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예우 차원에서 영국부터 이야기해보자...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심장 '런던'  

런던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  음??    

영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지, 템스강, 여름엔 그렇게 덥지도, 겨울엔 그렇게 춥지도 않은 곳, 강수량이 많은 곳, 그래서 안개로 유명한 도시, 하이드 파크, 세이트폴대성당, 대영박물관, 버킹엄 궁전,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 퀸메리로즈가든, 타워브리지, 영국도서관, 서머셋하우스 , 그리니치 천문대, 웨스트 민스터 사원, 트라팔가르 광장.등등 

 또 버지니아 울프가 매일 산책했다는 블룸즈버리 스퀘어 가든, 찰리 채플린의 동상이 세워져있는 레스트 스퀘어.....사실 영국 런던하면 파크 와 스퀘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런던에는 하이드파크, 켄징턴 파크와 같은 큰 공원과 도심 곳곳에 트라팔가 스퀘어, 레스터 스퀘어, 러셀 스퀘어 등 스퀘어라고 불리는 공간이 참 많다. 17세기 무렵 런던에 처음 등장한 스퀘어는 도심속 주택과 빌딩등으로 둘러싸인 중앙정원이나 공원역할을 하는 곳이다.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웃들과 사용하던 정원이자 산책장소라고 설명하면 될듯하다.. 왜 영화 노팅힐에 보면 휴가 줄리아를 따라 담 넘어간 곳이 스퀘어 아닌가..그 스퀘어가 너무 낭만적인 공간으로 보여 , 스퀘어를 찾아다니는 런던여행을 해보고 싶은 , 그런 소박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꿈꾼다. ,   

여기 그 런던이 사랑한 이들을 이야기한 책이 나왔다.

책 소개를 보자.. 

런던을 무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여섯 명의 천재들을 통해 런던을 재발견하는 낭만적인 런던 예술 기행서이다. 비극적 희극의 거장 찰리 채플린, 독설과 통찰력의 작가 조지 오웰, 역사를 바꾼 영웅 윈스턴 처칠,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 선구적 페미니스트 버지니아 울프, 빈민을 사랑한 천재 찰스 디킨스에 이르기까지 런던 곳곳에 남아 있는 천재들의 흔적과 위대한 성취들을 통해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 런던을 들여다본다. 이들 천재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 그리고 신비와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런던의 모습이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담아낸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찰리 채플린, 비극적 희극의 거장
사라질 뻔했던 빈민가의 천재 / 한웰보육원에 보내진 채플린 / 희극배우로서의 재능 / 첫사랑, 헤티 켈리 / 채플린, 이곳에 살다 / 떠돌이의 탄생 / 희극에 감동의 색채를 입히다 / 고향의 환영 인파 / 상업성과 예술성에서 / 발성영화 시대의 개막 / [모던 타임스]와 [위대한 독재자] / 레스터 광장의 두 동상 / 세상의 모든 찬사와 경의

조지 오웰, 독설과 통찰력의 작가
오늘날의 빅 브라더들 / 식민지 아편국 관리의 아들 /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배우다 / 버마에서의 나날들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프랑스 소설 읽는 부랑자 / 서점의 작가 겸 점원 / 오지에서의 신혼생활 /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 [[동물농장]]과 [[1984]] / 오웰, 여기 눕다

윈스턴 처칠, 역사를 바꾼 영웅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칠삭둥이 / 삼수 끝에 육사에 합격하다 / 종군기자와 작가로 이름을 날리다 /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다 / 정치 생명의 위기 / 그림 그리기에서 글쓰기까지 / 히틀러에 대한 경고 / “우리의 목표는 오직 승리” / 영국을 구한 영웅 / 영웅의 평범한 묘지

제임스 배리, 어린이의 영원한 친구
무명으로 남은 유명작가 /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 / 형의 죽음과 어머니의 슬픔 /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다 / 공원에서 만난 아이들 / [[피터팬]]의 모델들 / 피터팬, 드디어 날다 / “짐 아저씨”와 “내 아이들” / 죽는 순간까지 어린이의 친구로 남다

