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
누리엘 루비니 지음, 박슬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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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 쓰다. 분야와 맥락, 주제에 상관없이 항상 그렇다.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이 모두 약이 되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들어서 약이 되는 말 중에 쓰지 않은 말은 없다. 왜냐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재의 내 처지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주봐야하기 때문이다.

[초거대위협]은 책 표지와 띠지가 한결같이 무섭다. 아마 여느 때 같았다면 이런 무서운 책은 연초에, 그것도 이것저것으로 한창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에는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른 물가 상승과 반비례하여 곤두박질하는 소비지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와중에 국내 정치에나 국제면에서도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정말 암울한 시기라는 걸 함께 감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또한 겪어 나가야 하는 이 위기에 대하여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왜냐면 지금 우리를 덮친 위협과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가까이에서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는 위협들은 개인의 선택이나 한두 국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집단 대응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이라면 어려운 책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붕괴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 등 여러가지 국제적인 경제이슈의 인과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위기를 진단 및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소 이 분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경제 분야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만한 이야기들이라 어렵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많은 양을 한 책에 다 넣어 현재를 진단하다보니 독자가 소화해야 할 양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무척 좋다. 번역자의 감각 덕분일수도 있고 저자의 박식하면서도 명석한 전개 덕분일수도 있다. 여튼 어려운 내용이나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


실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책이라고 해도, 아마 감기약 먹듯이 꾸역꾸역 읽어냈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을 사는 사람 특히 고물가, 부채, 인구감소, 기후위기 등 묵직한 이슈들을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 세계 소득증가율이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 국가과 기업, 은행과 가계가 상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27쪽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운 오늘날, 우리는 사회보장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미적립 청구서의 무게에 무참히 짓눌리는 중이다.

78쪽


국민 소득 중 점점 더 큰 비율이 젊은 노동자가 아닌 은퇴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급여와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노령 연금이 급증하면서 이 편향 현상은 매년 더 심화되고 있다. 만일 청년 노동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이 문제에 아직 분개하지 않고 있다면,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84쪽


[초거대 위협]은 그도안 평범한 개인이 여러 기사와 지표들을 통하여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함, 이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을 명확한 분석으로 구체화한다. 이게 불안한데 왜 불안한 지 알수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답을 얻는다. 가계와 국가가 지고 있는 상환 능력을 뛰어 넘는 부채의 문제라든가 당장 오늘도 기사가 났던 출산율 폭락의 문제 등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위기가 될 것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더 불안해진다. 저자가 예측한 우리의 미래는 아주 아주 좋지 않다. 이 비관적 예측은 그냥 대충 두드려 본 눈대중이 아니라 수많은 낙관적 전문가들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으면서도 비관적인 예측을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가 최근 100년 동안 지구촌에서 벌어진 국제 경제와 정치, 미국의 정책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한 폭넓은 데이터, 그에 관한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총망라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다소 슬프고 원통하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가 어쩌다 모두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리라 기대했던 핑크빛 미래, 지난 75년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촌의 국가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 흥청망청 쓰고 버리고 두려움 없이 투자하고 소유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향수.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172쪽


내가 그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초거대 위협은 경제, 금융, 정치, 지정학, 무역, 첨단기술, 건강, 기후 등 광범위한 문제들이다. 지정학적 위협처럼 그중 일부는 냉전을 거쳐 종내에는 열전, 즉 본격적인 무력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매우 긴급하고 거대한 규모의 10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비전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고, 이런 위협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11쪽


하나같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초거대 위협들이 한 점으로 수렴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이리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상 모든 사람을 위한 세세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다음번 변곡점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410-411쪽


