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덕수, 이재명: 탄핵 정국에 대한 몇 가지 단상 (5)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3주 정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역사의 한 복판에 있다 보니 3주가 마치 3달도 더 된 것처럼 느껴지네요.

 

1214일 국회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속전속결로 탄핵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한덕수최상목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를 볼모로 삼은 내란세력의 끈질긴 저항이 있었고, 공수처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역시 경호처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마치 한남동 관저를 최후의 요새로 삼아서 내란 세력의 최종적인 결사 항전이 전개되는 듯한 양상이죠. 그 와중에 공수처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이 보여주는 것: 냉전 극우 세력의 뿌리 깊은 현존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 우리의 물질적 헌정에 냉전 극우 세력이 참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구나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윤석열 일당의 내란 시도에 대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류가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것이 지난 2016~17년 탄핵 정국과의 일차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비교하면 훨씬 약소한(?)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는 박근혜에 대하여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과반 세력이 단절을 시도한 바 있고, 또 대부분은 박근혜의 잘못에 대해 사죄를 한 바 있죠.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아래,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1640여 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남동 관저로 몰려간 데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윤석열을 방어하고 옹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탄핵 판결이 나온 뒤에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마치 주군을 떠받드는 봉건 영주들이라도 되는 양 윤석열을 결사 옹위할 태세를 보이고 있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헌정을 파괴하는 윤석열 일당의 내란 행위까지 정당성을 부여하고 옹호하는 형국이죠. 이런 내란 옹호 정당이 과연 국고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을 가치가 있는지, 마땅히 해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탄핵 판결 이후 엄정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더 나아가 한덕수, 최상목 권한대행의 행태에서 보듯이, 행정부 자체가 윤석열 내란 세력에 자발적인 볼모가 되어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수동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것 역시 지난 8년 전의 탄핵 정국과 뚜렷이 대비가 되는 모습입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은, 이후의 행태가 보여주듯 그 스스로 냉전 극우 세력의 일원이었음에도 박근혜의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저항을 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한 범죄 행위이자 반헌법적 행위와 연루되어 있는 윤석열 일당에 수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행정부 자체가 스스로 내란의 동조 세력이라는 점을 자인하고 있는 형국이죠. 역시 차후에 행정부 각료들을 비롯한 관료들에 대하여 내란 공범 여부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위법 사항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겁니다.

 

셋째,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아스팔트 극우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옹호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죠.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 우익 대중은 박근혜와 일찌감치 단절을 한 바 있고, 그 덕분에 수사 및 탄핵 심판이 어렵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정권을 상실하고 난 이후 흔히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극우 대중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었고, 그 주요 변곡점을 이룬 것이 이른바 조국 사태였죠. 조국 사태를 경과하면서 태극기 부대는 촛불 시위대와 대등한 규모의 대중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대중 운동 세력 및 그 이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세력이 정부의 주요 기관으로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뉴라이트 세력이 윤석열 정부에서 역사 및 신문방송과 관련된 주요 기관장을 장악했다는 점이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등을 비롯 무려 25개의 역사 기관에 뉴라이트가 포진해 있죠. (경향신문 기사 참조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14573?cds=news_edit) 이것은 윤석열 정권과 뉴라이트의 관계가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뉴라이트가 역사 기관들을 장악한 것 역시 의도적인 것이죠. 지난 번에도 말한 바와 같이 2025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해입니다. 1905년의 을사늑약, 1945년 해방, 1965년 한일협정이 대표적인 것이고, 또한 뉴라이트에게는 무엇보다 뉴라이트의 국부라고 할 만한 이승만 출생 150주년(1875년 생)이라는 점이 중요하겠죠. 윤석열 정권이 건재하게 유지되었다면, 뉴라이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들이 중첩되어 있는 2025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상당수의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석열의 무모한 친위쿠데타에 대해 깊이 탄식했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올해가 뉴라이트 역사 다시 쓰기의 신기원이 될 수 있었을 텐데 ... 하고 말이죠.

 

아무튼 이 세 가지 측면을 미뤄볼 때, 냉전 극우 세력은 이제는 지나간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놀랍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뚜렷이 드러나죠. 탄핵 정국에 대한 고찰과 평가, 대응은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의 긍정적 측면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런 측면들을 확인하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 잘됐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윤석열이 저렇게 무모하고 난폭한 친위쿠데타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한국 군대 내에 저렇게 뿌리 깊은 냉전 극우 세력이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시민들이 깨닫지 못했겠죠. 이번 친위쿠데타 모의 및 전개 과정이 하나씩 밝혀질수록, 그리고 심지어 북한을 자극해서 남북 간의 전쟁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고 있는 만큼,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짜 위협은 북한보다는 바로 저 냉전 극우 세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많은 시민들, 특히 청년 시민들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윤석열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친위 쿠데타 시도가 가져다 준 뜻하지 않은 소득인 셈입니다.

 

국민의힘은 어떤가요? 저들이 만약 2016~17년처럼 윤석열 일당과 곧바로 단절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면서 새로 거듭나겠다고 하소연했다면, 저들을 때로는 극우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정상적인우익 정당 세력이라고 간주하게 되었겠죠. 저들이 뻔뻔하게 극우적인 세력일 뿐만 아니라, 더 나쁜 것은, 저들이 무언가 공공의 이익 같은 것,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나 국민 전체의 행복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채로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만 골몰해서 어떠한 궤변이나 만행도 서슴지 않는 세력이라는 것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겠죠. 더욱이 겉으로는 개혁적인 척 떠들고 다니던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들의 본색이 무엇인지도 잘 드러나지 못했겠죠.

그리고 한덕수와 최상목을 비롯한 행정부 내의 냉전 극우 세력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수동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윤석열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행정부 관료들을 그냥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들이 지금도 저렇게 뻔뻔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주고 있는 덕분에, 관료들의 영혼은 냉전 극우 사상으로 오염돼 있다는 사실을 아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문수 같은 특정한 이들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 것이죠. 아니, 김문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수라는 것을 알게 됐죠.

