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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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생이 아직 어릴때 아버지는 우리를 재우기 위해 종종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목소리를 좌악 깔고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야기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또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 그리고 '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먼 옛날에'가 반복되었다. 내 기억속에 아버지가 해주신 옛날 이야기가 온전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그래도 무척 재밌어하고 많이 웃었다. 무한 반복 되는 '먼 옛날에'를 들으며 웃다 잠이 들곤 했다.

이제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옛날 아버지처럼 아이에게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 꺼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 흉내를 내었다.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에'로 시작해서 '아주 먼 옛날에'가 무한 반복되었다.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무척 재밌어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똑같은 전개가 반복되면 일단 나부터나부터 지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무렵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단 내가 재밌었다. 아이에게 읽어주니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도 나도 옛스런 멋을 잘 살리고 해학적인 느낌이 강한 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은 이야기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억양과 운율을 잘 살려서 읽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이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을텐데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하고 흥미를 가졌다.

계속 읽어주었더니 나중에는 내용을 다 외웠다. 혼자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읽어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 말하면서 읽었지만, 혼자 읽기도 여러번 하다보니 내용이 바뀌었다. 아이는 그림을 보면서 원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제는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 이야기를 잘 못 기억해서 그렇게 읽은 게 아니다. 아이는 매번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재밌었다. 아이의 상상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을 미처 몰랐다. 옛날 이야기 하나 제대로 못해준 못난 아빠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 나의 옛날 이야기도 진화했다. 나도 매번 상황을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녹슬었던 내 상상력에 조금씩 녹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와 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느 인물을 등장 시키면, 거기에 아이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고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면 다시 아이가 다른 상황으로 몰고 가버린다.

어른의 스승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새삼 그 말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를 깨닫는다. 나는 매일 아이를 보면서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실들을 문득 깨우치게 된다. 소중한 깨달음을 일깨워준 이 책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김용철 작가님 그림이 참 멋지다! 이번에 <너희들의 유토피아>를 읽다가 김용철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이 그림책을 떠올렸다. 마침 예전에 써놓은 글을 알라딘에 등록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옮겨본다. 약 2년전에 적었던 글. 내년이나 내후년쯤 둘째아가가 자라면 또 이 책을 열심히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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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성장도 계속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럴 때면 아이에게 감사하고, 또 가족 모두 무탈해서 감사하고...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아이는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를꺼야!
^^

감은빛 2010-11-25 19:38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덕분에 저도 늘 새롭게 뭔가를 배웁니다.
요즘 아빠들은 다들 책 많이 읽어주는 것 같던데요.
저는 오히려 많이 안 읽어준 편입니다.
책은 주로 아내가 많이 읽어줬죠.
 
이야기로 이해하는 5대 종교 이야기
지그리트 라우베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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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신론자다. 신이라는 절대자를 믿지 않는다. 혹자는 내가 '빨갱이' 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다. 어째서 사람들은 신이라는 거짓 허상에 목을 매는 걸까? 참 궁금했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서 절에도 다녀보고, 친구들을 따라서 교회에도 다녀봤다. 아무리 이해해보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쵸코파이를 얻어먹으러 주말마다 성당에 다녔다. 말년 즈음에는 드럼을 배워보고 싶어서 다시 교회로 바꿨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리 지겨워도 열심히 성당엘 가봤다. 역시 신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4대 종단 중에서 원불교를 제외하고 다 다녀본 셈인데도,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 그리고 점점 더 강하게 종교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극성맞은 한국 교회 때문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교회에만 다닌다면 천당에 가고,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그런 억지가 어디있나? 그런 목사의 설교는 면죄부를 팔았던 중세시대 성직자들과 뭐가 다른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에 나오면 천당간다고 말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교회에 와서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라는 얘기 아닌가? 주일에 교회에 안나오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설교하는 양반들 참 많이 봤다. 그리고 다들 참 열심히도 교회에 다닌다. 얼마나 생산성이 좋은지 자고 일어나면 교회 십자가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동네를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교회 십자가들을 세어보다가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자꾸만 사업체를 확장하는 우리 목사님들. 참 대단한 것 같다. 뭐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사업체니까, 생산성을 높이려는 사장의 노력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장과 신자들을 쥐어짜는 목사. 닮지 않았는가?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닐것이다. 이 썩어빠진 한국 교회에도 제대로 된 목사님이 당연히 계실 것이다. 실제로 손에 꼽을 정도의 분들을 알고 있고, 그분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막상 단군상의 목을 자르거나, 이슬람 지역에 선교를 갔다가 납치를 당하거나, 붉은 악마의 유니폼 색깔로 트집을 잡거나 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꾸만 모든 교회를 싸잡아 욕하게 된다. 특히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그 분. 내 허락도 없이 나를 하나님께 바쳐버린 그 분이 삽질을 강행하고, 황당한 짓을 반복할 때마다 교회 십자가만 봐도 욕이 나온다.