저자는 '가공할 만한' '끔찍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분석과 예측에서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끝까지 읽어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필요한 건 낙관주의도, 희망도, 호재도, 긍정적인 지표도 아니고 냉철한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초거대 위협]의 저자 누리엘 루비니가 불안을 야기하는 비관론자로 보이겠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냉철하다 못해 냉혹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길을 찾으려면 냉혹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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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여성들 - 그들이 써 내려간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
오애리.구정은 지음 / 들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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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Nature라는 말을 성차별 단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대자연에 성별을 붙이는가? 자연은 무성인데 어째서 굳이 여성 그것도 어머니라는 역할을 부여하는가? 그랬는데 지금은, 이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를 한 결, 한 결 깊이 체감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연에 굳이 성별은 필요없으나 어머니라는 역할로 이름을 짓는 건 타당하지 않은가. 자녀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고 필요한 정서적 양분을 공급하고 자녀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라는 역할. 지금 자연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이다. 사람의 신체도 자연에서 출발하고 사람의 정서적 양분도 자연에서 얻는다. 사람의 생존도, 성장도 자연에 달려 있는데 문제는 자연에 교감하지도, 소통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숲으로 간 여성들]의 저자들은 여성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자연이 사람을 먹이고 돌보듯 '땅에서 키워낸 먹거리로 가족을 먹이고 돌봐온 여성들의 일상이야말로 오늘날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썼다. 같은 역할을 오랜 시간 해온 존재들이 서로의 위치와 입장을 공감하고 나아가 소통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자와 교감하는 일이 좀더 능숙한 여성들이기에 그랬을까? 암튼 이 책은 여성들이 시작했던 생태학과 환경 보호 그리고 녹색 투쟁에 이르는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리는 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환경운동의 역사 속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여성들의 생은 하나같이 험난했다. 살충제로 인한 환경 피해를 고발하면서 화학 업계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던 레이첼 카슨을 비롯하여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많은 여성들은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들의 환경운동은 진행 중이다. 도리어 환경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연령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학자나 연구가, 교사 등 사회 활동을 하는 성인 여성들만 아니라 성인이 되지 않은 툰베리나 우홍이와 같은 어린 운동가들의 활동은 '기특하다'가 아니라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고향의 울창한 숲이 벌목으로 잘려 나가자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여자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싸웠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개발과 성장 신화를 버리고, 보전과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기 위한 나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또 칩코 운동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적어도 환경운동만큼은 남자가 아닌 여자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 150-151쪽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책159쪽


환경운동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일은 아니다. 환경운동은 약자의 입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마침내 개선책을 실행해나가는 것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자연은 크고 광대하기에 우리가 애써 그의 병든 곳을 관찰하고 교감하고 소통해야만 그의 아픔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민주주의와도 닿아있고 평등과 존엄, 정의라는 가치에도 연결되어 있다. 환경운동은 우리의 터전을 지키고 생존 가능한 지구,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구를 만들어가는 일일 뿐 아니라 평등, 자유, 정의 마침내는 평화를 이루는 운동인 것이다. 반다나 시바가 환경운동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의 뜻이 아니었을까.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분리수거와 비닐 적게 사용하기다. 처음에는 미세플라스틱, 그러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흡입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인간이란 정말 답이 없다. 왜 이런 것들을 일부러 만들어서 날마다 날마다 엄청난 량의 그것도 썩지 않는 쓰레기로 자기 자신은 물론 지구 전체를 망쳐놓는 걸까.'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정말이지 비닐백을 너무 쉽게, 대충 막 써버리니까 그게 너무 문제인거야.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노력만으로 지구를 지키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다. 너무 무서운 것은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기온이 1.5도가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당장이라도 지구의 파국을 내 생애 동안 맞게 될까봐 너무 무섭다. 툰베리가 눈을 부릅뜨고 경제를 빌미로 지구를 대책없이 오염시킨 어른들이라며 따지고 드는 심정이 지금 내 심정이다. 제발 그만 좀 만들고 그만 좀 쓰고 그만 좀 파괴하고 그만 좀 오염시켜! 제발 그만!!


