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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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비디오 장르는 무협이었다. 30~40편짜리 장편 무협드라마에는 아주 환장을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판타지 소설에 푹 빠졌다. 그렇게 재미있는 게 또 어딨을까? 닥치는 대로 장편물을 해치웠다. 그러다 어느 날, SF를 만났다.

가장 처음 만난 SF는 스타트랙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 SF는 스타트랙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장르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상, 지구라는 작은 별을 뒤덮은 바다 따위는 비교도 할수 없이 무한으로 펼쳐진 우주를 누비는 항해. 나에게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스타트랙을 시작으로 갖가지 SF 드라마와 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내리듯 시청자를 공략하던 때였다.


그렇게 무심코 읽고 보고 즐겨 왔던 SF가 단지 한때의 공상이 아니라 실상으로, 현재의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는 걸 깨닫는 건 나에겐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왜냐면 내가 기억하는 SF 장르의 영화, 소설, 드라마 등등은 결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봤던 SF 만화 중에 아직도 충격적인 위기감을 주는 장면들은 환경오염으로 멸망한 지구, 기후변화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은 사람들, 완전히 사막화된 지구에서 모래쥐처럼 살아가는 인류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내가 보았던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한 장면들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들은 신기한 동시에 불안하다.


수십년 전부터 미래의 재앙을 그려냈던 SF.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살아보지 못한 세계를 그리되 결국 현실과 이어지고야 마는 이 문제적 장르.

이동신 교수는 이제는 SF를 어떻게 읽고, 거기서 무엇을 건질 것인지를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생각보다 SF라는 장르는 무척 어렵다. 무척이나 어렵다. 왜 어렵냐면 이 장르가 시작되는 그 지점, 이 장르가 해야할 이야기들을 모두 발산하고 끝을 맺는 그 지점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사고하는 그런 지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온 말을 빌리자면 '기존의 지식체계가 아닌 그 너머의 사변'에서 SF는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그래서 그렇구나! 무협과 판타지를 좋아하던 내가 SF를 접할 때마다 느꼈던 생소함, 기이함은 그것이 진짜 SF다운

SF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나는 실은, 내가 과학을 싫어해서 SF마저 불편하게 느끼는 구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실망을 좀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뒤늦은 위로를 해본다.


서가명강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이 시리즈는 독자를 한 명의 청강자로 두고 책 전체의 강연 내용을 최대한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해당 도서가 다루고 있는 학문의 영역을 도식화해서 보여준다던지, 해당 도서를 읽는 동안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할 개념들을 미리 정리해 앞에서 다 보여주고 책을 시작한다던지 하는 점들은 정말 출판사가 고마울 정도다. 덕분에 우주선과 외계인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즐길 줄만 알았지 SF 자체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했던 독자 하나에게 빛을 주었으니까.

[SF, 시대정신이 되다]라는 제목 때문에 SF 장르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에게만 이 책이 눈에 띌까 싶다. 이 책은 SF장르 자체에 대한 호감도를 떠나 '현재의 지구와 인류'에 대해 먼지만큼이라도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SF가 어떤 장르인가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 '인류 공통의 위기를 맞은 지금 우리 시대의 문학과 문화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문화를 생산하고 누군가는 문화를 소비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생산자에게 윤리, 시대정신, 가치성 있는 주제의식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동신 교수는 생산자가 그런 사명감이 없이 생산했다고 해도 괜찮다고 한다. 더 중요한 건 생산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소비자, 책으로 치자면 독자다. 독자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읽는다면, 생산자인 작가들이 결국 그 변화를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세상이 험하고, 혼란할수록 문화의 소비자들은 더 예리하고 수준 높은 안목으로 문화를 읽어내야 한다. 오늘 당장 비닐 한 장 덜 쓰는 것도 너무나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저마다 예리한 독자, 소비자가 되어가는 것 역시 지금의 위기와 혼란에서 우리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일 것도 같다.