나는 이렇게 한국 기독교(혹은 개신교)에 대한 불만이 많다. 사실 로마 교황청에서 갈라져나온 여러종파들 중에서 한국적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이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서 참 힘들었다. 이해해보려고 성경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무지 성경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원장선생님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회 신자다. 어린이집 행사를 교회에서 열기도 한다. 아이의 친구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아이가 많다. 어느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왜 우리는 교회에 안가요?' 나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다. 먼저 종교가 뭔지 알려줘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여러 종교 중에 하나인 기독교에 대해 알려줘야 하겠고, 그런 다음에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종교인 한국 교회에 대해 알려줘야 할텐데, 이 긴 얘기를 어찌 들려줘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만족할만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만약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훨씬 더 잘 설명해줬을 것이다. 유대교를 믿는 시몬, 기독교(가톨릭과 기독교 통합)를 믿는 카차, 이슬람교를 믿는 알리, 힌두교를 믿는 랄리타, 불교를 믿는 조남이 학교 숙제로 각자의 종교에 대해 발표 준비를 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세계 5대 종교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종교를 이야기 하는 책이 있다니 참 놀랍다. 

 

 

  

 

 

 

 

 

 

 

 

 

 

 

글쓴이 지그리트 라우베라는 사람이 여섯개의 나라에서 자라서 다섯개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소개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문화를 접하고 살았기에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종교에 대한 쉽고 친근한 설명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두번째 장점은 편안하면서도 정확한 묘사가 일품인 그림에 있다.  모니카 친트의 그림은 느낌이 참 좋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종교에 대한 그림으로 딱 맞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설명과 그림으로 알기 어려운 부분들은 사진으로 보충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명한 각 종교의 성지를 사진으로 찾아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이들이 종교에 대해 편견없이 이해하고, 서로의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하려면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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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갱이가 되기 훨씬 더 오래전부터...'?
푸하하~~
인간이 살다보니 필요에 의해 생긴 게 종교인거지, 종교가 먼저는 아니니까...
ㅎㅎ저도 무신론자이고 또 언제까지가 될 진 모르겠지만...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감은빛 2010-11-25 01:08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무신론자라고 하면,
빨갱이에 유물론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어리석어 보였거든요.
한마디로 건방진 꼬맹이였죠. ^^

2010-11-2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11-25 01:09   좋아요 0 | URL
제가 책 소개를 조금 요상하게 했지만,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특히 이슬람교와 힌두교에 대해서는 모르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2010-11-24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1-24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예쁘네요.
저도 무신론자가 좋고, 또 편하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감은빛 2010-11-25 01:13   좋아요 0 | URL
그림 좋죠!
내용도 꽤 괜찮습니다.
여러모로 참 좋은 책입니다. ^^
 

동생이 둘째를 낳았습니다. 2년전에 첫째를 낳을 때 수술을 했던 터라, 이번에도 수술을 했습니다. 첫째 때 수술하고 나서 몸이 빨리 회복되지 않아서 수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가까운 이들중에 수혈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혈액원의 피를 받았더니, 나중에 부작용이 생겨서 조금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제 피를 받아야겠다고 벌써 한 달전부터 예약을 했더군요. 간이 나빠지면 수혈을 받는 사람도 안좋다고, 간을 잘 관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술도 마시지 말라고 하고, 잠도 일찍 자라고 하네요. 일주일에 3일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그 3번중에 2번 이상은 새벽 2~3시까지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니! 뭐 내가 좋아서 마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굳이 거절하지 못해서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밤에 일찍 자라는 것도 그래요. 술을 안마시는 날은 아내가 일을 하거나, 약속을 잡아서 나가는 날이 많아요. 그런 날엔 제가 6살짜리와 6개월짜리 두 딸을 돌봐야해요. 뭐 첫째 녀석이야 혼자서 뭐든 척척 잘 하니까 별로 돌볼건 없고, 잠자기 전에 씻기는 것만 좀 신경쓰면 되죠. 둘째는 유난히 엄마손을 많이 탑니다. 엄마가 없으면 둘째를 돌보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둘째를 업거나 안고, 집안 일도 시작합니다. 일단 첫째아이 밥을 먹여야 하죠. 둘째는 분유를 타서 먹이구요. 그다음엔 설겆이도 하고, 널어놓은 빨래가 있으면 개어놓고, 하루동안 사용한 아기 손수건은 비누칠해서 빨아놓죠. 그런데 아기가 엄마를 심하게 찾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저 아기를 달랠 방법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거죠.

