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집에서 TV를 잘 보지 않는다. 20대후반, 혼자 살 때 TV 없이 1년 반 정도 살았던 경험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봄직한 도전이다. 'TV끊고 살기'... 그런 경험은 평범한 시청자에게 매체에 대한 '낯설게 하기'효과를 발휘한다. 이후 다시 TV를 보더라도 그 TV는 그 이전의 TV와 다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해 이해라도 해야한다. 결국 다시 돌아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어도 이제 그 산은 그 산이 아니며 그 물은 그 물이 아니다. 

나는 TV가 완전히 바보상자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TV=바보상자' 라는 도식의 의미를 알고 거기서 또 시작해야 하지만 그 명젱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제 내가 놓친 다큐멘터리는 내가 매력을 느끼는 주제들이다. <걸어서 세계여행>만큼이나...  

한국방송에서 5부에 걸쳐 방영된다. 이 사진은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뱃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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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약 어느 작가가 최규석의 <섭씨 100도>를 살을 덧대어 소설로 썻으면 어땟을까?  

사람들은 그 책을 지금처럼 좋아했을까?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내가 대학다닐때 필독서처럼 읽혔다. 인간의지의 아름다움과 해방의 희망에 대한 숨결. 다시 쓰러져도 일어날 모든 어머니와 아들들에 대한 동경... 
 

이젠 아무도 <어머니>를 읽지 않는다. 

2. 결국 <섭씨 100도>같은 책이 열광적인 지지를 '단 하나도 누락됨 없는 별다섯'일 수 있는 것은 '시대적 징후'다.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낸 지난 기억을 떠올리거나 학습하여 현재의 유용성을 구한다. 어떤 이는 그 시기를 살았던 '자기'를 복원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각성을 위한 '자기'를 구성한다.  

정말 때아닌 '리얼리즘' 문학의 재개와도 같다. 이 모든 것들이 그 분이 돌려놓은 시계 때문이다.  역사란 그런 지그재그 운동의 반복이지만 우리가 그 때와 같을 필요는 없다. 다시 돌아갈 지점이 '87체제'라면 우리는 너무 작은 꿈을 꾸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면 요원한 길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생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말 처럼 " 나를 살린 건 앞으로 나아간 그 한 걸음이야" ,"언제나 우리는 그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일 것이다. 그게 전부다. 그게 끝이다. 무슨 거대한 진리의 성취,진실과 함께 하는 발걸음...뭐 그런 거 없다. 나는 그런면에서 과격한 자기회귀,동어반복적 구호로  타자로부터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게 의미없다는 생각이든다.  

3. 나는 평소 386세대-이 세대적 규정의 협착성도 이 단어를 쓸 때마다 부록처럼 꼭 쓴다-를 비판하는 쪽이었는데, 촛불 시기에 하도 386식 운동방식과 '다름'을 강조하는 일종의 불연속성에 대한 과잉상찬에 386의 역사적 의의를 칭찬한 적이 있다. 386에 대한 내 태도는 지금도 둘 다 유효하다. 

4. 최규석의  <섭씨 100도>를 서점에서 사려고 갔다가 다행히 비닐커버 없는것이 있어서 대충 앉아서 읽어봤다. 서점에 사람도 많지 않아서 좋았다. 책 뒤에는 v도 나오더라. ... ... 이 책은 정말 시대적 퇴행의 '징후' 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역사적 내러티브와 이제는 진부해보이는 인물을 형상화시키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2009년에 만난 '80년대의 재래'다) 이 런 이야기가 다시 읽히고 공감을 끌어낸다는 것이 현재 이 정부가 시계를 어디까지 돌려놓았는지 알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다. 

시대배경은 다르지만 유머의 요소를 잃지않았던 영화<스카우트>방식. 영화<스카우트>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재미있는 영화이니 한 번 보시길... 

그런데 <섭씨100도>는 내가 대학다니던 시절에 익숙한 정공법을 택한다. 이것이 참으로 역설적인 '징후'라는 것이다.  

