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때로 거꾸로 움직이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작은 점이 되어 흐릿해지고, 특이한 사건이나 우연한 만남 같은 것이 마치 종이 위에 번지는 잉크처럼 크게 떠오르기도 한다.   <p. 91>

그녀의 커피잔 속에 떨어진 달을 보았다. 커피잔 속에서 나방처럼 꿈틀대는 날.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없이 그 달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식히기 위해 그 표면에 입김을 불어 골을 낼 때 달이 폭파되어 산산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p. 103>

사랑을 받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다. 똑같은 열기였지만 다른 방에서 나오는 열기였다. 똑같은 소리였지만 내 가슴이 아닌 높은 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p. 106>

열일곱에 우리에겐 가슴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펄떡거리는 어떤 성스러운, 잔뜩 부풀어 오른 그 무엇으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이 가슴은 아니다. 비록 가슴이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마음과 몸과 미래, 심지어 최후의 외로운 시간까지 그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스스로를 희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 때, 그것은 가슴이 아니었다.   <p. 120>

사람들이 똑똑하거나 신중해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사랑은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그들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p. 302>

나는 냇물을 따라 천천히, 여러 날에 걸쳐, 그 냇물이 강을 만날 때까지 흘러갈 것이오. 나는 아직 살아있고, 다만 잠을 자고 있는 것이기에. 매 시간 나는 더 젊어질 것이오. 강이 부풀어 오른 그 중심을 따라 나를 싣고 가는 동안 나는 한 소년이 되고, 어린애가 되고, 계속 작아져 마침내 별빛 아래 떠다니는 갓난아기가 될 것이오. 어떤 꿈도 꾸지 않는 오들오들 떠는 갓난아기, 바다의 어두운 자궁 속에서 태어난 갓난아기가 될 것이오.   <p. 408>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321405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나는 더이상 『노르웨이의 숲』을 읽지 않는다. 『데미안』을 읽지 않듯이. 그 소설이 인상적이었던 어떤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르미는 이제 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푸르미와 밤비 사이에는 시차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나이차가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일본문학이니 독일문학이니, 혹은 한국문학이니 하는 따위의 경계선은 더이상 없었다.   <p. 89>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소설가가 되고 나서부터였겠지만, 나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뭔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좋아하게 됐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내게 되려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번만이라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어버릴 것이다.   <p. 100>

나는 "Our destination is fixed on the perpetual motion of SEARCH. Fixed in its perpetual EXILE"을 보자마자, 그 문장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고 여겨 내 책상 앞 벽에다 붙여놓았다. 뭔가를 찾아 영구 운동하지 못하는 문학, 영구 망명을 꿈꾸지 못하는 문학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이 될 수 없었으니까.   <p. 159>

그런 까닭에 작가는 씸퍼사이저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이 되는 경우, 작가는 사상가로 바뀌면서 '국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국내란 중심을 향해 응축되는 공간이다. 진지한 문학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드는데, 국내용 문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아는 세계에 맞게 자아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나면 경계선 바깥은 모두 타자가 된다. 국내용 문학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p. 169>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게 될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문학이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을 때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만 하지 않을까?   <p. 201>

두말할 나위 없이 삶은 영원하다. 다만 우리를 스쳐갈 뿐이다.   <p. 290>

그럼 집에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원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그는 다시 공항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그리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 여행할 수 있을 뿐이다.   <p. 290>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318712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해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새삼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자기중심적인 꿈을 통해 그 사실을 학습한다.   <p. 46>

신의 이름이라도 부르고 싶은 장소였다. 영혼을 신의 선반 위에 얹어두고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포근할까. 하지만 나는 아버지 신을 찾기 전에 인간인 아빠를 찾아야 했다.   <p. 107>

낮과 밤은 서로 잘려진 단면이 얼마나 아플까? 해 뜰 때나 달이 뜰 무렵이면 무한히 긴 절단면이 아파하는 경련을 나는 느낀다. 삶을 위해 나누어진, 누구의 아픔도 아닌 이 세상의 본질적인 아픔이 내 마음에도 사무쳐 해와 달 사이에서 눈이 아프다.   <p. 116>

진실은 실은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그 많은 진실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린 무지와 오해 속을 살아간다.   <p. 176>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지금이라면, 난 사랑에 억압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고 기만당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하는 게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네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세상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흘러갔을 거야.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든 혹은 사랑을 지나가버렸든, 사랑이라는 개념 따윈 버리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믿을 거야. 네 아빠와 난, 그것에 실패했어."   <p. 206>

