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home.freechal.com/triplecrown/02/4/1540862 (강명석님)


드라마<하늘이시여> 사진=SBS

SBS '하늘이시여‘의 배득(박해미)에겐 세현이란 아들이 있다. 배득은 그를 끔찍하게 사랑해 ’세현이 때문에‘ 의붓딸 자경(윤정희)의 돈을 갈취하고, 자경이 왕모(이태곤)와 결혼한 뒤에는 ’세현이 때문에‘ 자경의 출생의 비밀로 왕모를 협박해 아파트를 뜯어낸다. 그러나 정작 세현이는 드라마에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덕택에 배득은 혼자 돈을 쓴다. 영선(한혜숙)역시 모성을 이유로 온갖 사건을 벌리지만, 그것은 결국 그에게만 이득이 된다. 그는 모성을 핑계로 친딸을 의붓아들과 결혼시키지만, 그 때문에 친딸을 버린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딸을 평생 자신의 곁에 두며, 자경의 출생의 비밀을 덮는 조건이라는 핑계로 첫사랑 홍파(임채무)와 결혼도 한다. 반면 자경, 왕모, 슬아(이수경)등 영선의 자식들은 영선의 죄 때문에 정신적 충격에 시달린다. 이는 ’하늘이시여‘의 모성이 세현이처럼 실체 없이 이름만 존재하여 여성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든 악행의 이유를 ’자식 때문에‘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악행을 통해 호의호식하고, 자식을 좋은 집안에 결혼시켜 신분을 유지한 것은 그들 자신이다. 이는 마치 트렌디 드라마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과 유사하다. ’하늘이시여‘는 남녀의 사랑대신 모성을 집어넣은 중년의 환타지다. 그러나, 이 환타지는 환타지로만 그치지 않는다. 자식을 핑계로 자식이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될 악행마저 저지르는 ’하늘이시여‘의 궤변은 곧 우리 사회의 부모들이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무책임한 면죄부를 발급한다. 어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자식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다. 자경은 “모성이 어떤 건지 다들 아시잖아요.”라며 영선과 배득을 모두 용서하지만, 실상 그것은 자식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운 욕망을 채우면서 자식에게 ’좋은 부모‘소리까지 듣고 싶은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낸 것 뿐이다. 20여년전. 대중이 사랑했던 것은 SBS <사랑과 야망>의 태준의 어머니(정애리)처럼 굶어 죽을지언정 꼿꼿하게 살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2006년의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패륜을 저지르는 것마저 정당화되는 드라마가 몇차례 연장방영을 하고, 마지막회에는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식에게 좋은 부모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는 아닐까. 자식 가진 부모라면,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9월에는 국도예술관에서 계속 상영됩니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6-06-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좋으실까!^^

DJ뽀스 2006-06-2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습니다만...점점 비는 통장잔고와 번갈아 보니 한숨만 나네요 ㅠ.ㅠ
(패키지 원츄!)

s0da 2006-06-3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벌써부터 북을 두드리는겨?

DJ뽀스 2006-07-02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용의주도한 인간이라서리..ㅋㅋ
 

출처 : 씨네21  2006. 06. 07
후출처 : http://blog.naver.com/laborcom

 <이웃집 야마다군> 등 대표작 4편 선보이는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전  

지브리의 간판을 단 선장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면, 엔진을 돌리는 기관장은 다카하다 이사오다. 비록 지금은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전해지지만, 두 위대한 애니메이션의 거장은 지난 30여년간 지브리 스튜디오를 이끌며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를 완성시켜왔다. 이를테면 미야자키가 지브리의 꿈을 대변하는 몽상가라면, 다카하다는 지브리의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달리 다카하다 이사오의 작품들은 DVD와 영화제라는 협소한 경로를 통해서만 한국의 팬들을 만나왔을 따름이다. 그래서 오는 6월8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전’은 거장의 대표작을 극장에서 관람하고 싶어하는 팬들에게는 귀하고 드문 기회다.