지질학적인 시간에 비하면 찰나를 사는 인간이지만 그 찰나의 삶이 스스로 택한 잘못된 경로 때문에, 혹은 힘 있는 이들이 멋대로 결정한 경로 때문에 피폐해지고 괴로워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토착민들은 싸움을 계속하고, 환경운동가들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 체제를 만들었고, 기업들도 녹색으로 향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생산과 관리 방식을 차츰 바꾸고 있다. (중략)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분야와 관점에서 접근하든, 그 출발점은 미래 세대의 절박함을 받아들여 지금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296-297쪽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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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캉디드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7
볼테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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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일이 안 되도 이렇게 안 될 수 있나?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싶은 그런 나날들 말이다. 단순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선이 아니라 갑자기 창고 천정이 무너져서 비품을 모두 버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든가 옆 사무실에서 난 불이 우리 작업장까지 번져서 어제까지만해도 멀쩡했던 공간을 태워버렸다든가 하는 천재지변까지 거들고 나서면 정말 눈앞이 깜깜해진다. 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상황에 18세기 낙관주의자들은 '괜찮아, 결국에는 최선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거야.'라고, 오늘 우리 시대 방식으로 치자면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실은 상당히 빡세다. 21세기라서 빡센 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18세기에도 저런 낙관주의자들을 비웃는, '현실이 이렇게 빡센데 최선이니 어쩌니 하는 공상만으로 정말 괜찮을 것 같냐'며 채찍을 휘두르는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지.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는 이 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 볼테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시대 상황과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 전개나 반전을 중요하게 다룬 작품이 아니기에 볼테르에 대하여 혹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하여 약간의 정보를 갖춘 후에 소설을 읽어나가면 왜 이 소설이 이렇게 여러 지역을 종횡무진하며 주인공을 개고생시키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고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볼테르는 18세기 중반에 유럽 도처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 참극, 전쟁 등을 보고 듣고 겪은 후에 이 작품을 썼다. 볼테르의 작품과 가치관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볼테르가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린다고 비난했지만 볼테르는 종교적 광신주의, 당시의 지배층인 가톨릭과 봉건주의에 맞섰던 지식인이었다.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주인공 캉디드를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게 하며 갖가지 사건 사고를 겪게 하는데 이 때에 당시 자신이 목격한 불합리한 현실의 사건사고들을 빗대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런 저자의 입장을 알고 [캉디드]를 읽다보면 저자인 볼테르가 그의 작품과 그 주인공 캉디드를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보다 분명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본성을 타락시켜 온 게 분명해요. 늑대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늑대가 되고야 말았잖아요. 신은 인간에게 24구경 대포도 주지 않았고, 총검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간은 총검과 대포를 만들어냈고, 서로를 죽이고 있잖아요. 파산과 재판을 생각해보아도 결론은 똑같아요. 법원이 파산자의 재산을 탈취하는 바람에 채권자들은 더 힘들어지잖아요."

애꾸눈이 된 팡글라스가 대꾸했다.

"모든 건 필수불가결했던 겁니다. 각자의 불행은 대다수의 이익을 만들어내죠. 개인이 불행해질수록 전체적으로는 더 좋아지는 거랍니다."

25쪽



"오, 팡글로스 선생님! 선생님은 이런 참혹한 일은 상상도 못하셨겠죠? 이제는 끝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낙천주의는 포기해야겠습니다."

캉디드가 소리 질렀다.

"낙천주의가 뭔가요?"

카캄보가 물었다.

"낙천주의? 아, 그건 상황이 안 좋은데 모든 게 좋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집착 같은 것이지."

101쪽



[캉디드]의 첫 챕터에서, 주인공 캉디드와 그의 연인인 퀴네공드는 아주 순진하고 맑고 명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세상의 악하고 처참하고 무서운 일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온갖 이상한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험난한 세파 속으로 던져진다. 순진한 시절에 캉디드와 퀴네공드는 숭배하듯 팡글로스 선생과 그의 낙천주의를 따랐지만 그들이 진짜 리얼한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결국 깨닫고 만다. 낙천주의? 이제 그건 그만둬야지.


캉디드가 낙천주의를 결국 놓아버리기까지 겪는 파란만장한 사건 사고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캉디드의 대화 속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무척 많은데 특히 볼테르가 프랑스와 파리를 비꼬아 놓은 부분이나 당시 관료, 성직자들의 부패를 꼬집은 부분들은 상당히 재밌다. 지금 읽어도 재밌으니 이 작품이 당시에는 얼마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을지 짐작이 된다.



"나는 그 어떤 종교법 전문가와 대신의 이름을 알았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고요. (중략) 내가 농사짓는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팔면 그걸로 된 거죠."

선량한 노인이 대답했다.

(중략)" 그 땅을 자식들과 함께 경작합니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180쪽



캉디드는 농가로 돌아오면서 노인이 했던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리고 팡글로스와 마르탱에게 말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도 함께 식사했던 여섯 명의 왕들보다 저 노인이 자신의 운명을 더욱 바람직하게 꾸리고 있는 것 같아요."