5. 내 앞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묻는다. " 언제 태어났어?" "87년이요" .그래. 그렇다. 이 책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88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을 알지 못하는 세대.그 세대와의 소통의 단초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어떤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런 염원이 싹쓸이 별 다섯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6. 사실 <섭씨100도>의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가 소환하는,그리고 그에 응하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진 리뷰가 훨씬 흥미롭다. 

7.결국 <섭씨100도>를 사진 않았다. 대신 오늘 노조 집행부 회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경남 진주사람...뭐 이런 대목이 오고가다가... 최규석의 이야기와 만화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위원장보고 노조 도서구매비로 한 권 사놓으시라고 말했다.   

8.나는 그 전에 나온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를 사려고 했는데 그 큰 서점에 그 책이 없었다. 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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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진보주의자들 보다 보수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단어이다. 노사협상 장에서 고래 고래 소리지르며 '그만 둡시다.' 하는 노동자측에 '어...협상장에서 왜 그래. 품위를 지켜야지.' 하는 식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렇다보니 이 단어는 이데올로그적 채색된 듯 한 느낌도 든다.('자의적인 기능어로 작용한다.'가 옳겠다.)  '품위'라는 말에는 귀족적이며 브루주아적인 향기가 난다. '귀족의 품위, 양반의 품위' 같은 말은 익숙해도 '서민의 품위' 같은 말은 맑은 날 우산을 들고 나간 것 처럼 어색하다. 있을 법한 말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품위'가 어떤 자긍심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나 문학과 영화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기품 넘치는 행동을 여럿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황에서 품위있는 행동거지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 이어서 결코 쉽사리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품위'는 헤겔의 '주인-노예'의 비유에서 주인이 가진 덕성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품위 있는 행동' 을 잠시 유보하는 것이 '품위 있는 대의'를 위해 적절할 때 도 있다. 이것은 긴박한 상황에서 제한적이며,전술적이어야 한다. '똘레랑스'의 품위가 때로는 '대화와 타협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약자에 대한 윤리적 강제라는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결코 잊지는 말아야 한다. 

'품위'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기품'이나 '인품' 등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품'이라는 말은 왠지 황손의 자손이나 소공자같은 귀족의 냄새가 많이 난다. 반면 인품이라는 말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더 부각시키는 것 같아서 좀 부족하다. 결국 더 나은 단어를 찾지 못할 바에야 '품위'라는 말을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품위'라는 말은 보수주의자들의 전매특허다.여기에 사회생물학적 우열같은 것은 없다. 유일한 이유는 역사적인데 그것은 그들이 먼저 태어난 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단어의 적용의 재산권은 일부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ㅂ씨와 ㅈ씨를 모두 탐탁해하지 않는다.  ㅂ씨는 저열하고 ㅈ씨는 경박하다. 물론 내가 더 애정을 갖는 이는 ㅈ씨다.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빠'인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도 애정을 갖고 있다. 내가 관상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는 '얼굴 하관'이 부실하고(흔히 복없이 생겼다는 거다.) 그것때문인지 실제 발언에도 그런 '경박함'을 보여줄 때가 여러번 있었다. 그의 그런 행위가- 로쟈님의 책 에필로그에 나온 수잔 손택의 말처럼 '나는 생각한다.고로 폭발한다.'때문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지와 비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편이다. 내겐 이런 '하관 부실의 인상'로 기억되는 몇 몇 정치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MB다. 지난 대선에서 지인 한 명은 '이미지 정치'의 부활을 간절히 염원했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흔히 대통령감 '  흔히 '인상'으로 먹어준다는 것이다.그런면에서 이미지 정치가 부활하면 'MB'에게 표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관상이 서생을 닮아서 그런 것이겠다.) 물론 그 지인은 '이미지 정치'의 개념을 '인물의 인상'이라는 수준으로 잘못 이해하며 최소이해한다. 그건 좀 빈약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때 서로 웃으며 내심 그런 기대조차 해보았다.  현재 우리의 비극은 MB가 부실하며 무능한데다 권력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거다. 역설적인 희망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사과의 부실함이 오히려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무능한 권위주의정권'은 이렇든 저렇든 대중의 심판대에 오를 것인데, 그 전에 그 공포감에 스스로 질식할지도 모른다. 지금 보여지는 MB의 행태는 '편집증'의 발전단계를 그대로 닮아있다. (단결된 인민은 지지 않는다!)  

