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건 언젠가 인터넷에서 인용된 '공부할 만한 사람'이란 부분을 보고서 였다. 이제서야 허수경이 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뚱뚱하고 우울했던 소녀는 시인으로 자라서 10년째 독일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이란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유적을 발굴해내는 일 생활이 상상도 안가는 고대인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무언가 인류의 근본을 밝혀가는 내가 익히 보았던 대학의 학문들과는 다른 어떤 근엄한 것이 있는 듯 했다.

언어를 알지 못하는 내가 태어난곳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가서 낯선 이국어를 대했을 때의 그 홀가분함이 무얼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하는 말도 알아듣는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하는 말도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 암흑의 세계이자 자유 해방의 느낌이 다가올 것만 같다. 그리하여 다시 태고적으로 되돌아가 아기처럼 새로이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란 것, 그리고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의를 살면서 어디에다 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 10년이면 금수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곳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낯선 곳으로 그것도 '고고학'을 공부하러 떠난 것은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고 그녀의 몫이고 다만 그녀가 그곳에서 그리하여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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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구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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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구판절판


어떤 선배를 보면 저 분이야말로 서양에서 공부를 할 만한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내하는 저력이 있고 지겨운 것을 무시할 만한 신경줄이 있고 작은 것도 세심하게 가리고 또 큰 것은 큰 것대로 잘 세우며 한번 읽은 것도 스무 번 서른 번 다시 읽고, 거짓말 못하고, 뻐기지도 않고, 그리고 철저히,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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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어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척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는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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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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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정말 소금밭이다. 팍팍하고 짜고 텁텁하다. 무엇하나 상크름한 것이 없다.
이런날 그저 하는 일이라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세권의 책을 빌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평일 내내 읽는다. 출근길에도 읽고 점심시간에도 읽고 집에 가서 잠자기 전에 읽는다.
무슨 목적이라도 얻으려는 양 열심히 읽고 열심히 읽고 쓰고 또 다시 책을 찾아 헤매인다.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 한마리의 하이에나 처럼 말이다.

이런날 이 책을 만난 것은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위안이었다. 삶은 원래 그런것이라고. 숱한 소설들속에서 인생의 축소판을 보고 웃고 울고 떠들고 씹어댄다. 제목만 읽어도 배부른 내 앞에 산더미 처럼 쌓인 소설들이 마치 인생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다시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든다. 나는 왜 일부러 소설을 피하려고 했을까. 그것이 마치 인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에 개입되는 것이 피곤해서 그랬을까. 문든 그런 생각이 든다. 박노자, 김규항, 진중권, 강준만, 김진식과 같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들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날수 있으리라. 10년후의 나이에도 나는 소금밭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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