 

한덕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0여 년 동안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고위 공직자를 맡아온 전력이 말해주듯이 한덕수는 개인적인 능력과 별개로 한국 엘리트 집단의 기회주의 및 보신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만큼 닳고 닳은 처세술을 발휘한 인물인 만큼, 저는 그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에도 특유한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궁지에 몰린 윤석열의 노선을 따르기보다는, 적어도 헌법 재판관의 임명에는 찬성함으로써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의 대세를 따를 것으로 보았던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덕수는 이번에는 지조 있게(?) 내란수괴 윤석열 및 국민의힘의 노선을 꿋꿋하게 견지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결과 사상초유의 권한대행 탄핵의 대상이 되었으며 윤석열 내란사건의 주요 피의자 중 한 명으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최상목은 훨씬 더 졸렬하면서도 기회주의적이라고 할까요? 3명의 헌법재판관 중 2명만을 임명한 것은 참으로 졸렬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들이 내란 사태에 직면해서도 이처럼 뻔뻔하고 졸렬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들이 얼마나 속속들이 극우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겠죠.

 

또한 아주 중요한 점이지만, 윤석열의 무모한 쿠데타 시도가 초기에 무력화되고 그 결과 냉전 극우 세력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안 권력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경호처의 완강한 저항에서 우리는 소수의 물리력만 가지고서도 내란 세력이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만약 내란 세력이 검찰이나 경찰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면, 아울러 군대의 물리력까지 동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123일 운명의 계엄 선포 당일날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의 발빠른 대응 덕분에 국회에서 계엄해제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결국 12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계엄 당일 열 일 제쳐놓고 한밤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의원 보좌관들, 국회 직원들의 헌신적인 투쟁, 추운 날씨에도 탄핵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 남태령 대첩을 거둔 농민들과 청년들의 아름다운 연대 투쟁, 한남동 관저 앞에서 전개된 담요 시위 등과 같은 민중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리하여 조기에 군대와 검찰, 경찰 등과 같은 공안 권력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정정으로서 윤석열 탄핵

 

하지만 제일 중요한 소득은, 윤석열 일당 및 그들을 추종하는 내란동조 세력의 완강한 저항 덕분에 우리가 2016~17년 탄핵 정국과 현재의 탄핵 정국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탄핵 정국은 2016~17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 대한 비판이자 정정, 만회의 시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승리감에 도취해서 촛불혁명이니 촛불시민혁명이니 하는 아름다운 수사법으로 자화자찬하기에 바빴죠. 저는 한 번도 이런 표현들에 동의한 적이 없고, 이런 표현들을 쓸 경우에는 항상 중립적인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인용 부호를 붙여서 사용했지만(서문,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참조), 당시에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들, 특히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너무 쉽게 촛불시위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촛불시위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간주했죠.

 

하지만 이번 탄핵 정국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정체를 더 정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우리의 승리로 간주되었지만, 사실 그때의 우리는 여러 소수자들을 배제한 가운데 성립한 우리였죠.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했겠지만, 그 당시의 촛불 무대에서 소수자들이 발언권을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발언권을 얻는다고 해도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그것이 비정규노동자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이든 장애인이든 간에)을 드러내려고 하면 곧바로 야유를 받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죠. 일단 탄핵을 하고, 일단 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저런 소수자들의 과제는 나중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해결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과 촛불집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주권의 시대를 여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 ‘촛불시민혁명’ = 문재인 정부 = ‘국민주권의 시대라는 등식이 성립한 셈이었죠. 긍정적으로 이해해준다면, 이는 문재인 정부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하여 이를 국민주권이라는 형태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에 대한 평가는 그 스스로 윤석열 집권으로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도 많은 그의 팬들은 그가 마치 성군이라도 되는 양 달님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치켜세우기에 바빴지만, 윤석열이 집권한 이후에도 눈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문구로 윤석열 정권을 비난하면서 마치 문재인 정권 시절이 대단한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회고적인 착각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윤석열 탄핵의 쟁점이 다시 문재인 정권 시절로 복귀하는 것, 또는 민주당 집권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쉽다는 점이죠. 여기에 이재명 씨의 사법 리스크를 구실로 하여 극우파 세력이 이재명 공격에 집중하고 있어서, 탄핵 정국의 쟁점이 윤석열 체포 대 수호에서 이재명 저지 대 옹호라는 것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아스팔트 극우 세력의 수뇌 역할을 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111일 오늘 한 발언은 이점에서 볼 때 시사적입니다.

 

https://v.daum.net/v/20250110175000133

 

1987년 민주화 이후 개헌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연속 당선, 그리고 2016~17년 박근혜 탄핵 및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민주화 세력의 성장과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80년 동안 한국의 헌정,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적 헌정의 지배자가 극우 냉전 세력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극우 냉전 세력이 디자인하고 제도화한 물질적 헌정 질서 역시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2016~2017년의 이른바 촛불혁명의 정치적 대표를 자임하고 나선 문재인 정권이 불과 5년만에 허망하게도, 탄핵을 당한 세력과 결합한 윤석열에게 정권을 내주고 무너진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권이 무능력했음을 말해주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극우 냉전 세력이 얼마나 견고하고 뿌리 깊게 확산돼 있는지 뚜렷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탄핵 정국의 마지막 고비가 될 윤석열 체포가 임박해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탄핵 이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것이 다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 정국을 박근혜 탄핵 정국의 반복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후의 전망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현재의 탄핵 정국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난 번 올린 글에서 저는 최대주의 개헌이야말로 윤석열 탄핵 정국을 한국 사회 전환으로 이끌어갈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빠르면 2, 늦어도 3월이면 탄핵 판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선 역시 4~5월 경에 치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극우파 세력의 집중된 비토와 이재명 씨 본인의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차기 대전에서는 이재명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그것이 후련한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것이고, 그것은 대선 이후 이재명 씨와 민주당의 정치적 행보를 상당히 제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말은, 자칫 잘못 하면 이재명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끝날 확률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석열 탄핵이 박근혜 탄색의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재명 정권이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반복이 아닌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당 핵심 지지 세력이 생각하는 것처럼, 필사적인 이재명 수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문재인 정권 당시에도, 그리고 조국 사태 당시에도 민주당 지지 세력은 필사적인 민주당 지지로 일관했죠. 그럼에도 결국 윤석열 집권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필사적인 이재명 지지로 일관한다면, 2022년과 다르지 않은 결과로 귀착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재명 씨나 민주당에게, 차기 정부는 최대주의 개헌을 위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재명 씨는 5년의 임기를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임기 단축을 각오한 가운데, 해방 80년을 맞은 한국 사회 대전환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최대주의 개헌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최대한 실행하는 길만이 이재명 씨 본인이 사는 길이고, 민주당이 한국 헌정의 주도적인 정당으로 혁신하는 길입니다.