 

참 이상하죠. 아기랑 보내는 시간이 적은 편도 아닌데, 유난히 둘째는 아빠랑만 지내는 시간을 못견딥니다. 아니 엄마가 없는 시간을 못견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첫째는 그렇지 않았어요. 첫째때는 제가 육아휴직을 받았어요. 엄마가 버는게 훨 나은 때였기에,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집에서 아이랑 지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아빠랑 잘 지냈어요. 1년에 한번씩 엄마가 약 2주간 해외출장을 가도, 아이는 아빠랑 별일없이 잘 지냈죠. 아빠가 복직한 후에도 아빠 사무실에서 놀기도 하고, 아빠랑 같이 회의도 가고, 토론회도 가고, 촛불집회도 가고 제가 일하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땐 그런 일들이 다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일터가 바뀌고 나서부터는 아이랑 함께 다니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아이가 태어나도 육아휴직은 커녕 출산휴가도 맘놓고 쓰기 어렵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많이 보여서 자주 할 수 없는 일이더라구요. 사장님이 없는 일터에서, 사장님이 있는 일터로 옮기고 나서는 모든 일들에 사장님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더라구요. 물론 우리 사장님은 참 좋은 분이셔서 제가 아이때문에 출퇴근시간에 변동이 생기거나, 아예 못나오는 경우가 생겨도 다 이해해주십니다. 딱한번 첫째가 눈병이 걸려서 어린이집도 보낼 수 없고, 엄마도 일때문에 돌볼수 없어서, 제가 데리고 출근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도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아이에게 참 잘 대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전 일터에서처럼 자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더라구요.

 

암튼 첫째는 아기때부터 아빠랑 참 잘 지냈습니다만, 둘째는 엄마가 없으면 무척 불안해합니다. 눈에 안보이면 자꾸 두리번거리며 찾고, 찾다가 지치면 울죠. 계속 울어요.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웁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봐도 소용이 없어요. 제 스스로 지칠때까지 울어야해요. 울다가 지치면 잠이 듭니다. 일단 잠이 들긴 했지만, 아기는 한동안 계속 훌쩍입니다. 간혹 훌쩍이다가 다시 깨서 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계속 안고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안고 재워야하죠. 그런 날엔 집안일은 하나도 못하고 시간이 다 가버립니다. 그사이 첫째녀석은 아기 울음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한쪽 구석에서 놀고 있죠. 녀석을 잘 달래서 씻기고 재워야 합니다. 그럭저럭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면 11시가 가깝거나, 11시를 넘기거나 그렇습니다. 엄마가 돌아왔다면,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밀린 집안일을 해치웁니다.

 

