랬다. 술로 인한 흥분 때문이었는지, 혹은 순간의 판단 착오였는지 몰라도 급격하게 강도를 올렸다. 그동안 완만하게 천천히 강도를 높여가는 그래프가 순간적으로 확 튀어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내 몸은 어느 정도 본격적인 운동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었던지 크게 무리했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제는 술자리를 마친 시간이 11시 반이었다. 집까지 30분 동안 걸었다. 이 걷기가 그대로 워밍업이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다. 어깨와 등근육 스트레칭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그리고 철봉에 매달려 딥스, 레그레이즈, 풀업을 했다. 그리고 본운동에 들어가 데드리프트를 했다. 가벼운 무게로 몸을 풀고, 차츰차츰 무게를 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무게에 비해 반도 안 되는 이 무게로 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느꼈다. 아마 술기운이 조금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집에 있는 원판을 모조리 바에 끼웠다. 그래봐야 내 몸무게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게다. 예전에는 내 몸무게보다 훨씬 많은 무게를 들었었다. 갑자기 무게를 올린 터라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의외로 별로 힘들지 않게 들었다. 그런데 횟수를 반복할수록 급격하게 힘이 딸렸다. 막판에는 갑자기 어지러운 증상을 느꼈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운동을 중단했다. 샤워를 마치고 원판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2년 전 어깨 부상을 당하기 직전에도 그 생각을 했었다. 집에 있는 원판 무게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최소한 내 몸무게보다는 많이 들어야지. 물론 좀 더 지나면 그걸로도 부족할테지. 그때가서 또 원판을 더 사면 되겠지.


어제는 술자리를 마친 시간이 10시 40분이었다. 또 집까지 30분 동안 걸었다. 그제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은 간단히 마쳤다. 이번에는 하체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날이라 오버헤드 스쿼트를 할 생각이었다. 먼저 철봉에서 딥스, 레그레이즈, 풀업, 와이드 그립 풀업, 토우 투 바 등을 했다. 최근 실내철봉에 매달리면 조금씩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음새를 모두 잘 조였는데도 그랬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이 조금은 헐거워졌다는 뜻인데, 어딘지 찾지를 못하겠다. 암튼 토우 투 바 동작을 할 때 철봉이 심하게 흔들리며 소음과 진동이 생겼다. 시간이 11시 반이 넘었기 때문에 혹시 아랫층에 피해를 줄까봐 동작을 중단해야 했다. 다음에는 주말 낮에 토우 투 바를 다시 해봐야겠다.


이제 본운동으로 들어가서 오버헤드 스쿼트를 했는데, 전날 급격하게 강도를 높인 탓인지 근육 피로 때문에 오버헤드 동작을 상체 근육이 버티기가 버거웠다. 도중에 동작을 멈추고 잠시 고민했다. 이럴때는 아무래도 맨몸 운동이 제일이다. 폰을 열어서 타바타 인터벌 음악을 찾아서 틀어놓고 에어스쿼트를 했다. 흔히 방송에서 많이 소개되는 어중간하게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스쿼트가 아니라 완전히 똥싸는 자세로 앉아 잠시 멈췄다가 빠르게 다시 올라오는 딥스쿼트로 했다. 작년 무릎 부상 이후로 거의 1년동안 딥스쿼트를 하지 못했다. 지난 달에도 몇 번 시도했다가 또 다칠까봐 겁이 나서 완전히는 내려가지 못했다. 근데 어제는 역시나 술기운이 조금 영향을 미친듯 했다. 완전 딥스쿼트로 타바타 인터벌 8세트를 완료했다. 5세트부터 근육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7세트가 제일 견디기 어려워 저절로 속도가 확 줄었지만, 8세트가 되어 마지막 세트라고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났다. 8세트를 마치고 물을 마시는데 온 몸에서 땀이 줄즐 흘러내렸다. 하지만 옷이 젖을 걱정은 없었다. 아까 오버헤드 스쿼트를 마치고 에어스쿼트를 하려고 맘 먹었을 때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반바지를 벗어버리고 맨 몸으로 운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무릎 부상 방지를 무릎 보호대는 하고 있어서 얘들만 땀에 젖었다.


