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닝구 아이가?


한참 지난 이야기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까 아마 5월 중순이었을 것 같다. 올해는 5월 초부터 더웠다. 그 무렵 교육청 주최 강연을 가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중이라고 말했고, 증거로 5월 초부터 더워지는 바로 이 날씨와 장마가 사라지고 국지적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 단발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스콜)를 들었다. 두 가지 증거를 듣고 거의 대부분의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암튼 시기로 보면 분명 봄이어야 하건만,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었던 5월 어느 날 전국연합회와 산업통상자원부 간의 간담회가 있었다. 정부가 작년 연말에 크게 선언했으나, 실상 큰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재생에너지3020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확인하고 의견을 내기 위한 만남이었다. 평소라면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애'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입고 다니지만, 그날처럼 외부 공식 일정이 있는 날엔 그래도 (흔히 가다마이라고 부르는) 정장을 입고 나간다. 다만 속에 와이셔츠를 입기는 너무 덥고 귀찮아서, 그냥 반팔 흰 면 티셔츠를 받쳐 입는 편이다. 그날도 흰 반팔 셔츠 위에 흐린 하늘색 정장 윗 옷을 입고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앞의 일정이 늦게 끝나서 간담회 시간에 늦어버렸고, 1분이라도 더 일찍 가려고 그 더운 날에 엄청난 거리를 뛰었고, 결국 간담회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서 정장을 벗고, 그냥 면 티셔츠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아마 셔츠가 땀에 젖어 있어서 내 몸이 비쳐보였을 수 있다. 난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셔츠는 얇은 면이었으므로 분명 그랬을 것이다. 간담회를 마치고 전국연합회 임직원 분들이 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연세가 많으신 (최고 연장자이신) 이사장님 한 분이 나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난닝구 아이가?" 그때까지도 하늘색 정장은 팔에 걸어두고 흰 면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이사장님은 손으로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순간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오륙십대 임직원들이 대부분 웃었다. 


난 순간적으로 무척 당황해서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대부분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 여성인 이들 사이에서 거의 가장 어린 편에 속한 (30대 여성이 한 명 있긴 했다.) 나는 좀 많이 부끄러웠다. 그때 50대 중반의 사무국장님 한 분이 "아유! 이사장님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난닝구 안 입어요! 요즘 누가 난닝구를 입어요?" 라고 말해줘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 어깨를 짚었던 이사장님은 "아니 나는 옷이 좀 야한 것 같아서" 라고 말 꼬리를 흐렸다. 그때서야 땀에 젖은 옷 때문에 다 비쳤겠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와 더 부끄러웠다.


나를 알더라도 여름에 나를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이 여름에 날 만나면 다들 놀란다. 옷에 가려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몸이 좋네. 뭐 이런 반응이다. 키도 작고 체격도 작고, 근육의 크기도 크지 않지만, 근 선명도가 좋은 편이고, 승모근과 흉근이 발달한 편이라서 그런 반응을 자주 접한다.


다시 복근 만들기


작년에 큰 맘 먹고 실내철봉과 역기를 구매하고 운동을 좀 열심히 했다. 휴가를 가기 직전이었던 7월 말에 복근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몸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몸은 딱 가을까지만 유효했다. 가을 중반에 어깨를 다쳐 운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팔을 들어올릴 수 없어서 옷도 혼자 입고 벗기 어려웠는데, 어떻게 철봉에 매달리겠나? 어깨 통증은 나을 듯 낫지 않고 계속 이어졌고, 나는 계속 운동을 다시 하지 못했다. 그 동안 만들어놓은 복근이 뱃살에 덮히기 시작했다.


해마다 늦봄이나 초여름부터 여름 휴가 대비 단기 몸매 만들기에 돌입하곤 한다. 근데 올해는 여러 바쁜 일들로 많이 늦어졌다. 여름이 닥치고도 한참 후에야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바쁘다는 핑계 외에도 또 관절 통증에 시달릴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끔 이유 없이 온몸의 관절이 번갈아가며 아플 때가 있다. 어깨와 팔굼치와 손목과 손가락 관절 그리고 골반과 무릎과 발목까지. 어떤 날엔 손가락, 어떤 날엔 손목, 또 어떤 날엔 어깨가, 어떤 날엔 무릎이, 또 다른 날엔 발목이 아팠다. 그래서 다시 철봉에 매달리기가 두려웠고, 역기를 들어올리기가 두려웠다.


어느 날 친구와 밥을 먹고 나왔는데, 친구가 내 배를 보더니 너도 이제 나이 먹으니까 별 수 없구나 라고 한 마디 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바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친구의 말 덕분에 깨달음이 있었다. 난 이제 더이상 젊지 않다. 관절 통증이 두렵다면 젊을 때처럼 스트레칭 없이 운동하면 안 된다. 운동 전과 후에 충분히 스트레칭을 해줘야 조금이라도 관절 통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있던 스트레칭 책을 다시 찾아 꺼내고, 알라딘에서 스트레칭 책을 또 하나 샀다.


