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멍하고, 목이 붓고,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났다. 올해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좀 컨디션이 나쁘거나, 목이 아프거나 한 적은 있었지만, 다행히 잘 넘겼다 싶었는데, 결국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올해 처음‘ 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올해가 이제 이틀 남았네. 아니 오늘은 이미 절반 이상 지나가버렸으니, 하루 남았다고 해야하나? 하루를 남겨놓고 감기를 걸려버리다니! 게다가 제일 짜증나는 코감기라니!

오늘 애들이 오는 날이다. 큰 아이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저녁에 오기로 했고, 작은 아이는 아까 와서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나는 이불을 둘둘말고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불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겠다. 가스요금이 무서워 혼자 있는 날엔 거의 켜지 않는 보일러도 작은 아이가 왔다는 핑계로 켜뒀다. 그러고보니 간밤에 술먹고 새벽에 들어와서 보일러도 안 켜고 춥게 자서 감기에 걸린건가? 이제껏 잘 버텼건만, 왜 하필 오늘, 애들 오는 날.



어제 지른 책들이 도착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별로 읽지도 못하면서, 자꾸 사기만 한다.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책을 많이 정리해서 책장에 여유를 만들어뒀었는데, 벌써 책장이 꽉 차서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졌다. 바닥에 쌓인 책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저걸 다 언제 읽으려나. 예전엔 책이 오면 기분좋고 설레였는데, 왜 오늘은 기분이 별로냐? 이것도 몸이 아파서 그런건가?

애교

어제 밤 친구를 만나러 나가다가 길에서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두 사람 다 작은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방과후협동조합 엄마들이다. 그 둘은 아마도 의료사협 모임에서 술을 한 잔 한 듯, 기분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후배랑 2차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다른 친구를 만나 술을 더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둘 중 하나가 ˝술 마시러 가는 거죠? 우린 술 마시고 들어가는 중˝ 이라고 말했다. 근데 그 말투가 참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애교 섞인 말투라고 해야하나? 우린 잠시 몇 마디 얘길 나누고 금방 헤어졌는데, 그 애교 섞인 말투가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러고보니 몇 몇 여성들이 애교를 부린다고 느낀적이 있다. 왜 내게? 아니, 당연히 날 이성으로 느껴서 애교를 떠는 거라고 착각한 건 아니다. 그저 왜 이 타이밍에, 왜 나한테인지 궁금할 뿐이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좀 친한 사람에게 그러는게 아닌가 싶었다.

며칠 전 만난 어느 여성은 예전에 일했던 단체 선배였는데, 뭔가 도와달라고 해서 시간을 내서 만났고, 끝나고 일어서는데 애교 섞인 말투로 인사를 건네왔다. 그 단체에 일했던 게 꽤 오래전이니 알고 지낸지 제법 오래되었는데, 그런 말투는 처음 들었다. 그 말투를 듣자마자 나와도 친분이 있는 그의 남편이 떠올랐다. 이 사람도 자기 남편에게는 자주 애교를 부리겠지. 최근에도 회의자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그는 평소 내게 꽤나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당연히 개인적인 친분을 맺을 일이 별로 없었고, 늘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암튼 그 애교 덕분에 이 사람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선배 활동가 한 사람은 50대 여성인데, 자주 애교 섞인 말투로 말을 건다. 대체로 장난인데 아주 귀여운 척 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도 여자구나 싶은 생각. 이 선배는 가벼운 스킨쉽도 잦은 편이다. 사무실에서 오가다 마주쳐 잠시 얘길 나누다보면 굳이 내 손을 잡고 말을 하기도 하고, 같이 술 마시고 떠들다가 툭툭 치거나 슬쩍 껴안기도 한다. 당연히 오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라면 어쩌면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같은 층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활동가는 일 때문에 자주 만나기도 하고, 오가다가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이 여성은 목소리가 작고 가늘다. 말투도 조용조용하고, 마치 수줍은 듯한 느낌이다. 한번은 회의를 마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평소와 같은 조용조용하고 수줍은 듯한 말투가 아니었다. 평소 말투가 이것일테고, 내가 늘 들었던 그 말투는 사람들 앞에서 나오는 말투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뭔가 작은 부탁을 하면서 애교 섞인 말투로 말하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건 부탁하느라 그런거니 오해하면 안 되는데, 왠지 오해하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런저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그런 가벼운 애교를 봤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뭔가 부탁할 땐 애교를 부리는 구나. 그리고 가끔 어떤 이들은 친한 사람에게 편하게 애교를 하기도 하는구나 싶다.

내가 사귀었던 여러 여성들은 대처로 애교가 없는 편이었다. 애교를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내게 애교를 부리면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모임에는 나갈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프다고 빠질지, 약속을 지키러 나가서 콧물을 훌쩍이며 앉아 있어야 하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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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서 감기 걸리셨나봅니다.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님, 연말을 맞아 새해인사 드립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면 새해가 됩니다.
좋은 날들이 늘 가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18-01-17 09:17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계속 상태가 안 좋아 해가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답글 겸 새해 인사 남깁니다.