장비의 중요성


나는 약간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거추장스럽게 뭔가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몰라도 굳이 없어도 되는 거라면 그냥 하는 것이 당연하다.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운동할 때 장갑을 끼지 않았다.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굳은살이 배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손이 좀 거칠어져도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장갑을 껴도 당연히 굳은살은 배긴다. 그러니 그게 왜 필요한가 이런 생각이었다.


어느날 계속 굵어지는 굳은살을 칼이나 손톱깎이로 잘라내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장갑을 끼는데 나도 한번 끼고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얇은 운동 장갑을 하나 샀다. 장갑 따위 필요없다는 고집이 얇은 장갑 정도는 한 번 껴볼까로 바뀌긴 했는데, 바로 두꺼운, 소위 말하는 헬쓰장갑을 쓰는 걸로 가지는 않더라. 여전히 조금의 거부감이 작용한 탓이다. 그렇게 얇은 장갑을 끼고 몇 년이 지났다.


최근 거의 매일 철봉에 매달리고 바벨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이용하는데, 굳은살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장갑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처음 생각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두꺼운 헬쓰장갑과 손바닥보호대 등을 검색해봤다. 손바닥보호대는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사용하기 불편한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철봉운동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두꺼운 장갑을 하나 사보기로 했다. 장갑이 도착했고, 철봉에 매달려본 순간 깨달았다. 이래서 장비가 중요하구나. 평소 얇은 장갑을 끼고 매달렸을 때와는 달리 굳은살에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보다 풀업 횟수가 더 늘었다. 바벨을 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분산되어 훨씬 수월하게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철봉과 바벨 운동을 해온 그 긴 시간동안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구나. 적절한 장비는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한가지 장점이자 단점이 더 있었다. 장갑이 두꺼우니 악력이 훨씬 빨리 소모되어 운동을 오래 수행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악력을 더 빨리 길러주는 효과가 생겼다. 평소 육체 노동을 자주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일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따로 악력을 기르기가 어렵다.


내 운동은 고립운동이나 펌핑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코어를 중심으로 전신운동을 하는 편이라 특정 부위를 집중해서 키우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악력을 기르는 운동만은 별도로 집중해서 해야할 것 같다.


SF 소설이 좋아

















어제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SF 작가 김보영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었다. 예전에 [누군가를 만났어] 라는 국내 SF 작가 단편 모음집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 김보영 작가의 소설이 미국 메이져 출판사에 판권이 팔렸다는 얘기였다. SF 팬으로서 기쁜 소식이다. 사야할 책이 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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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북플이 알려준다. 과거 오늘 쓴 글이 3개 있다고. 무심코 살펴보는데, 하나같이 아픈 이야기다. 두 개는 다쳐서 아픈 이야기고, 하나는 마음이 아픈 이야기다. 내게 과거의 오늘은 모두 아픈 날이었구나.

2011년 오늘은 비가 많이 왔나보다. 비를 보며 병든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 글을 쓴 시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출판사 사무실에는 뒤쪽으로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비슷한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담배를 피우며 빗소리를 듣다가 책상 앞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쌍차 노동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떠올렸고, 4대강 공사로 망가지는 자연의 아픔을 떠올렸다. 강정마을 구럼비의 아픔도 당연히 함께 떠올렸다. 당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가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다. 그 후로도 숱한 국가 폭력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해왔다. 최근에 용산참사 피해자 한 분이 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번 그런 이야기들에 화가 나고 또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잊지 않는 것. 그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것 외에는.