작가들이 그런 사명감을 갖고 쓰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독자인 우리가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독자가 달라진다면 작가들도 그 변화를 점차 따라오게 된다. SF는 그렇게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장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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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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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진실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에서 보는지, 어떤 날씨에 보는지, 심지어 어느 시간에 보느지에 따라서도


자연 풍경마저 달라지지 않는가.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인 줄 알았다면 아마 진즉에 찾아 읽었을 거다. 헨리 제임스가 쓴 [나사의 회전]은 1898년에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대 고딕 소설, 심리 소설의 사조라고도 불리는데, 나는 고딕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인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심리 소설로 읽었다.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사람 중 하나인 나는 공포영화 속에 심어놓은,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나 '혐오감을 들게 하는 장치'들을 아주 불편하게 느끼기에 그런 류의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을 즐기진 못한다. 그런데 [나사의 회전]에서 감탄한 부분은 놀라게 하되 아주 천천히, 안개가 스며들어 어느새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느리지만 분명하게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부분들이다. 공포영화는 싫어하지만 긴장감 가득한 스릴러는 또 무척 좋아하는 기묘한 취향의 내가 정말 몇 년 만에 취향저격 소설을 만난 것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소설의 가장 주된 화자인 가정교사의 입장에 서서, 그녀의 시선과 관찰과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도 기이한 긴장과 스릴이 느껴지고 그 정반대의 입장에서 읽어가도 다른 결의 스산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부터 가정교사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마음에 걸렸던 터라 그녀가 묘사하는, 그녀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어디까지나 '가정교사가 재단한 사물과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갔다. 그래서 마일즈가 저택으로 돌아오고 가정교사가 유령을 목격하고 전전긍긍하는 단계에서는 가정교사의 극단적인 렌즈가 저택 전체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문제는 그 날 밤이었다. 한밤중에 마일즈가 저택 마당에 서서 저택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 날 밤.



실은 여전히 가정교사가 목격했다는 그 유령들이 미스 제셀과 피터 퀸트 였는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경험이 많지 않고 예민하고 젊은 가정교사를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특히, 자기를 고용한 고용주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그의 인정과 지지를 받기 위해서라면 자기 무덤이라도 팔 것 같은 이 여자의 이성과 감정의 기울기는 과연 평행한가? 마일즈와 플로라를 찬양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가 '아.. 이 분 얼빠네. 그 아이들 삼촌한테도 그러더니.'라고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래서 호숫가에서 가정교사가 미스 제셀의 유령을 보았을 때, 호수를 등지고 놀이에 전념하는 플로라를 관찰하면서 '세상에, 플로라는 이미 미스 제셀의 유령을 보았고 심지어 애써 저 여자의 등장을 무시하고 있어!!'라며 경악할 때 심지어 우습기까지 했다.



가정교사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그로 인한 시야의 왜곡에 나마저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작품을 읽어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가정교사에 대한 불신이 나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혼자 숲으로 간 플로라와 그를 쫓아간 가정교사와 그로스 부인과의 대화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플로라는 작고 발그레한 얼굴을 굳은 듯 경직시킨 채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성난 표정으로 내 속을 꿰뚫어보며 비난하는 것 같았다.

173쪽



이 장면에서 플로라가 보여주는 반전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가정교사가 플로라를 정확하게 보았고 내가 틀렸나?' 작품 초반부터 지금까지 내내 내가 가지고 있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면서 가정교사의 집요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 플로라가 어른들이 경악할 만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무서운 아이 플로라로 변신하는 부분이다. 이 장면 이후로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급물살을 타면서 앞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결과로 작품은 끝이 난다.