늘 인사 남겨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7-12-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일 좀 지금보다 더 적게 하고 복은 더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

감은빛 2018-01-17 09:1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일 두루 이루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7-12-3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교 있는 여자를 보면, 나와 좀 다른 부류인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애교를 어떻게 보이는 건지 잊어 먹은 1인입니다.
새해에 웃는 시간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8-01-17 09:20   좋아요 0 | URL
페크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페크님도 많이 웃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018-01-15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옹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아주 피곤하고 초췌한 상태였다. 벌써 2주 이상 붙들고 있던 교정원고와 프로젝트 보고서와 각종 회의자료 등 행정업무들이 엄청 쌓여있었다. 이틀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밤을 새웠던 탓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갈아입지 못한 옷에서는 담배냄새와 홀아비 냄새가 나는 듯했다. 


아니 그가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와 "오빠, 진짜 오랜만인지?" 라고 묻고,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 포옹하려고 팔을 벌리기 전까지, 내 상태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거북이 자세로 목만 잔뜩 내민 채, 멍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내 눈이 충혈되었는지 어떤지 신경도 못 쓰고 있었다.


그가 웃으며 팔을 벌려 포옹하려 할 때, 나는 순간 조금 멈칫했다. 일단 그가 이 사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온 것부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10년? 까지는 아닌 것 같고, 아니 거의 10년 다 된 것 같은데. 그해가 2008년이었던가? 2009년이었던가? 암튼 거의 10년만에 만난 그는 하필이면 이틀 연속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바쁜 날, 자판을 두드리느라 정신 없는 순간에,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에 등장했다.


예전에 한창 친했던 시절이었다면 그가 포옹하려고 팔을 벌렸을 때, 망설임 없이 안았을 것이다. 비록 그때 그는 여성이 아니라 친한 동생이었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지금 그가 내게 여성이란 뜻은 아니고 그저 그 긴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어색함이 생겼다고 해야할까? 나는 선뜩 그를 포옹하지 못하고, 조금 망설였다. 


그 찰나의 순간, 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혹시 내 몸에서(혹은 옷에서) 냄새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담배냄새라면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홀아비 냄새 같은 게 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짧은 순간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가는 자세에서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가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아주 짧은 순간 멈칫했을 때, 그만큼 먼저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두어번 어깨를 토닥였다가 떨어졌다. 어색한 내 팔만 제대로 그를 꼭 안아주지 못하고 어깨에 살짝 걸쳐졌다가 떨어졌다.


그 목소리, 그 표정, 그 웃음, 그 말투. 그는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는 듯했다. 마치 마지막으로 만났던 바로 다음 날 그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그는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제서야 내 얼굴에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떠올랐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디어 가셨다.


"오빠, 하나도 안 변했네. 옛날 그대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먼저 했다. 나는 이미 흰 머리도 많고, 많이 늙었단 얘길 종종 들었던 터라 사실대로 말해도 별로 충격받지 않았을텐데, 게다가 그날 따라 더욱 피곤하고 초췌한 상태였기에, 그의 말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1초가 급할만큼 바쁜 시간이어서 인사를 나누자 마자 나는 조금 초조한 기분이었다. 그와 그간의 소식을 나누며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날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내 눈치를 보며, 잠깐 시간 내줄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지금 정말 바쁜 순간이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그는 알겠다고 말하고 돌아서 사무실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건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곧바로 다시 컴퓨터 화면을 향해 앉았다.


한 10분 아니 20분 정도 지났으려나, 무지 급한 건 하나를 해결하고,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아나섰다. 한 회의실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일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 때문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속해 있는 건물을 찾아왔고, 여기에서 내가 협동조합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랬지만,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여기 오는 길에 온 김에 나를 만나 같이 이 일을 얘기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암튼 단지 거의 10년 만에 만나 수다나 떨려고 나를 찾았던 게 아닌 것만은 맞다.


네 가지 이유


그가 찾아오고 며칠 후에 한 후배랑 술을 마셨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강의가 있었고, 한참을 떠들고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이미 식당은 다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고, 집에 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곤하고 지친 기분이었다. 뭔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술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함께 먹고 마셔줄 사람이 필요했다. 가끔 부르곤 했던 후배들은 그날 따라 다들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바쁘겠지. 한창 바쁜 시기니까. 그러다 생각난 한 후배에게 연락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형이 웬일이슈? 전화를 다 주시고." 라고 퉁명스럽게 받은 녀석에게 오늘 시간 되냐고 물었더니, 일이 있어서 멀리 와 있고, 아주 늦게 끝날 거라고 했다. 이 녀석도 안 되는구나 생각하고 포기하려다가 한 마디만 더 했다. 오늘 꼭 술을 마셔얄 할 이유가 4개 있어. 함께 마셔주면 좋겠어. 오면 그 이유를 말해줄게.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잠시 고민했던 듯 다시 연락이 와서 곧 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오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우린 약속 장소를 정했다. 녀석이 도착하기까지 1시간 가량 할 일이 없었다. 어딘가 먼저 들어가서 배를 채우고 싶었지만, 마땅히 가고 싶은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걸어다녔다. 그렇게 다니다가 먹고 싶은 게 보이면 그냥 들어가야지 싶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할 때까지 1시간 동안 나는 그저 돌아다니다가 지하철 역 앞으로 돌아왔다. 정말 배가 고파 마지막 몇 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그를 만나 연어랑 참치에 소주를 마셨다. 그는 나름 예의를 차리느라 곧바로 4가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실 짧은 순간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지만, 그 4개의 이유는 다 사실이었다. 억지로 만든 것은 아니란 뜻이다.