2012년에 쓴 글은 책을 포장하다가 종이에 베인 상처를 매개로 내 몸에 유난히 많은 베인 상처들에 대한 글이다. 그날도 기억이 쌩쌩한데, 책 주문을 확인하고 발송작업을 하던 중에 베였다. 창고에 쌓인 책들을 꺼내 분류하고 포장할 때는 대체로 장갑을 낀다. 먼지도 털어내야하고, 벤딩머신 사용 중에 혹시 다칠수도 있으니. 그런데 나는 원래 장갑을 끼면 무슨 일이든 갑갑해서 잘 못하는 편이다. 설겆니 할 때 고무장갑조차 안 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암튼 평소 책을 꺼내 표지를 닦을 때까지만 장갑을 끼고, 이후 포장 작업을 할 때는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하는데, 그날따라 손이 미끄러졌고 다음 순간 피가 주르륵 흘렀다. 결국 피 묻은 책 한 권을 팔지 못하고 파기처분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다음은 2015년에 쓴 글이었다. 신기한 게 며칠전에 그 날 일이 꿈 속에서 재현되어서 재수없다고 생각했는데, 그해 여름에 그 일을 겪었다. 멀쩡히 자다가 술 취한 놈에게 당한 폭력사건. 그 건으로 그 인간에게 몇 십만원 가량 합의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일요일 밤이었고, 밤새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고 월요일 아침을 맞았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집으로 가서 씻고 늦은 출근 준비를 했다.

북플이 알려준 3개의 글이 모두 이모양이라니. 오늘은 과연 어떤 하루가 될까? 아프지 않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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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6-2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는 북플이 4개의 글을 알려오겠네요. 늦었지만 지난 3개의 아픔을 덮는 큰 기쁨의 올해 오늘이 되시기를.

감은빛 2019-06-29 22:24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내년에는 4개의 글을 알려주겠군요. 해마다 계속 글을 쓰면 더 늘어나구요. 앞으로 매년 6월 29일은 알라딘에 글쓰는 날로 정할까봐요. ㅎㅎ

syo님 덕분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Nussbaum 2019-06-3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람이 오면 일단 깜짝 놀라고, 다음엔 내가 이 땐 이랬었구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낯설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

감은빛 2019-07-05 14:05   좋아요 0 | URL
네, 알람 덕분에 오래전에 썼든 글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아요 집착


모든 SNS를 실명이 아닌 덧이름으로 이용하고 있다. 각각 특성이 다르듯 내가 이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가장 많이 쓰는 페이스북은 감은빛으로 이용중인데, 대다수 실제로 아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겪어온 환경운동단체, 문화운동단체, 노동운동단체 그리고 출판사와 현재 활동하는 협동조합까지 부대껴온 사람들이 대부분 친구로 엮여 있다. 그들은 감은빛이란 이름으로 올린 글이 사실은 내가 올린 것이란 걸 아는 사람들이다. 익명성이 통하지 않는 곳. 그래서 이곳에선 공식적인 일정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공간이며, 남들이 올린 홍보성 글들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또 믿고 보는 몇몇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트위터는 초기에 좀 하다가 아예 접속도 안 한지 꽤 오래 되었다. 글자 제한이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나중에는 족쇄로 여겨졌고, 그 짧은 글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인스타그램은 아주 늦게 시작한 편이다. 사실 사진이랑 별로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별로 시작할 이유를 깨닫지 못했는데, 어쩌다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들 사진 구경하는 재미로 이용한다. 인스타는 친구 개념이 아니라 트위터처럼 팔로우를 하는 사람과 대상의 관계라 상대적으로 페이스북 보다는 훨씬 덜 부담스럽다.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각종 SNS가 시간 낭비라는 의견이 많다. 나도 자주 접속하지 않지만, 가끔 들어가서 좀 보다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필요한 경우에만 짧게 접속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우가 있는데, 제일 안타까운 건 좋아요에 집착하는 분들을 볼 때이다. 실제로는 못 뵌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가끔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하는 분들 중에 예전에 출판계에 있을때 종종 어울렸던 선배 영업자가 최근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내용의 글을 연달아 올리셨다. 좋아요을 많이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숫자가 다른 어떤 가치로 전환되는 것도 아닌데, 왜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걸 그냥 혼자 생각만 하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유튜브 운영자라면 좋아요 숫자는 광고 수입 등 돈과 연결되는 문제일 수 있으니, 차라리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좀 우습게 보이더라도 좋아요 구걸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도대체 왜? 이건 그냥 나 좀 인정해 달라는 인정 욕구인 것 같은데, 너무 없어보이는 건 내가 너무 가혹한 건가?


