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로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어머니를 위해 내가 벌이려고 하는 모든 투쟁들을, 내가 내 인생의 새벽에 나 자신과 맺은 약속을 생각하였다. 어머니 말이 다 옳았던 것이 되게끔 만들리라, 어머니의 희생에 의미를 주리라, 저들과 당당히 세계의 소유권을 두고 겨루어 이긴 다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는 약속을. (p.13)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 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어머니의 승리로 보았다.
그 신념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신의 삶과 희망의 유일한 근거가 된 그 아들에게 품어온 신앙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p.46)

나는 사는 동안 놀라운 행복을 체험했고, 지금도 느낀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소금 친 오이를 좋아했다. 작은 오이가 아니라 진짜 오이. 유일무이한 오이. 사람들이 러시아 오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그것을 살 수 있다. 나는 자주 그것을 한 파운드 사서 햇빛이 비치는 어느 곳, 바닷가, 아니면 보도나 벤치 등 어느 곳에서라도 내 오이를 깨문다. 그러면 나는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정 어린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평온해진 가슴으로 햇빛을 받으며 그렇게 머물러 있는다. 그러면 나는, 인생은 진정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행복은 도달 가능한 것이고, 단지 자기의 싶은 소명을 알아,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서. (p. 136)

'용기를 내라, 내 아들아. 너는 월계관을 이마에 두르고 집으로 돌아오리라.......‘ 그랬다. 그처럼 단순했다. 어머니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낡고도 가장 천진한 상투어법을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찾아내곤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편지들을 필요로 했다고,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내가 도모하는 일보다는 훨씬 어머니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것을 썼다고 생각한다. (p.209)

나는 어머니의 노고와, 어머니의 건강을 빨아먹고 살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내 약속을 실현시키기 시작하고, 소매에 소위의 띠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 인생에 첫 승리를 가져다주기 시작할 때까지는 적어도 이 년이란 세월이 가로놓여 있었다. 나에겐 도망칠 권리가, 어머니의 도움을 마다할 권리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남성다움, 나의 존엄성, 이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전설이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다. (p.213)

나는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책들이 모두 존엄성과 정의에의 호소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의 인물들이 그토록 열심히, 그토록 소리 높여 인간됨의 명예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물두 살이 되도록 병들고 지친 늙은 여인의 노동에 의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무척 원망스럽다. (p.214)

나는 크루아상에 대해서 매우 큰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의 생김새, 그 바삭대는 맛. 기분 좋은 온기 등에는 무언가 마음 통하는 우정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옛날처럼 그것들을 잘 소화시키진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다소간 플라토닉해졌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바구니에 담겨 카운터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나는 좋다. 그것들은 공부하고 있는 청춘을 위해 제3공화국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였다. 드골 장군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좋은 프랑스인들인 것이다. (p.229)

나는 문으로 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용기 안에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283) 
 

 

* 이 책은 너무 좋은 구절이 많아서 머릿속에 다 입력해놓고 싶을 정도였다. 어머니때문에 절망할 수 없고 그래서 힘든 삶이었지만.. 그렇기에 늘 내 곁에 희망이있었다는 것.. 어머니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 주인공이 좋아하는 간식이 '러시아 소금 친 오이'다. 이 소설에는 '소금 친 오이'가 정말 자주 나오는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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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묘비에 새겨진 이름이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듯

     그대 혼자 이 페이지를 넘길 때

     생각에 잠긴 그대 눈에 내 이름 띄기를.

 

     내 이름 그대가 읽을 날,

     그것은 어느 먼 날일 것인지.

     죽은 사람에의 추억처럼 나를 생각해 다오.

     내 마음 여기 묻혀있다고 생각해 다오.

 

                                      - 몰타섬에서 방명록에 , George Gordon By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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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보다가 빵 터진 웃음.. 

 

글의 내용이 더 우낀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단 표정... 이란다. 

출처: http://www.saybonvoy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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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2-1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왜 카프카가 이때까지 김영하씨네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우아한 사진만 보다가 위의 사진 보니 빵터지네요 ㅎㅎㅎ

책장과 침대와 고양이
저 장면은 우리 집구석과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

스파피필름 2009-12-19 21:21   좋아요 0 | URL
그쵸.. 이 사진 너무 우껴요 ㅠㅠ
오랫만에 이우일씨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이 사진 말고도 앉아 있는 사진이 몇장 더 있더라구요. 카프카가 사람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한다는...

하이드님의 고양이 말로보다 아름다운 고양이가 있을까 싶어요 ^^
 


나처럼 책 때문에 인생을 망쳐 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책을 철저하게 건강한 방식으로 소화해서 평온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즉시 그를 혐오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세계를 바꾸어 놓고, 내 운명을 뒤흔들어 버린 책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는 비타민제처럼 작용할 수 있었을까? p.267

가족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린 시절에는 신앙을 가졌었고, 금요일마다 사원에도 가고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도 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믿음을 잃었고, 그 뒤에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 모든 폭풍이 흔적만 남기고 지나가 버린 후, 그는 영혼에 빈 공간을 느꼈다. 그러나 한 친구의 책장에서 가져온 이 책을 읽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제 죽음이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을 정원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 거리의 친구처럼 받아들였고, 거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또 그는 어린 시절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과거에 스쳐 갔던 사소한 것들. 가령 풍선껌이나 만화책 같은 것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법도 배웠다. 첫사랑이나 그가 읽었던 첫 번째 책도 모두 그의 인생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황량한 그의 나라도, 그 거리를 달리던 난폭하고 슬픈 버스들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다. p.267

“모든 것의 원천에, ‘근원’에, 원류에 도달하고 싶은 거지, 그렇지?”라고 물었다.
“순수한 것에, 변하지 않는 것에, 진실한 것에 이르고 싶은 거지? 그렇지만 그런 근원이나 시작은 없어. 우리 모두가 모방하고 있는 어떤 진실, 어떤 열쇠, 어떤 말, 어떤 기원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p.303

"어렸을 때, 독서는 내게, 모든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의 하나로 느껴지곤 했어.“
“악보를 베끼는 일을 했던 루소도, 다른 사람들이 창작한 것을 거듭하여 쓰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았어.” p.303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단지 내 온 인생을 바꾸어 버린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상처 입은 내 인생에 깊은 어떠한 의미를 주려고도, 위안을 찾으려고도 절대 시도하지 않았다. 체홉에게, 폐렴에 시달리는 그 재능 있고 겸손한 러시아인에게 사랑과 경탄 이외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나 헛되이 지나 버린 상처받고 슬픈 인생을 체홉주의라는 감성으로 미화시키고, 인생의 빈곤함에 대해 으스대면서 아름다움과 숭고한 감정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p.321)

나는 르프크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책들이 내게 대화를 하고 싶게 자극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는 이를 주로 머릿속에서 책들끼리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때로, 계속해서 여러 권을 읽으면 그 책들끼리 속삭이는 게 들렸고, 이렇게 해서 내 머릿속이, 모든 구석에서 각각의 다른 악기가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의 이 음악 때문에 내가 인생을 견디며 산다고 인식했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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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있네
그러면 내 스무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단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그 돌 내 손에 쥐어져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 잡고 살았네
세상의 손을 잡는다는 일
부끄럽지 않은 게 없어서 오늘도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모아 일상의 밥을 짓고
그 자리마다 내 손목은 흩어져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많았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그 돌 내 손에 쥐어져 있네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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