버지니아 울프, 선구적 페미니스트
버지니아의 마지막 모습 / 유복한 유년시절 / 평생의 트라우마 / 블룸스버리 그룹의 탄생 / 레너드 울프와의 운명적 만남 / 의식의 흐름을 소설에 도입하다 / T. S. 엘리엇과의 만남 / 몽크스하우스의 순례자들 / 버지니아의 런던 찬가 / 런던에서의 마지막 점심 / 코트에 돌을 잔뜩 집어넣고 /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한 시간

찰스 디킨스, 빈민을 사랑한 천재
메멘토 모리 / 구두약 공장과 채무자 감옥 / 사환을 거쳐 국회 출입 기자로 / [[올리버 트위스트]]의 탄생 / 디킨스 박물관 / 주간지를 창간하다 / 트라팔가 태번의 단골 / 런던의 그늘 / 별거, 그리고 새로운 만남 / 시인의 자리에 잠들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의 심장은 '서울' 

서울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 너무 많아!!! 그럼 생략할까?ㅋㅋ

이책을 본 순간...어디서 많이 본 듯한 책인데.......................???? 아하?  <한국사의 천재들>  

맞다 이덕일, 신정일, 김병기 공저로 출간되었던 <한국사의 천재들> 중 사학자인 동시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 신정일이 책 원고 다섯편을 독립시켜 내용과 문장을 보강하고, 원고 4편을 새로 추가하여 주제별로 분류했다고 한다.  

신 택리지 쓰시느라 바쁘실텐데...참 부지런히 글도 내신다..  

잠깐 신정일의 신 택리지를 보자면... 책 소개글로 보자..『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모범으로 삼아 30여 년간 우리땅을 답사한 끝에 쓴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의 5대 강 도보답사와 함께 수백 개의 산을 오르내렸으며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황토현문화연구소 주최 정기답사 247회 및 각종 단체 답사를 포함하여 1천 5백여 회 이상의 답사를 했다.

 

 

 

 

   

  

 

 

 

 

 

 

  

 

 

책 소개를 보자면,,, 우리 역사 속의 천재들』은 한국사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여러 천재들의 행복하거나 불행했던 삶을 추적하고, 그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도출해낸다. 동시에 각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고 각 천재들이 담당했던 시대의 역할, 그리고 그 천재성으로도 넘지 못했던 시대의 조건과 한계를 되새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지난 역사 속에 한정된 인물상을 넘어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당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변혁의 열망 세상을 뒤흔들다
견훤| 새로운 백제의 부흥을 꿈꾼 난세의 영걸
정지상| 변란 속에서 안타깝게 스러진 절세의 시인
신돈| 요승으로 기록된 희대의 혁명가 

1부 ‘변혁의 열망 세상을 뒤흔들다’에서는 뛰어난 능력과 안목을 갖춘 영웅이었지만 끝내 패자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견훤, 중국까지 명성을 떨친 최고의 시인이었으나 묘청의 난에 휘말려 스러져간 정지상, 걸출한 혁명의 뜻을 펴지 못하고 요승의 이미지로 기록되고 만 신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정체된 시대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고자 했으나 염원을 달성하지 못하고 꺾여나가야만 했던 천재들의 비극적인 일생을 엿본다 



2부 불세출의 학문 세상을 비추다
이규보| 한국적 한문학을 창조한 고려 최고의 명문장가
이이| 주자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만든 학자
정철| 한문학과 한글문학을 넘나든 가사문학의 대가 

2부 ‘불세출의 학문 세상을 비추다’에서는 문장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떨치고 관리로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명문장가 이규보, 조선만의 성리학을 정립하고 이후 셀 수 없는 후학들의 길을 이끌어준 대학자 이이, 정치적인 악명 너머로 수많은 시가와 당대 최고의 가사문학작품을 남긴 정철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다채로운 욕망과 이해득실이 뒤얽히는 정계에서도 자신의 뜻을 지켜내며 드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천재들의 위대한 일생과 만난다.



