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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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는 어차피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안 할거라 출산율이 마이너스를 찍어도 별 상관 없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이 책을 적어도 3번 이상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이 살고 있지만 초저출산율을 걱정 하고 있는 사람 역시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출산율이 왜 공포인지, 이 출산율이 알려주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과 실패를 이 책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은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위기를 기회라고 말한다. 정부의 태도, 복지 정책,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회인 것이다. 복지, 교육, 노동 등 개인의 일생의 변곡점마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없다면 출산율 반등도 없다. 0.6 출산율은 단순히 청년들의 결혼, 출산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개인이 만족하고 안심하며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나라라는, 사회 전반의 총체적 부실의 결과가 출산율 0.6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초저출산의 원인들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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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 시대에서 아이는 자산이었다.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였고, 여성이 목숨을 걸고 낳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사회에서 아이는 투자의 대상이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양육 부담을 지지만 아이는 노인이 된 부모의 여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늘었는데 그 비용은 회수가 안 된다. 여기서 돈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돈 하나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니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맞벌이로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다. 여기서 교육(돌봄)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매우 긴 나라다. 무려 OECD 주요국 중 1위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긴 나라. 그러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는 현실이 더욱 치명적이다. 엄마의 독박육아를 해결하고 아빠의 정당한 육아휴직이 사회의 당연한 문화가 되려면 노동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그간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더이상 정부를 신뢰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정부가 '출산은 좋은 일이니 이렇게 하시오.'라고 이끈다고 해서 개인이 정부의 리드에 따르는 시대는 갔다. 개인은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정부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 체제를 펼쳐놓지 않으면 개인은 절대로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도전도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비용, 교육, 노동문제가 절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근데 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비용 부담이, 교육 과정이,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도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출산의 주체는 여성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현재의 인식이 계속된다면 제아무리 제도와 정책 지원이 쏟아져도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남성들의 주도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갔다는 의미에서 신모계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신모계사회는 독박 육아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선택하는 현실적 대안일 뿐 부계 혈통주의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부계혈통주의는 공고하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내 성을 주지 못하는 이 생활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것, 그만큼 가부장적 사회, 남자 중심 사회, 부계혈통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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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을 불러온 여러가지 원인 중에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것을 '비용 문제''성평등'을 짚어낸 저자는 이 책에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출산율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사회 전반의 개혁과 변혁을 통하여 출산율 반등을 달성한 서유럽 국가들의 선행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복지 지원을 혼인 중심 가족이 아닌 아이 중심 가족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혼한 부부를 기준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미 있는 집, 아이가 몇 개월 뒤에 태어날 집 등 아이를 기준으로 복지 지원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아와 초등학생 돌봄을 통합하는 일이나 아빠의 돌봄 참여 확대 등도 함께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국가들은 짧게는 70여 년, 길게는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서야 막, 문제 해결에 나선 입장이다. 어떤 뉴스들은 '저출산 해결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정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뭐 대단하게 쏟아부은 건 또 아니라고 실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진짜 쏟아부어야 하는 건 지금부터인 것이다. 복지 정책에, 교육과 노동 환경 개선에, 성평등 인식 개선에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들여야 하는 건 이제부터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쏟아야 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 기관만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개개인도 저마다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가장 시급한 두 가지 중 하나인 '성평등'은 정부의 시책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혼이자 미혼인 내가, 출산과 육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가 이 책을 굳이 애써 읽고 공부하는 이유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전체의 일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터와 사회, 내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바꿔놓을 일이다. 그러니 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려면 구성원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맞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개인은 개인의 역할을 다하면 바꿀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그 역할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시행하였다. 기본계획에 기반하여 도입한 정책들이 소용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가족정책 영역을 돈, 시간, 서비스로 나눠 세 영역에서 모두 예전에는 없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한 복지제도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서유럽 복지국가가 짧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길게는 19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100여 년 넘게 구축해온 복지제도를 우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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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케이크 - 일상을 특별하게
이채리(쳐리) 지음 / 경향BP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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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단 몇 년 사이의 변화인 것 같다. 눈으로만 봐도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케이크샵들이 부쩍 늘었다. 어릴 때 미국이나 유럽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에서나 등장했던 사랑스러운 컬러와 장식의 케이크들을 한국의 케이크샵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케이크 위에 크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레터링케이크나 크림으로 꽃을 짜 만든 케이크도 예쁘지만 그래도 제일 내 취향은 빈티지케이크 쪽이다. 다양한 모양의 깍지로 갖가지 장식을 짜 넣은 것도 예쁘고 과일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을 올린 것도 넘 예쁘다. 빈티지케이크는 특히 드레스에서 옮겨온 것 같은 리본이나 프릴 장식을 케이크에 넣어 여성스럽고 화려해보인다. 아마 이런 포인트가 빈티지케이크 매니아를 만드는 게 아닐지.