가정교사가 할리 가의 주인인 고용주와 짧은 만남을 하면서 맺었던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단연 '절대 고용주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조카들과 조카들이 사는 곳에 대하여 모든 관심을 끄고 싶어하는 고용주의 의지는 상당히 강력했다. 심지어 이 고용주는 가정교사가 플로라와 마일스가 사는 저택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마일스가 다니던 학교장이 보낸 서신을 봉투도 뜯지 않은 채 가정교사에게 고스란히 넘기면서 '나는 알고 싶지 않고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보고하지 말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야기 초반인 그때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의아했다. 아이들을 너무도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인가? 자기가 떠안게 된 조카들이 짐스러워서 싫은가?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결말을 모두 읽은 후에 돌이켜 보면 조카들에게 여러 번 당한 기억이 있어서 치를 떨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플로라가 결말부에서 보여준 변신을 감안하면 그러고도 남을 만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작품은 아이들의 말과 반응에 대한 가정교사의 해석과 응대만을 통하여 작품 속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야기 속에서 가정교사가 '이건 이런 뜻이야, 저건 저런 뜻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라고는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그런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교사가 해석한 내용을 반박할 수도, 다른 의미와 해석을 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이 소설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이유일 것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건대 가끔 두 아이 중 하나가 자기 오빠나 동생을 팔꿈치로 살짝 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이번에는 꼭 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못하실 거야!” 여기서 ‘한다’는 표현은 나의 훈육에 간섭하기 시작한 그 여자의 유령에 대해서 내가 한 번쯤은 직접적인 언급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127쪽



빛나는 재치와 따듯한 배려가 담긴 그의 제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중세 이야기에 나오는 진정한 기사들은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았어요. 이제 선생님의 마음을 알겠어요. 이제부터 선생님은 저를 혼자 있게 해주실 거고, 제 걱정을 하거나 몰래 엿보지 않을 것이며, 항상 저를 옆에 두려고 하지 않으실 거죠. 제가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자유도 주실 거예요.”

161쪽



이번에 읽은 [나사의 회전]은 미래와 사람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시카고플랜 고전문학 시리즈 중 하나다.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든지 주의를 기울여 충분히 즐기면서 읽으면 좋은 게 독서이지만 이 '시카고플랜'은 더 나은 독서와 사고를 위하여 누구라도 해볼 만한 유익한 독서법이지 않을까. 책 속에서 모델을 정하고, 가치를 발견하고, 발견한 가치에 대하여 비전을 가지라는 세 가지 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는 건데, [나사의 회전] 같이 장르적인 특징이 두드러지는 소설에 저 세 가지 과제를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 독서모임의 주제 도서나 토론 때에 이야깃거리로 매우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건대 가끔 두 아이 중 하나가 자기 오빠나 동생을 팔꿈치로 살짝 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이번에는 꼭 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못하실 거야!" 여기서 ‘한다’는 표현은 나의 훈육에 간섭하기 시작한 그 여자의 유령에 대해서 내가 한 번쯤은 직접적인 언급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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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협력한다
디르크 브로크만 지음, 강민경 옮김 / 알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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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지구를 지배해 온 방법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자연은 공생과 협력을 거치며 균형을 이루어 살아왔고 때로 크고 작은 변화가 발생한다고 해도 이내 균형을 다시 찾았고 몇몇 종이 멸종을 했어도 지구는 여전히 살아있다.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가 인간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한 지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인간은 지구에서 생존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협력과 공생을 통하여 지구 생태계의 거대한 연결망에 편입하여 생존을 이어갈 만한 종인가, 아니면 30년 이내에 멸망해도 어쩔 수 없는 뭐 그런 종인가.



독일을 대표하는 복잡계 과학자인 디르크 브로크만은 [자연은 협력한다]를 펴내며 인간이 너무나 착각하고 있는 여러가지를 정면으로 뒤엎는다. 예를들면 인간이 '박테리아'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하는 더럽고 지저분한 혹은 병을 일으키는 불결한 인상은 실제 박테리아와는 결코 어울리지도, 비슷하지도 않다는 내용과 같은 것들이다. 생태계가 약육강식이라는 무한한 경쟁을 통하여 진화하고 번성하고 생존해 왔다는 인식도 틀렸다. 경쟁이 아니라 공생과 협력을 통해 자연은 생존해왔다. [자연은 협력한다]는 생태계를 견고하게 유지해 온 자연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무엇인지, 그것을 배우기 위하여 '복잡계 과학'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복잡계 과학이라는 말은 무척 생소하다. 이 책을 통해 이런 분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자인 디르크 브로크만은 이론물리학 분야를 전공한 학자로 현재는 복잡계 과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데,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던 이 복잡계 과학이라는 게, 무엇을 목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그리고 그 연구가 인간이 처한 위기 즉, 인류 멸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이해가 된다.