3부 불멸의 글 세상을 아우르다
김시습| 어긋난 세상일에 번민한 비운의 천재 문사
황현| 나라 잃은 지식인의 한을 죽음으로 증명한 선비
한용운| 불교의 혁신과 나라의 독립을 이끈 강인한 민족시인
 

3부 ‘불멸의 글 세상을 아우르다’에서는 마지막까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고고하게 살아간 천재 문사 김시습, 조선의 선비로서 당대 정황을 세세히 기술하고 멸망하는 나라와 운명을 함께한 황현, 나라의 독립과 화석화한 불교의 혁신을 꿈꾸는 한편으로 누구보다도 깊고 진실한 시를 남긴 민족시인 한용운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권력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장소에서 나랏일을 살피고 걱정하며 글과 ?래에 세상을 담은 천재들의 초연한 일생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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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보다는 여왕이 되고 싶다.. 어쮸 ~~ 나 통 좀 커진거여?....ㅋㅋ  

근데 사실 요즘은 황후나 여왕보다는 윌리엄 왕자의 약혼녀 케이트 미들턴이 제일 부럽다.. Waitie Katie 라 불리던 그녀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영국의 왕자빈이 될 그녀의 당찬행보를 보더라도  기대할만한 매력적인 인물인듯 싶다.....

신랑될 윌리엄 왕자 때문이 아니라 세기의 결혼식 ..결혼식 자체가 참 부럽더라....초대안해주나? ㅋㅋ  제 머리속에 제정신 좀 놓아드려야겠어요!!!

내가 초큼(?) 알고 있는 여왕은   신라 선덕 , 영국 빅토리아 , 엘리자베스 1세  , 엘리자베스 2세  ,  스웨덴 크리스티나   ,  스코틀랜드 메리 스튜어트  ,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  , 함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카스티야 이사벨 1세 정도?
그 여왕님들 중.......특별히 관심있는 여왕은?    음????????   

최근 모 카드회사 CF에  '국민님 힘내세요'에 등장한..  

18세에 즉위했다는 그 빅토리아 여왕?   

우리나라 18세 국민은 입시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18세에 영국여왕으로 즉위했다는 그 여왕말이다..... 

 15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1931년 영국 연방이 성립할때까지 영국에 복속되거나, 영국이 건설한 세계 각지의 식민지와 통치 지역을 거느린 제국을 통틀어 일컫는 말 그  대영제국(Vritish Empire)을 들어봤나? 영국은 초강대국이자 거대한 제국이었으며 세계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영어를 세계공용어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오죽하면 영국령 식민지의 어마어마 한 규모에 영국이 밤이 되어도 영국의 식민지 중 한 곳 이상은 낮이기 때문에 붙은 자칭, 타칭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는가......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만든 빅토리아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책이 출판되었다. 

여자라면 한번쯤 ' 빅토리아 여왕'을 꿈꾼다 !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여왕, Victoria에 대해서 보자.. 

'빅토리아 시대'  세계사 시간에 귀따갑도록 들어는 봤다..벌써 몇년전이야? 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야 할듯....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 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64년의 기간을 말한다. 훗~재위기간이 어마하네..   

빅토리아 여왕은 조지3세의 네번째 아들의 딸이다. 조지3세가 아들을 많이 두었는데도 그 아들들이 적장자를 낳지 못하고 낳더라도 일찍 죽어 빅토리아가 거의 유일하다싶은 왕위계승자였다고 한다.  
18살에 영국여왕이 된 빅토리아....그 나이에 무슨 군주의 역할을 했겠는가..그런 빅토리아를 도와준건 당시 영국총리 멜번 경이었다. 잘 배웠는지, 잘 못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1839년 20살에 독일 색스 코버그 고타가의 왕자인 앨버트 공과 결혼했다.  빅토리아는  결혼식 때 영국의 레이스 산업을 돕기 위해 하얀 면사포를 썼다. 그 시대에는  머리 두건을 결혼식을 치른 신부를 표시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면사포로 머리를 가리고 나타난 여왕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아름다운 면사포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빅토리아 여왕은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는 한편으로 19세기 가장 기억에 남는 신부가 됐다 .  