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 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p. 253>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31649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초한지』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가장 기대하며 읽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은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는 순간도 아니었고, 번쾌가 여러 적들을 단칼에 무너뜨리는 모습도 아니었다. 훌륭한 그릇 유방과 탁월한 참모 장량과의 첫만남이 내가 강렬하게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주종主從'의 조화를 보여준 그들의 만남은 과연 어떤 장면으로 활자에 반영되었을까. 내심 기대하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 명장면은 바로 2권의 말미에 소개되고 있다. 작가 이문열은 유방과 장량과의 감동적인 만남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그를 보는 순간 패공은 묘한 충격과 감동을 경험했다. 원래 그는 책상물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도 나약한 주제에 턱없이 까다롭고 말만 반드르르한 유자(者)들은 특히 싫어해, 어쩌다 그들을 만나면 그냥 보내 주지 않았다. 비웃거나 빈정거려 약을 올리기도 하고, 힘으로 눌러 골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저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별나게 쓸 일이 있어 하늘이 낸 사람일 것이다.....'
  유방은 그런 눈길로 그 사람을 쳐다 보다가 다시 불쑥 떠오른 엉뚱한 망상에 가슴 설레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 쓰임은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은 나를 위해 저 사람을 내고 키워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나를 도우러 보냈다.....'
<p. 297-298>

  뒷날을 두고 보면 유방과 장량은 전혀 닮은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석의 극처럼 서로 다른 것이 오히려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는지 그날 까닭 모르게 끌림을 느끼기는 장량도 유방과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처음 장량에게 유방은 무엇이든 그저 크고 높고 넓기만 한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다. 멀쑥한 키와 살집이 좋은 몸, 넓고 훤한 이마와 높고 콧방울이 넉넉한 코, 그리고 풍성한 수염과 머리칼. 목소리까지도 넓은 동굴에서 우렁우렁 울려 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다부진 맺힘이나 단단하게 들어찬 속을 느끼게 해 주지는 않았다.
 
유방의 첫인상이 준 그와 같은 느낌은 먼저 장량에게 무름이나 모자람, 허약 같은 것으로 읽혔다. 이 사람은 뭔가가 실제보다 턱없이 부풀어 올라 있다. 용케 버티고 있지만 곧 파탄이 드러나고 허물어져 내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쉽게 남을 방심하게 만드는 인물, 그래서 장량은 잠시 유방을 만만하게 느끼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방과 마주 보고 선 그 별로 길지 못한 시간에 이상한 변화가 왔다. 무르고 모자라고 허약해 보이던 것들은 차츰 묘한 기대를 주는 비어 있음으로 다가오고, 다시 희미하지만 자신이 그 빈 데를 제대로 채워 넣고 싶은 욕망으로 자랐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참으로 큰 그릇이다. 공을 들여 키우면 천하도 담을 만하다.....
<p. 299-300>

  어쩌면 그날 밤 장량이 그 술자리에서 본 것은 바로 그들 패현 건달들에게 격려가 되고 마침내는 비상한 분발을 이끌어 낸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말없이 빙글거리며 술잔만 비우고 있는 유방이 그러했다. 그 무르고 모자라고 허약해 뵈는 인품이, 그저 크고 넓고 높기만 한 텅 비어 있음이, 단순하고 순박한 시골 건달들을 분발해 마침내는 천하를 통째로 담게 만든 것이었으며, 장량은 어렴풋하게나마 그걸 알아보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거기서 받은 감동은 천하의 대세를 읽는 장량의 안목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p. 301-3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p. 42>

인생의 길을 올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이 세가지를 질문하면 된다는 거야. 네가 원하는 길인가? 남들도 그게 너의 길이라고 하나? 마지막으로 운명도 그것이 당신의 길이라고 하는가?   <p. 80>

엄마도 어느 날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 시를 포기했다. 모든 예술에는 천재가 있다. 그런데 유독 천재가 없는 장르가 있는데 그게 내 생각에는 소설 같았어. 그건 나의 노력을 요구하는 거니까. 시간과 체력과 고통과 인내 같은 것들 말이야. 두꺼운 종이들을 다 글자로 채워 넣어야 하는 손가락의 끈질김과 엉덩이의 힘. 그러니 하늘 탓을 좀 덜해도 될 거 같아 엄마도 소설을 택했으니까.   <p. 154>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p. 179>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한 악마로부터 가장 숭고한 신의 모습까지가 다 들어 있어, 언제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 무엇이든 꺼내 보일 수가 있다는 걸.   <p. 199>

 

 

다윗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297136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