아이 엄마까지 모두 잠들면 대개 12시를 훌쩍 넘깁니다. 저도 함께 잠드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잠들지 않고 컴퓨터를 켜는 날도 있습니다. 낮엔 일터에서 일을하고, 저녁엔 술을 마시거나,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하죠. 결과적으로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은 밤시간 밖에 없습니다. 12시를 넘어야 저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뭐 별로 잘 하는 건 없지만, 욕심은 많은 편이어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 할 책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구요. 자주 돌보지 못하는 블로그도 한번씩 가봐야하고, 낮에 보지 못한 뉴스검색도 한번 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중에 아기가 종종 깨서 울어요. 그럼 잠든 엄마와 첫째가 깨지않고 얼른 달려가서 달랩니다. 한참을 안고 달래야 다시 잠들기도 하고, 아예 깨버려서 엄마가 젖을 물려야 다시 잠들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어떻게 매일 일찍 잠들 수 있나요?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은 밤시간 밖에 없는데, 최대한 밤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니 술도 좀 마셔줘야 하고, 밤엔 책도 좀 읽어야하지 않겠어요. 동생에겐 그 긴 얘길 다 전할 수 없어서 딱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시끄럽다! 가시나야!' 동생이 뭔가 더 쫑알거리기에, 이번엔 좀 더 쎄게 말했죠. '아, 됐다니까! 내 알아서하니까 니는 그리 알아라!'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받기 전부터 술약속이 참 많았습니다. 어째 이번 가을은 거절하기 어려운 술자리가 자꾸만 생기더군요. 일주일에 두세번 거절하기 힘든 술을 마시고나면, 주말에는 또 나를 위한 술을 가볍게 한 잔해야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 법이죠. 그러니 며칠씩 연달아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종종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잡글을 끄적이거나 했죠.

 

마침내 동생의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평일이었기에, 사장님께 미리 휴가를 받았습니다. 먼 길을 왔다갔다 해야하고, 수혈을 해주고나면 당일은 쉬어야할테니 3일 휴가를 받았습니다.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3일씩이나 휴가를 받는 것도 참 눈치보이는 일이었지만, 동생을 위해서 어쩔수없었죠.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전화해서, 이번에는 수혈을 안받아도 괜찮으니, 안와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한 며칠동안 금주를 선언하고 술약속을 모두 거절했고, 밤에 일찍 잠들려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수혈을 안해도 된다니 좀 허탈하더군요. 일단 아기도 보고 싶고, 아기 물건들도 전해줘야하고, 어머니 생신도 있으니 한번은 내려가야 했습니다. 수혈이 필요없다니, 굳이 휴가를 내서 평일에 갈 필요는 없고,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월요일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아직 어린 아기때문에 최대한 여행시간을 줄이느라 KTX를 탔습니다. 이번에 새로 대구에서 경주와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2구간을 개통했다고, 요금을 제법 올렸더군요. 2시간 18분에 간다는 말은 실제로는 거짓말이었습니다. 2시간 18분짜리는 하루에 2대 밖에 운행을 안한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2시간 35분이더군요. 기존 경전철구간(그동안은 대구에서 부산까지 경부선 철로 옆으로 경전철을 깔아서 KTX를 운행했습니다.)을 이용할 때도 2시간 45분이었습니다. 역시 그때도 실제로 2시간 45분짜리는 하루에 몇 대 되지 않았고, 대부분 2시간 55분이거나 3시간이 넘기도 했습니다만, 코레일 주장대로라면 겨우 10분 빨라진 건데, 요금을 그렇게 많이 올리다니 참 황당하더군요.

 

게다가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모두 7분씩 연착이 되었습니다. 그럼 실제로는 예전 노선을 이용할때와 같은 시간이 걸린거죠. 하나도 빨라지지 않았단 얘깁니다. 또 경부고속철도 2단계구간(대구~경주~울산~부산)구간은 산이 많죠. 그래서 노선을 확정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노선을 확정한 후에는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쳤고(지율스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싸웠죠!) 공사기간도 오래걸렸습니다. 산이 많은 곳을 고속철도가 지나가려니 자연히 터널이 많더라구요. 지나가면 다가오고, 또 지나가면 다가오는 터널들, 아내는 터널에 오래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더군요. 저는 예전에 비해 유난히 차체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는 단 3분 빨라진 노선. 그 노선을 위해 파괴된 산과 들, 사라져버린 멸종위기종들 그리고 국민들의 혈세 수십조원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겨우 3분을 빨리가자고 희생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들이 아닌가요? 노태우가 계획하고, 노무현이 착공하고, 이명박이 완공하기까지 고속철도가 완성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은 이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고 자렵니다. 토요일 부산으로 가는 중에 열차가 급정거를 했습니다. 울산역에서 정차하기 전이었죠. 터널을 빠른속도로 통과하던 열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병이 스르르 미끄러져 움직였습니다. 물을 마시다가 잠시 내려놓았던 터라, 뚜껑은 제 손에 쥐어 있었지요. 물병이 미끄러지는 걸 보면서도 저는 잡지 못했습니다. 제 몸도 같은 방향으로, 그리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결국 물병은 아래에 있던 가방으로 떨어지고, 마침 열려있던 가방에 물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급정거를 했는데도, 아무런 사과방송이 없더군요. 승무원에게 좀 따지고 싶었지만, 마침 승무원도 지나가지 않더라구요. 잠시 후에 울산역에 도착해서 안내방송을 할 때도 급정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7분 연착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사과는 안하더라구요. 최종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을 때도 똑같이 7분 연착했다는 말만하고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음악과 함께 녹음한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KTX'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방금 스스로 7분 연착했다고 말해놓고, 연이어 정확한 KTX라고 말하다니 참 우스웠습니다. 그건 서울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정말 우습더라구요. 저 방송을 녹음한 성우는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알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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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아이돌보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처럼 느껴지죠?
저도 셋을 다른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키웠는데요, 특히나 둘째가 참 예민하고 허약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셋째는 두돌때까지 맨날 아파서 문제였구요.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어느덧 막내까지 학교에 보내고, 몸은 좀 덜 고달파졌는데 이젠 기름기 다 빠진 나이먹은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습니다.
일찍일찍 결혼해서 젊을 때 애를 낳고 키우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데....
푸하하~~~샜다 샜어~~얘기가 딴 데로~~