앨버트 공은 그녀와 동갑내기로 멜번 경의 실각후 그녀를 보좌하면서 그녀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처음엔 남편의 국정참여를 별루해 하던 그녀도 그의 성품에 신뢰가 생겼는지 국무회의에 참여시키며 정치적으로 그를 많이 신뢰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서 영국국민들로 외면을 받았지만 그의 성실한 삶의 태도와 능력로 인해 왕실의 권위는 물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도덕적이고 청빈한 왕실로 만든 일등공신이며 결과적으로 정치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는 영국적 군주제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그들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9명이며 빅토리아와 알버트공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앨버트공이 장남 에드워드를 훈계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 다녀오다가 얻은 병으로 인해 21년만에 끝난다. 그 일로 인해 여왕은 훗날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에드워드왕자를 오랫동안 미워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거의 40년을 혼자 살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 했다고 하니 그의 죽음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것같다.  .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는 원칙을 따라 오늘날의 영국 군주의 원칙을 확립한 빅토리아..그녀 곁에 있던 성실한 최고의 지원자 남편 앨버트 공 ..   

헉헉허 ;;;;;;;   사실 영국사도 영국의 인물사,정치사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여기까지가 내 능력이다..아이고 이제 그만쓸래...휴~

그러니까 이책을 한번 읽어 보고 싶은 결론을 서둘러 내자면.....그들을 통해  대영제국의 빛과 어둠의 양면을 알아보고  여왕이 아닌 한남자의 아내로서의 빅토리아의 삶를 알아보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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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産 ' 네글자 속에 녹아있는 소중함 속으로 이끌어주신  내 인생의 스승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옛것을 되살려 새롭게 깨닫는다면 그것으로 스승을 삼을 수 있다.  - 공자-  

 1993년 고등학생인 나의 마음에 '문화유산' '독서의 즐거움' '역사' '답사' '인문학' '기행문학  '베스트셀러' '문화유산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창작과비평사,'아는만큼 보인다' '신드롬'    이 모든 단어를 가슴속에 확~심어버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그후 1994년에 2권, 1997년에 3권이 각각 출판되어 나올때 마다 점점 나의 꿈도 커진듯 하다. 

이 책들고 답사여행을 하는게 나의 꿈이었으며, 그 꿈이 이루어 답사여행을 다니며 행복을 느꼈고, 그 행복한 일이 내 삶의 일부가 된 답사여행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절대 봐도 못느꼈을...그래서 더욱 이 책은 나의 국보급 도서..  

누구나 나의 완소책이 있다. 책장에서도 제일 명당 칸을 차지하는 책 말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개정판이 나온다....기다렸었다..많이!! 언젠간 꼭 나올꺼야..하며...........

 

출간예정 책소개를 보자. 개정판으로 신간6권포함 세트구성

 

   

 

 

  

 

 

 

 

 

 

 

 

 

 

 3권으로 완결되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1,2권은 제외)가 시즌2를 예고하며 10년만에 돌아온다.  돌아오면서 그동안 흑백판으로 발행되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3권이 전면 컬러로 교체되고,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상)(하)가 제4-5권으로 개정됨으로써  새로 나오는 책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이 되었다..  

