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문 - The Twilight Saga: New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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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문>의 개봉을 기다려 온 사람이 많다. 전편 <트와일라잇>이 원작소설의 캐릭터와 부합하는 인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고,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드와 컬렌 가족이 보여주는 귀족적인 뱀파이어에 대해 열광(까지는 아닐 지도 모르지만)했다. 또한 평범한 인간 소녀와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이루어질 듯한 사랑 때문에 부러워하고 행복해했다. 영화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소녀답지 않게(혹은 지나치게 사춘기 소녀다운) 열정적인 사랑을 품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틴슨이 실제로 사랑을 가꿔가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을 때,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던 사람들의 만족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사실이 딱 들어맞는 영화가 <뉴문>이다. 새로운 표현을 생각해보고 싶어도, 이런 전형적인 문장만 떠오른다. 이 영화 자체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식상한 영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가 원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서사구조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에드워드가, 사랑하기 때문에 벨라를 지키기 위해서 떠난다는 설정은 충분히 '식상'하지만, 이해받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100여년을 넘게 살아온 남자라면, 그런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개연성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문제는 '너무나 충실한' 원작의 복원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가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 원작을 얼마나 '충실히' 스크린에 옮겨 담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원작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더 보여주느냐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뉴문>은 원작을 충실히 복원하다가 제 풀에 지쳐서, 장르와 주제를 바꿔버린 기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뉴문>에서 벨라는 떠나버린 에드워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새로 다가오는 제이콥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떨어져있으면 괴롭고, 그동안에도 에드워드에 대한 생각으로 힘든 복잡한 벨라의 심경은 영화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벨라는, 에드워드 때문에 힘들어했다가 제이콥과는 즐겁고, 가끔씩 에드워드를 떠올리고, 제이콥을 사랑하지만 에드워드를 떠날 수 없는 것 같은 '나쁜 여자'의 인상을 준다. 전편 <트와일라잇>에서 에드워드의 곁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벨라의 캐릭터는 <뉴문>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제이콥은 엄청난 발전을 한 캐릭터로 쉴새없이 벗은 몸을 보여주느라 바쁘고, 벨라에게 작업을 거느라 바쁘고, 어디서든 변신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당연히 그의 감정의 변화는 전혀 묘사되지 않고, 뒤늦게 늑대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 그의 고민도 몇마디의 말로 표현되고 만다. 그는 그저 한순간에 벨라에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에드워드의 라이벌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제목에서도 썼듯이, <뉴문>은 단순한 감정의 반복과 사건의 나열로 채워진 판타지물에 불과하다. 뱀파이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감정 과잉에 빠진 소년과 소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에드워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이 영화는 '완벽한' 판타지 영화다. 소리없이 사라진 시리즈 <황금나침반>과 같은 영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으니까. 에드워드가 등장하면서는 아동용 판타지 영화에서 15세 이상이 관람할 수 있을 듯한 판타지 영화로 업그레이드 되었을 뿐이다.  