그런데 습관은 어쩔수 없나보다. 아니 성격이 급해서 그런가. 자꾸 아주 기본적인 스트레칭만 끝내고 철봉에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스트레칭을 익히고, 습관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아, 그리고 올해도 여름 휴가를 앞 둔 지금 작년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봐줄만하게 복근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속을 비우고 거울 앞에 서면 복근이 선명하지만, 밥을 먹고 나면 또 배가 나온다. 하루 한 번 아침에만 유효한 복근이라니!


무릎 부상


바빠서 이 글을 쓰다 저장하고 또 쓰다 저장해두고 있었는데, 글을 쓰던 중이었던 엊그제 운동하다가 무릎을 다쳤다. 유연성이 크게 떨어져서 그런지 역기를 들어올리는 동작에서 자꾸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았다. 사전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긴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건지, 스내치를 하는 와중에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자꾸 무릎이 아팠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역기를 들어올리는 중에 무릎에 큰 통증이 왔다. 본능적으로 인대 손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부상은 몇 달짜리일까? 작년 어깨 부상은 적어도 7개월은 갔는데. 아니 근데 하필 여름 휴가를 바로 앞두고 무릎 부상이라니. 이 무릎으로 어떻게 애들을 데리고 재밌게 놀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아이는 나 없이 물 속에서 노는 것이 불안한데 어쩌나?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에 출근하기도 무척 힘들었다. 당장 누운 자세에서 무릎을 굽히지 않고 편 상태로 일어나는 일 자체가 힘들었고, 씻고 옷을 입을 때에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엄청난 고통이었다. 제일 아플 때가 계단을 내려갈 때와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다. 우리 집은 2층이고, 우리 사무실은 3층이고, 우리 집은 달동네 꼭대기라서 버스정류장까지 엄청 가파르고 긴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절뚝절뚝 거리며 걷는 꼴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우연히 동네 의료생협에서 활동하는 운동처방사를 만났다. 그 분께 무릎 부상에 대해 말했더니, 초기에는 얼음찜질을 계속하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온찜질을 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평소 운동 중에 어깨나 무릎이 아픈 경우가 많다고 했더니, 무릎을 잘 다치는 사람은 다리 근육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했다. 대퇴부 근육은 많은데, 뒤쪽 햄스트링쪽 근육이 약하거나, 바깥쪽 근육에 비해 안쪽 내전근쪽이 부실하면 그런 경향이 크다고 했다. 그 분의 시선이 내 허벅지로 향했다.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대번에 파악했을 것이다. 딱 그 분의 설명이 정확하게 내 상황이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한 운동 처방 상담 때문이었지만, 젊은 여성의 시선이 내 허벅지로 향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분은 다리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킬 수 있는 운동법 몇 가지를 알려줬다. 당분간 스내치를 비롯해 무릎에 부담주는 운동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아마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살인적인 더위


이사한 집은 거의 달동네라 부를만한 곳의 꼭대기라서 창 밖으로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멋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조금 떨어진 곳의 건물 옥상에서 보면 어쩌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사 후 약 3달이 지나도록 그 건물 옥상에 사람이 있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렇게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하는 창문이 있어서 바람이 잘 들어올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상하게 이 집엔 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집 뒤편 창문은 그렇게 멋진 전망을 가졌지만, 골목길과 접한 앞쪽은 바로 골목 저쪽 건물과 가까워 창문을 열기 어렵다. 게다가 앞 베란다라고 좁게 만들어놓은 공간이 매우 실용적이지 못해서 그 공간을 쓰지 못하고 있고, 그 쪽 창문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양쪽이 통해야 집이 좀 시원할텐데, 그렇지 못하니 이 더위에 집은 그야말로 찜통이 되었다. 한 낮의 온도는 32도, 습도는 67%가 넘었다.


알몸으로 생활하기


하루종일 집에 있는 주말이면 아침부터 몇 번이나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을 떠나지 않아도 덥다. 아니 딱 선풍기 바람이 닿는 곳만 견딜만하고, 다른 곳은 덥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는 것도 덥고 귀찮아서 아예 아무것도 입지 않고 생활한다. 평소 밤에 집에 들어오면 오르막길을 올라오느라 속옷까지 다 땀에 젖는다. 셔츠를 벗어보면 땀에 완전히 젖어있다. 옷을 다 벗어던지고, 바로 씻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고 운동을 시작한다. 알몸으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고, 레그레이즈와 딥스를 연결동작으로 한다. 이 동작은 약 1년 넘게 실내 철봉에 매달려 놀다가 발견했는데, 내 기준으로 전체적인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은 좋은 연결동작이다. 그리고 다시 잠시 스트레칭을 해주고, 이번엔 역기를 든다. 어떤 날엔 스내치를, 어떤 날엔 데드리프트를 주로 하고, 가끔 클린 앤 저크를 한다. 여기까지 하고 하체 운동으로 에어스퀏이나 런지를 하는 날이 많고, 하체운동을 건너뛰고 마무리 운동으로 케틀벨 스윙을 하기도 한다. 어떤 날엔 역기 데드리프트를 생략하고 케틀벨 데드리프트를 하기도 한다. 