1~5권 개정판에서는 약 1,000컷에 달하는 수록사진을 전면 컬러로 바꾸어 시원하고 아름다운 본문 디자인을 선보인다. 또한 출간 당시의 원문을 다듬으면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된 부분은 서술을 추가하고 오류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았다. 권말부록에 실린 1박2일 코스의 답사일정표는 독자들이 실제 답사여행을 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가이드를 제공해준다.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우리 문화의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젊은시절 답사기의 명성과 답사 열풍을 경험했던 세대에는 당시의 열정과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과 인문지식을 높여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2권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북한문화유산답사기 제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북한문화유산답사기  제5권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두두두두둥.....어휴 떨려~~ 새로 출간되는 6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인생도처유상수는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숨어 있는 고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6권의 책 내용은 
    

경복궁 1 경복과 근정의 참뜻을 새기면서
경복궁과 자금성 / 자리앉음새 / 경복궁의 뜻 / 창건과정 / 근정전 /
근정전의 뜻 / 월대의 석견 / 박석 / 강화도 박석광산

경복궁 2 아미산 꽃동산엔 십장생 굴뚝을 세우고 35
영제교의 천록 / 사정전·강녕전·교태전 / 양의문 굴뚝 /
아미산 화계 / 자경전 꽃담장 / 태원전 / 빈전 / 궁궐의 우리 나무

경복궁 3 경복궁 건축의 꽃, 경회루와 건청궁
경회루의 물길 / 박자청 / 경회루의 뜻 / 국제연회장으로서 경회루 /
건청궁 / 향원정 / 집옥재 / 건청궁의 근대건축 / 춘양목

경복궁 4 광화문에 새겨진 영욕의 이력서
광화문광장 / 아! 광화문이여 / 야나기 무네요시 / 콘크리트 복원 /
광화문 현판 / 설치미술로서 가림막 / 이방인이 기록한 광화문 복원

순천 선암사 1 산사의 미학?깊은 산, 깊은 절
산사의 모범답안 / 제1회 광주비엔날레 / 정직한 관객 /
한국의 들과 산 / 진입로 / 승선교와 강선루 / 삼인당 / 깊은 산, 깊은 절

순천 선암사 2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옛 가람
선암사의 사계절 / 승탑밭 / 태고종과 조계종 / 장승과 석주 /
선암사 경내 / 무우전 / 선암사 매화 / 뒷간 / 선암사의 시

달성 도동서원 도(道)가 마침내 동쪽으로 오기까지
시각장애인 답사 / 다람재 / 은행나무 / 김굉필 / 도동서원 석축 /
수월루 / 석단의 조각들 / 사당안 벽화 / 점필재와 한훤당

거창·합천 1 정자 고을 거창의 코스모스 길
거창의 이미지 / 가조 휴게소 / 건계정 / 외래 귀화인의 성씨 /
코스모스를 생각한다 / 거창의 정자들 / 황산마을의 거창신씨 / 수승대

거창·합천 2 종가의 자랑과 맏며느리의 숙명
동계고택 / 종가집 맏며느리 간담회 / 모리재 / 초계 정씨 /
거창의 인문정신 / 신원리 가는 길 / 거창양민학살 / 명예회복과 추모공원

거창·합천 3 쌍사자석등은 황매산을 떠받들고
영암사터 가는 길 / 단계마을 돌담길 / 황매산 / 화강암 예찬 /
쌍사자석등 / 무지개 다리와 석축 / 두 마리 돌거북 / 합천 촌부의 회상

부여·논산·보령 1 내 고향 부여 이야기
5도2촌 / 제3의 고향 부여 / 외산면 소재지 / 휴휴당 / 반교리 청년회원 /
반교리 돌담길 / 무량사 사하촌 / 만수산 산나물 / 마늘쫑

부여·논산·보령 2 그 많던 관아는 다 어디로 갔나
백마강 전설 / 왕흥사 사리함 / 송국리 청동기유적 / 홍산현 / 홍산관아 /
홍산 문루기 / 홍산의 근대건축 / 홍산장 / 지게의 회상

부여·논산·보령 3 백제의 여운은 그렇게 남아 있고
충청도 기질 / 장하리 석탑 / 가림성 옛 보루 / 대조사 석불 /
복실이와 해탈이 / 산딸나무 / 관촉사 해탈문 / 은진미륵 / 관촉사 여록