빈티지케이크의 제작 기법이나 디자인을 참고하고 싶다면 보기 좋을 책이 나왔다. [일상을 특별하게, 러블리케이크]는 14만 팔로워의 인플루언서, 쳐리의 케이크 레시피 및 디자인북이다. 유튜브와 인스타에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문구브랜드 런칭, 케이크 팝업 운영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콘텐츠 제작을 넘어서 온오프에서 복합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저자와 같은 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주인공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고 의미있다. 문구와 케이크라니, 너무 신선하잖아.




러블리케이크 책 안에는 기본적인 베이킹 안내와 크림 제조와 장식짜기, 케이크 완성 디자인까지가 안내되어 있다. 케이크 시트 제조법이나 크림 깍지 모양 안내, 케이크 제작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나 팁과 저자만의 노하우 등이 들어있으니 예쁘고 완성도 높은 케이크를 제작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과일케이크는 뭐든지 다 맛있겠지만 멜론케이크는 너무 기대가 되는거지. 멜론은 위에 장식으로 얹어진 것만 먹어봤지 속에 멜론만 채운 케이크는 아직 먹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멜론케이크를 봤을 때 예쁘기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로투스케이크나 라즈베리케이크도 언젠가 꼭 한 번 만들어서 맛을 봐야지 싶었다. 라즈베리잼은 원래도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생크림하고 같이 먹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더라고. 라즈베리케이크 색이 워낙 예쁘기도 예뻐서 친구 생일선물로 찜해두었다.


여름이라 빵인 케이크보다는 아이스크림케이크가 더 인기라고 하는 계절이지만, 차가운 아메리카노에 시원한 케이크 한 입을 같이 먹어본 사람들은 이 맛을 알지.


일상을 행복하게 하는 예쁜 케이크를 가득 담은 책 덕에 눈도, 마음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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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후드 -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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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나비는 과연 몇 살일까? 영아기, 유아기, 유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 그리고 노년으로. 모든 생물체의 생애 경로가 있다. 그렇다면 이 나비는? 수심을 모르는 바다를 청무우밭이라고 보고 뛰어든, 무모하고 무지하고 미숙한 이 나비야말로 '와일드후드' 그 자체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청소년기를 종합해서 분석한 [와일드후드]라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청소년기 생물의 특징과 잠재력을 단 몇 개의 단어로 꿰뚫은 이 시를 떠올렸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다시 읽어도 너무 좋잖아. 누구도 흰나비에게 바다의 수심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배운 적이 없는 흰나비는 바다의 광포함을 직접 경험하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덕에 흰나비는 바다를 배웠다. 생존! 만약 흰나비가 날개가 물결에 절은 정도가 아니라 익사해버렸다면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을 얻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와일드후드]는 왜 청소년기의 생물들은 무모하고 저돌적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와, 위험해 보이는 곳에 냅다 뛰어드는 건 인간 청소년들만이 아니구나.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는 위대한 멍청이는 바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스릴을 즐기는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거듭났다.

13쪽


성인이 된 이후의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우리는 대부분 위험을 피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마치 고생을 사서하려 하는 건 미련하고 무모하고 무지한 태도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그러나 [와일드후드]의 저자들은 10대 해달들이나 하는 죽음의 삼각지대로 돌진하는 멍청한 짓은, 생존하기만 한다면 성장과 성숙의 바탕이 된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어제와 다르기를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독설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큰 위험을 무릅쓰면 큰 결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청소년 시기는 바로 이와 같은 정설과 이론을 체험으로 학습하는 시기인 것이다. 특히 그 전까지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가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도전과 여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청소년 본인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에 놓이지만 생존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값진 결실을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된다. 실제로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연에서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목적은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25쪽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단어는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물론 관련어이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다르다. 사춘기는 생물학적 과정을 뜻한다. 호르몬에 의해 시작되며 동물이 생식 능력을 갖추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신체적 발달만을 포함한다. (중략)


동물 종마다 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사춘기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순서는 놀랍도록 닮았다. 벌새와 타조, 큰개미핥기, 미니어처포니는 모두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달팽이와 민달팽이, 바닷가재와 굴 그리고 조개, 진주담치(홍합), 새우는 거의 똑같은 호르몬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다.