 덕분에 '뱀파이어' 영화라고 구분하기에는 왠지 민망한 영화가 되어버린 <뉴문>.  <이클립스>는 좀더 나으리란 기대를 갖고 있지만, 이와 같은 수준이라면 극장을 찾기는 망설여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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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 Mo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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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그대로 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SF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포스터처럼, 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사람(혹은 여러 사람)과 컴퓨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 시놉시스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까지 보아온 SF 영화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그를 영화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물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착각이었지만), 그는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그의 안정감있고 똑같은 톤이 반복되는 목소리에서 오히려 컴퓨터의 감정을 느꼈다면 이상한 표현이 될까? 여하튼, 얼굴 없이도 이처럼 연기력을 내뿜는 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영화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영화는 샘 벨의 역할을 맡은 샘 락웰이라는 배우에 의해 진행되는 영화다. 굉장히 눈에 익은 배우이기는 하지만, 존재감이 크다고는 볼 수 없었던 배우. 하지만 이 영화, 샘 락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 영화는 샘 락웰이라는 배우를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줄 수도 있을 듯 하다(물론 그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일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그의 원맨쇼에 케빈 스페이시라는 뛰어난 배우가 배경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맡은 샘 벨이라는 인물은 3년 동안의 계약직 사원으로 달에서 자원 채굴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구와의 통신 위성이 고장나서 외부와 소통할 수 없는 그에게 '외로움'이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고, 외로움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말벗은 컴퓨터 거티 뿐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없는 달에서 지속되는 거티와의 생활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구에 남기고 온 달에서 보내는 3년이라는 시간은, 삶의 의미있는 일부가 아니라 그저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몸을 내맡기고 있는 고통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3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시작된다. 사고를 당하게 된 샘 벨은 '새로운' 샘 벨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누가 '복제 인간'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같은 이름의 아내를 두고 있는 두 사람,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름과 얼굴 생김새가 같은 두 사람은 다투고, 싸우고, 협력하고, 결국엔 친구가 된다. '달'이라는 곳에서 만난 유일한 인간이라는 점,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명의 샘 벨'이 선택한 인생을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허무할 수도 있고, 어쩌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후자였다. 보고 난 뒤 가슴이 먹먹해졌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SF 영화를 보고 많이 슬펐다(샘 벨의 기억과 관련된 일화에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을 추리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앞에 나왔던 장면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거티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일반적인 SF영화에서 컴퓨터는 인간과 대립되는 캐릭터로 설정되는 것과는 달리 <더 문>에서는 그 체제에 저항하고 인간의 편이 되는 역할이라 신선했던 것 같다. 거티의 모니터에 표시된 이모티콘이 여러가지 감정을 보여줄 때, 특히 눈물을 흘릴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태극기가 등장하고, 한글, 한국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관심도 논란도 많은 것으로 안다. 일단은 샘 벨을 고용한(?) 비인간적인 회사가 한국과 미국의 합작 회사로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비하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니 한국인 여자친구 때문에 호감을 가진 설정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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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 락웰....소리없이 강한 배우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린네 2009-12-05 18: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까지 왜 몰라봤나 싶을 정도로..^^ 앞으로는 주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솔로이스트 - The Soloi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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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미 폭스가 음악가로 등장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솔로이스트>를 처음 대했을 때는 <레이>와 비슷한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제이미 폭스가 시각장애인으로 등장하여 혼자만의 외로움과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한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레이>와, 역시 제이미 폭스가 정신분열증(?) 환자 나다니엘로 등장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며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 <솔로이스트>는 사실 얼핏 생각하면 닮은 꼴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 영화는, 재능을 펼치지 못한 나다니엘의 고난 극복기나 성공기가 아니라, 그를 만난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성장기'였다. 영화의 제목이 '솔로이스트(The Soloist)'인 것은, 단순히 보면 나다니엘이 거리에서 혼자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만, 좀더 비약해서 생각하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음악 속에서 홀로 자신의 삶을 연주해가는 사람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노숙자 공동체에서 생활하지만 정신 분열증 때문에 홀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는 나다니엘이나, 일에 빠져서 가족이든 자신의 건강이든 돌볼 여력이 없는 로페즈나 모두 '솔로이스트'인 것이다.    

 나다니엘은 더나은 삶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혹은 자신의 정신이 안정을 찾는 지금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로페즈의 호의를 거부한다. 나다니엘이 바라는 삶은 '베토벤'과 같은 삶이다. 적막과 광기로 얼룩졌지만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낸 베토벤과 같은 삶. 나다니엘은 자신의 또다른 목소리들이 계속 말을 걸어 혼란스러운 생활이 반, 말을 걸지 않아 적막할 때는 음악을 연주하는 생활이 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베토벤과 가까워지는 길을 알려주는 로페즈가 점차 자신만의 신으로, 자신의 친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실은 그렇다. 나다니엘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실체를 가진 친구였다. 노숙자이든 정신분열증 환자이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친구 말이다. 로페즈가 생각하는 것은 치료와 성공이지만, 나다니엘이 생각하는 것은 친구이기 때문에 둘 사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는 음악영화의 '전형적인' 감동 코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한 나다니엘의 인생 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에, 로페즈가 나다니엘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계기가 '음악'이기 때문에 줄기차게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곧, 현재를 극복하고 위대한 음악가로 성공하는 나다니엘의 모습이나, 제이미 폭스가 연주하는 음악의 활홀경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이 영화를 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흔히 성장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다니엘의 인생에 뛰어든 남자, 로페즈가 나다니엘로 인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이미 폭스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좀더 성숙해졌고 능글맞아졌으며, 제이미 폭스는 여전하다. 세상에 어느 배우가 이마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5:5 가르마를 하고도 자연스러워 보이겠는가. 나다니엘이 오랜만의 연주회를 관람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치 내가 나다니엘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적나라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다니엘과 로페즈, 두 사람의 이야기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노숙자'와 관련된 사회 문제를 제기한 점이다. 그로 인해 영화 내내 나름대로의 인생을 꾸리고 살던 나다니엘의 삶이 한순간에 '노숙자의 삶'으로 전락하고 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나다니엘은 노숙자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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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 - Tr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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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본 폴란드 영화. 처음 접하는 감독 안제이 자키모프스키. 처음 보는 어린 배우. 이 영화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을 배경으로 주인공 스테펙의 금발과 창백한 피부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요즘들어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서 그런지 수박을 먹는 장면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모습도 눈이 시릴 정도로 부러웠다.  