가장 하고 싶은 운동은 타바타 버피테스트인데, 집이 2층이고 주로 운동하는 시간이 밤이라 점프를 할 수 없어서 불가능하다. 이사하기 전 반지하 집에서는 새벽에도 버피테스트 뿐 아니라 서전트 점프도 가능했는데, 이런 점은 아쉽다. 타바타 인터벌 운동은 최근엔 별로 시도해보지 않았는데, 휴가가 코 앞으로 다가온 이번 주엔 다양한 운동을 타바타 인터벌 방식으로 해볼 생각이다.


암튼 이렇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 운동을 한 후에야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와 가벼운 안주를 꺼내와 먹고 잠든다. 그 동안에도 계속 옷은 입지 않는다. 아침에 깨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출근 준비를 할 때에야 비로소 속옷을 입는다. 혼자 있는 날에만 가능한 일이고, 아이들이 오는 날엔 당연히 옷을 입고 지낸다. 그나마 혼자 있는 날에 이렇게 벗고 살 수 있으니, 이 살인적인 더위를 에어콘 없이 보낼 수 있는 듯 하다.


사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깨니 애들 엄마가 그 집에 에어컨 놓을 공간이 있으면, 주문해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우리집에 있을 동안 더위로 힘들어 할 아이들을 위해서 보냈으리라. 잠시 갈등했다. 정말 덥기 때문에 에어컨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환경운동가로서, 에너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에어컨을 단 이후의 전기요금에 대한 생각도 들고, 또 한 편으로 앞 베란다 쪽 벽면에 에어컨을 설치할 공간이 마땅치 않은 이유도 있다. 또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오래지 않아 이사를 나가야 할텐데, 그때 에어컨 설치비가 추가로 드는 것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암튼 여러가지 생각이 한번에 들면서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함께 더위를 견뎌야 할 애들 생각도 안 할 수가 없다.


에어컨과 기후변화


에어컨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던 건, 두 대의 선풍기 덕분이다. 앞에서 선풍기가 닿는 곳만 시원하고 다른 부위는 덥다고 했지만, 양쪽에서 두 대의 선풍기를 교차로 틀어놓으면 훨씬 더 견딜만하다. 아이들이 오는 날엔 당연히 그렇게 해서 세명이 함께 더위를 식힌다. 모르겠다. 날이 더 더워지면 후회할 지 모르지만, 일단 아직은 에어컨 없이 버텨보고 싶다. 애들이 오는 날엔 제일 더운 한 낮에 집이 아닌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가도 될 일이다.


단순히 내가 에너지 활동가라서 에어컨을 안 쓰겠다는 아니다. 나도 더울 때는 되도록 온도를 많이 낮추지 않고 에어컨을 켤 수 밖에 없다. 에어컨이 있다면 말이다. 근데 에어컨은 기본적으로 내가 시원하기 위해 세상을 더 뜨겁게 만드는 이기적인 물건이다. 이 더위에 에어컨 실외기가 몰려있는 건물 뒤편을 지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이해할 것이다.


사실 에어컨을 켜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가 올라가고, 그럼 기후변화는 더 빨리 심해지고, 그럼 우리는 그만큼 더 더워진다. 이건 명백한 악순환이다. 가장 더웠던 지난 화요일이었던가 그날부터 우리나라 전력 공급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아마 7% 대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도 매일 전력거래소에 들어가서 전력 사용량과 공급예비율을 살피기 시작했다.


봄과 가을에는 설비예비율은 60~70%가 넘는다. 그 말은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 중에 70%가 놀고 있다는 뜻이다. 공급예비율은 발전 설비 중 고장났거나 점검중인 것들을 제외하고 당장 가동할 수 있는 설비 용량 중에 남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봄 가을에는 대개 30~40%가 넘는다. 즉 우리나라 발전소 10개 중에 6개 정도는 1년의 거의 대부분(4분의 1 이상)을 가동하지 않다가 더운 여름에만 반짝 돌린다는 뜻이다. 즉 폭염 시기를 대비해 불필요한 발전소를 자꾸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 당연히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력 피크를 낮춰서 예비율이 모자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몇 번 돌리지도 못하는 비싼 발전소를 자꾸 늘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많은 언론에서 올해 더위가 기록을 깰 거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진기록이 많이 나올 듯 하다. 특히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기록적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에너지 복지의 개념으로 폭염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에어컨 보급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지구는 뜨거워 질 것이고, 에어컨 없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아니 벌써 지난 주 내내 열대야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주말 낮에는 땀을 줄줄 흘리고 지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애들엄마의 에어컨 권유를 거부한 걸 후회했지만, 어쨌든 이번 여름은 일단 버텨보련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여러번 썼다 말다 했던 글이라 글의 순서가 맞지 않는데, 그걸 다 손볼 시간은 없다. 내일 아침이면 아이들을 만나 휴가를 떠난다. 부디 망가진 무릎이 조금이라도 낫기를 바라며, 무릎에 아이스팩을 대고 누워야겠다. 이번 휴가는 과연 어떤 시간이 될까? 평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면, 지금은 걱정이 80% 이상이고, 기대는 별로 없다. 뭐, 어차피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괜히 걱정하느라 시간 낭비 말고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자. 아이들과 함께 또 일 년을 버틸 수 있는 재밌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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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29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감은빛 2018-07-29 16:41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늘 고맙습니다!