참말로 답답혀요~~~사과 한 마디면 되는 것을..왜케 아껴서 욕을 먹는지?
에효~~고생하셨어요~~

감은빛 2010-11-25 01:04   좋아요 0 | URL
아이 셋을 훌륭하게 키우고 계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러워요!
저와 아내도 둘째가 자주 아파서 참 힘들어요.
물론 아픈 아기가 더 힘들겠죠.
잠든 아기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저 조그만 녀석이 아파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듭니다.
빨리 아이가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또 귀여운 아기가 너무 빨리 자라서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

2010-1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11-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릴 때의 부모들을 보면 아무리 피곤해도 밤 동안의 자기만의 시간을 포기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럴 것 같아요. 육체의 피곤도 풀어야 하지만 정신적 완충제도 필요하니까요.

사과 없는 ktx를 보니 알라딘이 생각나 버리네요.^^;;
말씀대로 그 몇 분을 단축하고자 희생시킨 것들이 너무 크고 깊어서 쓰리고 속상합니다.

감은빛 2010-11-25 01:06   좋아요 0 | URL
아!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마노아님 말씀 들으니 많이 위로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어쩜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단 한마디의 사과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지율스님이 지키고자 했던 천성산과 금정산을 통과할 때,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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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해남 이용석 이경해 김주익 송석창 박상준 곽재규 이현중
2004 김춘봉 정상국 박일수
2005 오추옥 정용품 김동윤 류기혁 전용철 홍덕표 김태환
2006 하중근
2007 정해진 이근재 허세욱 전응재

B급좌파 김규항이 자신의 블로그에 정리해놓은 이름들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불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잃은 23명의 열사들이다. 이해남 열사와 이현중 열사는 세원테크노조 조합원이었다. 이현중 열사는 구사대의 폭력에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을 입은 후 사망했고, 이해남 열사는 극심한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분신했다. 이경해 열사는 제네바 WTO 본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다가, 멕시코 칸쿤에서 할복을 시도하여 죽음을 택했다.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는 한진중공업 조합원이었다. 김주익 열사는 35미터 고공크레인 위에서 129일 동안 농성을 벌이다가 크레인에 목을 매고 자결했다. 곽재규 열사는 지하 11미터 도크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송석창 열사는 국민연금관리공단노조 조합원이었고,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었다. 박상준 열사는 화물연대 포항지부 조합원으로,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음독, 자결했다.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었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김춘봉 열사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였고,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공장에서 목을 매고 자결했다. 정상국 열사는 버스 노동자였으며, 해고와 노동탄압에 저항하며 음독, 자결했다. 박일수 열사는 현대중공업 내에서 사내하청협의회를 조직하다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오추옥 열사는 여성농민회 소속으로, ‘쌀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정용품 열사는 한농연 회원으로, 쌀수입개방 반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김동윤 열사는 화물연대 회원으로, 유가인상과 유류보조금 압류 등에 저항하며 분신했다. 류기혁 열사는 현대자동차 파견노동자였으며, 노동탄압에 저항하며 목을 매고 자결했다. 전용철 열사와 홍덕표 열사는 농민회 소속으로,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했다. 김태환 열사는 레미콘 노동자로, 사측의 대체투입 차량의 돌진에 치여 사망했다. 하중근 열사는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경찰의 폭력에 뇌 손상을 입어 사망했다. 정해진 열사는 인천전기원 노동자로, 단체협약체결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이근재 열사는 노점 노동자로, 고양시의 노점상 폭력단속에 항의하며 자결했다. 허세욱 열사는 택시 노동자로,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 전응재 열사는 택시 노동자로, 택시 노동자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2008 이병렬
2009 이성수, 윤용헌,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번에는 이명박 정권동안 목숨을 잃은 열사들이다. 이병렬 열사는 공공노조 조합원으로, 촛불집회도중 분신했다. 이성수 열사, 윤용헌 열사, 이상림 열사, 양회성 열사, 한대성 열사는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에서 생존권 투쟁 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40년이 지났다. 1970년과 2010년 강산이 네 번 변하고도 남을만큼 시간이 지났건만,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위에 언급한 열사들의 이름을 가만히 되새겨본다. 