 

해방 8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헌정은 1987년 민주화를 변곡점으로 단절을 겪은 바 있습니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은 오늘날 보더라도 혁신적이고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1987년 민주화 개헌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의 헌정은 연속적인 독재로 왜곡되고 굴절된 헌정으로 남아 있었죠. 1987년 이후 민주주의적인 헌정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이후 40여 년이 지난 동안 1987년의 미완의 개헌이 남긴 문제점들에 더하여 새로운 문제점들이 누적되면서 더는 개헌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다중적인 재난들을 무시하고 근본적인 개헌과 체제 전환 작업을 미룰수록 한국 사회는 더 큰 파열과 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근본적인 체제 전환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길만이 윤석열 탄핵을 박근혜 탄핵의 되풀이로 만들지 않고, 이재명 정권을 문재인 정권의 반복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 경고를 무시하지 말기 바랍니다.

 

최대주의 개헌이란 무엇인가? 몇 가지 해명

 

이 글은 사실 며칠 전에 비밀 댓글로 저에게 질문을 해주신 분께 답변을 달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제 그 분의 질문에 대해 몇 가지 답글을 하면서 제 글의 결론적인 논점을 제시해보겠습니다.

 

그 분은 제가 지난번에 올린 해방 80,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https://blog.aladin.co.kr/balmas/16061111#C4186060)라는 글에 대해 몇 가지 유익한 질문을 제기해주셨습니다.

 

우선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서 제가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하셨습니다.

 

그것은 (1) ‘개헌=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식의 통상적인 인식이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개헌에 관한 언급이 나올 때면 늘, 마치 '권력구조' 문제가 개헌의 전부라도 되는 양, 정치권과 언론에서 개헌 논의에 관한 프레임을 만들어왔죠. 심지어 내로라하는 진보 논객들 역시 개헌의 문제를 권력 구조 개편으로 보는 이런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더욱이 이때의 권력구조 문제는 늘 두 가지 양자택일의 문제로 제시되죠. 요컨대 <대통령 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의 양자택일 프레임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결과, 지금은 진보적인 학자나 언론인 또는 시민들도 "개헌"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대통령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권력구조 양자택일을 떠올리게 됐죠. 저는 "최대주의 개헌운동"이 잘 제기되고 성공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런 프레임을 깨뜨리는 게 제일 중요한 쟁점 중 하나라고 봅니다.

 

(2) 또한 이것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재의 시점에서 개헌론을 제기하고, 더욱이 권력구조 프레임을 통해 그런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현재 개헌론을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이라는 프레임에 따라 제기하는 세력은 두 군데라고 봅니다. 하나는 국민의힘 친윤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체가 불분명한 재야 원로들인데, 이 후자가 독자적인 세력을 함축하는지 아니면 일종의 호사가의 관심 끌기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독자적인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문제는 국민의 힘 친윤 세력이 의도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 프레임에 따라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이겠죠. 그 의도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탄핵과 내란수사라는 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12.14 국회 탄핵소추 의결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특별한 우여곡절 없이 탄핵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덕수, 최상목 등에서 보듯이 윤석열 일당은 행정부를 볼모로 삼아 집요한 저항을 시도하고 있죠. 그리고 한남동 관저에서 있었던 체포영장 집행 불발에서 알 수 있듯이 경호처를 호위대로 하여 일종의 배수진을 친 채 관저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섣불리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을 제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3)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구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개헌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권력구조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이때 제가 염두에 둔 권력구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기되어온 프레임에서 말하는 권력구조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언젠가는 헌법 및 물질적 헌정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권력구조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본격적으로 토론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제기하는 최대주의 개헌의 4가지 쟁점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권력 구조 개편의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개헌을 추진할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힘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의도한 대로 제대로 전개되겠느냐,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산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죠.

 

우선 충분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힘이 무엇인가 한 번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예컨대 국회의 의석을 가리킨다면, 분명 최대주의 개헌을 제안하는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고요, 아마 민주당에서 저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볼 수 있겠죠.

 

다만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힘이라는 것을 국회 의석수로 한정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사회운동의 힘이라고 본다면, 저는 우리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고, 앞으로 그 힘은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최대주의 개헌을 운동의 측면에서 제안했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최대주의 개헌은 운동의 측면에서 사고할 때 올바르게 사고될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운동의 측면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몇 가지 논점이 담겨 있습니다.

 

(1) 저는 최대주의 개헌을 얼마 전부터 사회운동에서 제기하는 체제전환운동의 한 요소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 말은, “최대주의 개헌이 목표로 하는 것은 텍스트로서의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죠. 텍스트의 헌법을 최대한 많이 개정하는 것, 거의 제헌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정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본질적인 것은 텍스트로서의 헌법의 토대이자 그 산물이기도 한 물질적 헌정 질서를 개조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체제전환을 뜻하겠죠. “최대주의 개헌은 물질적 헌정을 최대한 개조하는 작업, 그 체제를 전환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될 때 자신의 충분한 의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최대주의 개헌은 운동으로서 전개될 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개헌 작업이 좁은 의미에서의 국회만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개헌은 본질적으로 위로부터의 개헌이었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1987년의 개헌은, 사실 어떻게 개헌이 이루어졌는지 자세한 내막과 진행과정에 대한 관련 문서 하나 남아 있는 게 없는, 전형적인 밀실 타협의 산물이죠.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여기에는 분명히 당시 야당이나 재야 세력이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배경이 존재합니다. 곧 임시로 대강 개헌을 해놓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본격적인 개헌 작업을 진행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알다시피 1987년 선거에서 야당은 패배했고, 결국 염두에 두었던 민주화 개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그것을 미루고 미뤄서 이제 4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로 맞이한 이 절호의 기회에 다시 개헌을 미뤄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죠. 그것은 민주당 입장에서 봐도 지난 40년의 민주화운동의 약속에 대한 배반입니다.

