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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 ㅣ 시공 청소년 문학 28
이상권 지음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참으로 기발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님이 책을 완성하고 제목 정하느라 한달이 넘게 걸렸다는 글을 읽으면서 제목으로 그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시공사를 좋아하는 중 1인 딸내미가 시험 끝난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왔기에 그저 성장소설이고, 청소년기를 점점 강도 높아지는 발차기의 세기로 표시했나? 하며 읽게 된 책이다. 책따세가 여름방학에 권하는 책 목록에도 들어 있어 호기심에 딸이랑 함께 읽었다.
"세상이 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햇살의 공격을 받지 않은 무균질의 어둠이 살고 있는 동굴 속에 박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박쥐들은 인간들보다 과학적인 초음파 언어를 주고 받았다. 경희는 자신이 박쥐라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하다가 갑자기 발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경희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작하는 글부터 무거움이 전해진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고등학생인 경희의 임신이다. 늘 술과 담배에 젖어 사는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경희는 어릴적 영국에서 유학한 발레리노이고, 연극배우가 꿈인 엄친아 정수가 남자친구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정수에게 '나 임신했어' 하는 말을 하는 순간 '누구 망치려고 작정했어?'하며 노래방을 박차고 나가는 정수의 뒷모습에 대고 '사랑해'를 외치는 경희의 모습이 서글프고 처량하다. 책을 덮고난뒤 주위 선생님들에게 요즘 이런 상황이 많으냐고 하니 중학교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란다. 그러면서 서슴없이 낙태를 이야기한다. 하긴 고등학생이 아기를 낳기는 어렵겠지.
철없던 경희가 아이를 잉태하면서 모성본능이 생기고, 태교에 대해 생각하며,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던 어릴적 모습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고, 애처롭다.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용기있게 주도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경희의 모습에서 건강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다행히 경희를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학원 미술선생님이 있어 덜 외로움을 느낀다.
"사실 엄마 아빠가 남남으로 되돌아간뒤 경희는 주위의 눈치를 많이 보았다. 특히 이러저러한 관계 속에서 얼굴을 익혀온 사람들을 만나면 꼭 자신이 발가벗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경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하였다. 적어도 엄마 아빠의 이혼 때문에 생기는 선입견을 깨트리려고 애를 썼으며 그렇게도 하기 싫던 학교공부를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엄마 아빠의 그늘이 자신의 삶을 향해 뻗쳐 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경희는 냉정하게 선을 긋고 싶었다. 더 당당해지려고 했는데,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정수 어머니의 회유와 낙태 종용, 정수의 협박에 잠시 흔들리기도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두분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각 한통씩의 편지를 보내며 학원선생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엄마와 현실에 적응 못하고 섬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아빠의 의견은 어떨까? 만약 내가 엄마라면......
경희를 원망하기 보다는 최선을 방법을 찾으려 노력할듯 하다. 이 책을 읽고난 지금은 적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