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별이 서툴다 - 죽음에 대한 어느 외과 의사의 아름다운 고백
폴린 첸 지음, 박완범 옮김 / 공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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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이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하게 될까요?..... 여기서 죽음을 대한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의 조문을 위해서 상가에 가는 행동을 포함한다면 어느정도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일년에 몇 차례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대면을 제외하고, 오로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아마도 일년에 한 차례도 없었던 이들이 부지기수가 아닐는지.....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과정을 가장 많이 대면하는 사람은 ..... 아이러니칼하게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살려보겠다고 하얀 가운을 입고 동분서주하는 의사들이겠지요. 요즈음 우리 사회의 임종의 많은 부분이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사망에 대한 판정 역시 대부분 의사들의 손을 거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 대부분의 죽음의 현장에는 의사들의 손길이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의사들을 병을 치료하고 고쳐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냉정하게 또는 아무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배웅해 주는 사람이라는 설명도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은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의학에 입문하여 파릇파릇한 학생 시절을 거치고 직접 의료현장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것인지 실감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가망없는 환자들이 생기고 그들도 역시나 의사가 책임져줘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 책은 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현장에서 저자가 마주하게 되었던 그런 모순에 대한 혼란과 자책, 그리고 죽음을 인정하고 그 과정을 의사답게 품고 따뜻하게 환자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하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감동스럽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은 멋지게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을 해내는 것이 의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치료와 완치라는 환상 너머에 있는, 어찌보면 의사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사실일 수도 있는 '치료 가망 없음'과 '죽음에 이르고 있음'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해야 하고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하고 이있는 저자의 모습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이들의 말못할 고뇌의 한자락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 더 나은 치료법, 최신의 장비..... 아마 현대 의학의 발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침의 다른 편에는 의료의 탈인간화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분명 환자를 전인적인 위치에 놓기보다는 질병을 가진 객체로 놓고 질병을 타깃 삼아 치료를 시도한 현대 의학은 여러가지 면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과는 갈수록 의술의 적용이 더 많은 검사를 더 많은 장비에 의존해서 실시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경향에 물든 현대 의학이 갈수록 환자라는 한 사람의 인간은 철저히 외면하고, 객관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과정의 정당성만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당당함은 언젠가는 한 인간이 이르게 될 '가망이 없거나 죽어가는 상태'에 이르러서는 많은 회의와 자책을 남기고, 의사들에게는 '기술적인 지식에 매료되고 파묻히는 데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적절한) 마음가짐, 숙련된 솜씨, 행동 양식'을 배웠어야 함을 깨닫게 만들겠지요. 저자가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다음은 저자가 그러한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해 줄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인간적인 교감이라며 인용한 하시브 아운의 글과 그런 상황에서 처한 의사들의 입장에 대한 저자 자신의 솔직함을 담은 글입니다.

 - "좋은 의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우리'는 함께 그것에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절망적이거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치료 방법이 적은 환자일수록 의사가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 방법이 없다면 고통 완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 삶의 마지막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미련을 해소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 아파서 치료받을 때만큼 이런 감정이 잘 표출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런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표는 곧 사랑의 징표이자 희망의 징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사들조차 희망에 이끌려 시행한 치료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많은 의사들은 동료나 자신이 기술에 심취해 내린 진료 결정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를 직접 목격하고 나서 스스로를 과잉 치료 때문에 절망에 빠진 환자처럼 여긴다. 만약 의사가 가망 없는 환자로 진단받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과연 어떻게 할까? 의사들의 십중팔구는 생명 유지 요법을 제한하거나 거부한다. 따라서 이런 의사들은 진료 중단을 요구하는 환자의 의견을 당연히 들어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사들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수 있다. 

