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녀왔습니다.
흔적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 장례식
여러 해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 날을 예상해 왔는데도
정작 일을 당하니 옛날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나왔다.
장례라는 절차 - 밤낮으로 빈소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조문객을 맞아 인사하고 절하고 기도하고 접대하는 것 - 는 유족의 체력을 고갈시키면서 정신을 몽롱하게 하여 슬픔을 덜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발달된 것 같다.
장지에 관을 묻고 흙을 덮는 것.
돌아가신 분의 죽음을 이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불변의 사실로 확정짓는다.
2. 일상으로
늘 그렇듯이,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나도 그대로 살아간다.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아버지와 화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 할머니와 이모들과 여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 중에 아버지 이야기도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맏아들 이상으로 신임을 받으셨던 아버지였기에,
그리고 아버지도 무척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하셨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련의 불미스러웠던 일로 큰 상처를 받으셨음에도
할머니와 이모들은 아버지를 아직도 사랑하신다.
아버지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만은 지극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
할머니가 어디에서 사주 비슷한 것을 보셨다는데,
아버지는 이리의 탈을 쓴 양이라고 했단다.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아닌 이리의 탈을 쓴 양. 맞는 말이다.
엘리트 의식 강하고, 논리적이고, 보수적인 분이지만,
맺고 끊는 것 분명해서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그정도 위치에서도 누구한테는 꽉 잡혀(?) 지내는, ㅡㅡ;;
무척 외로운 분이시다.
할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잘 해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외로우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다.
잘 해 드려야지.
3. 잘 살기. 그리고 기억되기.
할아버지는 객관적으로 많은 일을 하셨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셨다.
하지만, 말년에 점점 허약해지셔서는
마침내는 조그만한 땅 만을 차지하고 누으셨다.
아버지도 객관적으로 많은 일을 하셨고.... 일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이시다.
자기 키만큼의 책을 쓰시는 게 목표라고 하신다.
하지만 개인사의 면에서 과연 얼마나 행복하실까?
나는? 객관적으로 위의 두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돈이나 업적이 아니라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이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지는 못한다.
결국은 자녀나 손자손녀, 지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것을.
그리고 그 기억도 결국 없어지는 것을.
내 앞에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 무엇을 할까?
새삼스럽게 '잘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