 

개헌 작업은 최대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상상하고 참여하는 개헌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헌법에 대한 시민들 전체의 학습 과정이 되어야 하고, 최대 다수의 시민들이 헌법의 저자로 스스로 참여하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어떤 조항들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 등은 전문가들의 밀실 토론과 합의에 그쳐서는 안 되고, 말 그대로 최대 다수의 시민들의 숙의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헌법 및 물질적 헌정 속에 얼마나 냉전 극우세력의 이해관계가 담겨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이번 친위쿠데타로 터져나오게 되었는지도 분명히 시민들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 경우에만 개헌 작업이 운동으로서의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집단적 학습 과정이 될 경우에만 최대주의 개헌은 동시에 진정한 정치적 주체화의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3) 따라서 운동으로서의 최대주의 개헌은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개헌 운동이 되어야죠. 최대주의 개헌은 사회운동의 열망을 표현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다중재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약소자들의 바람과 희망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 헌법 및 물질적 헌정 질서를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 그것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최대 다수의 을들이 스스로의 몫을 주장하고 나설 때, 자신들의 몫을 헌법 속에, 물질적 헌정 속에 기입하겠다고 주장할 때 비로소 그 내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개의 실존하지 않는 유령들의 목소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지난 80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국가폭력 및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수백 만 명의 유령들의 목소리입니다. 희생자를 무참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령들의 목소리조차 입틀막하기 위해 지난 80년 동안 정치, 군사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보수 기독교 및 언론과 학술 세력을 포함한 냉전 극우세력은 한국의 물질적 헌정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축하고 재생산해왔죠. 그것을 깨뜨리고 새로운 헌법 및 헌정 질서를 세우려면, 그들이 두 번 죽인 국가폭력과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것을 기입하려고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유령은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대의 유령입니다. 우리는 국가폭력과 사회적 폭력을 비판하고 그 희생자들을 애도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대에 대하여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수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특히 생태적 재난은 현실의 재난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재난이기도 한데, 미래 세대는 자신들로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축적된 구조적 재난을 물려받은 가운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 세대입니다. 그 세대들의 아직 실존하지 않는 고통과 열망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상상력과 책임을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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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25-02-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명의 왼팔 김용이 징역5년 법정구속되었죠
돈받은 시기가 대선후보경선이고
그전에 경선을 주관하는 당대표선거는 송영길이 돈봉투를 돌리면서 근소하게 이기고 지금은 감옥에 가있죠. 모든과정이 불법인 상태로 진행된 사실에 대한 인식은 전혀없이 좋은 얘기 써봐야 뭔 의미가 있나요. 한국현실에 대한 무지만이 있는거죠. 진보는 부패로 망하는게 한국상황이고 진보 좌파의 최종결론이 이재명같은 사기 잡범인거죠. 공부해서 사기꾼하나 판단못하면 하나마나죠

balmas 2025-02-10 01:51   좋아요 0 | URL
하여간 알아서 스스로 지우라고 말을 했건만, 너절한 글을 싸질렀으면 스스로 지울 줄도 알아야지 너절한 놈이 어디 와서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로 서재만 더럽히고 사라졌는지 ㅉㅉ

balmas 2025-02-0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왜 이런 댓글을 달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제가 이재명 씨 지지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수십 번 선거를 하면서 민주당에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따라서 그런 의도라면 댓글 지우고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진보=민주당> 같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서는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잘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오늘날의 한국 정치의 쟁점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댓글 다신 분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분이라면 한국 현대사 공부를 조금 더 해보길 권합니다.
 

조금 전 김어준 씨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서 다음과 같은 음모론을 설파했다고 합니다. 



https://v.daum.net/v/20241213123901080


https://v.daum.net/v/20241213130754645




저는 김어준 씨를 예전부터 매우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고 보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위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김어준 씨는 

양날의 칼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생각과 발언들은 


1) 한편으로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서 수구냉전세력이 힘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2)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의 수준을 냉전 독재 시절로 끊임없이 회귀시키는 측면도 있죠. 김어준 식의 정치는 늘 그랬어요. 민주당과 국민의힘(또는 그 이전의 수구정당들) 사이의 대립을 뚜렷한 선과 악의 대결로 구조화함으로써, 그 이외의 정치적 대안을 차단하는 효과를 산출했죠. 


그의 음모론에 말려들면, 오직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음모론과 종말론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어준 씨 자체가 냉전수구세력과 적대적 

상호공존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김어준 씨 같은 비합리적인 음모론/종말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현재의 정세를 면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대안들도 사고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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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제크 2025-02-1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의 엄밀함이 때론느 세살보다 더 뒤쳐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어준의 말이 음모론이라고 접근하는것부터 국민의 힘과의 적대적공존이란 말까지..학자들의 깊이는 오히려 김어준의 음모론과 국힘과의 적대저공존이라는 표피에 머물러 있능게 아닐까요? 자본을 아무리 깊게 이야기한들 국힘의 야만성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자본이라는 이야기는 대중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선생님같은 분조차 김어준을 함계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듯한 시각이라면 학계란 너무 협애한 사고에 머물러 있는건 아닌지 안타깝네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들이 폭로되고 다시 여기에 대한 윤석열과 국민의 힘의 대응들이 


변화하면서 숨 가쁜 탄핵 정국이 전개되고 있네요. 


오늘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가 있고 나서 많은 시민들이 분노를 표현했지만, 또 그것을 지지하는 


이들도 꽤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두렵고 슬프다는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어떻게 친위 쿠데타를 통해 내란을 시도한 일당에 대해 탄핵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죠. 


그런 분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합니다. 내란 세력과 그 동조자들, 그리고 지지자들의 사고와 행위 방식을 보면 


같은 나라에 같은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같은> 나라와 살고 <같은> 국민을 이루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그런 모습에 분노하고 슬프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정도로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은 


한국 현대사의 유구한 수구 냉전 세력(그 이전에는 친일 세력)이고, 한국 현대사를 보면 이들이 저지른 만행은 


훨씬 더 집요하고 잔혹했거든요. 1987년 민주화라든가 1997년 이후 민주당 정권의 등장, 그리고 2016~17년 촛불시위는, 


그 이전에 비춰보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한국 현대사 또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지배적 세력인 이 수구 냉전 세력을 


격퇴하거나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지금도 이 수구 냉전 세력이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물질적 헌정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죠.



