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ㅣ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몇몇 알라디너들이 마리여사라는 애칭으로 그녀에 대한 호감어린 글을 쓸때 그녀를 선점한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조바심이 생겼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마리여사에 푹 빠져 살면서 그녀의 팬이 되었다. 팬티 인문학을 읽으면서 선입견으로 하마터면 그녀를 잃을뻔 했다. 그녀의 또다른 책 <프라하의 소녀시대>도 읽어야지. 이러다 프라하 가고 싶은 병에 걸리는건 아닌지....
저자의 이력이 다채롭다. 일본 도쿄 출생. 9살부터 14살까지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 러시아어 동시 통역사, 작가,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 56세 난소암으로 사망. 문득 동시 통역사는 아니었지만 번역가로, 작가로 유사한 삶을 살다간 장영희 교수를 생각했다.
마리여사의 글은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인문학 스럽다.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코드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에는 그녀가 동시통역사로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생각,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져 있다.
확실히 일본인은 잡종 민족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일본열도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남방의 섬들로부터, 또는 대륙에서 다양하고 잡다한 민족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그래서 일본인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대륙은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민족간의 교류나 혼혈의 기회가 많았을게 틀림없다. 그런데 대륙의 민족이 외견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교류 빈도가 훨씬 낮은 일본인의 겉모습이 제각각인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그런 의문이 들곤 했다.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이케다 기요히코 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였다. (중략) 이케다 씨의 관찰에 의하면, 같은 영역에 동일한 종이 속해있을 때 여기에 아종으로 구분되는 곤충이 생식할 경우, 생존 경쟁이 격렬해지면서 아종마다 그룹화가 더욱 강하게 촉진된다고 한다. 아종 간의 다른 점을 더욱 확실히 강조하는 한편, 동일 아종 내의 비슷한 점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때로는 종이 갈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용모가 달라지는 동일한 종의 곤충이 발견되는 모양이다.
내 생각이지만 일본인 중에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는 사람의 비율이 이상하게 높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스스로 가치 기준과 미의식에 자신이 없으니 더욱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는 것이겠지만, 반대로 타인의 눈이 없다면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게 무섭다.
그저 쉴새없이 정보를 담아 넣기만 하는 뇌가 과연 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성이란 지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식에 대한 저작 능력이나 운용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닐까.
단식을 권함이라는 소제목에는 살처분하려던 닭 200마리에게 이주동안의 단식을 통해 건강한 몸과 다시 알을 낳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잡지 보고서의 예를 들면서 단식의 유용함을 이야기 한다. 끊임없이 먹어대는 나같은 사람은 단식이 꼭 필요하다. 이주일은 못하겠지만 하루쯤 단식하는 것도 좋을듯 하다. 모든 면에서 약간은 부족한 것이 최상의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수도 있겠지. 일과 휴식에서는 "취미는 일입니다" 라는 일중독이라는 낙인이 찍힌 일본인의 특성과 휴가의 필요함을 강조한다. 일중독은 아니지만 일년에 최소한 네번의 휴가는 가야 한다는 내 지론과 일맥 상통한다. 사계절의 변화는 느껴야 하잖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하게 유추 해석할 수 있는 그녀의 해박함이 부럽고, 적절한 예시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 스타일을 닮고 싶다. 그녀의 글에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고 읽는 즐거움을 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는 또 하나의 현실을 보는 눈이 그녀에게는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던 것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뒤편에 놓인, 틀림없는 또 하나의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