4개를 한번에 다 말해버리면, 녀석이 가버릴까봐 하나 말해주고, 한참 다른 얘길 하다가 소주 한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다른 이유를 말해줬다. 밤은 깊어갔고, 접시의 연어와 참치회는 다시 채워졌고, 소주병은 쌓여갔다. 마지막까지 하나의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이제 말해주지 않으면 가겟다고 선언해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앞의 다른 이유들은 그저 그날과 최근의 내 기분과 관련한 이유였다. 그날만큼은 꼭 먹어줘야 할 나름의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앞의 것들과는 좀 달랐다. 꼭 그날은 아니었지만, 그때 즈음이 이혼한 지 2년째 되는 시기였다. 


정확하게 이혼한 날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그 날이 뭐 중요한가? 이미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을 부부라는 애틋함이 없이 살아왔고, 벌써 오래전부터 별거와 이혼을 고민했고, 이혼 수속만해도 3달이나 걸렸던 것을. 사실 이혼은 이미 가정법원에 서류를 접수했던 때에 결정난 게 아닌가. 그러니 이혼 수속이 완료된 날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찬 바람이 불고, 옆구리가 시려운 어느 즈음이라 여기면 될 일이다. 그래야 술 마실 핑계가 더 생길 게 아닌가! 


그때까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같이 술을 마시던 녀석이 갑자기 진지해지더니, 나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술자늘 비웠다. 같이 슬퍼해주겠다는 의미였을까? 하지만 것도 잠시 녀석은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근데 그게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인 건 알겠는데, 같이 슬퍼해줘야 하는 거유? 아님 축하해줘야 하는 거유? 그걸 모르겠네." 녀석의 말에 나도 크게 웃으며, "글쎄 말이다! 나도 모르겠네. 둘 다 해주라!" 라고 받았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접시는 비워졌고, 술병은 쌓여갔다.



 













요즘 책을 계속 사고 있다. 읽는 속도는 엄청 느린데, 자꾸 사기만 하니, 읽지 않은 책들이 엄청 쌓인다. 매일 야근 아니면 술이니, 책 대체 언제 읽나? 어제도 책을 들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가 얼마 읽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물론 당연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 전에 술을 마셨다.


오늘은 학교 강의와 보고서 발표 때문에 정장을 입고, 그 위에 새로 산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 지난 번 제주에서 엄청 떨고 온 이후로 꼭 코트를 사리라 맘먹었었다. 옷 고르는 센스는 갖지 못한 덕분에 어지간하면 비싼 옷을 사지 않으려 한다. 비싸게 주고 샀다가 맘에 안 들면 정말 후회되니까. 그래서 싸면서도 나름 괜찮은 스타일을 골랐다.


오전부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오후 늦게 모든 외부 일정을 다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어, 정장 입었네?", "무슨 일 있으세요?" 난 그저 웃으며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요." 라고 답했다.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은 날엔 데이트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데이트는 커녕 저녁도 못 먹고 야근하다가, 일하기 싫어서 이렇게 쓸데없는 글을 두드리고 있다. 에이, 일도 잘 안되고, 집에 가는 길에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이불 속에서 책 읽는 시늉 하다가 잠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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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밤, 슬픈 노래와 기억들


지난 일요일 낮에 발전소 부지 답사를 가느라 집을 나서야 했다. 전날 토요일이었으니, 당연히 술을 마셨고, 제법 많이 마셨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덕분에 일요일 오전은 완전히 뻗어 있었고, 알람이 아니었다면 시간 맞춰 일어나지 못할 뻔 했다. 물론 술에 취했어도 새벽에 잠들기 전, 알람을 맞춰두는 걸 잊지는 않았다.


함께 간 이사님들 중 한 분이 계속 내게 주말에 일을 시켜서 미안해했다. 그냥 한 번 말하고 말았으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여러번 반복해서 말했고, 심지어 재미없는 비유까지 들어가며 말하기에, 정말 의식을 많이 하는 구나 싶었다. 뭐, 주말에 일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무척 추운 날이어서 밖에서 오래 있는게 좀 싫었을 뿐이다. 추위는 정말 싫으니까.


사실 일일 많이 밀려있었고,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마쳐야 할 일들이 있어서 답사를 다녀와서 사무실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추위에 강한 바람에 벌벌 떨면서 몇 시간을 보냈더니, 따뜻한 방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사님들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가야지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발길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혼자 있는 날엔 거의 켜지 않는 보일러를 켰다.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저녁도 안 먹고 잠들었다.


