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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영화 - 영상의 지배전략과 권력의 계산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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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읽는데 영화처럼 매력적인 자료도 없다. 또한 동시에 현대사회를 변혁하는데에도 영화처럼 매력적인 도구가 없다. 저자가 천착하는 영화에 대한 태도도 이런 쪽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치 혹은 혁명의 측면이다.

영화가 대중의 기호와 태도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혁명이 본격적으로 조우하게 된 것은 70년대, 그러니까 18세기에 봉기가 이뤄진지 거의 2백년만이다. 기술의 공백기를 제외하더라도 영화는 대체로 그 당대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던 것이다. 70년대에 들어서 이런 일체형 영화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른바 '정치영화'라는 흐름이다.

저자는 단호하다. 특히 한국 영화와 영화비평 및 이론계에 나타나는 현실추수주의나 미학적 자폐성 혹은 대가만들기, 어린애들 투정같은 신변잡기적인 영화비평계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영화저널은 있지만 영화이론은 없는, 그래서 인상주의에 몰수되는 현상, 그리고 그런 인상주의 경향을 오히려 두둔하는 사람(강한섭같은)도 있다.

그들은 영화에서 정치성을 퇴색시키는 반면, 영화의 상업성을 강조한다. 줏대보다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발설하는 영화에 관한 주장들은 자주 자기모순적이고 불확실하다. 그 모호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외국의 이론가들에게 절대적으로 기댄다. 현실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세우기도 전에 우선 자물쇠를 풀고 보는 현상은 작금의 영화 유행의 흐름과 얽혀져서 저널리즘의 선정주의와 잘 놀아난다.

이 책은 가뭄에 단비같은 책이다. 저자의 분명한 자기 주장과 면밀한 연구가 엿보이고 저자의 '영화정치학'의 선언은 생기없는 기존의 영화학계에 비하면 확실히 돋보인다. 앞으로 어떤 저술이 이어지질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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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중심으로
서울영상집단 지음 / 시각과언어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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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난리다. 극심한 불황에도 영화분야 만큼은 돈이 몰린다. 이제 40억 정도의 블록버스터는 놀랄 일도 아니다. 티브에서는 어떤 경제학자보다도 영화감독이 경제난을 해결할 구원자로 떠오른다.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영화제를 만들어 내는라 여념이 없고 극장 앞에는 마력에 끌린 듯한 인파들이 꼬인다. 21세기 초반, 헐리우드를 제외하고 과연 몇나라나 아직도 이렇게 영화에 열정이 남아있을까? 그러나 뭔가 빠졌다. 기름은 잘잘 흐르는데 공허하다. 필름과 자본은 있는데 영화와 삶, 그리고 그 사회는 빠졌다.

1990년 영화 [파업전야] 탄압사태가 었었다. 관련인들의 구속사태에 대해 그들은 항소이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 피고인은 영화업자가 아닙니다.' 시대와의 긴장은 영혼을 곧추 세운다. 그래서 그 때 영화도 순결을 지키고자 했다. 영화는 삶의 편이었지 자본의 편이 아니었다. 푸른 영상의 대표 김동원씨는 소외당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를 담는 독립다큐작업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는 구속되고 장비일체가 압류되었다.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겨우 4년전의 일이다.

산업적으로는 덩치를 키우고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 시대와의 긴장이란 것은 영화를 깊이 있게 해주고 영화를 단지 소비대상이나 문화상품이 아니라 삶과 사회의 편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선을 만들어 준다. 왜 우리는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대만의 후샤오시엔처럼 깊이있게 존재를 성찰하는 영화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인가? 대만영화는 아사직전인데도 그걸 하는데 우리는 도데체 뭔가?

내 생각에 키워드는 '시대와의 긴장'이다. 이 긴장을 잃으면 영화는 시대와 같이 놀아난다. 영화는 시대의 장식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 시대와의 긴장이 각별했던 독립영화운동의 자취들을 모은 자료집이다. 그 때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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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연기 - 연기와 숨어있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
키스 존스톤 지음, 이민아 옮김 / 지호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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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이 발간되어서 추천하고 싶어서 주책없이 또 글을 올립니다. 키스 존스턴의 <즉흥연기>입니다. 부제는 '연기와 숨어있는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놓았군요. 이 책은 저와 인연이 많습니다. 유학간 제 여자친구가 보배같이 아끼던 책이었는데 떠나면서 저에게 남겨주고 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이 오늘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군요. 출판사는 지호이고요. 값은 만오천원이네요.

그녀와 저는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저는 이론과 비평 쪽에 관심이 많아서 연극이든 영화든 개념들로 잘게 쪼개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는 반대로 창작 쪽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그런 태도를 보일 싹수를 보이려는 찰라마다 희번쩍한 입담으로 제 자존심을 걸레로 만들어 놓습니다. 연극판이랑 강의 술자리 뒷풀이에서 갈고 닦은 실력은 너무도 막강해서 그녀의 썰 앞에서는 그야말로 누구도 추풍낙엽이요, 일엽편주에 풍전등화랍니다.

어쩌다가 제가 이길 경우도 있습니다. 대충 대전기록을 챙겨보면 제 승률은 약 25%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 꼭 들고 나타나는 책이 이 책이었습니다. 그것도 알록달록한 태그가 줄줄이 꼿혀 있는 이 책 원서를 들고 와서는 납죽납죽 펴대면서 내가 저번에 그녀를 KO패 시킨 구절들을 정통으로 치고 올라옵니다. 그녀에게 이 책은 강력한 탄환들(철갑탄!!)로 가득찬 탄창같은 거죠. 예를 들어 이런 구절들입니다.

'...우리는 얼떨결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작품보다 못할 것이 없고 때로는 그 이상으로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 뒤로 나는 토론에서 나온 생각치고 기발한 것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칼 웨이버는 브레히트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배우는 무언가를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들이 설명하려 들기 시작하면 브레히트는 리허설에 토론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몸으로 행해져야 한다며....(많은 브레히트주의자들이 이 거장의 관점을 견지하지 않는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최고의 논쟁이 평론가의 재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데서 나오는 해결책 중에서 탁월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게다가 토론하는 시간 대부분이 당면한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위 문제 따위에 할당된다. 나의 태도는 고무 용해액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용해제 하나하나에 고무 조각을 담궈 보았던, 그래서 이론적으로만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던 모든 과학자들에게 한방 먹인 에디슨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남겨두고 간 것이지만 들춰보기가 왠지 꺼림직하더군요. 무서운 거죠. 읽다가 엄청 깨질까봐... 하지만 결국 읽게 되더군요.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마력을 뿌리칠 수 없는 책입니다. 특히나 책 앞부분에 'Note on Myself'라는 장은 백미입니다.

이 장에서 작가는 경쟁체제 속에서 승자가 되기를 강요받는 교육환경이 얼마나 사람의 사고와 상상력을 경직시키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 저능아는 없는 법인데, 학교체제가 저능아를 만들고, 오히려 그런 학교에 가장 잘 적응한 진짜 저능아가 대접받는, 이상한 환경을 꼬집죠. 그리고 이렇게 상상력이 축출되어져 버린 각 잡힌 이들을 어떻게 다시 제 위치로 돌려놓을까하는 방법론도 이야기 해줍니다. 특히 이런 이들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보다는 회피하는 방법들을 더 잘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걸 까발려 주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문제에 직접,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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