 두번째 글에는 환자 보호자나 의사가 환자를 쉽게 보낼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의사들이 가망이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리는 이유의 한 측면을 드러내 주는 글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결국 이러한 이유들은 삶이라는 한 측면에서만 환자를 바라 보았기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배려(?)를 배운 저자의 마지막 글에 담긴 '나는 그들의 삶을 위해, 그리고 죽음을 위해서도 존재했다.' 는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죽음까지도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의사, 결국 그런 의사가 정말 좋은 의사라는 사실과 그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얀 가운을 걸친 모든 이들이 이제라도 알 수 있기를..... 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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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이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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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5단계> 부정과 고립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 심리학 시간(?),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 배웠던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질병이나 기타 원인에 의해서 시작된 죽음의 과정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을 고른다면 말기암 환자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내놓고 의견을 나누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죽음의 과정에 있는 사람과는 더더구나 피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제대로 모르고,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오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반응을 생각해 본다면,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분명 필요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주제였고, 아마도 그러한 편견이 그러한 과정을 겪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이나 임종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찌보면 자신의 벌거벗은 존재와 마주하며 두려움과 외로움, 분노 등을 가득히 담고 있을 이들이 바로 죽어가는 이들이고, 가장 많은 부분에서 이해와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죽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저자는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주제를 너무 무겁거나 무서운 척하지 않고도 진지하게 다루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환자들에 대한 접근이 죽음 자체보다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결국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의미있고 평안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풀면서 살듯이 죽음이라는 좀 더 특이한 문제를 여러사람의 이해와 도움, 상호작용을 통해서 짐을 더 가볍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느 한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져 간다는 것이지만, 그러한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를 둘러싼 가족과 가정, 이웃들과 연관된 사건이라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책에 언급된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일반인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이나 임종의 순간, 또는 임종 직후의 모습을 대하는 것은 일생을 통하여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수도 없이 그러한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겠지요. 의사나 간호사, 호스피스 종사자 등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으로 본다면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있는 환자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여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과의 열린 마음으로 나눈 대화들을 통해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겠지요....- 보여주고, 금기시 하던 영역에 대한 귀한 보석꾸러미를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사해 준 저자에게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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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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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누구나 의학이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는 의학기술로 어찌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또 다른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페니실린으로 시작된 항생제의 혁명을 거쳐 일견 많은 감염성 질환들을 정복해가면서 한껏 부풀어 올랐던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대의학에 대한 기대는 결국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한발한발 더디기만 한-하지만 의미있는- 발걸음으로 또다른 개선의 과정을 걷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러한 개선의 과정이 과거에 비하면 놀랄만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수로 사람을 놀래키는 모습으로 현대의학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현대의학이 완전하지 못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하고 안전하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완전하지 못한 의사와 현대의학에 기대어서 말입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현대의학이 얼마나 모르는가에 대한 예로 엉덩이에 총상을 입은 젊은 청년에 대한 자신의 진료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광과 장을 관통한 것이 의심되어 응급수술을 했건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기존의 관통을 의심할 만한 소견도 이내 말끔히 사라져버린 환자, 하지만 수술을 마치고 다시 확인한 사진에 복부안쪽에서 총알이 발견된 환자에 대한 황당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의사들이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하는 의료행위들이 얼마나 쉽게 부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고백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외부에서 기대하는 현대의학의 논리정연하고 정확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부단한 변화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 담긴 목숨을 건 줄타기인지에 대한 고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대의학 안에 있는 과학이 또한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습관과 직감, 때로는 낡은 추측으로 얽혀, 아는 것과 목표로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만들고, 그 간극으로 인해 일이 꼬이게 되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보기보다는 덜 완벽하지만, 또한 보기보다는 특별한' 의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저자가 현대 의학을 들여다보는 내용은 다양한 진보와 발전을 자랑하는 의학의 눈부신 모습이 아니라, 완벽해 보이고 적어도 어느정도 잘 통제되고 있어 보이는 의학과 의료시스템 속에 숨어있는 오류의 가능성과 불가사의,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것들입니다. 정확하고 논리정연하게 진행되는 듯한, 의사를 통한 의학의 실행속에 담긴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많은 이들에게 의학에 대한 불신과 비난을 낳는 소재가 되고 -서점가의 많은 책들이 이러한 냉소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있지만, 적어도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의학의 본모습이 그러하다는 고백을 하고 있고, 또한 애정어린 시각으로 그 안에서 고민하며 문제를 헤쳐나가려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의학의 모습을 말입니다.