이 책은 열사 40주기를 기념하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 영희> 이렇게 네 출판사가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각 출판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내용을 채워서 제각각 다른 형식이다. 레디앙은 전국 각지에서 ‘전태일’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내용 전개가 좀 산만하다. 하지만 글은 충분히 재밌다. 후마니타스는 나태일과 외계인이 주인공이고 전태일이 잠시 등장하는 만화를 넣었는데, 만화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참신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삶이 보이는 창은 유일하게 두 꼭지를 실었다. 청춘일기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 기획의도는 참신하지만, 발췌해서 넣은 느낌의 일기들이 너무 제각각 놀아서 산만하다. 무슨 말을 하고픈지 잘 모르겠다. 청춘수다는 말 그대로 청춘들의 대담(혹은 좌담)을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수와 영희는 하종강 선생님이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노동백과사전을 실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를 보는 것 같다. 만화와 대담기사가 실려서 그런 것 같다. 다양한 시도와 참신한 기획은 다 좋은데 전반적으로 구성이 너무 산만하다. 무려 4개의 출판사가 참여했다는 의의가 퇴색되는 느낌이다. 아쉽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하종강 선생님의 노동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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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8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 리뷰보고,저도 이 책 주문했어요.
산만하여 퇴색되는 느낌이군여,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책을 꼭 읽어줄거예요~^^

감은빛 2010-11-23 13:23   좋아요 0 | URL
아, 댓글 확인이 많이 늦었네요.
지금쯤 읽어보셨겠는걸요.
이 책 기획단계에서부터 소식을 듣고,
어떤 책일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 실망했어요.

그래도 여러모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양철나무꾼님의 평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
 

 금요일에 손가락을 다쳤다. 급하게 발송할 책을 포장하다가 종이에 베었는데, 그냥 살짝 베인 게 아니라 폭 2밀리에 길이 7밀리정도 반달모양으로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아니 어쩌면 종이에 베인게 아니라 뭔가 더 날카로운 것에 다친건지도 모르겠다. 다친 순간에는 약간 뜨끔하고 말았는데, 워낙 맘이 급해서 포장을 서두르다가, 포장용 박스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보고, 그제서야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걸 발견했다. 뜯겨나간 살점의 가장자리가 떨어질 듯 말듯 붙어있고,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온다. 행여 책에 피가 묻을까봐, 얼른 휴지를 찾아서 닦았다. 휴지를 상처에 감아매고 포장을 서둘렀다.

평소 '책 포장의 달인'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내가 포장 작업중에 손을 다치다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써야하는 말인가보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평소처럼 했다면 큰 실수없이 포장을 마쳤을 텐데, 무슨 일이든 맘이 급하면 이렇게 사고가 생기나보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기륭(구 기륭사옥앞 골목)에서 문화제를 열었다.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있었고, 영화상영(애니 포함)도 있었고, 마당극도 있었고, 먹거리 판매(물론 술도)도 있었다. 여기에 책을 판매하는 가판도 열렸다. 인문사회과학도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들에서 책을 후원받아 아주 싼 값에 팔고, 그 판매금은 전액 투쟁기금으로 후원하기로 했다.

