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아프가 본 세상 2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평점 :
존 어빙의 소설 중 "사이더하우스 룰즈"를 먼저 읽었고, 당장에 반했었다. "가아프의 세상"은 섬뜩하고 처절하고 집요하다. 포스트잇을 수십군데 붙여놓을 정도로 베끼고 싶은 구절이 많고 그래서 다시 읽고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시는 읽기 싫을 정도로 가학적인 묘사가 많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욕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이 이 욕정에 의해 자신의 삶이 휘둘린다. 인간의 욕정을 철저히 부정하는 제니 필즈는 가아프를 단 한번의 섹스로 낳기만 할 뿐 욕정 없는 평생을 산다. 그에 반해 가아프는 평생을 이 욕정에 휘둘리며 산다. 무자비한 욕정으로 희생당하는 혀짤린 열한살 소녀 엘런 제임스, 그리고 스스로의 혀를 잘라버린 제임스파들이 있다. 그밖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욕정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분류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에 처음에는 낯설고 사실은 조금 짜증까지 났었다. 하지만 존 어빙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도중에 이 책을 닫아버리도록 하지 않았다. 가아프 가족에게 불어닥친 우연한 사건들로 마치 폭풍우를 견뎌내듯 이들은 살아간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저녁에 허리를 잡고 웃다가도 이튿날 아침은 살인적일 수도 있었다,는 말처럼 예기치 못한 오히려 희극적이기까지한 여러 인물의 죽음이 수긍이 갈 정도이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안은 던컨이나 엘런에게는 가슴아픈 동정심이, 여러 해동안 글쓰기자체를 힘겨워하는 가아프에게는 또 그런대로의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많은 인물들 중 이 소설의 출발이기도 한 제니 필즈의 간호사, 작가로서의 강인한 인생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과연 여권주의자였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추진해나가는 힘이야 말로 그녀가 가진, 그리고 가망없는 환자와 같은 우리들이 갖어야 할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아프가 꿈꾸던 안전하고 평화로운 아버지의 환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가아프 이후에도 삶은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어쩐지 그런 삶들이 존재하는 방식마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