 1부에서는 의학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신출내기 의사들이 술기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능숙한 의사가 탄생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위험과 암묵적인 인정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터 의사들이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실수를 의사사회 내부에서 치열한 의견교환을 통해서 교정해 나가는 과정,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아픈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 건강한 사람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남들과 단절된 혼자의 삶을 사는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굿맨이라는 의사의 실례를 통해서 나쁜의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좋은 의사가 어느 순간에라도 나쁜 의사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과정이 잘 통제되거나 걸러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부에서의 의학의 지식과 실제 현실속에서 발생한 사건들 사이의 불가사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신일 뿐이라고 믿었던 '13일의 금요일의 보름달'인 날, 당직을 서며 그 미신이 현실이 되어버린 일, 의학의 역사를 지배하였던 통증에 대한 가설의 변화에 따른 통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변화, 그리고 의학적이라기 보다는 사회문화적이라거나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가는 통증의 성격, 심한 임신성 구역증을 겪는 산모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보는 병적인 것이라고 취급하여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만 했던 의학의 모습에 기대어- 호전시켜보려고 했던 구역증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한 고찰, 수술을 통해 안면홍조를 치료했지만 심리적인 위기를 겪는 아나운서를 통해 단순한 수술을 통해 달라진 그리고 더 당당해지기까지하는 모습과 진정한 내면은 그대로이고 수술을 통해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 바뀌었을 뿐인 자아 사이의 충돌, 현재 효과가 인정되었지만 미래의 여러 합병증이나 위험성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위수술을 통해서 비만증을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의학이라는 표면뒤에 감춰진 의학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의학의 수수께끼와 아직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의 부검을 통해서 진단오류의 경우가 의사의 무지와 무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 소아 돌연사 증후군의 사례처럼 이유나 원인을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 사이의 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 의료인으로서 무수히 부딪히는 불확실성의 회색지대에서 결국 객관적인 증거나 알고리즘의 부족속에서 의사의 감(느낌)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불확실성과 무지에 현명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담아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냉정하고 딱딱해 보이는 의학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저자는 이야기 책을 엮어가듯이 내용을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의학의 본질에서 시작하여 내면에 숨겨진 고민과 부족함, 그리고 특별함 등에 대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진심도 잃지 않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와 병원 그리고 현대 의학에 대한 따뜻한 이해의 기회가 되고, 의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겸손함과 불확실성과 오류의 가능성에 대항해 현명하게 싸우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질병과 부딪치는 현장속에서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해도 의사들은 때때로 비틀거릴 것이며, 그런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에게 요구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중단없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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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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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로서의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

 * 이 책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인상적인 것은...... 제목 "읽기 두려운 메디칼 스캔들"

 * 그 다음으로 마음을 사로 잡는 내용은...... 책 뒷페이지에 새겨진 "의사 비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어디로 갔는가"와 그 밑에 덧붙여진 추천사 4개

 * 그나마 덜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제일 뒤에 붙은 '옮긴이의 글' (내용과 표현의 부실함이나 억지스러운 면을 인지하였는지 처음을 조금 아량을 베풀어 부드럽게 시작하고 있음. 뒷부분은 결국 책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 딱히 평가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저자가 쓴 '책 내용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 중간에 괜찮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몇군데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