인정 욕구


예전에도 알라딘에 인정 욕구에 대해 몇 차례 쓴 적이 있는데, 나도 인정 욕구가 꽤 강한 사람이라는 걸 자주 깨닫는다. 환경운동단체에 있을 때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에서 학생운동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게 뭐 대단한 감투라고 학년대표를 맡았을 때와 학생회에서 간부를 맡았을 때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환경단체에서 대형국책사업에 맞서 전국단위 행동이 있을 때 두각을 나타내어 주요 일간지 사회면 톱에 사진이 올랐을 때에도. 내가 맡은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주위 사람들에게 그 공을 인정 받았을 때에도 늘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한 편으로 나는 늘 다양한 역할을 총괄하는 일을 해왔다. 열악한 시민단체의 형편 때문에 그랬지만, 한 사람의 활동가가 다양한 역할을 맡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몇 가지일을 동시에 맡아서 해내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때부터 항상 그렇게 일했다. 시민단체를 정리하고 출판사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잡지 독자관리와 단행본 영업과 취재해서 잡지에 글을 쓰는 일과 단행본 책임 편집과 단행본 기획까지 출판 쪽에서는 제작과 디자인 일을 빼곤 거의 다 해봤다. 내가 일해온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은 건, 아마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전체를 종합적으로 경험해본 결과 한 두가지만 해본 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잘난 인간이니까 인정해줘 이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과 깊이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인 듯 하다.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인정받는 지가 얼마나 인정받는 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 이만큼 잘났어. 나 좀 봐줘 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걸 어떻게 천박하지 않게 잘 포장해서 내놓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한계를 깨달으면 겸손해지는 법


아무리 잘난 사람도 한계는 있다. 내가 아무리 잘난 척 해봐야 딱 거기까지다. 어느 분야에서는 혹은 어떤 자리에서는 아무리 잘난 척 하고 싶어도 내세울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게다가 누가 뭘 얼만큼 잘 한다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정말 멋진 강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강의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뻔한 이미지를 우려먹은 평범한 글일 수 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은 겸양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그런 겸손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학교 강의


한 초등학교에서 3일 연속 6회(1회 2교시)의 강의를 맡았다. 혼자서는 도무지 할 수 없어서 내부에서 역할 분담하고 외부에서도 경험이 많은 강사 선생님을 모셨다. 학교 강의가 오랜만이라 느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작년에는 반드시 내가 가야만 하는 강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해도 괜찮은 강의는 모두 넘겨버렸다. 다른 활동가들도 점점 경험을 쌓아 성장해야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강의가 내 강의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맡은 강의였는데, 너무 바쁜 시기라 사전에 준비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강의는 더욱 어려운데, 단어 설명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6회 중에 첫날과 마지막날 각 1회씩 2회를 맡았다.


강의를 맡은 사람 중 한 분은 마치고 나와서 "기를 다 빨렸다"며 무척 힘들어했다. 사실 힘든게 맞다. 2교시를 혼자 계속 떠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학생들을 만나고 오면 오히려 힘을 받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과 반응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이번에는 간단한 강의 평가를 모든 학생들에게 받았다. 내가 맡았던 2개 반의 강의 평가서를 나중에 스르륵 훑어봤는데, 한 학생이 맨 밑에 따로 한 마디를 적어놓았다. 재미있었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반응이 바로 내가 학생들과 만나기를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늘 내가 욕심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좀 더 여유있게 강의를 진행하고, 좀 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텐데, 늘 설명하다보면 조금 더 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자꾸 시간에 쫓긴다. 점심 시간을 앞둔 마지막 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이 여유있게 식사하기 위해 5분만 일찍 마쳐달라고 부탁했는데, 나는 생명의 근원인 탄소 이야기를 설명하다가 오히려 더 늦게 강의를 마쳤다. 그 순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좀 더 노련한 강사였다면 시간 조절을 잘 했을 텐데, 욕심 많고 시간 조절도 못 하는 강사를 잘 못 만나 애들이 밥을 늦게 먹게 된 것이 정말 미안했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워야 하는 법. 다음부터는 꼭 욕심을 줄이고 전달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리라.


장바구니 비우기


언제나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읽을 시간과 돈은 부족하다. 한동안 신간은 동네서점에서 구매하고, 아이들 책과 구간은 알라딘 헌책방에서 구매했다. 예전처럼 여기 알라딘 온라인에서 몇 십만원씩 구매하는 일을 지난 몇 년간 잘 참아왔다.