23쪽



지구의 청소년들이 걸어온 그리고 걷고 있는 성장의 역사를 추적한 두 저자는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개념을 분리하여 정리한다. 청소년기는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시기, 사춘기는 신체의 특정한 발달을 말한다.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동물들의 사춘기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동물들의 사춘기를 결정하는 호르몬이 서로 닮아있거나 같다는 건 지구의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유사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여러 동물들의 사춘기, 그들 각기의 질풍노도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질풍노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의 시작이자 이 책이 품은 진주다.



와일드후드에 나타나는 4가지 주요 어려움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중략)


-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

-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28쪽



생물학자들은 생존하고 번식해 있는 새끼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펭귄, 하이에나, 고래, 늑대의 성숙을 측정한다. 이 기준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번식으로 성숙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사회적 위계질서에 적응하고 성에 대해 정중하게 의사 소통하고 자립의 성취감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이와 같은 중요한 와일드후드 생존 기술 4가지를 습득하면 더욱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전문적, 일반적 성공은 물로 개인적, 사적 성공까지 이룰 수 있다.


모든 와일드후드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얻곤 한다. 그러나 수억년 동안 다양한 동물 종이 공통적인 4가지 어려움이 겪어온 만큼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는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분야를 ‘생물열감’이나 ‘생물모방’이라고 하는데, 진화의 세월 동안 지구상의 동물 종이 근본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지식을 전제로 한다.

386-387쪽



이 책은 4종류의 청소년 동물들을 추적한다. 남극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난 킹펭귄 우르술라, 탄자니아 응고롱고로산에서 살던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 도미니카공화국 근처에서 태어난 북대서양혹등고래 솔트, 유럽 늑대 슬라브츠. 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대면한 적 없는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고 무리 내의 지위에 적응하고 원만한 성적 소통 기술을 익혀가며 청년이 된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저자들은 청소년 인간들이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겪는 각종 위험과 위협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교차점에서 우리는 포식자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확보하는 법,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과 몫을 확보하고 그를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법, 마침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는 법의 비결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청소년기가 단순히 신체적인 발달에 따른 시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특히 인간, 번식으로 그 성숙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종인 인간에게 있어 청소년기란 신체의 나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무엇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숙달해 나갈 때,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시작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때, 즉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과 위협이 밀려들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그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생존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애쓰는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청소년기를 통하여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들을 얻어보고자, 나는 이 책을 공들여 읽었다.

책 표지에는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참 좋다. 날것들은 위험과 도전을 경험한 후에야 성장한다. 지금도 내 안의 어느 부분, 내 일상의 어느 부분인 청소년기가 이 책에서 얻은 비결 덕분에 그 성장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다 원만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와일드후드의 보편성은 신체적, 정신적 발달 너머까지 적용된다. ‘청소년기’란 생명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는 탄생에서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 단계라는 게 있다. 이 시간 단계에서는 시작의 무한한 가능성이 성숙에 이르기 위해 현실과 책임으로 대체된다. 기업이나 창의적 프로젝트, 인간관계, 직장, 학업, 정치 운동, 정부, 국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려우며 고통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시작이 제일 쉬운 단계다. 출생이나 출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성공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진짜 결과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몸이 힘들어지거나 경쟁 상대를 가늠하고 앞서나가기 위해 다툴 때 결정된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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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평화 - 진짜 핵심 진짜 재미 진짜 이해, 단어로 논술까지 짜짜짜 101개 단어로 배우는 짜짜짜
서의동.이지선 지음 / 푸른들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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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관련한 101개의 키워드를 엮은 책이 나왔다. 평화에 대한 개념적인 정리보다는 평화와 관련한 정치적, 사회적 현상, 상황 등을 모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평화는 참 아이러니하다.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평화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데 평소 우리는 그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잃어봐야 느끼는 소중함이랄까. 어떤 위협이나 위험이 닥쳤을 때, 그 혼돈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야 비로소 평화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몸으로 배워야 아는 거겠지.



