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 조선 선조 10년(1577)

   사람의 얼굴은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이므로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地)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두운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이란 것이 매우 심령스러워서 타고난 것에만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혜로움보다 훌륭한 것이 없고 어짐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고 하늘이 내려 준 본성을 손상하랴. 사람이 이 뜻을 유지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으면 어진 이가 될 수 있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 하나 실은 배움에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을 학문에 두었다면, 인(仁)함이 나에게 있으므로 하려고 하면 될  것인데, 왜 남에게 구하며 왜 뒷날로 미루랴.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생각이 물러서지 않는 까닭인데, 만일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여 하는 것 없이 날만 보낸다면 종신(終身)토록 어찌 성취되는 것이 있으랴.

 

   이 글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참고서의 읽기 지문이다.(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재수'가 걸리기도 한다.) 옛날에도 친구가 건네 준 아주 얇은 책자로 '격몽요결'을 읽은 적은 있지만,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나 보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나는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마음밭을 갈면 하늘이 내려준 본바탕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기록해 둔다.

  한 움큼 손에 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스륵, 연휴가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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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밝은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게-이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날 아침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더라도 일찍 일어나 차례를 드렸다.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단촐하다 못해 썰렁한 차례였다(원래는 여동생도 있었으나 시집을 갔으니 시댁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증조부모님 제사에 밥과 국만 바꾸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다시 밥과 국을 바꾸어서 작은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제사 음식과 과일로 아침을 겸해서 먹었다.

   아직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로, 아침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그리고는 부모님은 안방에, 동생은 밀린 잠을 보충한다며 제 방으로, 나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좀 놀다가 책을 읽거나 잠을 잘 것이다. 갑자기 지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몹시 궁금해진다. 

   사실 우리집은 큰집이다. 게다가 15년 전,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큰집답게 집안은 늘 북적였다. 다른 가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그 때를 생각하면 참 따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7남매의 맏아들이시다. 10년 전에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6남매만 남았다. 그 중에 세 분은 고모님, 두 분은 작은아버지.

   그러니까 설날인 오늘 아침에 고모님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은아버지는 오셔야 할 텐데, 오시지 않았다. 저간의 복잡한 사정이야 말하기 뭣하지만, 아버지 마음이 무척 착잡하실 것만 같다. 예전에는 형제들끼리 친해서 계도 붓고, 여름 휴가도 같이 다녀오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만 같다.

   고모님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큰고모님과 둘째 고모님은 남편과 사별하셨다. 큰고모님은 큰아들까지 사고로 잃었다. 지금은 당신께서도 몸이 말씀이 아니시다. 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고, 최근에도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으신 적이 있었다. 둘째 고모님은 밀양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신다. 그나마 사촌들이 크게 속썩이지 않고, 엄마 생각을 많이 해 주는 게 다행이긴 하다. 세째 고모님의 삶도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엉망이었다. 고모부만 믿고 없는 집에 시집가서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다. 게다가 큰애가 태어나서부터 아프다가 7년만에 죽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밥은 먹고 살 정도라 아버지 형제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고 있으니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새해 첫날부터 꿀꿀한 이야기 타령이다. 그러나 '반갑게 맞아 줄 손님 하나 없는데, 까치는 왜 왔는가? 얻어 먹을 것 하나 없는 이곳에 왜 왔느냐?' 고 묻던 시인의 목소리가 이 설날 아침 풍경의 진실한 목소리가 아닌가? 장사익의 '허허바다'를 듣는다.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허허로우신가?

 

장사익 '허허바다' 노래 듣기

 

              허허바다 정호승 시, 장사익 노래


                      찾아가 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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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월간 말, 2003

   "반대자에게는 감동을 주는 겸허한 삶으로, 불의한 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정의로운 삶으로, 무관심한 이에게는 자극을 주는 투신의 삶으로, 무엇보다도 약자의 벗이 되고 친구가 되는, 예수님과 같은 실천적 삶을 다짐하며, 모든 법과 규정을 능가하는, 사람의 아들이며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고 확인한 인간이 우뚝 선 삶, 인간이 중심이 된 친교 공동체를 지향하고 고백한다"

   '인간의 확인이 참된 신앙'인 명제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자, 이제 우리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하지 않은가.