라로 2018-07-29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감은빛님!! 무릎부상이라니요. ㅠㅠ 제가 더 나이가 많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유연성과 멀어지고 부상이 잦은 것 같아요. 남의 얘기가 아니네요. ㅠㅠ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고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휴가 잘 보내고 오세요 ~~^^

감은빛 2018-07-29 16: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라로님.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나이 들면서 점점 유연성이 떨어지는 걸 느껴요. 제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걸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나봐요.

페크pek0501 2018-08-0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여름이 힘든 건 다 마찬가지인가 봐요. 오늘은 덜 더워 다행입니다.
무릎 부상, 회복되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허리 통증으로 최근 물리치료를 받은 몸이라
운동할 때마다 조심한답니다. 허리 강화 운동을 해야 하는지 허리를 될 수 있으면 안 건드리고
운동을 해야 하는지 헷갈린답니다.

요즘 중요한 건 건강과 운동이다, 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므로 각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몸입니다.

감은빛 2018-08-08 22:14   좋아요 0 | URL
확실히 입추가 지나니 조금, 아주 조금 낫긴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방안 온도는 32도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않고,
선풍기 두 대를 교차해 놓아도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흘러요.

허리 통증이 있으시다니, 어여 나으셔야 할텐데요.
어떤 종류의 통증이냐에 따라 운동법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허리를 강화하는 운동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무릎은 예상보다는 빨리 나아가고 있어요.
저는 훨씬 더 오래 갈 줄 알았는데,
벌써 살짝 무릎을 굽힐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길어도 일주일에서 10일 전후로 훨씬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페크님, 고맙습니다!
 

믿을 수 없었다. 그 죽음을. 설마 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랬건만, 온통 그를 추모하는 말과 글이 넘쳐났다.

정치인을 믿고 좋아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다. 먼발치에서 혹은 가까이에서 가끔 마주쳤을 뿐. 가장 자주 만났던 건, 광우병 촛불집회에서였다. 짧은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뿐 그는 아마 나라는 사람을 인지하지는 못했을것이다.

그가 심과 조와 함께 진보신당을 탈당했을때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길을 응원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더 큰 정당에서, 좀 더 대중적인 정당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길 바랬건만, 그렇게 원하던 대로 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았다. 내 삶이 바빴고, 그가 몸담은 정당에 대한 실망이 점점 커졌다. 내겐 녹색당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에는 언젠가 그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날이 올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차마 더 말과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겠다.

남들은 그의 죽음에 이어 노무현의 죽음을 떠올리더라. 나는 남들의 말을 듣고서야 그럴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게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박은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한때 그 두 사람이 같은 정당에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음에도 그랬다. 아, 어쩌면 연결지점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의미를 찾자면 또 연결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언론을 통해 그의 유서 내용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죽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역시 노회찬과 박은지 두 사람이 삶을 끊어버린 행위에 절실히 공감하고 있음을.

내세를 믿지 않기에 빈말이라도 명복을 빈다거나 영면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결단을 마치고 마지막 가시는 순간만이라도 덜 괴롭고, 덜 외로웠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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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07-2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이의 죽음이 이런 느낌일지. 어제 오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감은빛 2018-07-29 00:35   좋아요 0 | URL
며칠이 지나도 이 허망한 느낌을 떨치기가 쉽지 않네요.
이번 주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매일 술을 마시며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8-07-2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은지님이 돌아가셨을때 그의 아픔이 너무 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물론 저는 그리 열심히 살지 못했지만) 노회찬 의원의 죽음엔 말문이 턱하고 막히네요. 그 고단한 한 생이 절대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감은빛 2018-07-29 00:37   좋아요 0 | URL
청소노동자들이 운구행렬을 맞으려고 땡볕에 나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분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있나요! 믿을 수가 없네요!
 

비행기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조금 늦긴 했지만,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뻔 할 정도로 늦었다고 깨닫지는 못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부러 아시아나를 예약했는데, 티켓 발행을 위해 아시아나 항공 부스를 찾아다니는데 안 보였다. 저가 항공을 비롯해 다른 항공사들 부스는 다 찾았는데, 유독 아시아나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아다니던 곳 정 반대편에 아시아나 부스만 외딴 곳에 있었다. 그건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나 부스만 혼자 국제선 쪽에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쨌거나 서둘러야 할 상황이었는데, 줄이 길었다. 다른 항공사 부스는 여유롭던데 아시아나는 대기자가 많았다.