 의료나 병원이라는 직업과 공간이 나의 일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이 책에 대해서 이러한 평가를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신문에 나왔던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에 대한 많은 질책을 보고서 경찰공무원이나 그의 가족, 친지들은 너무 심하게 매도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대통령께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질책하며 공복이 될 것을 다그치는 신문기사나 방송을 보는 많은 공무원들은 아마도 우리의 의식이 저렇게까지는 아닌데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자극적인 책제목과 출판사의 홍보가 아마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픈 부분에 대한 자극도 되겠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한 자각과 반성의 시간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독일의 경우이기에 단순히 생각해도 똑같다고 할 수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하얀 까운을 입은 의사 사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많은 공통점을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느끼는 것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무 감정없이 주사바늘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의 살갗에 가져다 찌르듯이, 날카롭고 차가운 붓끝을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심지어는 비꼬기까지 하는 -저자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모습들을 비판하곤 하는데, 자신의 글을 통해 의사들에게 똑같은 복수를 하는 듯 합니다- 저자의 싸늘한 손놀림입니다. 환자에게 애정이 없다고 의사나 간호사들을 욕하면서 그의 글에는 그들을 향한 아무 애정이 없어 보이고, 사보험과 공보험 환자를 경제적인 이득만을 생각해서 차별한다고 병원에 야유를 보내면서 자신의 글은 조금이라도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해서인지-이건 나의 오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만-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객관성보다는 자신의 해석을 최대한 옳다는 듯이 써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내용중에 갈수록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기계나 검사에 의존하여 진단하고 치료를 하려는 의사, 봉사와 희생이라는 가치보다는 경제성이라는 측면에 매몰되는 병원, 환자들과의 따뜻한 교감보다는 일에 치여 무감각하게 자신의 일만을 하는 병원종사자 등의 문제에서부터 신중치 못한 의사나 의료인의 말한마디나 행동하나가 환자의 입장에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수치감을 느끼게 만들수 있다는 지적, 응급환자를 거부하거나 주말이면 환자를 보살피는데 빈 공간이 생기는 체계의 문제 등 다수의 지적이 독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고민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의 다수가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의사 개개인의 인격의 문제라거나 병원 한두개나 그들의 행태 한두가지를 예로 들어 욕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닐것이라는 데 더 심각함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에 가장 쉽게 접근하는 것이 바로 저자처럼 그러한 예들을 들어가면 병원과 의사, 그리고 그들이 속한 집단을 욕하며 매도해버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조건 게을러서 그리 가난하게 산다고 욕하는 것하고 크게 다를게 없는 접근방법이라고 한다면 너무 논리를 비약하는 것일까요. 저자가 과거에 의사였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러저러한 상을 받은 사람이라는 면에서 적어도 이런 단순한 접근법보다는 훨씬 더 심층적인 접근이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또한 저자의 경우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위한 마음의 여유도 보이지 않는 듯 하고 -그래서 어떤 문제를 지적할 때 그 상황의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자신이 느꼈던 주관적인 감정 자체를 사실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모습마저도 용납하고 있는-, 자신이 느낀 문제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꼬기는 하였어도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에 '생존지침'이라는 극단적으로 보이는 내용과 해석들을 곁들임으로써 자신의 비판에 대한 책임을 완수한 듯이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자의 '메디칼 스캔들'이라는 주장의 의미가 우리가 가십거리로 읽곤하는 연예인들의 스캔들 기사가 실린 스포츠 신문의 내용처럼 너무나 가벼운 주제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단순한 감정풀이가 아닌 훨씬 신중하고 심각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들인데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 책에 대한 비틀기가 나의 환경이 의료와 병원이라는 공간과 무관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무의식적인 비틀기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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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상구 - 안락사를 말하다
데릭 험프리 지음, 김종연.김종연 옮김 / 지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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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략난감' 책을 보며 드는 이러한 느낌은 아마 내 자신의 신앙적인 신념과 저자가 말하는 이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갈등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안락사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이나 옹호를 기대한 거였기에, 책을 읽으며 그러한 안락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미 논점을 벗어난 거라는 느낌에 당혹스러움도 있었습니다. 저자가 아내의 안락사를 도왔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그에게 안락사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논쟁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책의 전개는 안락사의 당위성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아래 진행됩니다. 그리고 안락사 진행의 방법론적인 이야기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소생의 희망이 없거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마지막 출구로 택할 수 있는 것은..... 저자는 안락사라고 말합니다. 몇가지 구분을 할 수 있지만 귀결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안락사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다른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면 아주 세세한 부분들까지 신경을 써서 적어 놓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을 어떤식으로 받을 것인지, 어떤 약물이나 방법은 적절하지 않고 어떤 약물이나 방법이 적절할 것인지, 약물은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일을 실행하기 전에 준비하고 작성하여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실행장소와 시간은 어느 때가 좋을지 등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영화에서처럼 총 한방 쏘고, 약 한봉지 입에 털어넣는 것 같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쉽게 생각했다가 실패한 후에 훨씬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마지막까지 삶의 소망을 경시하지말라는 충고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선택이 안락사라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고려하여 실행하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책의 처음 부분에 자신의 이 책이 자살에 이용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적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책임한 죽음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에 대한 저자만의 고민일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그러한 사건에 책이 이용된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환자들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이 책의 의미를 철회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아마 저자의 생각에  안락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부류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암, 에이즈 혹은 기타 말기 질환 환자

- 말기 단계로 들어선 질환 환자

- 말기 증상이 고통스럼고 비참할 것으로 간주되는 환자

-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 받은 환자 

- 의사와 잘 알고 지내며 인간으로서 상호 존중하는 환자

- <마지막 비상구>를 읽은 후 차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단독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한 환자

- 죽음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가족의 승인을 얻었거나 어떠한 가족도 없는 환자

- 의사의 관여에 대해 사려 깊게 행동할 환자

 낙태와 안락사, 많은 시간의 논쟁과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인 듯 합니다. 더더구나 양날의 칼처럼 한 쪽의 편리함이나 유용함의 허용이 예상하지 못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비수를 함께 숨기고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나 같은 이들은 아마도 신의 영역에 남겨두고 지키고 싶어하겠지만, 저자와 같은 이들은 인간의 품위와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실행하려고 하겠지요. 그리고 보라매 사건이나 아들의 호흡기를 제거한 아버지의 사건처럼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안락사와 연관된 문제들은 우리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또한 합리적은 해답을 찾아갈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도에 대한 공감을 갖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의 나는 것과 죽는 것은 신의 영역에, 적어도 인간의 결정권 너머에 있는 것 -여러가지 그럴듯한 이유가 덧붙여지더라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이 삶을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죽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배려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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