약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제 탄핵에 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게 됐다고 봅니다. 탄핵 정국은 


실질적으로 종결됐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탄핵이 가결되든 다음 주에 가결되든, 국회 탄핵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 됐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여러 차례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헌입니다. 개헌 정국에서의 싸움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탄핵에서는 일치했던 세력이 


본격적으로 분화하고 대립하는 국면이 바로 개헌 정국이거든요. 요컨대 탄핵 운동에서는 <우리 편>인 줄 알았던 세력이 


사실은 반대 세력이었구나 하는 것을, 개헌 정국에서는 절감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탄핵 정국에서는 <우리가 주체구나> 생각했지만, 개헌 정국에 가면 <우리가 졸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우리가 주체구나>, <내가 주체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는 데 안주하게 되면, <국민 주권>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 주권 패러다임에 만족하는 한, 냉전 수구 세력을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서 제압할 길이 없습니다. <국민>이라는 개념은, 냉전 수구 세력과 민주 평화 세력을 구별하지 않고, 


재벌과 노동자를 구별하지 않고, 가부장제 세력과 페미니즘 세력을 구별하지 않아요. 실질적인 세력 관계가 불평등한데, 


헌법 자체가 추상적 중립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그 세력 관계가 헌법에서도 관철되게 마련이죠. 


사실 그것은 중립 상태도 아닙니다. 헌법 내에 이미 통치와 피통치 사이의 구조적 위계화 원리가 헌정의 작동 요건으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추상적 중립은 그러한 위계화 원리의 바탕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죠. 예컨대 


국민 주권은 모든 국민의 평등을 함축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평등이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구조적 분할과 위계 속에서


표현되도록 규범적으로 강제하거든요.


따라서 다각도에서 <국민 주권> 패러다임을 탈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번 개헌정국의 핵심 쟁점 중 하나입니다.




사실 <최소주의 개헌>이라는 프레임이 관철되느냐, 아니면 <최대주의 개헌> 프레임이 관철되느냐 하는 것 자체가 


근본 쟁점이죠. 십중팔구 앞으로의 정치 일정은 최소주의 개헌의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최대주의 개헌을 추구해야 


하는 세력의 제도적 힘이 극히 미약한 상태에서 그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대주의 개헌"운동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공론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러한 운동 자체가 


진보적이고 평화적인, 생태적인 세력을 주체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공론장 내에 <최대주의 개헌>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기입해놓으면,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느끼게 되면, 언젠가는 


그 방향의 개헌이 이뤄질 겁니다. 그게 우리 생애에서는 안 된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게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메시아적 힘>입니다.




어제 현대정치철학연구회에서 오카 마리 선생의 <가자란 무엇인가>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제가 토론회에서 말한 


핵심 논지 중 하나는 이런 거예요.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에 분노하고 그것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국가와 무관한 개인들로서, 그리고 이런저런 단체들로서 수행하는 일이죠. 국가 자체는 그 제노사이드에 대해 


무심합니다. 우리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정부가 제노사이드를 비판하거나 저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힘이 막강한데도 말이에요. 그것은 현재의 국가 또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정부이고 국가이기 


때문이에요. <국가경쟁력>이야말로 오늘날의 모든 국가의 지상명령이죠. 이 국가경쟁력이 국가 및 정부의 본질을 


이루기 때문에, 이 국가경쟁력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문제, 그것을 약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국가나 정부는 무심한 것이죠




.그런데 국가나 정부가 <국가경쟁력>에 의거해서 통치하고 대외관계를 맺을수록, 그 국가는 정의상 반인권적이고 


반소수자적이고 반민주적이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국가의 이름으로> 또는 <정부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를 


비판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그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이나 이런저런 단체의 회원으로서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를 비판하고 그것에 분노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한 일인데,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국가 자체, 정부 자체가 인권, 동물권, 생태권, 타자의 권리의 이름으로 행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100퍼센트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 비중을 높일 수 있게 해야죠. 그것이 개헌운동의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예요.



그러니까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헌법, 개헌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자들의 헌법관, 개헌관에 따라 사고하고 느끼고 행위하니까, 그게 현실적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사실, 미안한 얘기지만, 50대 이상, 특히 남성 지식인들의 상상력은 너무 경직돼서 개헌에 관해 말해봐야


 내셔널리즘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서 민주공화국, 능력주의 운운 하는 것 이상 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만큼 젊은 세대, 을들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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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ean님의 "sean님이 작성하신 방명록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 (1) 이 글의 저자로 제 실명을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글 자체는 제가 공적인 매체에서 출판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더 상세하고 더 많은 논거를 지니고 있는 글의 축약본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떤 매체에 실을지 어떨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그런 만큼 이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그냥 제 블로그의 주소를 기입하시면 됩니다.^^ 날짜도 글을 올린 날짜에 맞춰서 표시하시면 되겠습니다. (2) 김강기명 선생의 입장에 대해서 뭔가 논평을 원하셨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하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은 지적해둘 수 있습니다. 만약 김기명 선생의 입장이, 말씀하신 표현대로 하면, <전복관점 최대 강조>의 입장, 곧 다소간 네그리의 관점과 상통하는 입장이라면, 그렇겠죠. 저는 그런 차이가 특별히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입장을 더 정치하고 독창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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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올리는  이 글은 내년 개헌 정국을 앞두고 제가 준비하고 있는 글의 개요를 담고 있는 글입니다. 


아직 완성된 내용은 아니지만, 제 생각의 대략적인 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많이 읽어보시고 또 여러 곳에 전해주십시오. 



12월 13일 수정. 


다시 읽어보니 비문도 있고 오기들도 눈에 띄어서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인용이나 토론을 원하는 분들은 지금 올리는 이 판본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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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80,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ㆍ[황해문화] 편집주간)

 

 

1. 취지

 