공통점은 서로 다른 대상을 결합하는 것을 넘어서 구속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서로를 구분하는 차이점은 끝없이 많지만 공통점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연과학은 오로지 이 구속성을 통해 발전해 왔다.


책52쪽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은 일종의 학술적 편협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술적으로 편협해져서는 복잡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책60쪽



이론물리학과 수학에서 출발하여 전염병학, 생물학, 신경과학, 통계물리학과 사회학까지 연구한 저자는 그래서 학술적 편협성을 뛰어넘어 학문의 융합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자연은 협력한다]에는 인간이 처한 기후위기라는 지구 환경의 변화에 대한 해법을 경제, 사회, 신경과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탐구하려는 시도가 잘 나타난다. 저자가 언급한 분야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미생물이었다. 미생물과 내가, 내 신체가 이렇게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걸 이 책에서 배웠다.



사람들은 연구를 거쳐 그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미생물과의 협력적인 결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럴 수 있는 동식물은 단 한 종도 없다. 모든 식물과 모든 동물은 체내 혹은 체외에 미생물을 달고 있다. 이 미생물들은 동식물이 살아가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책284쪽



모든 고등생물이 예외 없이 미생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생물과의 공생이 고등생물이 발생한 약 5억년 전부터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 존재했던 적이 없다.


책289쪽



인간이 겪는 수많은 만성 질병이 미생물의 기능 장애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모든 반추동물과 초식동물은 기본적으로 소화기관 내에 있는 박테리아에 의존한다.


290쪽



미생물과 생물의 연결성, 협력 구도를 다룬 <7장 협력>편을 정말 꼼꼼하게 읽었는데 읽어볼수록 재미있다. 이 책의 여러 챕터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7장은 인간 사회가 현재 처한 위기 즉, 개인주의가 불러온 위기, 몰이해와 몰지각이 불러온 위기, 과도한 경쟁이 불러온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는 내용이다. 지금의 우리는 집단행동을 두려워하거나 폄하하고 자기가 아는 세계와 지식 안에서 갇혀 있는 것을 편안해한다. 그러나 단순히 기후위기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 무척이나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다. 내 삶에 작은 한 조각, 작은 변화 하나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하여 다각도의 진단과 성찰이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미생물과 생물의 공생, 협력 활동을 바탕으로 다윈이 놓친 진화의 또다른 열쇠를 설명한 내용들을 읽다 보면 '나만 아니면 돼.' 라든가 '나만 잘하면 돼.'라는 인식이 인류와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아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복잡계 과학의 도움으로 규율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필수적인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세세한 것들만 따지다가 길을 잃지 않고 여러 현상 사이의 연결을 인식한 다음 그 공통점에서 배울 수 있다. 공통점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저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수를 셀 뿐이다.

책308쪽



지금까지 남다른 점, 남다른 것에만 홀려 왔다면 이제는 같은 것,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이야기 하지면 다른 인종, 다른 문화, 다른 성별 등 차이에만 집중하고 그것에 매몰되면 결국 남는 것은 갈등 뿐이다. 자연의 여러 종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종들 간에 존재하는 공통점 때문이다. 공생과 협력이 자연 생태계에 긴밀하고 견고한 연결망을 이루고 그것을 통하여 생태계가 존속해왔다면 공생과 협력의 결과,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지지 않는가. 책 속에서 등장했던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개인인 적이 없다'.