부여·논산·보령 4 바람도 돌도 나무도 산수문전 같단다
무량사 / 오층석탑 / 청한당 / 율곡의 김시습전 / 동봉의 여섯 노래 /
성주사터 / 낭혜화상비 / 최치원의 화려체 / 강승의 편지  

부록 답사 일정표와 안내지도 

   

예약구매후 드디어 받은책~~ 두둥!! 개정판으로 크게 지른듯....나 통 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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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2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반갑습니다. 저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왕팬입니다^ ^
6권 출간 소식, 개정판 출간 소식도 반갑고,
블루데이지님도 반갑습니다.

인생도처유상수!


블루데이지 2011-04-23 21:55   좋아요 0 | URL
와우! 저도 반갑습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읽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ㅋㅋ
프로필 이미지 사진을 보니 유쾌한 포즈에 덩달아 저도 따라 해보게 되네요~
저도 서재 방문드릴께요!! 용기내서 댓글도 달고 추천도 꾸욱 해보렵니다..
 

설마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일본교과서왜곡, 이제와 독도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건 아니죠? 

중국이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현재진행형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억울하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을 이제야 알게된건 아니죠? 고구려의 중국화..영토문제...생각만 해도 무섭고,치 떨립니다. 

 물론 아니라고 믿고 싶고, 당연히 믿겠습니다.    

그동안 역사왜곡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처하는데 노력하신 분,지금도 애쓰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다만 그동안 너무 역사교육을 소홀히 한것에 대한 반성하십시오...이제라도 잘 좀 부탁드려요~~  

누구를 위한 역사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역사교육입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갖도록, 일본,중국의 말도 안돼는 역사왜곡에 적극대응을 할수있도록 교육쪽에서  나서주세요~!!

내년 고교입학생부터  자연,인문계열 상관없이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 되지만 수능시험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지정돼 그 실효성 의문 99.99999999%...( 내가 너무 주제넘는 말을 하고 있는듯 하다.)

독일과 프랑스는 고교필수과목인것이 예전부터였고, 중국은 대학입시에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럼 역사교육은 어떻게 시킬것인가?  

 뭘 어떻게 가르치고, 뭘 어떻게 배우느냐.......식민사관말고 , 잘못된 방향이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또 균형있는 시각으로 역사의 정체성을 어떻게 잡을것인가.... 우선 가장 걱정되고 제일 중요한 건 교과서...공정한 교과서, 쉽고,재미있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는 역사교과서가 역사교육을 위해서 필요하다.... 

정부의 발표대로 미래지향적인 쉽고.재미있게,그리고  역사는 어둡고 내용이 딱딱하다는 선입관을 버릴수 있는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다는 약속 꼭 지켜주세요~~ 우리도 주변국의 역사왜곡 완벽히 대응하고, 우리의 정체성,자긍심을 반드시 찾는다고 믿는다. 대~한 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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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4-2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수능에 안나오면 공부 안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계의 보편적인 생각들이잖아요. 그리고 고작 자국의 역사를 전쟁하듯이 쫓겨서 공부하는 것은 무엇인가 좀....

블루데이지 2011-04-23 21:5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댓글이 달려있어서 깜짝 놀랐어요.ㅋㅋ
저도 어제 이글 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지금도 싱숭생숭 많은 생각이 드네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조금 더 깊이 있게, 조금 더 여유롭게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쓰신 글 읽으러 서재 구경갈께요..
 

 퇴계 이황 (李滉, 1501~1570)은 '동방의 주자' 라고 추앙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폐 천원권의 인물이기도 하다.  

경상도 예안 온계리(지금의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한 이황은, 12살이 되던 해에 숙부 이우로부터 [논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학문에 입문,.20세경 침식을 잊고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그뒤로부터 다병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다. 22 세에는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했다. 33 세에 과거에 급제한 퇴계는 호조좌랑,정언, 승문원교리 등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다
을사사화 후 병약을 구실삼아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46세(1546)가 되던 해 향토인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얽어서 산운야학(山雲野鶴)을 벗삼아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생활에 들어갔다. 이때에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60세(1560)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翁)’이라 정하고, 이로부터 7년간 서당에 기거하면서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들을 훈도하였다.