잠에서 깬 건 밤 10시 반쯤이었다. 씻고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선 건 11시가 넘었을 때였다. 우리 동네에서 사무실로 가는 버스 막차가 이미 끊겼을 시간이었다. 시외에서 넘어오는 좌석 버스가 있긴 한데, 배차 간격이 길었다. 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추운 날씨에 오래 기다려야 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는데, 이미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술집들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먹어야지 맘 먹었다. 일단 사무실까지 걸어가겠다 맘 먹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산 헤드폰이 없었다면 걷겠다고 마음 먹지 않고, 그냥 택시를 잡았을 것이다. 살을 에이는 바람으로부터 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으니 사무실까지 약 30분 거리도 걸을만하다 여겼다. 폰에 노래가 많지만, 최근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에는 유독 슬픈 노래가 많았다. 겨울이라 유난히 옆구리가 시려서 그런 건지, 자꾸 외롭다 느껴지고, 슬퍼지는 감정 때문일까. 요즘 슬픈 노래를 많이 듣는다. 그중엔 실제 누군가와 헤어졌던 기억과 곧바로 연결되는, 나에게는 금지곡이나 마찬가지인 노래들도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슬픈 노래를 들으며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내 가슴을 뛰었던 게 처음이라 어쩔줄 몰라했던, 수줍었던 소년이었던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성과의 헤어짐부터 짧거나 길었던 만남들이 무작위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곱씹다보니 좋았던 기억들 보다는 아쉬웠던, 안타까웠던, 후회되는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그때 그러지 말았으면 좋았을텐데,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밤 길을 걸었다.


조금 놀랐던 건 어떤 특정한 순간과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여성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와 대학교때 짧게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꺼번에 다 떠올려 보려고 애쓴 적도 거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름 뿐 아니라 좋았던 혹은 아쉬웠던 시간들도 서서히 잊혀지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직 기억이 남아 있을 때 기록을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과연 그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시도한다고 해도 벌써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거나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연애 다운 연애로 기억하고 있는 그 긴 머리의 그녀와의 즐거웠던 순간들. 그녀가 내게 장난을 치거나, 가벼운 스킨십을 하거나, 밤새 수화기를 붙들고 떠들었던 그 시간들이 마치 내 상상이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녀가 어떻게 내 가슴에 비수를 꽂듯이 상처를 주고 돌아설 수 있었을까? 아, 물론 내가 받은 상처는 그녀에게 직접 받았던 건 아니었다. 그녀의 친구에게서 받았었다. 한동안 그 친구의 말과 그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녀 본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었을 거라 여겼지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정말 그랬을까? 그녀 역시 그런 생각이었지만,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해 친구에게 시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요일 밤, 추운 겨울 밤, 차가운 바람에 맞서 사무실로 걸었던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사무실 근처에서 컵라면을 사고, 텅 빈, 어두운 사무실로 들어왔다.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최신 유행 팝송을 틀어서 기분을 바꿨다. 일을 해야 했다. 더이상 슬픈 생각에 빠져 있을 순 없었다. 밤새 보고서 하나를 마무리하고 맞은 아침은 상쾌했다.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안면 인식 장애


얼마 전 전국에서 에너지 활동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그 시간에 다른 회의가 있어서 그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선배님이 전화해서 늦게라도 좋으니, 회의 마치고 꼭 오라고 당부했다. 거절할 수 없어서 알겠다고 답했고, 그날 긴 회의를 마치고 거의 다 끝나가는 그 행사에 갔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최근 제주도에서 내 발표를 들었던 사람도 아는 체를 해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한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하길래, 나도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짜내도 이 여성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 후 이 여성이 내게 그동안 잘 지냈냐고 물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못 만났나보다. 언젠가 강의를 갔을 때, 지역 담당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암튼 기억은 나지 않았다. 덕분에 그간 누군가를 알아보지 못해 곤란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사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떠올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제일 심한 사례가 엄마와 여동생을 못 알아본 일이었다. 동생은 회사 다닐때 화장을 진하게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에 동생이 타고 있었다. 내가 손잡이를 잡고 서있던 위치에서 조금 뒤에 앉아 있었다. 동생은 내가 버스에 오를 때부터 나를 알아봤고, 내가 자신을 쳐다보면 아는 척을 하려 했을 것이다. 나는 얼핏 스쳐보았을테지만, 동생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 버스가 종점 근처인 우리 집 앞까지 와서 내릴 때까지. 아니 버스를 내려서도 동생이 뒤에서 내 등을 짝! 하고 때리며, "오빠야!" 하고 부를 때까지 못 알아봤다. 아니 목소리는 분명 동생 목소리임을 알아봤지만, 그 화장한 얼굴이 동생임은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챘다. 


엄마를 못 알아본 것도 비슷하다. 휴일이었고, 내가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 엄마는 시장을 가셨다. 집으로 전화해서 짐이 많으니 시장으로 나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옷을 주워입고 시장을 향했다. 재래시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엄마를 보고서도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옷이어서 그랬을 수도, 엄마 역시 집에서와 달리 조금은 화장을 하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암튼 못 알아봤다.


언젠가 전유성씨의 딸이 "아빠가 딸을 못 알아본다."고 "아빠한테 90도 인사도 받아 봤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누군가 인사를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라 90도로 인사했다고.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화장하고 다니는 딸들을 못 알아보는 건 아닐까? 제발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소설 쓰기















혼자 살다보니 심심하다는 생각을 요즘 새삼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빠서 심심해 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대개 일주일에 이틀을 아이들과 보내고, 이틀 정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시고, 이틀은 새벽까지 야근을 한다. 나머지 하루 정도를 집에서 혼자 쉬는데, 이런 날은 거의 하루 종일 잔다. 그러니 심심해 할 틈이 없었던 게 맞는데, 요즘은 한창 급한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서 야근을 평소보다 덜 하고, 술 마시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좀 줄어들었다.


