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연구]가 얼마 전에 현실문화에서 배세진 선생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원서는 1974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말 부분 번역본은 198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제 30년 뒤인 올해
원서의 완역본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 추천사를 하나 실었는데,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그것을 올려둡니다.
-----------------------------------------------------------
역사유물론 연구 추천사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 프랑스어 원서가 출간되었고, 또한 30여 년 전에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된 바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이 책에 대해 나로서는 한 독자가 어떤 책에 대해 서평을 쓰듯이 아니면 그 책에 대해 이런저런 소감을 남기듯이(“괜찮은데?”, “뭔 소리야?”, “아직도 이 얘기야?”) 발언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1989년 [역사유물론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의 국역본에 대한 독서가 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나는 이른바 ‘헤겔 마르크스주의’ 내지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속하는 저작들, 예컨대 지외르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나 허버트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또는 카렐 코지크의 [구체성의 변증법]이나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같은 책을 즐겨 읽고 있었다. 당시 한창 전개되고 있던 한국사회성격논쟁에 얼마간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이 논쟁의 주요한 한 입장이었던 이른바 ‘PD’파의 이론적 전거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들의 저작을 직접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내가 접한 알튀세리엥들의 첫 번째 책이었고, 이 책의 독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기억하는 이 책의 두 개의 문구가 있다. 첫째는 2장에 나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문구였다. “착취계급과,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생산에서의 그 위치 때문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피착취계급은 동일한 수단에 의해 따라서 동일한 형태로 권력을 (그 절대적 권력=‘독재’도) 행사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다음과 같은 4장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레닌주의가 그 속에서 생겨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레닌주의 속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이다.”
이 두 가지 문구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돌이켜보건대 아마도 첫 번째 문구는 프롤레타리아 정치가 왜 근본적이고 새로운 정치인지 납득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 문구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가 목적론적인 교조주의 체계가 아니라, 오늘날의 투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쇄신되어야 하는 개방적인 이론적 실천의 형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발리바르의 이 책은 나에게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추구하는 변혁의 성격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전의 다른 철학책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었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40여 년 전에 이 책을 썼을 때, 그리고 나와 같은 독자들이 30여 년 전에 이 책을 한글로 읽었을 때, 아마도 우리 모두는 전(前)미래(또는 미래완료)의 시점에서 사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 정치의 새로운 실천일 수도 있었고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1989년의 초판 번역본에서는 누락되었던 3장의 부록과 5장이 추가되고 전체적으로 프랑스어 원본에 더 충실하게 번역된, 말 그대로 [역사유물론 연구] 완역본을 접하게 된 나 자신도 그렇거니와, 아마도 원서가 출판된지 40여 년 뒤에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내온 발리바르도 더는 예전과 같이 전미래 시제에 따라 이 책을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독서는 오히려 말하자면 ‘지나간 미래’의 시제, 또는 ‘미래(Zukunft)의 유래(Herkunft)로서 과거’의 시점에 따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필연성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정치경제학 비판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관한 가장 좋은 길잡이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눈 밝은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필연성이 어떻게 불가능성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해명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만이 아니라 불가능성을 조건으로 하는 필연성이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조금 더 깊은 독서가 필요할 것이다.
완역본으로 새로 읽으니 이번에는 5장에 나오는 다음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의 역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확실히 그렇다. 이전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