 또 한 명의 '품위'가 별로 없어 보이는 이가 있는데,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O씨다. 좋은 의미로 이 양반의 '품위' 없음이 좋았던 적이 단 한번 있었다. 그가 캐쥬얼한 차림으로 국회에 들어갔을 때다. 예술적인 상상력이 보기 좋았다. 국회의원들이 라운드티를 입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뭔가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정치가 되었을 것이다.(내가 품위로 봐주는 것은 라운드티까지이지 반바지는 결코 안된다. 50-60세 먹은 정객들의 듬성듬성난 다리털을 TV로 봐야하는 것은 것은 결코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결국 정치혐오감을 키울 것이다. 나는 그런면에서 또 보수적이다.) O씨의 '하관부실'을 여실히 드러낸 일은  '사표론'이었다. 민노당에게 2중대라든가...민노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이 결국 된다는 식의 발상을 대선,총선 기간을 물론 야당협조를 구해야하는 자리에서까지 공공연히 흘렸다. 문제는 ㅇ씨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인데...그것은 자신의 지지정당이 '여당'인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늘 '소수'로 착각을 하고 대선3% 꼴랑넘은 정당을 '자신들을 공격하는 야속한 진보 야당'이라고 받아들인 거다.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두드려맞고 나서 초등학생에게 와서 '네가 안도와주어서 그런거잖아. 네가 더 나빠'라는 식이다. 사실 나는 0씨에 대해 그의 하관부실이 못미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저냥 지켜봐왔었다. 그런데 '사표론'을 공공연히 들먹일때는 정말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하관부실이 여실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 못미더운 '인상학'이 적중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품위'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작은 정당'에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기 지지정당에 대한  '포지티브 전술'로 가는 것이 훨씬 '품위'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거기에 더 나쁜 것은 자기들이 진정한 피해자인양 행세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O씨의 지지율이 오른다는 사실이 자주 보도된다. 모 잡지에서는 가상 선거까지 해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진 수수한 매력과 견줄만큼의 인간적 매력이 없다.) 알라딘의 어떤 분이 상중 '문재인'수석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나와 내 아내가 상중에 TV를 보며 자주했던 말이다. 거기에는 모종의 '품위'가 있다. 인기가 오른 O씨는 정치세력화를 시작할테고 그는 과연 '적'의 저열함을 비난하면서 어떤 다른 종류의 '품위'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자기보다 세가 약한 정당을 '2중대'로 모는식의 '탈품격화'된 파격은 의상착용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O씨를 '품위'없다고 비판했으니, 너는 '우익 보수주의자'군 하는 당신도 마찬가지다.나는 ㅈ씨도 비판했으니 그럴 비난을 받아도 싸긴한데....그런데 ㅈ씨나 O씨는 진보의 성역인가? 어쨋거나 나는 ㅂ씨가 거의 재수없다는 말로 당신들을 안심시키겠다. 그리고...예를 들자면...니체가 신은 죽었다..또는 지젝이 성관계는 없다...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처럼...역설적이게도...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진보적 필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의 역량과 열정을 얼마나 아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또 헛소리하는 이들이 있을것이다...그럼 우파논객들은...어떻게 하냐구...그들은 그냥 소각되길 바란다. 됐지? 당신의 힘으로,당신의 학습으로 대중적 진보논객들을 넘어라. 그들이 진짜 원하는게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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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본부장 불신임 이병순 10개월의 평가"
KBS PD협회·성명 "해결책은 사장사과와 책임자처벌뿐"
 

2009년 06월 08일 (월) 16:09:06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파행' 방송의 책임을 물은 결과 KBS 편성·TV·라디오본부장에 74% 이상의 PD들이 불신임한 것에 대해 KBS PD협회가 8일 "KBS의 위상과 신뢰를 심각히 훼손한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실질적인 책임자인 사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라고 밝혔다.