그러다 최근에 도서상품권을 받은 것이 있어서 보관함을 뒤졌더니, 장바구니에 무려 20만원 이상의 책이 들어갔다. 추리고 또 추려서 간신히 15만원 수준으로 맞췄는데, 계속 결제를 미루고 있다. 책장에는 아직 읽을 책이 넘치는데 또 이렇게 책을 사는 게 과연 잘 하는 짓인가?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지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빨리 장바구니를 비우고 택배를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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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만원어치의 책은 어떤것들인가요? (남이 어떤책 샀는지 궁금한 1人)

감은빛 2019-06-28 18:3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이미지 첨부했습니다.
다시 조정해서 책을 2권 뺐더니 13만원대가 되었습니다.
최종 주문할 때는 다시 더 늘거나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9-06-28 19:1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이렇게 겹치는 게 한 권도 없을 수가 있나요..... ㅎㅎ

감은빛 2019-06-28 19:48   좋아요 0 | URL
정말 겹치는 책이 없나요? ㅎㅎ

다락방님은 소설과 페미니즘 책을 중심으로 보시고, 저는 역사와 과학, 사회과학책을 주로 봐서 그런가요? 페미니즘 책은 가끔 애들엄마 책장에서 훑어보긴 하는데, 정독은 거의 못 하고 있네요.

syo 2019-06-2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저것들 중에 두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네 권쯤 더 읽고 싶네요.
이정도면 겹치는 게 많은 편이죠? ㅎㅎ

다락방 2019-06-28 21:54   좋아요 0 | URL
뭔데뭔데 그 네 권 뭔데요!

syo 2019-06-28 21: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강주룡 포함해서 아래로 여섯 권, 그 안에 읽은 두 권이랑 읽고 싶은 네 권이 다 들어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9-06-28 22:01   좋아요 0 | URL
읽은 건 아무튼 두 권?

syo 2019-06-28 22:05   좋아요 0 | URL
땡!! 과학책이랑 아무튼 외국어요 ㅎㅎ 아직 술은 못 읽었어...

감은빛 2019-06-29 00:42   좋아요 0 | URL
오호! 여섯 권이 겹치다니, 많네요! 과학책과 외국어를 이미 읽으셨군요.

[아무튼 외국어]는 어땠나요?

syo 2019-06-29 07:46   좋아요 0 | URL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도 꽤 괜찮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밝아졌다


요즘 밝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얼굴이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고,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는다. 작년에 혼자 너무 힘들게 일했기 때문에 너무 어두운 분위기로 오래 지냈나보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지낸다. 일터에 사람이 늘었고, 그 두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열심이 움직여줘서 고맙고,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그래도 내 할일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마음가짐이 바뀌니 스트레스는 확실히 덜 받게 되더라.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술과 담배도 줄었다. 예전 같았으면 술 마셨을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니 아마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표정도 바뀌었을 것이다. 예전엔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누굴 만나 반갑게 웃어도 그 표정이 그리 반가워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을 지 모른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재작년과 작년에 내가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관절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그걸 다 술로 풀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상 후 달라진 점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제법 오래 쉬었다. 다만 완전히 쉬었다기 보다는 되도록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맨몸 운동 위주로 종종 시도를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일부러 운동을 쉰 것이 아니라 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두 번의 관절 부상 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원인을 밝히지 못한 불규칙적이고 비정기적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관절 통증이었다.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어깨, 팔굼치 어떤 날은 엄청나게 아프다가 또 다음 날엔 아무런 통증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고, 또 며칠 후에 다시 아픈 현상의 반복이었다.


암튼 그래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 시도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결국 근육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한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4월 초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슬슬 시동을 걸었다. 자꾸 관절이 아프니 겁이 나서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정도 까지 해도 괜찮은지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소위 말해서 내 관절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괜찮네 싶어서 다시 본격적으로 해봐야지 생각한 게 대략 4월 말 경이었다. 