우리는 복잡계 과학의 도움으로 규율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필수적인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세세한 것들만 따지다가 길을 잃지 않고 여러 현상 사이의 연결을 인식한 다음 그 공통점에서 배울 수 있다. 공통점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저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수를 셀 뿐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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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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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드라마로 인해서 더 유명해진 허먼 멜빌의 [모비딕]. 내가 알기로운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꼽은 명저라고 알려져 최근에 부쩍 이 소설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 하다. 원래도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저자인 허먼 멜빌은 몰라도 [모비 딕]이라는 소설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워낙에 유명한 책인 경우, 제목만 들어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그런 베스트셀러의 경우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라는 책을 알고 그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는 대략 알지만 실제로 [토지] 전권을 다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는 그런 아이러니. 실제로 완독한 사람은 적은데 그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그런 아이러니. 그런 책 중 하나가 단연 이 [모비 딕]이겠다.


 왜 완독률이 적은가? 그야 당연 책이 두껍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야기가 길고 책이 두꺼울수록,,권수가 많을 수록 책이 재미있었다. 물론 잘 쓴 이야기의 경우에만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선 권수가 5권 이상 되는 소설의 경우 재미 없는 작품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읽어야 할 내용이 많은 소설이라고 해서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이 '재밌다'는 보장만 확인되면 노빠꾸로 고고!! 했었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는 좀 알겠다. 읽는 것도 엄연한 노동이라서 페이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체력이 달린다. 그런 지경이니 들고 있기에도 무거운 [모비 딕] 완독에 도전하는 건 내게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이슈메일이 배를 타고 나선 것처럼 고된 줄 알면서 뛰어든 그런 거였지. 


 모든 것이 망꾼을 나른함에 빠져들게 한다. 열대지방에서 고래잡이의 생활 대부분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간다. 들려오는 소식도 없고, 신문도 읽지 못하고, 별것 아닌 일을 부풀린 호외를 보고 쓸데없이 흥분할 일도 없다. 국내의 재난, 파산 채권, 주식 폭락 등으로 괴로워할 일도 없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3년 치가 넘는 식량이 통에 가득 담겨 있고 메뉴는 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209쪽


 요즘 포경 업계는 몽상적이고 우울하고 얼빠진 젊은이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곤란한 걱정거리에 넌덜머리를 내며 타르와 고래 지방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 

212쪽 


 이거지, 이거야. 이슈메일이 망루에 앉아 망망대해에 무의미한 시선을 둔채 우주가 그의 귓가에 불어넣는 온갖 질문들로 인한 상념에 잠겨 저도 모르게 형편없는 망꾼이 되어버렸던 것처럼, [모비 딕]은 그런 책이다. 애초에 요즘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추리나 스릴러 같은 그런 요소의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마치 바다를 바라보듯, 우주를 탐구하듯 상념에 빠진 채로 흘러가듯 읽어 나가는 작품이다. 읽어보기 전에는 '와, 이 책 두께가 만만치 않은데.' 혀를 내둘렀더라도 괜찮다. 포경선을 배경으로 찍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라든가 [순풍 산부인과]와 같은 블랙 코미디를 본다고 생각하면 모든 진입 장벽이 다 사라질 것이다. 왜 포경선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이라고 했냐면 진짜로 작품 속에 그려진 포경선 내의 온갖 에피소드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 특유의 포악하고 건조한 유머가 나하고도 잘 맞는 것 같다. 뱃멀미가 처음에는 곤욕이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편안해지는 것 같은 이치인가? 작가가 작품 속에 풍성하게 가꿔 놓은 표현들도 흥미롭다. 



 바다는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에게 적수가 될 뿐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도 악마 같은 짓을 하며, 자신이 초대한 손님을 살해한 페르시아 연회 주인처럼 자기가 낳은 생명체마저 봐주지 않는다. 

354쪽


 너희는 의족이 떨어져 나가 부러진 창에 의지하여 한 발로 서 있는 늙은이를 보고 있다. 이것이 에이해브이고 그의 몸이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영혼은 100개의 다리로 움직이는 지네다. 나는 폭풍우 속에서 돛대가 부러진 군함을 끌어당기는 밧줄처럼 긴장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좌초된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 내가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끊어진다면 뚝 하는 소리가 나겠지.