이미 대가의 위치에 오른 다카하다 이사오의 경력을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프랑스 애니메이션 작가 폴 그리모의 작품에 매료되어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든 다카하다는 1959년에 도에이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평생의 동료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협업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 8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도에이의 TV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다카하다와 미야자키의 공동 작업 아래 세상에 태어난 것들이다(사실 ‘감독’ 직함을 달았던 것은 대부분 다카하다 이사오였다). 80년대 들어서 <자린코 치에> <첼리스트 고슈> 등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을 감독한 다카하다는 1985년에 미야자키와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를 창설했고, 이후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의 걸작을 내놓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사려깊은 애니메이션 작가의 명성을 획득했다.

이번 감독전에서 상영될 작품들은 다카하다의 대표적인 극작용 장편애니메이션들이다. 워낙 익숙한 제목들이라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제외하면 국내 극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이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최근작 <이웃집 야마다군>(1999)은 별도의 주목을 요한다. 감독의 경력 중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모든 제작공정이 디지털로 처리된 지브리의 실험작인 동시에 다카하다 이사오의 미래를 보여주는 열쇠로서도 일견의 가치가 있다. 장편 데뷔작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68년작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太陽の王子 ホルスの大冒險)과 <자린코 치에> <첼리스트 고슈> 등의 80년대 초기작들이 빠진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현실과 판타지를 세밀하게 직조해내는 거장의 솜씨는 4편의 근작으로도 충분히 포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웃집 야마다군>(ホ-ホケキョとなりの山田くん, 1999)

4개의 칸 속에 기승전결이 압축되어 있는 네컷만화를 장편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 대부분의 감독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 것이다. 물론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이미 <아즈망가 대왕>이나 <사자에상>(サザエさん)처럼 네컷만화를 TV용 시리즈물로 번안한 경험이 있다. <이웃집 야마다군>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아사히신문>에 연재 중인 네컷만화에서 인상적인 20여개의 에피소드들을 모아 여러 편의 하이쿠로 선집을 엮듯이 <이웃집 야마다군>을 만들어냈다.

<이웃집 야마다군>이 보여주는 것은 소박한 현대 일본 가정사다. 항상 힘이 넘치는 할머니, 전형적인 일본의 소심한 가장,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하느라 정신없는 엄마, 잘나지 않은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은 아들, 지나칠 정도로 어른스러운 막내딸로 구성된 야마다 가족은 일상의 평범한 고난과 행복을 겪으며 살아간다. 여기에는 다카하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일상의 순간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파친코를 좋아하는 아빠와 아줌마스러운 엄마의 부부싸움. 비오는 날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는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게 영 귀찮은 아이들의 모습, 서서히 이성에 눈떠가는 아들의 풋사랑 등.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스스로의 힘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각각의 에피소드가 산토카, 바쇼 등 유명 하이쿠 시인들의 글귀로 마무리되는 것에서는 <이웃집 야마다군>이 일본의 전통적인 압축미(하이쿠와 네컷만화)를 장편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불러들이려는 시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웃집 야마다군>은 <모노노케 히메>보다도 많은 총 24억엔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이다. 모든 것이 풀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와 지브리의 예전 작화풍에 익숙한 관객은 이 작품을 외면했고, 결국 지브리 역사상 최대의 흥행 참패로 이어졌다. 물론 흥행에서의 참패가 한 예술작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웃집 야마다군>은 소박한 그림체 속에 숨어 있는 지브리의 대담한 실험이며, 동시에 다카하다 이사오가 비오는 도쿄의 골목에서 구성지게 불러젖히는 인생찬가다.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 1988)