181쪽



이론과 사상, 학문, 정치 등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런 거대한 것들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 개인의 삶이란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캉디드는 마침내 다시 퀴네공드를 만나고 결국 가정을 꾸린다. 퀴네공드 역시 세파 속에서 천진한 시절의 아름다움을 다 잃고 심지어 괴팍해졌지만 둘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캉디드는 유식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노인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땅을 경작하고 노동하며 그 노동의 결실을 신성한 삶의 양분으로 삼는 사람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은 결국 각자가 경작하고 노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땅을 경작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책181쪽)"라는 캉디드의 짧은 말에 이 작품 전체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다.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난제들이다. 누군가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구닥다리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은 부자가 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가난을 면하게는 해준다. 나의 노동이 나를 먹고 살게 한다면 이 노동이란 얼마나 귀한 것이며 그렇게 내 삶을 내 손으로 경작해가는 일은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권태와 방탕에 빠져 자신의 생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는 걸 볼 때에 200여 년 전에 세상에 등장한 이 작품 [캉디드]는 지금도 여전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소설이다.더군다나! 지금 우리 시대에도 족보없는 낙천주의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작품을 읽다보면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신 상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꽤 나이가 많은 소설이라 21세기의 독자로서 도전하기 어려워보인다면 미래와사람 출판사의 시카고플랜 시리즈 중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캉디드를 읽기 시작하는 게 어떨지. 책 제일 앞부분에 인물 관계도가 있어 좋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라 캉디드의 속도감과 파란만장함을 즐기기에도 좋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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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펀 -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재미의 재발견
캐서린 프라이스 지음, 박선령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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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라고 주문을 외듯 노래를 부르는 광고가 있다. 비단 이 광고만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광고를 비롯한 모든 매체에서 '행복'이 마치 지상 최고의 목표인듯 말한다. 어느새 우리는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금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으면 마치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행복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생기고 평범한 개인의 새해 소망으로 '소박하게 행복한 한 해를 보내는 것'이라는 인터뷰를 자주 보게 되는 요즘, 이렇게 행복이 범람하니 나는 도리어 행복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행복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가 느끼는 행복은 감정의 상태다. 그래서 순간이다. 행복은 잠깐, 찰나, 시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이 왔다가 갔다가 다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것같이 행복도 그렇다. 행복은 어느 순간 왔다가 물러가고 다시 꽃피듯 피었다가 스르르 져버리기도 하는 걸 반복한다. 사람이 시간을 붙잡을 수 없듯 누구도 행복을 붙잡을 수 없다. 나는 그래서 행복은 삶의 목표도, 일상에서 추구해야 할 상태로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이 삶의 원동력, 어떤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추진력의 일부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디까지나 과정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한창 겪는 동안에는 행복이 중요하지, 라고 느꼈지만 팬데믹 이후 대면 활동을 재개하고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변화를 겪는 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 우리가 탐구하고 궁금해야 해야 할 것은 행복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재미의 시대가 아닐까. 재미, 진짜 재미.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게만 하는 그런 빈껍데기의 재미가 아니라 나의 창의력, 행동력, 삶의 의지를 솟아오르게 하고 이전의 스트레스를 활활 날려버리게 하는 진짜 재미. 그래서 날마다의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참신한 발상과 신선한 태도로 오늘을 살게 만드는 그런 재미가 필요한 시점이다.


[파워오브펀]은 그런 면에서 아주 최적의 타이밍에 출간된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저자 캐서린 프라이스는 '재미'가 대체 무엇인지, 우리의 인생에 재미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에 '우리가 진짜 재미를 잃어버린 인생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책 중반부를 오롯이 할애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 끼친 해악, 스마트폰과 관심경제가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우리의 뇌활동을 어떻게 교란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가짜 재미와 진짜 재미가 등장한다.


스마트폰으로 SNS나 포털 뉴스 등의 스크롤을 쉼없이 내리거나 아무 생각없이 넷플릭스 시리즈 여러 개를 정주행(혹은 역주행)하는 것 등은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 활동이다. 소극적인 만큼 쉽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크게 고민하거나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이게 함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쉰다고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며 저런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이때 우리의 뇌에서 작용하는 도파민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선택한 콘텐츠에 하루 한두번만 노출되는 게 아니라 앱을 열 때마다 노출된다. 그리고 우리는 휴대전화를 볼 때마다 앱을 열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횟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에 달한다. 이걸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각각의 순간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전부 합쳐지면 자유 의지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94쪽


스마트폰의 도파민 분비 요인은 종종 쓸모없거나 매우 나쁜 습관을 강화하는 반면, 진정한 재미에 반응해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앞으로 우리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훨씬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추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은 세부 사항까지 잘 기억하도록 뇌를 대비시킨다.