혼자 집에 들어가도 역시 술을 마신다. 다만 술 마시면서 뭘 하느냐가 문제다. 대개 영화나 미드를 틀어놓곤 하는데, 것도 자주 보면 볼 것도 없고 지겹다. 책을 읽기도 하는데, 요즘은 날이 추우니 책을 읽다보면 자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건 동시에 하기 어렵다.


어느 밤 혼자 집에 있던 소주와 맥주를 다 마시고, 술을 더 사러 가기에는 이미 많이 마셨는데, 잠은 안 오는 날, 옛날에 썼던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대개 유치했지만, 그래도 더러 재밌는 것도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혼자 골방에 처박혀 있었던 게 몇 달이었던가? 단편을 십여편 완성했고, 쓰다가 만 단편은 그보다 두세배는 많았을 것이다. 장편을 구상하고 시도했던 게 세 편이었고, 구상만 하고 시도도 못 한게 두어편 있었다.


다시 소설을 써봐야지 생각했다.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단편은 뚝딱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간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쌓았으니, 이야기꺼리도 많을 것 같다. 근데 어쩐지 단편은 재미가 없고, 장편을 쓰고 싶다. 이전에 구상했던 걸 다시 살려서 써도 좋겠고,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그 날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런저런 구상도 해보고, 예전에 끄적여 놓은 설정들도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금방 글이 만들어 질 것 같았다.


다음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려고 해봤다. 장편을 하려면 이야기와 인물들을 만들어야 하고,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사나 취재도 해야 하니, 바로 시작할 수는 없고, 그냥 간단하게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봤다. 확실히 예전에 오래 붙들고 있었던 기본이 있어서 묘사는 어느 정도 쓸만 하더라. 다만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그건 역시 쉽지 않더라. 제대로 쓰려면 다시 골방에 처박혀서 노력 꽤나 해야겠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장편 하나 쓰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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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6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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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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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남자친구


"아빠, 냥이 남친 생겼어요."


지난 주 금요일 퇴근 후 아이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겠다고 순대국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한창 사춘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감정을 앞세우게 되는 큰 아이가 건넨 말이다. 냥이는 큰 아이가 자기를 가르켜 칭하는 말이다. 평소 말을 건네면, 짧게 '냥"이라고 답하곤 한다.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네"와 같은 말이다. 


갑작스런 아이의 말에 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아이는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아빠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던 내 말 때문에 알려주는 거라 했다. 그게 언제였는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했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난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무슨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아빠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큰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 그러니까 두세살 즈음에 어린이집에서 사귄 남자친구가 떠올랐다. 아직 이름도 그래도 기억난다. 그 어린이집 아이들 중에 유독 둘이 친했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면 먼저 와있던 그 남자아이가 매일 현관으로 마중나왔다. 머리에 손수건을 얹고(마치 면사포처럼) 둘이서 "딴딴따단~ 딴딴따단~" 노래하며 결혼식 흉내도 많이 냈다고 들었다. 당시 내가 장난으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엄마 다음이 그 남자아이였고, 그 다음이 나였다.


그리고 네살 혹은 다섯살 무렵 어린이집을 옮겨다니다, 다른 어린이집에서 그 둘은 다시 만났다. 남자 아이가 먼저 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다른 곳을 다니다가 중간에 옮겨왔다. 그 둘에 대한 소문은 이미 그 어린이집에 쫙 퍼져 있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 등원 첫 날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이는 낯선 공간에 처음이라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옆 반이었는데, 우리 아이 담임이 옆 반 담임에게 말했던 건지, 옆 반 담임이 그 남자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기대와 달리 서먹하기만 한 두 사람. 거기에 옆 반 담임이 그 남자 아이에게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 마디 했고, 우리 아이 담임이 우리 아이에게 "질 수 없다!"며 힘내자고 했다.


당연하겠지만, 지금 아이는 당시에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그 아이 이름을 들려줘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때부터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떤 기분일지를 가끔 생각해보곤 했다. 막상 그 때가 되니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나이라고 여기는 걸까? 어쩌면 좀 더 자란 후에 들었다면 다른 기분이었을까? 모르겠다.


어제 만난 큰 아이는 남친이랑 10일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얘길 들어보면, 주로 같이 지내는 건 친한 친구들, 즉 여자아이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듯 하다. 그 또래 아이들의 연애란 무엇일까? 아이는 나에게 아빠는 언제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었냐고 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짝사랑은 했지만, 여자친구는 없었다. 여자친구를 사귄 건 고등학생 때였다. 어떻게 만났냐고 묻길래 남녀공학이 아니라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우리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다. 등하굣길, 교회, 독서모임 등이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물론 나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그런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다.


아이는 아빠의 청소년 시절 연애를 궁금해했고, 아빠는 아이의 연애가 어떨지 궁금하다. 서로 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기겠지.