675쪽 



 [모비 딕]은 특히 허먼 멜빌이 성경에서 소재를 가져와 다양하게 쓴 표현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굉장하다. 와,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이렇게 끌어와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런 류의 표현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모비 딕]을 절대 절대 절대로 완독해 봐야 한다. 만약 성경 모티프에 대한 해설이 필요하다면 책 맨 뒤에 이 책의 옮긴이가 써둔 해제를 먼저 읽은 후 작품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모비 딕]은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거칠고 광포한 바다 한복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가 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모비 딕] 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실린 목판화였다고 한다. 1930년대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기 위해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를 책에 함께 수락했다는 출판사의 전략이었는데, 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컬러로, 세밀하게 묘사한 삽화보다 이 작품의 분위기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퀴케그와 모비 딕의 느낌을 설명하는 데는 단연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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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박용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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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비 프로그램 [금쪽 같은 내새끼]에 출연했던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부모가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한글을 깨우쳤다. 아주 어릴 적부터 유투브를 보면서 말을 배웠다고 했다. 그런 아이더러 부모는 언어 천재라고 자랑스러워했으나 실상 아이는 언어를 요구, 거절 등에만 사용하고 사람과의 상호작용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할 뿐 아니라 부모와도 정서적인 언어 소통을 하지 못했다. 말을 할 줄은 알지만 제대로 쓸 줄 몰랐던 아이는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을 처방 받고 사회성을 기르면서 해당 회차는 막을 내렸다.


 '이거 줘, 저거 싫어, 저리 가' 등 자신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만 하면 언어 사용에는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과 언어를 통해 상호작용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부모와 친구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편안하고 일반적인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는 고립된 채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버린다. 아이 본인의 고통과 아이를 아끼는 주변인들의 고통은 수치로는 환산이 불가능할 것이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아이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투브와 넷플릭스로 언어를 깨우친 아이들. 사람의 기운과 정서적 교감이 배제된, 말을 주고 받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부재한 언어의 세계는 좁고 얕고 낮다. 이 얄팍한 세계를 품은 사람은 딱 그만큼의 프레임으로 외부 세상을 재단한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옛말이 딱 이런 경우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에서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언어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고, 단어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차원적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세상은 내가 가진 개념적 넓이와 깊이만큼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언어의 한계가 생각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 인식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

책 14쪽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문해력, 독해력이 현저히 낮아져서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어디 어린 아이들만 문제일까. 어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맥락을 잡지 못하거나 호흡이 긴 글은 아예 읽지 않는 어른들도 얼마나 많은가. 한 권의 구성을 가진 책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 어른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 sns에서 생산되는 언어만 소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아이들 이상으로 어른들 역시 깊고 넓고 높은 언어를 소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이 책은 평범한 개인이 기존의 언어 세계를 바꿔나가야 할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서 썼다. 언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도 멈추고 소통도 단절되며 공동체 의식도 형성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머릿속의 생각을 표현할 적확한 단어가 없으면 아이디어는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표현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책 119쪽). 저자들이 이 책에서 수없이 강조하듯이 '언제나 언어가 문제다'. 언어의 세계가 풍요로워져야 할 이유를 책 전반에 충분히 이야기한 저자들은 part 2에서 언어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과학의 언어에 대해서 쓴 부분이었다. 


 나의 언어는 현재의 직업과 환경, 관심사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용접을 하는 사람은 그 분야의 언어로, 출판을 하는 사람은 그 분야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sns를 비롯한 온갖 미디어와 매체에서 접하는 언어 역시 우리의 세계를 저 마음대로 지어버린다. 함정은 어떤 특정한 분야의 언어가 세계 전체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학의 언어가 그렇다. 마치 종교처럼 과학과 기술을 신봉하는 우리들의 시대에 우리가 과학의 언어로 사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학의 언어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 정신, 정서의 세계를 내 안에서 고사시킨다면, 그것도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든, 지금보단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는 그것도 아니면 세계 평화를 위해서든 편중, 편향된 언어의 세계를 허물고 넓게 지어올리는 확장공사에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애정과 관심은 이해의 필수요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의 언어에 사고를 점령당한 것 아닐까? 감정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객관적인 입장에 서야만 진정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과학의 언어로만 사고하면, 언어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책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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