직원 하나가 다가와서 맨 뒤에 선 나를 보고 "예약번호가 있으면 도와주겠다." 고 해서 폰을 건네 카톡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 직원이 예약번호를 입력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시간이 없다."며 저쪽에 있는 다른 직원을 불렀다. 뭐라고 빠른 어투로 말하던데, '레이터' 란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늦게 온 사람인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들렸다. 그 다른 직원은 메인 부스가 아닌 대기자 줄 옆에 있는 임시 부스(복도 한 가운데 이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로 들어가 빠르게 단말기를 두드리며, 단말기에 달린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와 통화했다. 뭔가 암호 같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빠르게 전했다. 이번에도 '레이터'란 단어가 들린 듯 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출력되어 나온 티켓을 건네며 언제까지 탑승구로 가야 한다고 빠르게 말했다. 그 다급한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급하게 계단을 올라 검색대를 향해 뛰었다.


검색대를 나와 가방에 노트북을 집어넣고 폰과 지갑 등 소지품을 챙기며 시간을 보니, 웬걸 아직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음식이 바로 나온다는 전제 하에) 햄버거나 국수를 먹고 가도 될 시간이 아닌가. 어쨌거나 나는 곧바로 탑승구를 향했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섰고, 곧 내 뒤로도 긴 줄이 만들어졌고, 좀 기다려 탑승을 시작하자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적어도 출발 시간 30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은 그 시간이 지나면 티켓 발권이 안 된다는 소리였나보다. 떠올려보니 내가 공항에 도착한 것이 대략 비행기 출발 30분쯤 전이었고, 아시아나 부스를 간신히 찾아 줄을 선 것이 대략 25분에서 20분쯤 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석에 앉아 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메세지는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분에게 온 것이었다. "이 날씨에도 비행기가 뜨나요?" 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제주에 내려서 답해야지 생각하고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비행기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나눠주는 신문을 하나 가져와 이륙 대기중일 때부터 쉬지 않고 계속 읽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선체 내부가 어두워졌다. 조명이 바뀐 느낌이었지만, 글씨를 읽는데 어려움은 없어서 그대로 계속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주위만 다시 밝아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나가던 승무원이 내 머리 위의 독서등을 켜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했는데, 그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곧 안정 궤도에 오를 줄 알았는데, 비행기 선체가 계속 불안하게 흔들렸다. 집중해서 신문 기사를 보느라 잘 못 느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추락하듯 순간적으로 선체가 내려앉았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면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 근데 그때부터 선체가 전후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몸이 막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신문을 접고, 주위를 살폈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좌석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아까와 같이 선체가 추락하는 느낌이 연속으로 여러번 이어지고, 급격하게 몸이 홱 돌아갈 정도로 선체가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속으로 이러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반복적으로 급격하게 선체가 내려앉는 그 느낌, 심장이 철렁,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이건 레일 위를 달리는 롤러코스터가 아닌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가 아닌가!


읽던 신문을 대충 접어서 무릎 위에 두고 양쪽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때 저 앞쪽 간이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꼭 맨 승무원이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표정으로 달래고 있는 걸 봤다. 그 승무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게도 살짝 웃음을 보내며 뭔가 말을 하는 듯 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표정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고, 곧 다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에 집중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냥 남들 보기에 태연한 척 하려고 신문을 읽는 척 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어쩌면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엄청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한참 심하게 흔들리고 덜컥 덜컥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는 문득 머릿속에 비행기 잔해가 뉴스 영상으로 비치고, 아나운서가 날짜와 시간을 말하며 몇 명의 사망자와 몇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래. 비행기 사고는 생존자가 거의 없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있을 뿐. 문득 참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았구나. 뭐 하나 남긴 것 없이 이렇게 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안전벨트 등이 꺼지고 승무원들이 마침내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 승객들에게 나눠줄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 이제 안전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제 확실히 선체의 흔들림은 없었고,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일 때문이라도 비행기를 타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제주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세 번째 제주행이었다. 셋 다 놀러간 것이 아니라 일 때문에 간 것이었다. 그 중 한 번은 주말을 끼어 2박 3일간 다녀왔고, 1박 2일은 일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혼자 올레길을 걷고, 지겨울 때까지 바다를 쳐다보고, 흑돼지 삼겹살에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보내다 돌아왔다. 이번에는 딱 주 중이라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한참 일이 많을 때라 내려갔다가 당일 바로 돌아와야 할 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래도 제주까지 가서 저녁에 바로 올라오기는 좀 억울했다. 억지로 다음날 오전 일정을 비우고, 1박을 결심했다. 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반가운 목소리. 저녁에 만날 약속을 하고 몇 년 만에 볼 그 얼굴을 떠올려봤다. 


그러나 하루 전날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마침 함께 아는 한 선배가 그때 제주에 있을 예정이라고, 그 선배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출판계를 떠나 딱 한 번 봤던가, 아니 두 번 봤던가? 암튼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선배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문자를 주고 받았고, 그 선배는 그날 제주이 있긴 하지만, 저녁에도 일정이 있어서 나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했고,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고 했다.