사춘기 딸과의 소통


작년 언젠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평소에 사진과 별로 친하지 않기에, 거의 사진도 안 올리고 가끔 이동시간에 시간 때우러 들어가보곤 한다. 가끔 사진을 올릴 때는 아이들과 놀러갔을 때,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 사진을 찍고, 그 공간에 올려둔다. 얼마전 큰 아이가 페이스북에 가입해서 나에게 친구신청을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가입해서 또 내 계정을 팔로하고 내가 지금까지 올린 모든 사진에 다 좋아요를 눌렀다.


자주 들어가보지 않기에, 그 사실을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혹시 아이가 보면 안 될 사진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말했듯이 내가 올린 사진이 많지 않기에 쭉 살펴보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사진은 없었다. 음식이나 술 사진이 몇 장, 책 사진이 몇 장, 하늘과 구름 사진이 또 몇 장, 나머지는 아이들 사진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랑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인스타 계정도 굳이 먼저 팔로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 길이 없을텐데, 이렇게 먼저 치고 들어와서 친히 내 모든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시니 참 요즘 아이답지 않구나 싶었다. 


최근 잘 쓰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망가져서, 새로 사려고 알아보다가 겨울이라 날이 추우니 헤드폰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친구 하나가 겨울이면 늘 헤드폰을 끼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하나 걸렸던 건 안경을 쓰고 헤드폰을 착용하면 귀가 아플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오래 착용하면 어쩔수 없다 싶었다.


암튼 퇴근 후 긴 시간 동안 온라인 마켓에 올라온 온갖 제품을 검색하다가, 적절한 가격에 디자인도 꽤 괜찮고, 음질도 나쁘지 않은 제품을 골랐다. 다음날부터 외출할 때는 늘 헤드폰을 쓰고 다닌다. 귀가 정말 따뜻했다. 뺨은 살을 에이는 바람에 시려워도 귀만은 따뜻했다. 그래서 일터 건물 계단 큰 거울 앞에서 헤드폰 착용 사진을 찍고, 사진을 올렸다. 올해 겨울 별로 좋은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좋은 일은 이 헤드폰을 산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인가 큰 아이가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아빠 ㅋㅋ 왜 그걸 귀마개처럼 쓰고 다녀요? ㅋㅋㅋㅋ" 뭐 이런 식이었다. 귀마개로 쓰려고 산 거니, 귀마개로 쓰는 거지. 게다가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귀마개라니 좋지 않니? 뭐 이런 답글을 달까 하다가 그냥 뒀다.


그리고 최근 아이들이 오는 날,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보일러를 켜고 따뜻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이가 '그림톡'이란 앱을 깔라고 했다. 그걸 깔고 보니 서로 그림으로 퀴즈를 내고 맞추는 게임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그려서 힌트를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는 천차만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 한번씩 번갈아 퀴즈를 내고 맞추는 방식이라 마치 편지처럼 메세지를 주고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 친구 신청, 인스타그램 좋아요, 그림톡을 통한 퀴즈 주고 받기가 모두 아이가 아빠에게 말을 거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아이는 지금 아빠와 소통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무심한 아빠가 그걸 잘 못 받아준 건 아닌지 뒤늦게 조금 후회가 된다.


아빠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좀 미안하구나! 그래도 경상도 남자 치고는 아이들과 장난도 잘 치고, 자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자부한다. 이젠 조금씩 시간 내서 아이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줘야겠다. 이젠 손 편지 대신 이런 게 소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책


 비록 잘 아는 처지는 아니고, 안면만 있는 정도이긴 하지만, 저자 두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라 출간 당시에도 사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다. 


일상기술연구소라는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 적정기술처럼 우리 일상에서도 많은 기술들이 필요하다. 잘 읽고 이것과 비슷한 기획을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








 이것도 컨셉이 참 좋다 싶었다. 대충 훑어봤는데, 여기에 담은 영화들이 아주 대중적인 작품들은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담긴 수많은 차별 이야기를 묶어보는 것.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빌려서 1번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2번 읽었으니 총 3번 읽었다. 정유정의 장편은 다 읽었는데,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언젠가 이 책과 [7년의 밤]은 자세한 서평을 쓰려고 공책에 몇 쪽에 걸쳐 자세한 분석도 해봤었는데, 결국 바빠서 글을 쓰지는 못했다.


내가 다시 장편소설을 쓴다면 이 책의 구성을 참조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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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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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6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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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12-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무뚝뚝한 경상도남자 아니신 것 같은데요 ^^
저는 아예 제 아들 페이스북에 들어가볼 생각을 안하고 있지만 제 남편은 수시로 드나들다가 (그리고 드나든 티를 내다가) 아들에게 친구 차단 당했답니다 ㅠㅠ