157쪽


수동적 소비에는 계획이 필요 없다. 간편하고 접근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지쳐 있는지 생각하면 간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걸 바라는 게 당연하다. 길고 바쁜 하루를 보낸 후에 소파에 푹 파묻히고 싶어 한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중략) 문제는 수동적인 소비 자체가 아니라 수동적인 소비가 기본이 될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수동적 소비가 우리의 기본 모드가 됐다. 스트레스와 피로도가 너무 높아서, 그리고 기술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수동적 소비를 너무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탓에 실제로 그걸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수동적인 소비에 의지하게 됐다. (중략)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기술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기술 때문에 일과 가정생활 사이의 경계가 약화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자유 시간을 수동적인 소비에 쓰는 것이 많은 기업의 수익에 필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74-275쪽


"당신의 인생은 지금 당신이 결정하고 있습니까?" 책 제목은 [파워오브펀]이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재미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묻는다. 내가 구입하고, 사용하고, 소비하기로 선택하는 것들이 온전히 나의 독럽적인 결적의 결과인지를 확인해보라고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의 소비 선택권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조차 간섭을 받게 되었다. 위험한 건 우리가 간섭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 [파워오프펀]은 스마트폰의 영향력에 취해 있는 우리에게 더 이상 가짜 재미에 일상을 소비하지 말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진짜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일깨운다. 그래서 진짜 재미가 뭐냐고?


또 재미없는 게 있다면? 바로 물질적인 소유물이다. 재미있다고 광고하는 것들을 사려고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소유물이 재미를 촉진할 수는 있어도 물건 자체가 재미를 주는 건 아니다.

자기 치료도 마찬가지다. 한 걸음 물러서서 어른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그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사실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잊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술 또는 마약에 취하거나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 등이 그 예다.

55쪽


웃음, 해방감, 자유로움, 다 놓아버리는 느낌,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자기 판단과 자의식에서 해방된 느낌, 평범한 삶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느낌,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 어린아이 같은 설렘과 기쁨, 긍정적인 에너지 증가, 온전히 자신이 된 기분

169-170쪽

그게 이 책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궁극적인 이야기다. 진짜 재미는 이런 거라고, 저자는 자신이 수집하고 연구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내놓았다. 저자가 진짜 재미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 중에 두 가지가 가장 인상깊었는데 '번영'이라는 부분과 '자기 자신을 비웃어라'는 부분이다. 재미는 원인-과정-결과 중에 따지자면 원인 부분인데 이 재미로 인해 생기는 결과가 행복이 아니라 '번영'이라고 한 부분에 무척 공감이 갔다. 성공이나 성취, 행복 같은 상태가 아니라 번영이라니. 이 재미야말로 지금 내 인생에 딱 필요한 것이로구나 싶었다. 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데에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은 '결과에 대한 신경'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몰입해서 놀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지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우스워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바보처럼 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는데 이거야말로 애처럼 놀고 애처럼 스트레스를 풀고 애처럼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살펴보면, 이 책[파워오브펀]은 어떻게 하면 정말로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무척 좋은 책이지만 왜 스마트폰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이 중반부에서 할애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관심 경제의 악영향에 대해 읽는 것만으로도 오늘 당장의 선택에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다.

또 재미없는 게 있다면? 바로 물질적인 소유물이다. 재미있다고 광고하는 것들을 사려고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소유물이 재미를 촉진할 수는 있어도 물건 자체가 재미를 주는 건 아니다.
자기 치료도 마찬가지다. 한 걸음 물러서서 어른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그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사실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잊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술 또는 마약에 취하거나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 등이 그 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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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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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한창 돌아다니던 이미지가 하나 기억이 난다. 키가 크고 작은 세 명의 사람이 울타리 건너 먼 곳을 구경하고 싶어한다. 이 세 명에게 각각 똑같은 높이의 발판을 주는 것과 세 명의 신장이 서로 다르니 각자의 신장을 고려하여 각각 다른 높이의 발판을 주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평등일까? 사람들의 의견을 묻자면 제각각 자기의 배경과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니 우리에게는 믿을만한 기준이 하나 필요하다. 헌법 그리고 헌법재판소라는 기준이면 아주 믿을만한 기준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평등’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질적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라는,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이 평등의 본질임을 밝힌다.