“소화 28년 9월21일 밤, 나는 죽었다.” <반딧불의 묘>는 (아마도)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내레이션을 관객에게 던지며 문을 연다. 죽어버린 유령이 자신이 죽음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진혼곡인 셈이다. 내레이션을 읊조리는 주인공은 평범한 소년 세이타. 그는 태평양 전쟁의 광풍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동생 세츠코와 함께 살아간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일본은 희망을 잃어버린 지옥도에 다름 아니고, 누구도 남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결국 굶어죽은 세츠코를 떠나보낸 세이타는 소화 28년 9월21일 밤에 죽는다. 주인공 세이타는 해군 함장의 아들이지만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 전쟁이 언제 끝났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보통 일본인들의 초상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빈번히 반대의사를 밝혀온 다카하다 이사오는 언제나처럼 보통 사람의 눈을 통해 전쟁의 흉포함을 고찰한다. 반전영화 <반딧불의 묘>가 종종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강변하는 작품이라는 괜한 오해를 받는것도 이처럼 세밀하고 미시적인 다카하다식의 접근법 때문일 것이다. 사담이지만, 같은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놓은 작품은 전후 일본의 전원을 꿈결처럼 그려낸 <이웃집 토토로>였다.

<추억은 방울방울>(おもいで ポロポロ, 1991)

도쿄에서 자란 27살의 직장여성 오카지마 타에코는 여름 휴가를 맞아 형부의 고향인 시골 야마가타현으로 농사일을 도우러 간다. 그녀는 거기서 도시 생활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토시오를 만나 호감을 갖게 되고, 열흘간의 농촌 생활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방울방울 떠올려본다. <추억은 방울방울>은 다카하다 이사오의 이름 앞에 ‘현실주의자’라는 호칭을 붙이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꽃을 재배하는 장면들은 꽃재배의 교본이 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다카하다의 말처럼, 현실을 정교하게 셀애니메이션화하는 기법들은 15년이 흐른 지금도 사실주의 애니메이션의 교본이 될 만하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1994)

도쿄 근방의 숲에 사는 너구리들은 도쿄 개발 계획인 뉴타운 프로젝트로 숲이 파괴되기 시작하자 변신술을 써서 인간들의 계획을 막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에도 불구하고 너구리들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갈 참이다. 이 작품은 지브리 감독들이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의식에 걸려 넘어지는 대신 다카하다 이사오는 변신이 가능한 너구리들의 투쟁을 통해 유쾌하게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결국 ‘같이 살아가자’는 노래를 조용히 관객의 가슴속에 불러준다. 지난해 국내 개봉시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인터뷰

“일상과 가족이 나의 가장 중요한 주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전’의 홍보와 제10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관련 행사의 참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웃집 야마다군>의 시사가 열린 지난 5월24일 수요일, CGV용산에서 만난 그는 “굳이 애니메이션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영화가 한국에 소개된다는 것은 일본인으로서 굉장히 기쁜 일”이라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장로 너구리 같은 웃음으로 인터뷰의 운을 뗐다.

 

-<이웃의 야마다군>은 예전 작품들과는 다르다. 사실주의 화풍이 아니며 네컷만화를 기반으로 풀 디지털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의중은 무엇인가.
=셀애니메이션은 점점 더 리얼리티를 추구해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에도 이유는 있겠지만 조금 다른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이웃집 야마다군>이 네컷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첫 시도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잘 표현해보고 싶었다. 네컷만화에는 꼭 필요한 부분만 그려져 있다. 이를테면 가족이 모여 있는 방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그런 네컷만화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네컷만화를 장편화하려면 각색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이를테면 <아즈망가 대왕>이나 <사자에상>(サザエさん)은 완전히 애니메이션에 맞춰서 만화를 변형해냈다. 하지만 <이웃집 야마다군>은 네컷만화의 본질을 그대로 살려둔 편이다.
=각색 부분은 괜찮았다. 다만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이 힘들었다. 선과 선이 중간중간 떨어져 있거나 색이 완전히 칠해져 있지 않은 네컷만화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셀애니메이션보다는 디지털 작업이 용이하다는 생각이었지만, 디지털에만 완벽하게 의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힘이 많이 들었다.