감은빛 2017-12-16 00:50   좋아요 0 | URL
저런! 차단까지 당하셨다니!
저는 정말 아이의 SNS 를 찾아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친히 찾아와서 친구신청하고, 팔로할 줄은 몰랐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17-12-16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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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11월 초에 제주에 짧게 다녀온 후로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또 제주에 왔다. 지난 번 강의를 들었던 분들 중에 제주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분들이 강의 내용이 좋았다고, 전국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포럼에서 발제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일정으로 보면 도저히 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강의는 두 시간이지만, 이번 발표는 15분 내외의 시간이었다. 겨우 15분 발제하러 제주까지 가야 하다니! 하지만 이번에도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이번만큼은 지난번처럼 그냥 바로 올라오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주말을 끼어서, 맘껏 놀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쉬다가 돌아오는 시간 정도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터에 양해를 구하고 하루 대체휴무를 쓰고, 토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일요일에 오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적어도 주말 하루는 아이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 오후 늦게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목요일 오후 발제를 위해 점심때 비행기를 타야 하고, 다음날까지 주체측 포럼 일정에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순전히 주체측에서 제공하는 숙식을 제공받기 위해서였다. 호텔 숙박과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아침과 점심까지 제공받았다. 게다가 금요일 오전 일정인 비양도 지질 트래킹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러모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세 가지가 계획과 어긋났다. 하나는 가능하면 빨리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제주도로 출발해서 좀 느긋하게 쉬다 오자는 생각이었지만, 절대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걸 계획할 때도 짐작하고 있었다. 오히려 출발 당일 오전 비행기 시간을 놓치기 직전까지 일에 매달렸음에도 꼭 마무리지어야 할 일을 세 개 정도 미뤄두고 출발했다.


덕분에 지하철을 갈아타는 내내 열심히 뛰어야 했고, 간신히 수속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두 번의 환승역에서 전력 질주에 가깝게 뛰어, 두 번 모두 승강장에 막 들어오는 열차를 간신히 탈 수 있었고, 덕분에 지하철 어플 계산보다 20여 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비행기가 출발 예정시간을 넘겨 갑자기 항공기 터미널로 돌아가더니 정비를 한다고 몇 십분을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결국 이륙 시간을 보니 거의 1시간 늦게 출발했다. 마침 이날따라 좌석이 가운데 끼인 자리였고, 책이나 음악을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비행기를 정비하는 1시간 동안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걱정만 했다. 행사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도록 비행기를 예약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거리라, 점심을 먹고 행사장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이미 행사 시작 직전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택시타고 바로 행사장으로 가야 했다. 이것이 두번째 어긋난 일이다.


세번째는 옷차림이다. 뭘 입고 가야할지 고민을 좀 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것이라 정장을 입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문제는 정장 위에 입을 옷이 없었다. 파카는 너무 두꺼워 정장 위에 입기 불편하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코트가 있긴 한데, 20년도 더 된 옛날 옷이라 너무 낡았고, 디자인도 좀 그랬다. 가을에 입을 만한 얇은 코트가 있긴 한데,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갈 생각이었다. 지난 강의 때도 그냥 편하게 입고 갔었다. 물론 그땐 겨우 5명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전국에서 1백명 가까이 모이는 행사라고 하니 성격이 다르긴 했다.


마지막에 선택을 바꾼 건 전날 있었던 강의 전 설명 시간 때문이었다. 전날인 수요일 오후에 나는 김익중 교수님 강의 앞에 10분 가량 설명 시간을 얻어서 발표를 할 계획이었다. 보통 얻기 힘든 기회였고, 최대한 잘 활용해야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것인가만 고민했는데, 오전에 사무실을 방문한 이사님이 내 옷차림을 지적했다. 구청장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엄청 많이 오는 자리인데다, 공식적으로 조합을 대표해서 나가는 자리에는 옷차림을 신경써 달라는 요청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장을 입었어야 했나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고 강연 장에 갔는데, 진짜 나를 제외한 청중 1백여명이 모두 정장 혹은 정장에 가까운아주 포멀한 옷을 입고 왔더라. 그제서야 몇 년 입어서 낡은 내 파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 고민 끝에 정장을 입고 제주를 가기로 했다. 날씨 어플을 보니 서울보다는 훨씬 온도가 높더라. 제주는 그래도 따뜻한 남쪽 나라니까 괜찮을거야 싶었다. 반나절 서울에서 추운 것 쯤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 와서도 계속 추웠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특히 오늘 비양도 일정은 흐린 날씨에 정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다른 참가자들 모두 내 옷차림을 걱정했다. 다행히 그새 조금 친해진 한 분이 자신의 목도리를 내게 양보해 목과 얼굴 아랫쪽을 가렸더니 한결 견딜만했다. 사실 내복도 입었고, 겨울 정장이라 몸은 그리 춥지 않았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목과 귀가 특히 시려웠다. 


이젠 이번 일정에서 좋았던 점들을 말해보자.