책 146쪽



평등을 논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점'을 알아야 한다. 너와 나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하면 나는 나 좋을대로 너를 대하고 너는 너 편한대로 나를 대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를 대하듯 너를 대했으니 이건 평등이라고 오해를 하게 되고 이런 오해가 쌓이면 결국 관계는 망가진다. 다른 것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다르게 대해야 우리는 진짜 평등해지고 그런 평등한 관계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지향점 아닌가. 우리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은 부분으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는 그 지점으로 하나가 된다. 이 세상에는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이현정 저자가 지은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는 서로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하는 2023년 한국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현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왜 대한민국의 취업이나 출산율 정책이 이렇게 무용하게 진행되는지, 왜 이렇게 우리는 지역과 성별과 나이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져 다투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젠더 논쟁. 지금 이순간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는 젠더 논쟁이다. 뉴스 댓글이나 포털 게시판 등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들여다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평등의 개념이 희박한 우리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점을 다르게 대하는 실질적 평등이 아닌, 다른 점이 어떻든 간에 똑같이 대우하는 형식적 평등을 중심으로만 의견이 오고간다. 각자의 경험과 배경에서만 세상을 판단하는 게 인간의 한계인 것은 맞지만 적어도 상대가 나와 무엇이 다른지를 안다면 아니, 다른 점을 찾고 들여다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다면 우리의 소모적인 논쟁은 원만한 이해와 협력의 단계로 방향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치매에 걸린 여성을 모아 초점 집단을 만들어 집단 토론을 하게 했다. 이들이 남편을 돌보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남편의 불같은 화 또는 폭력이라고 고백했는데,...(중략) 137쪽


반면 남성의 경우 아내의 치매로 가장 어려운 점은 아내가 식사 시간을 잊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언급했다. 두 결과를 놓고 보자니 슬프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138쪽



30,40대 남성을 조사해보면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수가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는데, 그들은 사회 생활을 통해 여성의 임금 수준이나 대우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명명백백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남성의 경우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대 문제를 직면하며 젠더 문제를 받아들인다.

142쪽



한국에서 젠더 논쟁이 뜨거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별에 따른 고정 역할이 무너지면서 가장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게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단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가족은 희생과 헌신의 가치로 유지되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이현정 저자는 요즘 젊은 세대는 가족이 자신의 필요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족으로서 함께할 이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가족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193쪽)고 언급하며 가족생활이 가치 추구나 사랑보다는 물질적, 기능적으로 도구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했다(193쪽).


한국은 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한반도라는 터 위에서, 개발과 결과만을 중시하고 원리 원칙이나 안전, 인간성은 모두 외면한 거친 성장기를 보냈다. 거칠고 불안한 사회 속에서 개인이 기댈 곳은 오직 유일하게 '가족'뿐이었고 이 때문에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철저히 지키고 희생해야 하는 신성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깊어지면서 이제는 가족마저도 물질적, 기능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필요없어진 것이다. 여럿이 살아도, 혼자 살아도 불편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혼자 살거나 뜻이 맞는 친구 정도나 반려동물과 함께 있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이는 무엇보다 ‘생존’ 조건의 향상과 ‘생활’의 풍요가 결코 물질적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신적인 고통을 더 심각하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중략) 삶은 물질적인 측면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정신적 영역, 관계적 영역, 역사적 경험의 축적 등 다양한 영역의 혼합으로 이루어진다.

책 44쪽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대로, 사람은 생존 그 자체에만 목적을 두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평생을 고뇌하는 게 사람 아닌가. 때문에 우리가 매일 매일 보내는 시간, 태어나면서부터 맺는 여러 관계들을 물질적, 기능적으로만 재단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기가 그랬던 것처럼 이윤과 효율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과연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처음에는 타인의 욕망을 마치 나의 욕망인 것처럼 투사하여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진정한 자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를 고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는 내 기대보다 훨씬 더 폭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왜곡된 나의 욕망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한국 사회의 잣대와 너무나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적 기준을 그리고 이것들이 오늘날에 이르게 된 역사와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일까? 진정한 자기 돌봄에 가까이 가기 위하여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들려주기 보다는 나를 비롯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2023년을 작년과 같은 온갖 갈등과 논쟁의 해로 소모하지 않도록 '반드시 함께 풀어보세요~!'라고 미주가 달려 있는 듯한 질문들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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