2025년은 해방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지난 80년의 한국사는 분단과 전쟁, 숱한 국가폭력과 사회적 폭력, 장기적인 군사 독재로 얼룩진 비극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민중의 놀라운 저항 능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였으며, 더불어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발전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인들 모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간 한국은 비상한 위기와 재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16~17년 대통령 탄핵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붕괴, 2022년의 윤석열 정부의 집권 및 2024123일 비상계엄령 선포를 통한 친위쿠데타 시도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적 역량과 사회적 잠재력이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애국적인 시민들과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몇 시간만에 무위에 그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적 회복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서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서도, 2016~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에서도 잘 표현된 바 있다. 하지만 2016~17년 당시의 촛불시위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민주주의적 회복력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국내외 언론 및 정치권에서는 촛불시위에 대하여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면서, 아무런 폭력 없이 평화로운 탄핵 및 정권교체를 이룩한 한국의 민주주의적 역량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찬사가 무색하게도, 촛불정권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은 집권 5년만에 허무하게도 붕괴되었으며, 탄핵 당한 세력과 결합한 윤석열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윤석열 정권은 채 3년이 못되는 시점에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친위쿠데타를 시도함으로써 탄핵의 문턱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하고 윤석열을 비롯한 친위 쿠데타 세력을 내란죄로 처벌까지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탄핵이 성공한다면 내년 2~3분기쯤에는 개헌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십중팔구 개헌은 (1) 대통령중임제 (2) 헌법 전문에 “5.18” 관련 내용 수록 정도의 내용을 담은 최소주의 개헌에 그칠 것이고, 새로 집권한 세력은 그 이전의 민주당 정권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통치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뒤에서 더 말하겠지만, 우리가 염려하는 다중재난의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기보다 어쩌면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해방 8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시점에 개헌이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개헌이 이뤄진 이래 무려 40년 만에 도래하는 개헌 정국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세력이 남의 일로 여기면서 그냥 물끄러미 방관만 하고 있어도 좋은 그런 정국이 아니다. 개헌 정국은 한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에너지가 고도로 집중되는 시점이며,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역사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포괄적인 질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시점이다. 또한 이번 개헌 정국은 구조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역량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고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토대를 놓을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약소자들 및 그 약소자들을 대표하는 세력들일수록 이번 개헌 정국에 더욱 집중하고 우리 헌법을 더욱 민주적이고 평화적이고 생태적인 헌법으로 만들고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방 8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대전환의 키워드는 무엇보다 새로운 헌정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내년의 개헌 정국은 최소주의 개헌아닌, 제헌에 준하는 개헌, “최대주의 개헌으로 전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몇 가지 논거로 내 생각을 제시해보겠다.

 

2. 다중재난의 시대

 

우선 우리 시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언론이나 학계에서는 복합위기내지 다중위기라는 용어가 현 정세를 규명하기 위한 핵심 개념 중 하나로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복합위기다중위기라는 용어 또는 그 원래 출처로서 polycrisis라는 영어 개념은 우리 시대를 정확히 규정하기에는 여러 모로 미흡한 용어들이다. 나는 우리가 오히려 다중재난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복합위기라는 용어는 20225월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 국내의 정치권과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용어는 출발부터 글로벌 복합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정권의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치안적인 용법에 의해 규정되었다.


복합위기라는 용어는 미국의 경제사가 애덤 투즈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세계정세에서 일련의 연쇄적인 위기들이 맞물려 전개되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함으로써 영어권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본격적으로 개념화되기 시작한 polycrisis라는 개념의 번역어다. 따라서 ‘polycrisis’라는 용어법 자체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들이 존재할 텐데, 내 생각에는 영어권 학계에서의 이 개념 및 그것을 둘러싼 논의 자체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위기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개념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진부화되었으며, 그 자체가 치안적인 담론(또는 거버넌스 담론)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기라는 용어는, 위기의 초점을 객체적인 것에 위치시킴으로써, 현 정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체적인 것 자체, 정치적인 것 자체의 재난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잠재적인 일련의 위기들, 심지어 재난이나 파국적 상황이라기보다는, 이미 진행 중에 있는 재난들, 특히 약소자들에게는 절박하게 경험되고 있고 고통을 주고 있는 재난들이 문제다.


따라서 복합위기나 다중위기 같은 표현보다는 다중재난 개념이 을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현 정세를 인식하고 대응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3. 주체적인 것의 재난, 정치적인 것의 재난: 한국 민주주의의 재난

 

그렇다면 현 정세를 적절히 인식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다중재난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를 이루는 주체적인 것의 재난을 명확히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주체적인 것의 재난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치적 주체성이 처해 있는 이율배반 내지 이중구속의 상황을 뜻한다. 그것은 다중재난에 직면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 능동적 주체성이 요구되는 반면 능동적 주체가 형성되고 실행될 수 있는 조건들은 더욱 더 와해되거나 잠식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동적 주체성의 형성과 실행이 더욱 어려워질수록 다중재난은 더욱 심화되고 촉진되며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시 그것은 또한 전자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주체적인 것 자체의 재난이야말로 다중재난들 전체를 (루이 알튀세르의 용어법을 원용한다면) 과잉결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생태계 재난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무능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거니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 및 대응에서 드러난 갈등과 모순, 분열은 팬데믹 자체가 확산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글로벌 경기침체 및 보호무역주의의 주요 요인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지정학적 갈등의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오픈 AI의 챗GPT 출시가 촉발한 이른바 인공지능혁명소버린 AI’를 중심으로 패권 경쟁의 주요 동력이자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재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다중적 재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회는 계급적인 적대와 갈등에 더하여, 인종 간, 젠더 간, 세대 간에서 표출되는 극심한 혐오와 적대로 분열되어 있으며, 빈부 격차는 단순한 자산의 격차에 머물지 않고 인간학적인 분할 및 노골적인 위계질서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세계 각 국의 민주주의가 직면해 있는 위기를 고발하는 수많은 저작들이 증언하듯이, 이러한 분열과 적대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개혁을 산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정서적 적대감 및 혐오감에 기반을 둔 (극우) 포퓰리즘 운동을 수반하는 신권위주의 정치의 확장을 낳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민주주의 및 정치 일반은, 대개 제도적인 정치 질서 내의 지배적인 양당 세력 가운데 누구를 지지할 것이며, 그 세력을 대표하는 어떤 지도자에게 투표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간에 구조적인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며, 글로벌 다중재난에 대한 효과적인 공동 대응 및 협력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23일 밤 느닷없이 일어난 비상계엄 시도는 한국 민주주의의가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4. 물질적 헌정

 