우선 인맥을 제법 넓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 덕에 전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지난 내 강의를 들었던 제주 지속가능발전위 분들은 손님으로 온 나를 아주 잘 챙겨주셔서 무척 감사했고, 몇몇 지역에서 태양광에 관심이 많다고 특별히 말을 걸어온 분들과도 이틀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어제 점심도 못 먹고 저녁때까지 행사장에 있느라 무척 피곤하고 힘 빠졌지만, 저녁 식사하러 가서 맛있는 음식과 한라산 소주가 한 잔 들어가니 금방 또 활기를 되찾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처음 만난 주위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호텔방을 잡고 나서 다른 참가자들이 끼리끼리 2차를 가는 분위기였는데, 나도 슬쩍 낄까 말까 고민을 좀 했다. 끼어들려면 충분히 낄 수 있었지만, 이미 식사하면서 한라산 1병을 혼자 마신 것이 조금 부담이었고, 처음 만난 분들과의 술자리에서 완전 오버하곤 하는 내 성격 때문에 망설여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양도 들어가는 배를 타야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오늘 아침에 다녀온 비양도는 정말 좋았다. 운이 정말 좋은 편이라고 했다. 어제만해도 배가 뜨지 못할 정도로 파도가 높았다고 한다. 오늘도 파도가 높아서 배가 정말 크게 흔들렸는데, 그때마다 여성들과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높았다. 바이킹을 타는 듯 심장이 철렁철렁 떨어지는 느낌을 1초마다 한 번씩 느꼈다. 암튼 비양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생긴 화산섬이다. 고려시대에 터진 화산으로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있다고 했다. 정말 신기한 걸 많이 봤다. 


잔뜩 흐린 날씨에 엄청난 바람이 끝없이 불어서 제법 추웠지만, 그래도 바다 색깔이 정말 예뻤다.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하늘도 좋았다. 아마 서울이었다면 회색 도시의 회색 하늘이 좋을 리 없었겠지만, 제주여서 그리고 비양도여서 참 좋았다.


천천히 두 시간 가까이 걸으며 다음에 아이들과 놀러와야지 생각을 했다. 달리 같이 올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애들 생각부터 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사실 아이들은 이렇게 많이 걷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급경사 지역이 몇 군데 있었는데, 아이들이라면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울음을 터뜨릴만한 곳이었다. 



비양도에는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가 있는데, 전교생이 2명이다. 5학년 1명, 3학년 1명, 같은 집 아이들이다. 이 학교에는 분교장이자 담임선생님인 교사 1분과 행정교사 1분 이렇게 두 명의 선생님이 계시다. 학생 2명에 교사 2명인 학교. 학교가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참 예뻤다.


비양봉을 내려와 배가 오기까지 시간을 보낸 찻집 주인이 이 두 학생의 엄마였다. 그리고 늦동이 막내가 현재 5살인데, 매일 제주도로 배를 타고 어린이집을 다닌다고 한다. 큰 아이가 분교를 졸업해도 막내가 학교에 들어갈 것이기에 또 학생은 2명으로 유지될 것이다.



비양도를 나와서 마지막으로 일행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헤어졌다. 주최측에 불러주셔서 감사하고,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전했다.


이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제주에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모두 연락을 못하고 지낸지 너무 오래라 갑자기 전화하기가 좀 그랬다. 그냥 올레길이나 좀 걷고, 맛있는 걸 먹고, 근처 숙소에서 푹 쉬면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강한 바람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어쩔수 없이 버스로 일정 구간을 이동했고, 그 동안 숙소를 예약했다. 중간에 내려 올레길을 찾아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해가 따뜻하게 등을 데워주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강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다. 한참을 걷다가 바람 좀 피하고 가야겠다 맘 먹고 여기 커피숍에 들어와서 글을 쓴다.



 

이제 슬슬 나가서 숙소까지 좀 더 걷고, 숙소에 가방을 놓고, 저녁에 뭘 먹을지 좀 고민해야 겠다. 근데 점심때 잔뜩 먹은 탓에 아직도 배가 빵빵하다. 흠 숙소에서 푸쉬업이나 버피라도 좀 해야 저녁을 먹을 수 있을 듯하다.


덧) 어제 밤에 호텔에서 씻고 거울에 알몸을 비춰보고, 멋진 내 몸에 또 한번 반했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쓰냐고 묻던데, 내 눈엔 내 몸이 너무 멋진데 어쩌란 말인가? 심지어 지난 3달 동안 어깨 통증으로 운동을 못 했음에도, 어제 저녁에도 잔뜩 먹어서 배가 꽉 차 있었음에도, 멋있었단 말이다. 물론 배가 꽉 차 있어서 평소보다는 복근이 안 보이긴 했다. (평소엔 제법 선명하게 보인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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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2-01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협재해변에서 바라보는 비양도 뭔가 신비로워 보였는데, 아직 비양도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네요
감은빛님 글 보니 비양도에 가고 싶어집니다

감은빛 2017-12-13 21:52   좋아요 0 | URL
바람이 무척 강한 날이었고, 날이 정말 추워서 덜덜 떨면서 보았는데,
정말 눈 돌리는 곳마다 예술작품이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섬은 작지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chika 2017-12-02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양도에는 너무 오래전에 갔었던지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갠적으로 아이들과 함께가는건 가파도 추천요. 학교도 이쁘고 간혹 개도 보이고 걷기에도 좋고. ^^;;
아, 화산섬에 대한 탐구를 위해서는 비양도가 좋을수도 있겠군요.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모든곳을 다 가보는것이 좋겠지만. 우리네 삶의 환경이라는건. . . ㅠㅠ

감은빛 2017-12-13 21:55   좋아요 0 | URL
사실 지질 트래킹이라고 하나의 생태관광 상품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걸으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가파도 추천 고맙습니다!
당장은 아이들과 움직이기 어려울 듯 한데,
그래도 1년에 한 두번은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싶어요.

그게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추억이자, 일상을 견디는 큰 힘이 되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