 91분의 짧은(요즘 영화들이 왠만하면 2시간을 훌쩍 넘으니까)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온갖 트릭으로 가득차 있는 영화다. 전반의 40여분 동안 아이가 누나와 누나의 남자친구 사이에 끼어들어 오토바이를 얻어타거나 기차역에 가 있는 장면 외에 이야기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자칫하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40여분이 지난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기차역에서 본 중년남자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스테펙은 아버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트릭들을 생각해 낸다. 아이의 사소한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행동들은 오로지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진 의도적인 행동인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트릭이 성공할 것인지 그 운을 시험하기 위해 쓰레기를 손 대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다든가, 한 개도 팔지 못하는 사과 장수의 사과를 다 팔게 한다든가 하는 일에 트릭을 사용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트릭을 시험해 보기 위해 친해졌던 누나의 남자친구까지 스테펙의 일에 끼어들어 도움을 주게 된다.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스테펙의 트릭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영화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타의 영화처럼 아이의 동심에 즐거움을 느끼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아이는 아이다운 행동보다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조숙한 행동을 많이 보여준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라며 생각하지 못할 트릭들을 생활에서 발견하고 실현해 내는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동전을 선로에 던진다든지, 공사중이라는 표지판을 바꾸어 둔다든지, 비둘기를 날려보낸다든지 하는 트릭들은 상당히 성숙한 생각을 보여준다. 물론,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겠다는 절실한 마음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이 뿐이라면 이 영화는 단지 '아이'를 내세운 '어른'의 트릭이 가득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생각하면서 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적잖이 보여주기 때문에(주인공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의 이미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영화는 아슬아슬하게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처음부터 몰입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후반부부터 몰아치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 좋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도 꽤 좋은 편이고, 주인공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의 연기도 좋다.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도 있고, 추운 날씨에 따뜻한 날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봐 둘 만한 영화인 듯 하다. 무심코 놓쳐버린 장면들 때문에, 다시 한 번 보고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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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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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구조가 빈약하다는 평가는 익히 듣고 있었던지라 각오는 하고 갔었다. 재난영화가 다 그렇지 않겠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지극히 평범하지는 않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재난의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대피를 하는데 몇차례의 죽을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결국은 살아남아 가족애와 인간애를 깨닫는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가족애와 인간애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감동을 가져주기 때문에, 재난영화를 보고나면 여성 관객 중 몇몇은 꼭 눈물을 닦고 있다(나 역시 그런 관객 중 한 명이다).  

 이 영화 <2012> 역시 재난영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인공은 422권의 책을 판 무명의 소설가로 이혼한 남자로 리무진 운전사라는 부업도 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이혼한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혼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 우연히 간 캠프장에서 미치광이 찰리를 만나고 지구가 멸망할 것이고,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발표하지 않고 우주선을 만들어 선택받은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한 귀로 흘려듣는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사로 일하는 집의 아이들 입에서 '우주선'을 탈 것이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은 모든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가족을 대피시키려 한다.   

 그 이후, 모든 이야기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것은 극찬에 가까운 것 같지만, 사실은 악평에 가까운 말이다. 내 상상력의 한계는 이전까지 보아왔던 재난영화 안에 머물러 있는데, <2012> 역시 이 재난영화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든 위험에서도 주인공은 꿋꿋이 살아난다. 비행기를 처음 몰아보는(2번의 경비행기 조종 연습을 해 보았다고는 하나) 사람이 쏟아져내리는 건물과 화산재 속에서 어찌나 조종을 잘 하던지, 항상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어찌나 잘 벗어나던지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다음 장면에서는 이렇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감독이 내 마음을 읽은 것인지 꼭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래서 나는 '리메이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CG는 훌륭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역들이 무너져내리고, 해일이 덮쳐오고, 흡사 타이타닉과 같은 배가 침몰되는 장면들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영화보다 스케일이 크고 잘 만들어졌다. 그런 CG 덕분에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지만, 단지 그것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재난영화인 <해운대>만큼의 유머도, 감동도 없고 단지 CG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절친한 친구가 죽어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같이 싸워왔던 사람이 죽어도, 아버지와 같았던 사람이 죽어도, 그들은 그저 눈물 한 번 글썽이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방법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비인간적인 인물들이 150여분의 러닝타임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재난영화의 마지막 공식인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해 들어간 장면(에이드리안이 다른 사람들을 태우자고 연설하는 장면)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국은 이미 다 죽었으며, 에이드리안이 살리자고 주장하는 그 사람들은 결국 10억 유로를 낸  '부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나온 재난영화,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단지, 화려한 CG만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주인공 단 한 명의 이야기보다 수십명의 이야기(존 쿠삭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재난영화답게,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십 명의 조연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한 듯 싶다.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가 궁금한 사람은 이 영화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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