음, 제주에 또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하루 전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할만큼의 관계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몇몇 얼굴들과 이름들이 머리속에 스쳐갔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지워버렸다. 대부분 제주시가 아닌 서귀포 쪽이거나 외곽에 사는 이들이었다. 저녁과 함께 반주를 하고 다음날 돌아올 일정으로 연락을 하긴 미안했다.


토론회


토론회 장소는 작년 11월에 강연하러 왔던 곳이었다. 익숙한 장소라 쉽게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비행기에서 하도 시달려서 그랬는지 입맛이 없었다. 그래도 앞에서 떠들려면 배를 채워야 할텐데, 나중에 분명 후회할텐데 생각하며 뭐 적절히 끼니를 때울 곳을 살폈다.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딱히 땡기는 곳이 없었다. 그냥 편의점에 들어가서 캔 커피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토론회는 예상보다 사람도 많았고, 분위기도 괜찮았다. 나도 충분히 내 역할을 잘 했다 싶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하고 나면 늘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는데, 나는 대체로 큰 실수는 없는 편이라 작은 실수들 몇 가지를 두고 후회하거나, 그래도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날 토론회 발제는 지금까지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잘 한 편이었다. 시작 전에 생각해 둔 꼭 해야할 말들은 다 제대로 전달했고, 중간에 즉석에서 떠오른 이야기도 잘 끼워넣었다. 시간을 살짝 넘기긴 했는데,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쓴 발제자도 있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았다. 토론회가 끝나고 한동안 사람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꽤 오래 서있었다. 같이 서울에서 내려온 한 연구원이 언제 올라가냐고 묻길래 "내일" 이라고 답했더니 바로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가냐고 물었더니, 사실 본인은 어제 내려왔다고 했다. 그와 잠시 떠들다가 그만 친구가 약속을 깨버려 지금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 하필 그날은 주최측에서 저녁 식사도 계획하지 않았다. 작년에 내 강의를 주선했던 분은 저녁에 회의가 있다고 급하게 가버리셨다.


혼자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가방을 메고 나섰다. 잠시 걸었다. 제주 칼 호텔을 지나며 오래전 신혼여행 때가 떠올랐다. 안돼! 이런 기분에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힘들어! 고개를 휘휘 내젖고,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빨리 걸음을 옮겨, 그 동네를 벗어났다.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계속 걸었다. 대략 방향은 잡고 있었다. 작년에 왔을 때, 호텔(이라 쓰고 모텔이라 읽자)이 많고, 식당이나 술집이 많은 동네는 봐 두었다. 바다가 멀지 않은 동네.


동문시장


쎈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며 걷다가 문득 지도 앱을 열어보니, 걷기엔 너무 먼 거리라 느꼈다. 게다가 배가 고팠다. 점심도 안 먹고 캔 커피 하나로 때웠던 게 기억났다. 일단 노트북이 들어서 무거운 가방부터 내려놓고 싶었다. 숙박업소 검색 앱을 깔고 찾아보니 가까이에 호텔(이라 쓰고 모텔이라 읽자)이 있었다. 저렴한 편이었다. 결제하고 5분 가량 걸어서 찾아갔다. 주인장이 건넨 열쇠로 열고 들어온 방은 모텔보다 더 소박했다.


가벼운 몸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회가 먹고 싶었다. 회 한 접시에 한라산 소주 한 병, 그리고 바닷가에서 맥주 두세 병 정도 마시면 다시 숙소로 걸어 돌아올 수 있으리라. 어쩌면 술이 모자라 숙소에서 맥주를 좀 더 마실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하며 방향을 잡고 걸었다.


이런저런 술집과 식당들을 지나면서 계속 머리속에 회만 떠올렸다. 한참을 걸어서 동문시장이라 적힌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누군가 삶에 회의가 들면 재래시장을 찾으라고 했던가? 그 활기에 전염되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은데. 난 저 활기찬 분위기 밖에 걷도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한참 걷다가 횟집을 하나 발견했다. 식사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지, 주인장은 포장 손님으로 착각한 듯 했다. 오후에 많이 떠들어 목이 조금 아팠지만, 목소리를 높여 먹고 갈 거라고 했고, 주인장은 2층으로 안내했다. 넓지 않은 실내에 손님이라곤 나 혼자였다. 티비도 하나 없이 조용한 객실에 앉아 회가 나오길 기다렸다. 조선족인 듯한 중년의 종업원이 반찬을 놓을 때, 한라산 한 병을 주문했다. "하얀 거?" 라고 묻길래, "네." 답했더니, "하얀 건 좀 독해요." 라고 알려준다. 그 하얀 한라산을 평소 2병 이상 먹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참는다. 평소 소주는 빨간 걸로만 먹는다고 대꾸해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빨간 게 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하지 라고 혼자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참돔회가 나왔다. 접시에 무를 깔지 않고 그냥 회만 놓아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훨씬 깔끔하고 좋았다. 맛있었다. 내가 들어온 시간이 좀 늦어서 앉자마자 몇 시까지 하냐고 물었는데, 시간은 충분했다. 한 40분 분 가량 후, 회 한 접시와 한라산 한 병을 다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바다를 향해 걸었다. 도중에 포장마차가 길게 이어진 길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에서 술과 안주를 즐기고 있었다. 일행이 있었다면 나도 저기 합류하고 싶었으나, 혼자 저 골목을 들어서기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냥 다시 걸었다. 바다를 만날 때까지. 제주에 와서 바다 한 번 못 보고 가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내일은 시간 상 바다를 찾아갈 여유가 없을테니, 이 밤에 충분히 바다를 즐겨야했다. 


