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아이들 어릴 때는 데리고 다니기가 넘 힘들어. 특히 겨울엔 추워서 맘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움직일때마다 애들 챙기느라 시간이 두세배가 더 걸리고. 여행이라는 말에 욕심 부리지 말고, 차라리 푹 쉬다 오는 거에 더 무게를 뒀으면 좋았을 것을. 제대로 본 것도 없이 피곤하기만하고, 맘껏 놀거나 쉬지도 못하고 돌아와버렸네.
2박3일. 짧은 겨울 여행. 그닥 기대를 갖고 간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뭐 인생이 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좀 맘에 안든다. 하필 일이 많은 때에 하루를 쉰 덕분에, 밀린 일을 붙들고 앉아 있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숫자 붙들고 끙끙대는 동안, 자꾸만 겨울 바다가 생각난다. 칼바람이 뺨을 베고 지나친다. 머리칼이 흩날린다. 천둥처럼 귀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멋진 음악처럼 느껴진다. 밝은 달이 뜬 겨울 밤바다라면 더 좋겠다. 파도에 일렁이는 달 그림자를 넋놓고 밤새 쳐다보며 서 있고 싶다.
전화벨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수화기를 집어든다. 애써 친절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어 전화를 받는다. 이건 나인가? 좀 전에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듣고 있던 나 어떻게 된 건가? 전화를 끊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보고 싶지만, 이미 내 머리는 손에게 전화 통화한 내용을 처리하도록 명령을 내려버렸다. 손은 바삐 움직여서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볼펜을 쥐고 글씨를 쓰고 있다.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다.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과 쉼없이 때리는 파도와 휘어청 밝은 달을 벗삼아 밤을 지새우고 싶다.
그리운 바다
내가 돈보다 좋아하는 것은
바다
꽃도 바다고 열매도 바다다
나비도 바다고 꿀벌도 바다다
가까운 고향도 바다고
먼 원수도 바다다
내가 그리워 못 견디는 그리움이
모두 바다 되었다
끝판에는 나도 바다 되려고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가 삼킨 바다
나도 세월이 다 가면
바다가 삼킨 바다로
태어날 거다
이생진 / 그리운 바다 성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