123일 비상계엄의 시도 및 무산으로 인해 앞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고, 그 결과는 대통령 탄핵과 내년 중 개헌 및 대통령 선거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세력 구도를 감안하면, 내년 중에 있을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 정도의 쟁점으로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중심을 이룰 것이고, 헌법 전문에 5.18 관련 문구가 수록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무려 40년 만에 닥친 개헌 정국에서 고작 이 정도 내용의 개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엄청난 정치적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개헌 정국에서 진보 세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최대한의 개헌 쟁점들을 제기하고 그것을 관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개헌 정국을 맞아 진보적인 의제를 공론장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의 의제로 제기할 수 있는 기회,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올 수 있을지 모를 기회를 날려버릴 것이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도 놓쳐버리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상반기 중에 모종의 임기단축 개헌 내지 탄핵의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원래 예상보다 5~6개월의 시간이 당겨진 셈인 만큼 좀 더 서둘러서 논의를 개시하고 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 및 헌정 자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특히 염두에 둔 것은 물질적 헌정”(material constitution) 개념이다. 이 개념은 1930년대 독일의 헌법학자였던 헤르만 헬러(Herman Heller)와 이탈리아의 법학자였던 코스탄티노 모르타티(Costantino Mortati)에 의해 처음 고안된 것으로, 오랫동안 사장되어 있다가 2000년대 이후 유럽과 영미, 그리고 중남미 법학자들 및 철학자들, 그리고 정치학자 및 사회학자들에 의해 재발굴되어 최근 10여 년 동안 비약적인 이론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개념은 기존의 근대적 유럽 헌법 개념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및 영미법학, 특히 미국 법학의 영향에 따라 헌법이 개인의 권리 보호 및 사법심사에 초점을 맞추게 된 규범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에 입각하여 도입되었다. 따라서 물질적 헌정을 제창하는 이론가들은 현실로부터의 허구적 독립성 및 자율성에 입각하여 헌법 및 법 체계를 사유할 것이 아니라, 헌법 개념 자체를 현실과 법의 상호 연관성을 포괄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이해될 경우 헌정은 독립된 법조문 텍스트로서의 헌법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헌법을 가능하게 할뿐더러 헌법의 기능과 재생산 역시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적 조건들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 된다.


내가 물질적 헌정 개념을 기반으로 을의 민주주의를, 따라서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진보를 사고해보자고 제안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에서 다중적 재난에 관해서 논의했고 다중적 재난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쟁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다중적 재난이 현재의 한국 및 한반도 상황에서 긴급한 쟁점으로 현상하는 불길한 징후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뉴라이트의 약진이 심상치 않다. 해방 80주년, 한일협정 60주년,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아마도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다시 쓰기 작업, 따라서 수구 반공주의적 우파 세력의 역사적정치적 정당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도될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뉴라이트가 사라질까? 아마도 확실히 얼마간 타격은 입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뉴라이트는 (대개 단수의 명사를 사용해서 지칭하긴 해도) 단일한 세력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는 여러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세력들은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염두에 둔 지배세력은, 재벌을 비롯한 경제적 지배 세력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한 수구 우파 정치 세력이 다른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고,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 세력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으며,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과 학계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 네 가지 세력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핵심 기득권 세력으로, 1987년 민주화 및 1997년 헌정사 최초의 정권 교체에 뒤이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속 집권을 경험한 뒤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민주당 중심의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반격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적 결속력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였다. 따라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뉴라이트는 소멸하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약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한국 사회의 구성적 요소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 또는 중남미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번성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도 마찬가지이지만, 뉴라이트 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한국의 정치공동체, 따라서 물질적 헌정의 두 가지 요소를 대표하는 세력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분단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을 중심으로 한 국가폭력의 주도 세력, 이른바 분단체제를 구성하고 지속하는 세력이며,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지배 세력이다. 뉴라이트는 기원에서는 국가폭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지배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신자유주의와도 결부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오늘날 한국의 물질적 헌정 및 그것에 기반을 둔 지배 체제와 불평등 및 차별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가 뉴라이트 현상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이런저런 주장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들이 증상으로서 표현하는 물질적 헌정의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며, 바로 이러한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그들이 수행하는 실천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물질적 헌정이라는 개념의 또 다른 의미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위상 및 정치적 성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 방식은, 지난 1979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수상이 되고 그 다음해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영미의 지배적인 경제 정책 및 그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게 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신자유주의는 세계화, 금융자본의 우위, 자유방임 시장, 효율성에 대한 맹신 등으로 환원될 것이며, 때로는 비정규직의 확산,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경쟁 논리, 각자도생 같은 이런저런 이데올로기 내지 현상들과 결부될 것이다.


하지만 푸코가 처음 제안한 바 있고, 최근의 주목할 만한 연구들(특히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의 저작들)이 명료하게 보여주듯이 신자유주의는 4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17년 러시아혁명에 맞선 정치적경제적 반동의 장구한 흐름이었으며, 그 자체가 물질적 헌정의 핵심 요소로 기능해왔다. 이는 흔히 경제학자들로 간주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사상가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대표자들인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 빌헬름 뢰프케(Wilhelm Ropke), 알렉잔더 뤼스토우(Alexander Rustow) 같은 이들이 동시에 반민주주의적인 정치를 추구했던 ()우파 정치학자들 및 법학자들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단지 시장경제의 신봉자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파괴하려고 했으며, 이를 헌법 자체의 수준에 기입하려고 했던 공격적인 ()우파 정치가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정교함이나 체계성은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뉴라이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뉴라이트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슨 독트린을 갖고 있고 어떤 주장을 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의 지배 세력과 어떤 조직적인 연관성을 갖고 어떤 일을 하는지, 그것이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5. 개헌 정국의 쟁점

 