작년 가을에 한 번 와봤던 곳. 방파제와 테트라포트 너머로 시커먼 바다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득 요의를 느껴 돌아보았는데, 대중화장실이 없었다. 한참을 걸으며 찾다가 간신히 발견했다.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서 편의점에서 500밀리리터 캔 맥주 2개를 샀다. 안주는 필요없었다. 방파제에 몸을 기댄 채 홀짝 홀짝 한 캔을 비우고, 방파제에 걸터 앉아 또 한 캔을 비웠다. 오가는 이들이 모두 연인이거나 가족이어서 조금 더 쓸쓸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먼 것 같았는데, 또 금방 온 것 같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다시 500밀리 맥주 두 캔을 더 샀다. 좀 더 마셔야 잠이 올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그제서야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박일환


이 분을 만나 인연을 맺었던 건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당시 이 분은 모 출판사 대표였고, 나는 출판노동자의 삶을 막 시작할 때였다. 늦게 출판계에 들어와 아는 것 하나도 없는 상태로 영업 일을 한다고 많이 힘들었고, 또 그만큼 많이 재미있고 신나기도 했다. 전교조 해직 교사이셨고, 복직해서 다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지내셨던 이 분은 출판사 대표 직에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계속 학교에만 계시다가 가끔 일이 있을 때에만 사무실에 와서 회의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대표로서 이 분이 하셨던 일의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아니,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평소 교사로 생활하시면서도 틈 날때마다 시간을 내어 회의하고 또 술을 마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늘 그렇게 살아서 잘 안다!) 그것도 돈 한 푼 못 받는 직책 뿐인 대표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도 내가 늘 그래서 잘 안다!) 아니, 오히려 맨날 후배들 술 사느라 돈이 나갈일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책만 내는 작은 출판사 대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그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이 분이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 나는 대표로서 제대로 중재해주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원망을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이 분도 곧 대표직을 내려놓았고, 실무자 출신이 대표가 되었다가, 나중에 또 다른 시인께서 대표가 되셨다는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 이 분이 대표가 되기 이전에는 또 유명한 시인께서 대표였다. 그러고보니 그 출판사는 계속 시인들이 대표가 되는구나. 아니, 아니다! 맨 처음 대표는 소설가가 맡았구나. 그 이후로 계속 시인들이 이어받았구나.


어쨌든 출판사 대표직을 물러나고 부지런히 글을 쓰시고, 책을 내신다고 느꼈다. 그러다 학교에서 퇴임하시고 나서는 훨씬 더 부지런히 글을 쓰시는 듯 하다. 


시인으로 소개 받았고, 시를 몇 번 읽어봤지만, 시 보다는 산문을 더 잘 쓰신다고 느꼈다. 물론 이 분 시가 별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산문이 더 좋다는 뜻이다. 요즘 페이스북에 이 분이 '국어사전 혼내기'라는 글을 연재하는데, 정말 재미있고, 신기하고 또 황당한 내용이 많다. 나중에 책으로 엮는다면 꼭 구매해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이 분 말씀을 보니 이미 [미친 국어사전]이란 책을 냈다고 하시더라.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휘 늘리는 법]이란 책도 나중에 사야지 생각만 했다가 잊어버렸는데, 언젠가 사투리에 대한 책도 쓰셨던 것 같은데, 이 참에 다 찾아봐야지 싶었다. '국어사전 혼내기'고 빨리 연재 분량을 모아 책으로 내 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또 뵐 날이 오면, 선한 웃음 짓는 얼굴 앞에 책들을 주욱 내밀고 서명 해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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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홈페이지를 몇 시간째 지켜보며 보수정당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 한 이 결과가 믿기지 않아 잠을 잘 수 없다. 이게 나라냐? 우리가 이런 나라를 보려고 그 고생하며 촛불집회에 나가고 박근혜를 끌어내렸나? 어떻게 자유한국당과 별반 다를게 없는 애들이 대부분 당선되는 이 미친 사태를 두고 다들 편히 잠을 잘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동네에선 더불어 애들이 기초의회에서 1개 지역구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구에 1-나 까지 두 명의 후보를 내놓고는 ˝아빠는 1-가를, 엄마는 1-나를 찍으라˝ 는 미친 문자를 돌리기도 했다.

사실 공보물을 잘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더불어는 정말 답없다. 자한당과 별반 다를게 없는, 말 그대로 50보 100보인 그 당에서 그나마 문재인, 박원순 정도는 아쉬움은 많지만 인정해줄만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으로 내려오면 오히려 자한당보다 더 나쁜 놈들이, 더 어이없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저런 함량 미달 후보를 내놓고 선거에 임하는 더불어를 보면 이 인간들이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지 뻔히 알 수 있다. 자한당만 국민들을 개, 돼지로 여기는게 아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을뿐 더불어는 그 보다 더 심각하다!