 

-행복한 소시민 가족의 일상을 다루는 <이웃집 야마다군>에서는 과거 일본에 대한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라 한다면 일단 고타쓰라는 일본의 전통적인 난로가 떠오른다. 고타쓰 주위에 가족이 둘러앉아 있는 이미지 말이다. 요즘은 그런 이미지가 사라졌다.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개별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웃집 야마다군>을 통해서 전통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신의 작품들은 화풍은 다를지라도 언제나 극영화적인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테면 원신 원컷의 롱테이크가 많다거나, 심지어 우화의 일종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까지 사실적인 내레이션이 들어간다거나. <이웃집 야마다군>은 특히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삽화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상적인 삶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삶이라는 것은 가족으로부터 드러난다. <추억은 방울방울>과 <반딧불의 묘>를 보더라도 내 작품은 결국 가족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 작품인 <자린코치에>를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일상과 가족이라는 소재는 가장 중요한 내 작품의 주제다.

 

-주제의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달리 감독의 작품들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결정한 이후에 차기작에 들어가는 편인가.
=글쎄, 반대인 것 같은데. 나는 작품을 통해 확실한 메시지를 표현하기보다는 관객이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서 영화의 주제를 떠올리게 만들도록 어떤 단서를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에서 주제의식은 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웃음) 예를 들면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살아라!’라는 메시지라든가.

 

-일본을 제외한다면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이 CG애니메이션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 셀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둘은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 관객과 비슷한 평범한 캐릭터를 그릴 때는 셀애니메이션이 유용하고, 강하고 입체적인 표현이 필요한 캐릭터에는 CG애니메이션이 적합하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이라면 CG보다는 셀애니메이션이 더 낫다.

 

-2003년에 참여한 단편 프로젝트 <겨울날>(冬の日) 이후로는 신작 소식이 뜸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계속 준비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글: 김도훈
사진: 이혜정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6-06-24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올까 말까 했는데.....^^
이웃집 야마다군 꼭 보려고요.

DJ뽀스 2006-07-1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난난나나나나 나나나나나~ 그 노래가 자꾸 맴돌아요!
 

 
2000년 제작된 영국영화로, 그레그 브렌먼(Greg Brenman), 조너선 핀(Jonathan Finn)이 제작하였으며, 스티븐 댈드리(Stephen Daldry)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제이미 벨(Jamie Bell), 줄리 월터스(Julie Walters), 게리 루이스(Gary Lewis), 제이미 드레이븐(Jamie Draven) 등이 출연하였으며, 상영시간은 110분이다.
 
시대적 배경은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1984년으로, 탄광 노동자의 파업이 격렬하게 있어나고 있을 때다. 빌리는 영국 북부의 한 가난한 탄광촌에서 노조활동에 열성적인 아버지와 형, 할머니와 살고 있는 소년이다. 광부인 형과 아버지는 파업 상태여서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어머니의 기억이 배어 있는 피아노마저 땔감으로 사라진다. 빌리는 아버지의 권유로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오래된 권투장갑을 끼고 체육관에서 권투연습을 하는데, 권투보다는 바로 옆에서 이루어지는 발레수업에 관심이 있다.

빌리는 발레 교사로부터 레슨을 받고는 권투를 그만두고 발레 교실로 옮기지만, 힘든 노동과 시위로 평생 살아온 아버지와 형은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은 수치스럽다면서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빌리는 런던의 로열발레학교 입학시험을 위해 발레 교사와 함께 오디션을 준비한다. 성탄절 우연히 빌리가 텅 빈 체육관에서 혼자 춤추는 것을 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발레이며, 발레만이 빌리를 탄광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을 런던으로 보내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인 리 홀(Lee Hall)이 1970~1980년대에 직접 영국 북부에서 자라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실감나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에 대한 반항과 함께,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사태를 소재로 삼아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1년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줄리 월터스)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그의 멈추지 않는 도전은 계속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몽백 > 스노우캣의책이야기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DJ뽀스 2006-06-0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향에 맞는 사람은 정말 배꼽잡고 바닥을 뒹굴게 만드는 책!
우울할땐 호어스트가 보고 싶다!

Laika 2006-06-0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귀차니스트의 표본 - 전, 산에 가서 너무 힘들어서 굴러 떨어져버리고 싶다고 할때 웃겨죽는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