한국의 성리학(유학)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주자의 이기이원론적 사상 및 영남학파의 창시자인 이언적의 주리설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성리학은 송나라 때 주희가 집대성한 것으로, 우주와 인간의 근본 문제를탐구하는 유학이며 우리 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왔다.16세기 당시 성리학은 경험적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론(主氣論)과, 도덕적 원리와 그 실천을 강조하는 주리론(主理論) 등 두 가지 계통으로 발전했다. 퇴계는 주리론을 계승ㆍ발전시켰으며, '군자'나 '성인' 등 참된 인간이되기 위해 학문을 연구했다. 그래서 퇴계는 항상 제자들에게 "글을 배우는까닭은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출처 <문화재청>

퇴계는 평소에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거두어 정돈하고 머리 빗고 옷과 관을 가지런히 갖추어 입고는 단정히 앉아서 글을 읽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문예에만 힘쓰지 말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현감 이상은 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자제하고 겸손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 책은 2008년에 첫 번역 출간된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개정판. 

초판 이후 추가로 발굴된 관련 도서들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문맥을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가족과 친척, 친구, 관계(官界) 인사 등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퇴계의 가계와 교우관계에 대한 해설을 부록으로 덧붙였다. 

퇴계 이황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둘째 아들 채(寀)는 나자마자 곧 생모(生母)를 사별하고, 커서는 의령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외종조부- 댁에 보내 놓고 있었다. 그 집에서 장가도 들었으나 곧 자식도 없이 죽어 거기서 묻히게 되었고, 큰아들 준(寯.1523-1584))은 17세 때부터 집을 떠나 살았다. 

퇴계는  옆에 두고 지켜볼 수 없는 아들에게 보내는 부정(父情),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큰아들 준은 도산과 가까운 예안의 외내(烏川) 마을에 사는 금재(琴?)라는 이의 딸에게 장가를 가서 10여 년 이상 처가살이를 하였다. 가난했던 퇴계는 결혼한 아들이 처가살이 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 시절 보낸 편지에는 아픔과 동시에 선비의 기운이 묻어난다.
이번 책에 수록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퇴계가 40세가 되던 해 쓰기 시작한 것들이다. 불행하게도 17세 때 처가살이로 집을 떠난 아들 준과 퇴계는 그 이후로도 계속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퇴계가 서울로 올라가 벼슬을 했고, 반대로 퇴계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들이 벼슬길에 올라 경주 서울 등으로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들과 오래 떨어져 있었던 탓에 퇴계는 아들의 교육 문제를 늘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편지에는 유독 공부에 대한 내용이 많다 

퇴계는 생전 아들 준에게 613통, 손자 안도에게 125통의 편지를 썼다. 퇴계는 아들과 손자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보내 공부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아들과 손자, 후손에게 무려 1300여통의 편지를 썼다.
이 책을 보면 퇴계 선생이 40세 때부터 17살로 처가에 가서 살고 있는 이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퇴계가 서울에 올라가서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면서 외내로 보낸 편지들, 풍기군수로 근무할 때 보낸 것들, 또 퇴계가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에 이 맏아들이 반대로 벼슬하여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참봉(參奉)이나, 서울의 제용감(濟用監) 같은 곳에 근무할 때 보낸 편지들이 차례로 나온다.  
편지는 퇴계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한 뒤 풍기 군수를 지내던 시절, 퇴계가 고향으로 돌아온 뒤 아들이 벼슬을 시작해 떨어져 있던 때까지 1540년부터 15년간 이어진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출처 문화재청>

 

