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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 The Excution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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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집행자>를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가 통화를 하며 <집행자>가 '끝내주게'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내게는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사형제도와 같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소재를 선택했다고 하면, 내가 '싫어하는 배우'가 나온다 하더라도("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던 실제 인물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덮어놓고 봤던 <홀리데이>도 그런 경우다. 정말 싫어하던 최민수란 배우가 정말 싫은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에 보는 내내 괴로웠다는.) 일단은 보고야 만다. 보고나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경도되어 분노하고, 동의하고, 한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나다. 사실, <집행자>는 윤계상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내게 그다지 반가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사형제도'라는 소재 하나를 믿고 보러 갔었다.   

 이 영화의 문제는, 나처럼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택' 혹은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영화의 문제라고 하기 보다는 역시, 내 취향의 문제라고 해야겠다. 감독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여러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살인자이고, 그러므로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다,라고 생각하는 차교사 종호(조재현)가 등장한다. 사람을 여럿 죽인 사형수와 친구가 되어 내기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도 등장한다. 오랜 감옥생활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선한 눈빛의 사형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감옥에 들어와서도 정신 못차리고 피해자 가족에게 으름장을 놓는 질나쁜 사형수도 등장한다. 그러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이분법적인 도식, 그러니까 교도관은 좋은 사람이고 사형수는 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내가 판단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나쁜 것이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하지만 김교위와 사형수의 우정을 보며 사형제도가 불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잠시, '개과천선'이란 말의 뜻을 모르는 사형수를 보니 그래도 필요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혼란스러웠다.   

 사형을 집행하기까지 영화는 사형수가 어떤 사람인지, 교도관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데 주된 시간을 투자한다. 윤계상이 맡은 재경이란 캐릭터는 신입 교도관이어서 그런지 이렇다할 특징 하나를 보여주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이질적인 면이 강한 차교사와 김교위는 지나칠 정도로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차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사형집행이 끝나고 난 후의 영화는 흡사 공포영화 같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결말로 가면서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감독의 의도는 잘 살린 영화인 것 같고, 내가 예상한 그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신선한 느낌은 덜 했고, 생각할 여지를 너무 많이 남겨서 머리가 아프다.  

 어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형수가 아니라, 교도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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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프레지던트 - Good morning, Presiden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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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 감독의 영화는, 그만의 느낌이 나서 참 좋다.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아들>도 재미있게 봤고, 억지스러운 설정도 나는 이해가 되더라. 가장 최근에 제작했던 <바르게 살자> 역시 몸을 뒤틀어대며, 눈물을 흘리며 웃어대며 봤더랬다.  

 오랜만에 내놓은 그의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기대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시트콤으로 코믹한 캐릭터를 잡아놓은 이순재라는 배우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의 고두심(내가 중년의 배우 중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눈에 힘을 뺀 '꽃미남' 장동건이 장진을 만나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거기다, 라디오에서 시사회를 다녀온 영화프로그램 DJ가 장진 감독과의 인터뷰 중에 했던 한 마디, 이번 작품은 그 어떤 작품보다 '아는 여자'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는 그 한 마디에 두 주먹 불끈 쥐고 반드시 봐야지! 결심했었다.  

 흥행을 하고 있긴 한지, 조조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러 왔다. 덕분에 혼자 앉아 낄낄거려야 하는 수모는 면했으나, 의외로 큰 웃음을 주는 부분은 없어서 혼자 봤어도 덜 민망할 뻔 했다. 그만큼 큰 웃음을 기대하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오히려 웃음의 장치가 뻔히 보여서 웃을 수 있는 부분에서도 웃지 않게 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여러 배우들의 특별 출연이 주는 기쁨도 있었으니,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간 내게 공형진이나 박해일, 이한위와 같은 배우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박해일의 경우에는 특별 출연이라고 하기에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이라, 그와 장동건이라는 두 배우가 같이 연기를 하는 모습이 왠지 보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내용은 시놉시스를 잠깐 읽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244억이라는 돈이 걸려있는 복권에 당첨되어 자신이 가질 것인지, 사회에 기부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통령, 강경한 외교정책에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지지율이 급하락하는 대통령,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서 의욕을 갖고 일을 처리하지만 한낱 보통 사람인 남편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는 대통령,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사람은 모두 정치권에 몸 담고 있거나 전직 대통령으로 극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비추며 연결고리를 이어간다.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라는 점은 좋다. 대통령이 정치하는 기계나 냉혈한이 아니라, 지켜야할 가족이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좋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 근처에 가지 못해도 좋다. 영화를 보고 좀 배웠으면 하니까.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대통령을 위주로 사건 전개가 흘러가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은 오히려 허무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나치게 '착한' 사람만 존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그리는 대통령은 '절대'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현실을 무시한 완벽한 비현실적인 소재였다면 허무함이 덜 할텐데, 대통령이란 존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완벽한 현실의 문제아닌가. 그것이 내가, 이번 장진 감독의 영화에 조금은 실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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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 Distric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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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재미있다! 여러 매체에서 보도하고,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디스트럭트 9>을 개봉 첫 날 보고 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이 틀린 것 없다고 하지만, 이번은 틀린 것 같다. 기대를 꽤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보다 더좋았다.  

 일단은, 진짜 같은 느낌이 들도록,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이러한 영화 기법을 모큐멘터리라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외계인들이 온갖 비행을 일삼자 정부에서는 이들을 외계인 집단거주지역을 정해 이주시키려는 정책을 내놓게 된다. 이 일의 책임자로 비커스가 임명되어 이주 동의 서명을 받기 위해 카메라와 함께 외계인들의 거주지로 출동한다. 외계인을 프런이라 부르며 비하하고, 무지하다고 무시하고, 고양이 먹이로 유인하여 애완동물 취급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던 '대표적인 사람'인 비커스는 외계물질에 노출되게 된다..  

 비커스란 인물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데, 일반적인 SF영화에서 주인공이 상당히 멋있는 남자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정말 왜소한 몸집을 가진, 카메라를 무척 의식하는, 약간은 잘난 척하는 남자로 설정되어 호감형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왜, 대부분의 SF영화에서는 '악'의 상징인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영웅적인 인물이 많이 나오지 않나. 그러나 비커스는 그러한 전형적인 주인공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로 그려지고,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외계인을 지구인에 동화시키는 것이 일반 SF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비커스는 외계 물질에 노출되어 점차 '외계인화' 되어가면서, 지구인인 자신이 오히려 '외계인'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어느 영화 비평에서 겉모습이 외계인에 가까워지면서 비커스는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는 글귀를 읽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과에 대한 여러 상상을 하게 되지만(혹은 2편에 대한 기대까지도),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정은 '애틋함'일 것 같다. 인간일 때보다 훨씬 더 인간다워진 비커스의 면모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수준이 한참 낮은 외계인이라고 멸시했던(사실, 훨씬 발달한 무기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도 외계인 문명이고, 움직이지 못한다고 단언했던 모선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외계인 아니던가.그리고 결국 승리하는 것도 강제 이주에 성공하는 지구인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별로 돌아가 군대를 이끌고 올지도 모를 외계인이다,) 지구인인 인간에 대한 조롱이라고 보여진다.  

 플롯은 전형적인 SF영화에서 벗어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조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이 영화다. 모든 단점이 장점으로 보이는 묘한 영화, 예측 가능한 결말로 진행되지만 흥미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영화,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인종 차별 정책을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현실 비판의식까지 겸하고 있는,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그래서 시간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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