우리 잡지 과월호도 좀 추려서 보내고, 근처에 있는 출판사에서도 책을 실어다 주기로 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을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책 주문이 들어왔다. 금요일이라서 오늘 꼭 보내달라고 한다. 빨리 기륭에 책을 갖다주러 가야하는데, 주문이 들어온 책도 오늘 꼭 보내야하니, 빨리 포장을 해놓고 택배아저씨께 연락을 드려야 했다. 급한 마음에 책 포장을 서두르다가 결국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이어진 기륭 문화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잡지 과월호가 인기리에 판매되었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다. 금요일 낮과 토요일 저녁에 한동안 문화제에 참석했다. 아주 오랫만에 몇몇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때는 열심히 참여했었는데, 이렇게 인사를 나누다보니, 새삼스레 한동안 내가 얼마나 기륭문제에 무심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한쪽에서 숯불에 양미리를 구워서 판매하고 있었다. 알이 꽉 찬 양미리 너댓마리에 만원. 막걸리 한 병에 이천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다면 좀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맛있는 양미리와 막걸리를 걸신 들린듯 먹어치웠다. 차를 안 갖고 왔더라면 막거리와 함께 좀 더 먹었을텐데, 이 맛있는 안주를 두고 술을 한 잔 밖에 못 마신다는게 무척 아쉬웠다. 

토요일 저녁엔 영화 '반두비'를 보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제대로 된 스크린이나 스피커 없이 보는게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그럭저럭 볼 만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직접 나와주셔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셔서 좋았다. 비록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앉아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집중해서 재밌게 영화를 보았다. 

기륭에서 열리는 마지막 문화제. 1900일이 가까운 시간동안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벌여온 생존권 투쟁이 그 막을 내렸다. 비록 200명이 시작한 싸움에서 복직한 사람은 10명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승리가 주는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기륭의 6년만의 승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의 장기투쟁사업장들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조금만 더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쌍용자동차 동지들의 경우도 뿔뿔이 흩어졌던 조합원들이 다시 뭉쳐서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막거리와 양미리를 좀 더 팔아줬어야 하는데 말이지. 하필 차를 갖고 간 것이 안타깝다. 

영화 '반두비'를 보고나서 김성만 동지가 공연으로 마지막 무대를 빛내고 있을 무렵, 먼저 자리를 떴다. 이제 더이상 그 골목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륭 조합원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그래도 밝아보여서, 씁쓸했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6년 동안의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을만큼 복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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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흥겨운 축제였을거 같아요.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축제이기도 하고.
양미리와 막걸리라... 좋은데요.

그런데, 첫 문단의 손베이는 장면,, 으으, 너무 생생해요.
그렇게 베이는거 진짜 아프잖아요. 빨랑 나으세요!

감은빛 2010-11-17 03: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그대로 기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축제였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고생했던 조합원들 앞에서는 마냥 즐거운 척 해습니다.

다친 날이랑 그 다음날까지 무척 아팠는데,
아내의 배려 덕분에 이삼일 설겆이에서 해방되었더니,
일요일부터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선인 2010-11-1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륭과 함께 하시는 날들, 잘 읽고 있었어요. 댓글을 못 단 건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거에요.

감은빛 2010-11-17 03:09   좋아요 0 | URL
죄책감이라뇨?
저도 한때 열심히 했지만, 그 후로 한동안 손놓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몫이 있잖아요!
조선인님께서 한미FTA(그 이전에는 제가 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국면부터
이번 4대강사업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목소리를 내어왔던 사실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 겸손하신거 아닌가요?
이러시면 제가 민망해지는걸요!!

비로그인 2010-11-1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안녕이라고 말하고 잠수탔던 뇨자...여기 짠 나왔는데요, 손가락 다친 페이퍼로 절 반겨주시는 거예요?ㅠ
병원엔 가보셨어요?
에구에구~~~

감은빛 2010-11-17 03:14   좋아요 0 | URL
와! 마기님! 무척 반갑습니다!
마기님 소식이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사실 트위터로 짧은 소식이나마 주고 받았던 기억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

병원갈 정도로 다친건 아닙니다.
한 삼사일 부지런히 소독하고, 약발라서 많이 나았습니다.
(무엇보다 설겆이에서 해방시켜준 아내 덕분에 빨리 나았습니다.)

2010-11-1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곳은 제가 아는 분들이 오시는 곳이네요.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감은빛 2010-11-17 16:1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노이에자이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