퇴계 이황은 ‘자녀교육의 대가’였다.
퇴계는 공부하는 법에서 시시콜콜한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선비가 지녀야 할 모든 덕목을 편지로 가르쳤다.  편지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보다 감정을 순화시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아무래도 화가 날 때 얼굴을 보고 말하면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다면 결코 좋은 장면이 아닐 것이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이용할 경우 가족 간의 대화의 장벽을 허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퇴계는 편지에서 선비로서 인품과 교양을 갖추라는 당부하고, 씨를 뿌리는 일이나 종들을 관리하는 일, 세금을 내는 일 등 살림살이를 챙기는 모습에서 그의 꼼꼼함이 느껴지며, 손자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어떤 글씨체를 쓰도록 하라던지, 친척들 사이에서 재산 분쟁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이르고 있다. 편지를 읽다보면 그동안 알려졌던 학자의 모습보다는 자상한 아버지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세심한 배려를 하는 생활인로서의 퇴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픈 아들을 걱정하는 글에서는 아버지로서의 따스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처럼 여느부모처럼 자녀교육에 노심초사하며 공부법,재산관리,인간관계등 자녀앞날에 필요한 교육을 열정적으로 시킨사람이다. 


140번이나 넘게 공직의 부름을 받았던 대학자이지만  자녀뿐 아니라 먼 친인척의 자제들,제자들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퇴계는 추석 등 명절을 맞아 아들과 손자, 며느리와 손부 등 일가 후손들이 선물을 보내오면 반드시 답례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특히 며느리에게 참빗을 선물하는 퇴계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퇴계는 며느리에게 귀걸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받으려고만 해선 존경받을 수 없다. 가족이나 일가친척끼리도 좋은 인간관계는 베푸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던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 등 그가 돌본 후손은 무려 90명이나 됐다. 

퇴계는 300여명이 넘는 수제자를 길러냈다. 퇴계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명단인 '도산급문제현록'에는 368명이 기라성처럼 올라 있다. 이들 대다수가 당대의 대표학자이거나 문장가, 삼정승과 같은 정치가로 이름을 남겼다. 퇴계 성리학이 길러낸 금지옥엽들이었다. 학문이 깊고 똑똑한 제자가 있으면 아들과 손자, 다른 제자들에게 소개해주고 함께 공부하게 했다. 학문하는 사람은 좋은 벗을 얻어야 서로 도움을 주고 더욱 학문에 매진할 수 있다며 벗을 맺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퇴계가 함께 공부하라고 권한 김성일과 우성전은 훗날 대학자가 되었다.
퇴계는 또한 문하의 제자 대하기를 마치 붕우(朋友) 대하듯 했다. 비록 젊은이라도 이름을 버리고 '너'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체가 낮고 어린 자라도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다. 맞이하고 보낼 때는 예절을 차려서 공경함을 다하였다. 자리에 좌정(坐定)하면 반드시 먼저 부형의 안부를 물었다. 대화를 나눌 때도 반드시 상대방의 말이 끝난 다음, 천천히 한 마디 말로 이를 분석하여 가리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이 옳다고 하지는 않고, 다만 "내 생각은 이런데 어떤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퇴계의 양대 제자로 일컫는 학봉과 서애는 우뚝한 학문과 벼슬로 업적을 남겼고, 이 문중은 안동의 대표적 명문가로 손꼽힌다. 이런 제자 수백을 길러낸 스승으로서의 퇴계의 권위는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것이다. 퇴계종가가 '명가 중의 명가'로 대접받는 이유이며, "경상감사보다 퇴계종손 자리가 낫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퇴계가 70세를 일기로 작고하던 해인 1570년 12월4일, 평소에 사랑하던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침상을 정돈시키고,일으켜 달라 하여 단정히 앉은 자세로 역책(易簀: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하였다.
조카 영에게 받아쓰게 한 유언장은 국장(國葬)을 치르지도 말고, 값비싼 유밀과(油蜜果)는 물론 비석도 쓰지 말고, 작은 돌에다 앞면에는 단지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 만은 진성이공지묘·사진)라 쓰게 할 정도로 극도로 간소하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퇴계 선생이라면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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