이런 측면에서 2025년에 열릴 개헌정국에 주목해야 한다. 진보 세력이 조만간 닥칠 개헌 정국에서 무력하게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개헌의 중심 의제로 삼을지, 더 나아가 헌법 및 헌정 개념 자체를 어떻게 전환하고 개조해야 하는지 면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의제들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 및 사회적 시민권의 의제: 이것은 특히 사회적 시민성(social citizenship)과 관련된 의제다. 발리바르와 산드로 메차드라가 각각 강조한 바 있듯이, 사회적 시민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수립된 진보적인 물질적 헌정의 핵심을 이루는 계기였다. 그것의 중요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의 헌법 내에 개인이나 추상적 인간이 아닌, 더욱이 단지 국민도 아닌, 피지배계급으로서 노동자의 권리, 노동을 중심으로 한 여러 권리들이 헌법적인 가치로 기입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 복지국가 또는 사회국가의 구성은 이러한 헌법적 토대에 입각해 있으며, 역으로 말하면 헌법적 조항들 자체가 자신들의 존재를 헌법에 기입하려는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의 사회적 투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이 가장 중요한 공략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사회적 시민성과 관련된 조항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신자유주의적인 물질적 헌정이 오늘날 다중적인 위기 또는 재난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회복하거나 기입해야 할 일차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체제 의제: 개헌 정국의 또 다른 주요 의제는 마땅히 평화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1987년 개헌 이후, 그리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통일을 전제로 한 잠정적이고 특수한 관계라는 규정에 묶여 왔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민족적인’(ethnic) 토대 위에서 사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민족적 토대 위에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사고될 경우 잘 진행되면 민족 동질성에 기초를 둔 남북의 협력과 화해를 진척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고취할 수 있다. 적대적 대립 위에서 일시적으로 화해하고 협력하다가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가곤 했던 지난 80여 년 동안의 남북 관계가 이를 잘 보여주거니와, 애초에 한국전쟁이 수백 만 명의 군인 및 민간인 희생자를 낳은 세계사적인 비극으로 전개되고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분단관계로 고착된 데에는 남한과 북한이 모두 민족적 동질성의 토대 위에서 전면적인 통일만이 분단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분단과 한국 전쟁에서 이미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남한과 북한이 그동안 독립적인 국가로서 존속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통일을 전제로 한 헌법 조항들이나 남북기본합의서는 효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더욱이 올해 115일 발표된 조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의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은 북한이 선제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민족관계를 해체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이러한 해체가 적대적 대립 위에서 선언되고 법제화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해체가 정치 공동체의 민족적 토대를 해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거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우리가 개헌 정국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해체 작업에 상응하는 해체 작업을 우리도 우리의 헌법과 관련하여 수행하되, 그것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향에서 수행하는 일이다.

 

생태적 헌법 의제: 이것은 이중적인 쟁점을 담고 있는 의제다. 하나는 무엇보다 미래 세대의 몫을 헌법 내에 어떻게 기입할 것인가의 쟁점이다. 현존하지 않는 미래 세대의 권리와 생존 여부가 오늘날 우리의 생태적 실천 여부에 달려 있는 만큼, 이것은 자크 데리다가 말하듯 유령과의 관계로서 세대간 정의를 어떻게 헌법화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것은 비인간 타자의 몫을 헌법 안에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의 쟁점도 포함하고 있다. 인류세 내지 자본세와 관련하여 자주 논의되듯이,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 재난은 단지 인간들하고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며, 비인간 타자들, 특히 다양한 생명체들의 몫과 관련된 문제다. 오늘날의 생태계 재난이 산업화 이후, 특히 1945년 이후 자본주의적 문명의 전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체제 전환 의제: 민주화 이행이란 무엇인가?

 

민주화 이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존의 한국 정치학에서 폭넓은 합의를 얻고 있는 관점에 따르면 두 가지를 핵심 내용으로 삼는 이행이다. 곧 그것은 한편으로는 군부독재 체제(또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 정국 및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났던 국가폭력을 포함하여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행된 국가폭력 및 사회적 폭력에 대한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는 이행이다. 이러한 민주화 이행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고 민주주의의 진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민주화 이행에 관한 이러한 관점이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 역시 명백해 보인다. 이는 내가 이전에 최장집과 에티엔 발리바르를 비교하는 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러한 관점이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두 가지 입장 가운데 단계론적 입장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단계론적 입장은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2단계 과정으로 이해한다. 곧 권위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단 확립하는 것이 첫 번째 민주화라면, 두 번째 민주화는 이렇게 정착된 민주주의의 제도적 내실을 다져가는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주로 자유주의적인 틀)을 전제한 가운데, 그 범위 내에서 진행되는 제도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이해된 민주주의의 민주화 또는 사회적 개조 내지 민주주의적 개혁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틀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것을 가리키지,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를 설립하거나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 자체를 전환하는(transform) 것을 뜻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민주화란 자유 민주주의의 틀을 전제한 가운데 그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 등이 그에 앞서 먼저 제시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대한, 따라서 민주화 이행에 대한 유일한 관점은 아니다. 예컨대 포르투갈의 탈식민주의 법학자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Boaventura de Sousa Santos)는 자유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민주주의를 재발명하고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거니와, 이것은 유럽 중심주의에 입각한 기든스의 관점과 달리 중남미 대륙을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또는 서발턴 정치학의 관점에서 제시된 주장이다. 드 소우자 산투스는 지난 30여 년 동안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글로벌) 물질적 헌정의 변혁을 추구해온 사람이다. 단지 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생산과 지식, , 탈국민적 질서 및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그는 유럽 중심주의 및 글로벌 노스의 헤게모니를 탈구축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의 대항 헤게모니 또는 대항적인 물질적 헌정의 구축을 추구해왔다.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자유민주주의의 메타민주주의적 지위를 전제하는 기든스(또는 하버마스)나 최장집의 입장과 달리 민주주의의 재발명이라는 시각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제창하고 있다. 발리바르가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그 이후에 확립된 자유주의적인 틀의 강점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것을 일종의 메타 민주주의적 모형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고대 민주주의에서 근대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혁명적인 변화였다면, 앞으로 이것과 비견될 만한 민주주의의 또 다른 혁명적인 전환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는 우리가 지금 그런 시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민주화, 또는 과정으로서의 민주화라는 표현은 최장집보다 훨씬 강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틀 그 자체를 구조적으로 전환하는 것까지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근대 국민국가(또는 그의 용어법대로 하면 국민사회국가”(national-social state)) 속에 구현된 민주주의 헌정의 역사적 진보성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지배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면,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갈등적인 과정 속에서 전개되는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과 다르지 않다. 어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서 존재하고 작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탈민주화의 경향에 맞서 새로운 민주화의 운동을 추구해야 한다.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로의 지속적인 쇄신 운동이 없는 민주주의는 정의상 이미 탈민주화의 방향으로 퇴락하는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본질 자체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미증유의 다중재난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추구해야 하는 민주화의 운동 역시 이전의 민주주의의 성취 및 목표를 뛰어넘는 더 근본적인 과제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개헌에서 사회적 약소자들 및 그들을 대표하는 세력은 적극적으로 독자적인 개헌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12항에 나오는 국민이라는 명칭을 어떻게 바꿀지,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에 관한 내용을 어떻게 기입할 수 있을지, 장애인이나 이주자 등의 권리는 또한 헌법적인 차원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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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25-01-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이따가 밤에 답변 드릴게요.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