5월은 그 시도와 실제 내 몸의 통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 시기였다. 어쨌든 정형외과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절 통증은 끊길 듯 이어졌고 그때마다 여기에 운동을 하는 것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자꾸 겁이 나고 망설여지는 것이다. 게다가 꽤 오래 쉬었던 까닭에 전반적으로 근력, 지구력, 유연성 모두 많이 떨어져있어서 내가 원하는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다 보면 자꾸 더 관절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부상 이후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사람이 겁을 먹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또 다칠 까봐 혹은 무리해서 운동하다가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제 더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겁없이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몸이라는 걸 깨닫는다. 같은 운동을 해도 젊은 시절과 근육의 성장 속도 자체가 다르다. 무게를 늘리는 속도도 무척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주에 운동을 하면서 이 정도면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 즉 발동을 건 것으로는 성공을 한 것 같다고 느낀다. 계속 겁내던 바벨 운동을 다시 시도했고, 조금씩 자세를 다시 익히고, 조금씩 무게를 올려가기 시작했다.


어제 밤에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했는데, 관절 통증도 전혀 없고, 각 운동 동작들도 이상하게 잘 되었다. 그래서 무게를 좀 올려서 스냇치를 했는데, 그 성취감이 엄청 컸다. 이제서야 드디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느끼는 쾌감,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운동 복장


혼자 살면서 제일 편한 점은 옷을 입지 않고 지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엔 집에서 알몸으로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알몸으로 한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옷이 젖고, 그러면 빨래가 늘어난다. 그냥 옷을 입지 않고 운동하고 땀이 나면 수건과 걸레로 닦고,(옷을 입고 해도 수건과 걸레는 필요하다.) 운동을 다 마친 후에 샤워를 하면 된다.


물론 이건 맨몸 운동 중심으로 할 때 얘기다. 그리고 무릎 부상 이전에 그랬다. 이번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꼭 운동 전에 양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손목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리고 맨몸 운동에서는 무게를 주기 어려우니 발목이나 손목에 각 1kg짜리 모래 주머니를 착용한다. 물론 손으로 할 때는 그것보다 덤벨을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 주로 발목에 착용하고 실내 철봉에 매달린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운동하다가 내 모습이 너무 웃기다 싶었다. 속옷도 입지 않은 알몸에 무릎 보호대와 손목 보호대와 모래 주머니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모습이 웃겼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찍었다가 바로 다시 지워버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혹시라도 이 사진이 유출되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싶어서였다.


요즘은 맨몸 운동은 워밍업으로 하고 주 운동을 바벨이나 케틀벨로 하고 있다. 이때는 바벨과 케틀벨을 드는 과정에서 맨살에 쓸리거나 상처가 날 수 있어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운동복 반바지만 입고 운동한다.


아, 실내 철봉에 매달리거나 바벨을 들 때는 장갑이나 손바닥 보호대도 착용해야 한다. 굳은 살이 박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통증이 없는 건 아니다. 한동안 바벨 운동 대신 철봉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서 늘 손바닥에 열이 나곤 했다. 


홈짐


예전에 실내철봉과 바벨세트를 다소 무리해서 구매했지만, 늘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멀리 핏니스 클럽에 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나는 늘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철봉에 매달렸다 내려온다.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 바로 옆에 있으니까 계속 손이 간다.


단 하나의 단점은 집이 2층이라 층간 소음을 조심해야 한다. 바벨이나 케틀벨을 내려놓을 때 아주 조심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하고, 뛰는 동작 등을 할 수 없다.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버피 테스트를 타바타 인터벌로 하는 것인데, 이 집에선 그걸 할 수 없다. 맨 마직막에 점프하는 동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단점은 거울이 좁고 작다는 것. 맨몸 운동과 프리 웨이트 동작들은 계속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벽에 걸어놓은 전신 거울이 작고 좁다. 체육관이었다면 아마 벽 전체가 거울이었을텐데 말이다.


만약 언젠가 집을 구매하는 날이 오면 바닥을 튼튼하게 대어서 바벨을 쿵 하고 내려놓아도 괜찮게 만들어 놓고, 한 쪽 벽에 거울을 넓게 설치하고, 실내 철봉과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 렉을 구매해놓을 테다. 그리고 또 한 쪽에는 샌드백을 걸어야지. 이상하게 이런 상상은 해도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만 늘 마지막에 돈 문제를 생각하면 씁쓸한 입맛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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