이 책의 표지에는 '단어로 논술까지'라는 부제도 적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물론 전쟁과 평화에 대한 현세를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책 한 권으로 손쉽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좋다. 중학생 이상 나이의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한다면 이 책의 한 꼭지에서 주제를 골라 함께 읽고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함께 공부한 다음에 토론을 나눠도 엄청 재미있겠다. (이걸 쓰면서 그런 토론 모임을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책의 꼭지는 총 101개로 흥미로운 키워드가 여러 개 눈에 띈다. 겨레말큰사전, 그린데탕트, 능라도경기장 등 남북이 공존과 번영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혹은 노력해 온) 것들도 있고 메카시즘, 청일/러일전쟁, 베르사유조약 등 전쟁의 세계사 주제도 여럿이 있다. 아무래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빈번한 무력 위협 등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돈주, 삐라 등 북한과 관련한 주제가 무척 많다. 무력 전쟁 뿐 아니라 혐오 정서 역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 책의 100번째 주제로 '헤이트 스피치'는 다른 주제들 이상으로 깊이 생각해볼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평화는 뭘까? 아무런 위협이나 위험이 없는 상황, 그러니까 안정 혹은 안전의 상태를 평화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력 충돌이 없는, 정치적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혐오 발언이나 환경 파괴, 인권 문제 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의식과 마음에 존중과 존엄이 올바르게 잡혀 있는 때 완성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국가가 주도하거나 정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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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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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다. '깨진 유리창 이론',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교도소 실험이나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실험 등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에 트렁크가 열린 채 방치된 자동차가 있을 때, 누구도 그 자동차를 훔치거나 부수지는 않지만 방치된 자동차의 유리가 깨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물건을 훔쳐갔고 훔쳐갈 게 없어지자 마침내는 차를 부수기까지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정해져 있거나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선과 악 중 한 가지 편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선택을 하게 된다. 자기 안의 악을 꺼내서 사용할 지 말지, 선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런 선택의 순간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때문에 촉발되는 게 아니다.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기 전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아주 솔직하고 직관적인 제목의 책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은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포드 역사학회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제목만큼 내용도 솔직하다. 짐바르도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악명 높은 실험의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자신의 생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그는 그의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했던 실수들도 이야기하는데, 이런 실수마저도 집단 내부의 역학 관계, 집단 즉 3명 이상이 모인 상황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대한 그의 이론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밀그램은 제가 자신감 없는 남학생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으로 변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바뀐 건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바뀐 거라는 데 동의했죠.

신기한 것은 그때가 1948년이었다는 거예요. 밀그램이 ‘상황이 개인적 성향에 미치는 힘’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반이었고요. 몇 년 뒤 저도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죠. 밀그램과 달리 제 실험은 개인의 권위보다 개인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 더 주목했지만요. 상황에서 비롯된 힘을 지배적이고 물리적이고 학대적으로 쓰게 된다는 내용이었죠.

32-33쪽


이 과정에서 제가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조사관에서 교도소 감독관으로 역할을 바꿔버린 거예요. 또 다른 실수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교도소 감독관’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거죠. 수감자를 면회 온 부모는 항상 교도소장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감독관을 만나야 했고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교도소 감독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교도소 감독관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죠.

136쪽



탁월한 학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특히 4번이나 다른 인종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이야기. 유대인, 흑인, 시칠리아인, 프에르토리코인. 근데 나도 이 인종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스탠리 밀그램과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환경, 유산을 받아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이룬 연구자가 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으로 사회심리학계의 장인이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놀랍다. 빈곤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순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는 남다른 시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했다. 단순히 관찰력이 좋다기 보단 메타인지가 뛰어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린 필립 짐바르도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과 자기 자신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영화를 들여다보듯 상황 전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힘이 정말 대단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하여 생긴 능력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만약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도 본인이 이것을 학구적으로 발전시켜 뛰어난 연구가로 인생의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쓸데 없는 곳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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