물론 더불어의 모든 후보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주 가끔 제대로 된 후보가 없지는 않겠지. 그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제대로 된 보수 역할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제 잇속만 차리는 꼴통이면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척 하는 것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래도 그 정도 하는 것 보면 쪼끔 인정해줄만한 부분이 있기는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결국 이 정당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고 우롱하고 있는 현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저 보수 정당이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인지 걱정과 동시에 짜증이 난다.

선관위가 제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자한당과 함께 거부한 것들이 더불어 애들이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권고한 4인 선거구와 3인 선거구를 모조리 2인 선거구로 쪼개놓는 만행을 저지른 거만하고 파렴치한 것들이 더불어 애들이다. 이런 것들이 정치인이라고 표를 구걸하는 판이 이번 선거였다.

집으로 온 31개의 공보물을 2번씩 정독했다. 박원순을 제외한 모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말그대로 그냥 쓰레기였다. 썩은 내가 풍기는 더러운 것들. 그것들이 모조리 당선되는 꼴을 봐야 한다니!

오래전 노무현이 당선된 후 공약을 어기고 미친 짓을 할 때부터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차라리 자한당이 싹쓸이하면 차라리 싸울 명분이라도 생기고, 전선이 명확하게 형성되는데, 민주주의의 탈을 쓴 꼴통 보수들이 당선되면 싸울 명분조차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제 작은 아이와 공보물을 보면서 놀았다. 아이가 하나씩 공보물을 들어서 물었다. ˝아빠, 이 사람은 어때?˝ 공보물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곧바로 거짓말쟁이에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줬고,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은 다시 공보물을 정독하고 말해줬다. 역시 거짓말쟁이애 나쁜 사람이라고. 그렇게 하나씩 제외하고나니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녹색당과 정의당과 민중당만 남았다. 그 세 당을 모두 합쳐도 자한당이 폭망하고 꼴통보수를 이어받은 더불어민주당에 비하면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촛불집회에서 고생하며 쌓아온 현실이 고작 이거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며 사과한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어른들이 정말 미안하다! 이런 미친 세상 밖에 물려주지 못해서. 저 거짓말쟁이 나쁜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 덜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선되어 큰 소리치고 자기 잇속을 챙길 세상 밖에 물려주지 못해서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 한반도의 미래가 한층 밝아졌다 여겼지만, 이번 선거로 다시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새벽이다.


덧붙임

얼마전 최저임금법 개악에 앞장선 애들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란 작자들이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했던, 그래도 그 보수정당에서 몇 안되는 믿을만한 사람이라 여겼던 박주민도 최저임금 개악에 찬성표를 던졌고, 논란이 불거지자 페이스북에 말도 안돼는 변명을 올렸다. 심지어 박주민은 선거기간동안 페이스북에 1-나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글을 여러차례 올렸다.

이래서 박주민이 보수정당을 선택한 거구나 깨닫는다. 과거 이재오가 그랬듯, 김문수가 그랬듯, 진보를 자처했으나 수구꼴통이 되어버린 수많은 정치인들과 박주민은 과연 얼마나 다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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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1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개표방송을 보면서 여당이 승승장구할수록 진보 정당들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든 자한당이든 간에 특정 거대 정당 독점 분위기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사 후

이사하고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짐을 다 풀지 못했다. 짐정리는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하는 걸로.

반지하 안녕

기간이 남았음에도 이사를 서둘렀던건, 작년 가을부터 몸에 이상 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반지하 습기찬 집에 1년 넘게 살다보니 어느순간부터 몸 여기저기가 예고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온갖 증상을 다 의심해보고, 찾아보고, 병원도 가봤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올해 3월쯤 동료가 습기와 곰팡이 때문은 아닌지 조심스레 의견을 냈는데,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고, 계속 몸이 무거웠고, 자주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이사하고 아직 10일이 채 되지 않았건만, 지난 7개월동안 지속되었던 증상들이 거의 사라졌다. 이삿짐을 다 실어놓고 마지막에 돌아볼때 정말 깜짝 놀랐다. 방 구석구석 보이지 않던 곳들에 습기와 곰팡이가 엄청났다. 제습기를 자주 틀어놓고, 온갖 종류의 제습제를 여기저기 뿌려두었음에도 그랬다.

아이들도 새 집을 무척 만족스러워한다. 일단 퀘퀘한 냄새가 없고 집이 비교적 깨끗해보이니 좋은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올라야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아이들은 이 집에 대한 불평이 별로 없었다.

정말 반지하 집은 다시는 살 곳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지하 안녕! 다시는 만나지말자.

평창

강원도 평창으로 워크숍 간다. 책 제목이 너무 공감이 가서 잊지 않기 위한 메모와 더불어 간단한 일상 이야기를 남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조금쯤 여유가 생기면 잊지말고 기록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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