KBS PD협회는 이병순 사장의 대 시청자 사과와 책임자 엄중문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퇴진운동을 비롯한 강력한 저항을 재차 밝히며, 이 때 모든 책임은 이 사장과 경영진에 있다고 강조했다.

KBS PD협회 "본부장 압도적 불신임 극복 해결책은 사장의 시청자사과와 책임자처벌"


   
  ▲ KBS 취재진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서 취재를 제지당하고 있는 모습. 이치열 기자  
 
KBS PD협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사태가 이런데도 이병순 사장이 노사협의회 석상에서 밝힌 '실수가 생긴 데 대해서는 부끄럽고 아쉬움을 느낀다' '교훈을 챙기는 데 경영진이 최선을 다 하겠다'는 따위의 말들이 고작이었다"며 "책임을 지기보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KBS PD협회는 "본부장들에 대한 이번 신임투표는 직접적으로는 서거관련 방송의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나아가서는 새 경영진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이기도 하다"며 "이것은 이병순 사장 10개월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고 밝혔다.


   
  ▲ 이병순 KBS 사장. 이치열 기자  
 
KBS PD협회는 이병순 사장에 대해 △이번 사태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책임자들을 엄중 문책하라고 촉구했다.

"이병순 사장 10개월에 대한 냉정한 평가…퇴진운동 등 모든 책임 사장·경영진에"

KBS PD협회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장 퇴진운동을 비롯한 강력한 저항을 경고한 바 있다"며 "향후 발생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KBS PD협회가 8일 오후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끝내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 본부장 신임투표를 마치며 -
  

KBS PD협회는 6월 4일과 5일에 걸쳐 편성본부, TV제작본부, 라디오제작본부 세 본부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했다. 그 이전에 협회가 요구한 사장의 대시청자 사과와 책임자 문책에 대해 사측으로부터 어떤 답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에서 나타난 PD들의 의견은 명확하다.

투표에 앞서 실시한 두 가지의 설문에서 PD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과 사과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경영진에게 있으며(91.9%), 이병순 사장은 서거관련 방송에서 KBS가 보여준 파행적 행태에 대해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86.9%)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세 본부장에 대한 신임여부를 묻는 투표결과도 참담하다.

TV제작본부장은 26%의 신임 밖에 얻지 못했으며(불신임 74.0%), 라디오제작본부장은 22.0%에 불과했다(불신임 78.0%). 특히 편성본부장은 불신임 비율이 90.8%에 달했다(신임 9.2%)

사태가 이러한 데도 이병순 사장이 밝힌 언급은 노사협의회 석상에서 밝힌 "실수가 생긴데 대해서는 부끄럽고 아쉬움을 느낀다", "교훈을 챙기는 데 경영진이 최선을 다 하겠다"는 따위의 말들이 고작이었다. 책임을 지기 보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사태는 KBS의 위상과 신뢰를 심각히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실질적인 책임자인 사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다. 교훈을 챙기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가차 없는 질타와 엄격한 책임추궁이 장기로 알려진 이병순사장이 이러한 사태를 그냥 넘어가려 한다면, 그것은 "의도적 책임회피이자 배임행위"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본부장들에 대한 이번 신임투표는 직접적으로는 서거관련 방송의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나아가서는 새 경영진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결과는 비단 세 본부장 개인의 성적만이 아니다. 이것은 이병순 사장 10개월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비록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초라한 성적이지만, 어쩌겠는가? 한 만큼 돌아온 평가인 것을.

사장과 경영진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한다.

- 이병순 사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책임자들을 엄중 문책하라.

우리는 이미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장 퇴진운동을 비롯한 강력한 저항을 경고한 바 있다. 우리의 요구는 여전히 타당하며, 이번 투표를 통해 그 정당성은 더욱 확고하다. 향후 발생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2009. 6.8. KBS 프로듀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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