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세트 - 전3권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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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도서관을 좋아했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에도 도서관은 시원해서 좋았다. 이따금 소곤대는 소리, 사서가 책이나 열람 카드에 도장 찍는 소리, 주로 노인들이 기다란 막대에 묶인 신문을 읽곤 하는 정기간행물실에서 잔물결처럼 책장 넘어가는 소리, 그런 소리에 흔들리는 도서관의 정적이 좋았다. 

_ 내가 <그것>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도서관의 정경을 이처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는 찾기 힘들다. 본문에는 이런 풍경이 더 이어지니 놓치지 마시길


모든 출발은 뉴저지 외곽의 으슥한 마을로부터


헤밍웨이를 흔히 작가 중의 작가라고 부른다. 작품이 빼어나서만은 아니다. 소설의 모든 작법을 마스터하고 그 위에 자신의 소설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단 오백단어로 완성한 <노인과 바다>가 대표적이다. 물론 그의 행실을 두고는 여전히 이러저런 논란이 많다.


스티븐 킹만큼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도 드물다. 물론 휴머니즘 위주의 글과 감옥이나 극한 상황을 전제로 한 글들도 있지만 그의 모든 작품의 출발은 뉴저지 외곽의 으슥한 마을이다. 이 정서가 가장 듬뿍 담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직간접적인 경험을 스토리로 엮어 기념비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물론 지나치게 길다거나 넋두리가 많다, 사실 내가 킹에게 갖는 불만이기도 하다, 초반부의 긴장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비평도 있다. 반대로 이런 단점이 스티븐 특유의 문체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스티븐 킹에 빠져 있는 분이라면 최후의 만찬처럼 남겨주고 천천히 즐기기를 권한다. 만약 처음 그를 접했다면 이 책부터 읽고 가시라. 그러고 나면 다른 글들은 훨씬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여겨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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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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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으로 유명세를 치를 때 그는 늘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소재고갈이라는 암초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한 시간 반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게다가 장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6개월 혹은 1년 가까이 촬영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결국 시즌제를 하네 누가 하차를 하네라는 논란 끝에 아예 무한도전을 접었다. 그만큼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갈 때까지 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다작으로 유명한 그에게도 한계가 온 것이다. 추리라는 키워드는 계속 끌고가고 있지만 소재는 구태의연해졌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인 출판계를 자주 다루는 걸 보면. 물론 출판시장도 나름 재미있는 요소겠으나 작가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을 글로 쓴다는 건 누가 봐도 소재고갈이다. 일회성 정도로 다룰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알고 싶다도 아니고 문학계를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신이 든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은 2001년에 발표했으니 최근작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뒤늦게 지금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그만큼 매력이 덜하다는 뜻이다. 신작이 늦으니 그의 작품들을 죄다 뒤져 뭐라도 찍어내자라는 의도가 느껴진다. 물론 히가시노 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그의 글들 가운데에서도 평균이하라는 평이 중론이다. 


실제로 각 이야기들이 완결되었다기 보다는 하다 만 듯하다. 예를 들어 이과계 살인사건은 책속의 책이라는 고리타분한 방식을 택했는데, 각 스토리가 따로 노는 건 둘째 치고 결말 또한 황당하다. 아마추어 작가의 치기어린 실험작같다고나 할까? 김태호 피디가 잠시 쉬고 가장 믿고 의지하는 유재석을 내세워 원맨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하듯 히가시노 게이고도 일단 펜을 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요구가 있다고 그냥 막 써재끼는 게 아니라. 그 요구라는 것도 엄밀하게 말해 독자들이 아니라 출판사들일 텐데. 그들을 위한 서비스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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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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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출판강국이다. 우리 같으면 굳이 책으로 엮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내용도 죄다 출간한다. 그만큼 독서인구가 많다는 말이다. 인터넷 시대에도 큰 변함이 없다. 여전히 종이책을 찍어낸다. 부러우면서도 시대착오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각설하고


오쿠다 히데오는 재치 넘치는 작가다.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때로는 심하다싶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연민의 정을 듬뿍 담아 묘사한다. 이 때문에 미워할 수 없는 작가라는 칭호를 듣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큰 줄기로는 회사를 차린 서른여덟 살 아저씨의 분투기와 여름날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10대 청소년의 고뇌(?)가 주된 내용이다. 사이사이 대담이 들어가고 콩트처럼 축구경기 관람기가 첨부되어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구성으로 책을 낼 수 있을까?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정직하게 말해 책 내용은 그저 그랬다. 히데오답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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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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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모리 히로시의 팬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F 시리즈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작가로서는 의외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의 책을 다 읽어보면 이해가 된다.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자기만의 은퇴생활을 누리겠다고 누차 강조했기 때문이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책이다. 공대 교수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스쳐간(?)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꿈처럼 이어진다. 실제 꿈처럼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깨닫는다. 아, 이건 자서전이구나.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기 싫어 허구라는 가면을 쓰고 있구나. 모리 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거 아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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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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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의 글은 늘 유쾌하다. 사실 울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큰 맘 먹고 산 전원주택부지가 알고 보니 사기당한 것이었다거나 싼 맛에 들어가 살고 보니 러브호텔 소유의 주택이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부동산 사기꾼이 미소라 히바리 곁에 있고 싶어, 그 말이 진짜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돈을 벌기로 했다거나 러브호텔 주인의 꼬임에 빠져 얼떨결에 불륜남녀를 안내하게 되었다는 스토리에는 아연실색해진다. 게다가 토지사기로 이혼까지 이르렀는데 어쩜 저렇게 천하태평이지, 적어도 글로써는. 그럼에도 작가는 히바리의 꿈을 믿었고 호텔주인이 겸연쩍게 내밀며 준 다이아 반지가 진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 덕에 우리는 그의 짧은 글속에서 수만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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