-226쪽, 종교 읽기 | 민중 속으로 중에서

 

   큰따옴표 속에 있는 저 말씀은 함세웅신부님의 말씀이다. 말씀 하나하나의 삶이 凡人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고 두려운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에게 겸허한 삶, 정의로운 삶, 투신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지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한 문제이다. 다행히도 人福은 있어서 내 주변에는 자기 삶을 기꺼이 던져 무관심한 나에게 항상 자극을 주는 몇 사람이 있다. 그 분들의 삶이야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책은 왜 읽는가?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러면, 바른 생각은 왜 하는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아닌가? 제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시, 너는 왜 책을 읽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섣달 그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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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01-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섣달 그믐 밤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늘 진지하고자 하는 느티나무님의 사색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우뚝 선 삶'을 지향하는 신부님 말씀에 공감입니다. 제대로 사는 삶이란 그런 삶이겠지요? 방향은 그러한대, 구체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어떻게 열려야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산다는 것! 새해를 여는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 볼 좋은 숙제네요.
 

하이타니 겐지로/오석윤(옮김), 양철북, 2003

   '태양의 아이'는 후짱이라는 한 소녀가 오늘날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성실하게 찾아내고, 그로 인한 괴로움에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늠름하게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의 괴로움을 진실로 고민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5쪽, 한국어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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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2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제가 책을 읽다가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옮길 예정입니다. 단순히 글만 옮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에서 받은 느낌, 생각 등도 덧붙여 쓰겠습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기억일까요? 아니면 기록일까요?

느티나무 2004-01-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의 아이' 서문을 읽고 든 제 느낌을 쓰려고 하는데, 알라딘의 '수정'하기가 문제가 있네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이 구절에서 받은 제 느낌을 짧게 나마 써야겠네요!
 

   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냥 종이 울리면 교실에 들어가서(사실, 가끔씩은 아주 빨리,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서 주로 놀다가 종소리와 함께 들어가는 경우도 좀 있었다.-참고로 아이들이 무지 싫어한다.) 혼자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반갑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책을 꺼내려고 사물함으로 달려가거나, 친구와 다하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실, 몇 년동안 아이들에게 '차렷, 경례'를 시켜본 적이 없다.(어떤 반의 반장은 그게 불만이다.ㅋㅋ) 그런 인사의식이 수업을 시작하는 신호가 될 수는 있겠지만(반장이 큰소리로 차렷-경례로 구령을 붙이면 잠시 조용해진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게 싫기 때문이다. 뭐, 선생님들에 따라서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는 싫다.

   그래서 작년 2학기부터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읽기로 했다.(물론 내가 처음 시작한 방법은 아니고 같이 모임에 참여하고 계신 '이영두' 선생님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 이해인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균형을 유지하면서 쉽게 타오르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겸손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낮은 자리와 낮은 목소리를 즐거워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패배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귀하고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관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한 장씩 이 시를 나눠주고, 책 속 표지에 붙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자~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내 말을 이어받아서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을 읽는다. 욕심에는 수업시간마다 읽다보면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외울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직은 욕심에 그친 것 같다.

   나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 시가 자기 암시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발휘했으면 좋겠다. 아니, 학교에서의 생활이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전부가 아닐까? (그러나 내가 수업시간에 그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직은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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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교사 2004-01-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달의 시'를 읽고 있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한달쯤 지나면 저절로 외우더라구요. 그리고 달이 넘어갈 때마다 은근히 새로운 시가 뭘까 궁금해하구요.
근데 위 시 내용이 너무 좋네요. 정말 아이들에게 자기 암시가 될 수도 있을 것같기도 하고. 주문을 걸듯이! 저도 위의 시를 한 번 읽혀 보아야겠어요.

느티나무 2004-01-2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시를 읽힌다? 멋진 병아리선생님이시네요. 근데 다음 주에 언제 시간납니까? 가능하면 저녁에요...병아리님 발령 받고, 우리(장김준호,느티나무, 병아리교사님)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2004-01-26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te 2015-08-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학창시절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 시를 읽었던 한 명의 제자입니다. 문득 이 시가 생각나 검색하다 댓글까지 쓰게 되네요. 아마 제가 선생님께서 만났던 학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혹은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 마음으로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