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기돈 크레머의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전집이다. (모차르트는 모두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 

매장에 갔다가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다른 음반만 사고 말았다. 

오늘 보니 알라딘 음반소개 배너에 이 음반이 소개되고 있다.  

"파가니니의 환생'우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기돈 크레머가 마침내 선보이는
첫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집" 

'파가니니의 환생' 이라는 말은 기돈 크레머의 애칭으로 오래전 부터 쓰였기 때문에 그닥 이상할 것도 없다.  (아래 요간지다)

우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말은....'최고'의 의미를 두고 취향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이 시대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중 하나임에는 틀림 없다. 

문제는...알라딘의 대문 배너에도 나오는 '첫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집' 이라는 거다. 

그럼 "이건 뭐냐구요?" 가 지난 번에도 말했던 내 의문이다. 

80년대중반에 DG에서 녹음한 음반말이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과 연주했다. 내가 이 음반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들은 모차르트 협주곡집이 이 음반이기 때문이다. 

 내가 들었던 음반은 이렇게 2FOR1 세트로 나오기 전에 눈 튀어나온 아르농쿠르와 반짝이는 크레머가 어색하게 어깨동무를 한다든지, 서로 바라본다든지 하는 그런 라이센스 음반이었다.(아래 있는 간지다.신포니아 콘체르단테 음반이다. 비올라의 여인네가 킴 카자카쉬안이다.) 

 같은 음원이 2003년에 왼쪽에 있는 시리즈로 나온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크레머의 2번째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전곡 녹음인 셈이고 '첫'을 강조하려면 크레머가 조직하여 스스로 지휘자 역할까지 맡은 '크레메타 발티카'와의 '첫번째' 시도가 정확할 듯 하다. 

 

...아무래도 '첫경험'과 '원조집'에는 일종의 마케팅적 강박이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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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훌쩍이더니 

오늘 내가 쿨럭인다 

이승의 인연이 가을 달빛만큼 가까웁다. 

 

...찬바람 부는 어느 새벽, 쿨럭이다 서로 잠을 깨운 예찬이와 예찬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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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영화제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래 저래 다음주까지는 몸도 마음도 바쁘다. 

회사 갔다 외근, 집에 돌아오고, 아이 재우고, 새벽에 다시 깨고...아침엔 찌부둥...도돌이표.

아침에는 얼굴이 조금 붓고, 낮에는 열이 살짝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

별로 어려운 책도 아닌데 일주일 전에 꼽아둔 책갈피가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고 있다.  

찌부 둥둥. 

책이나 음반을 둘러보며 위안을 찾는다. 영화제에 나온 배우들 보다 내겐 이게 더 즐겁다.  

  

 

 

 

  

텔레만의 <브로케스 수난곡>,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브람스 <4개의 교향곡>이다. 이 음반들은 이미 사서 한 번씩 들었다.  

 

 

 

 

 

공교롭게도 머레이 페라이어의 바흐 <파르티타>가 완성되었을 즈음 안드라스 쉬프의 <파르티타> 2번째 녹음이 나왔다. 쉬프는 이미 데카 시절 바흐를 한 번 돌았는데 ECM에서 다시 바흐 순례를 하며 페라이어와 경쟁하게 된 셈이다.  라모 연주로 내게 강한 기억을 남긴 민콥스키의 바흐 <B단조미사>와 DG에서 아르농쿠르와 연주를 남겼던 기돈 크레머의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이다. 

 책...그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잖아. 책도 좀 봐야지.. 

 

 

 

 

 

 

 

 

 

 

 

 

 

 

 페이퍼 작업 중에 알게된 반가운.. <푸코, 사유와 인간> 

  

 

 

 

그리고...소설을 읽고 영화마저 궁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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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를 하루 종일 불편하게 했던...그리고 그 진동이 아직도 남아 있는 나영이 사건은 내게 박찬욱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 말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결혼한 이영애의 <친절한 금자씨>의 백선생 복수 장면이 떠올랐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이고 따로 기록해둔 바가 없어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백선생은 어린 금자를 임신시키고 그녀에게 유괴범의 누명을 뒤집어 씌운다. 하지만 그 뿐 만이 아니었다. 백선생은 아이들을 유괴살해한 범행을 여러차레 저질렀다. 금자씨는 낣은 폐교의 법정에 피해자의 부모들을 소환하고 백선생을 피고의 자리에 앉힌다. 

금자는 복수의 기획자이지 직접적인 실행자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제 그 천인공노할 가해자 백선생과 분노와 낯선 경험 사이의 파장 안에서 멈추어 버린 피해자 부모들의 대립을 보여준다. 영화는 백선생을 절대악으로 설정함으로써 쉽사리 관중의 복수에의 동참의지를 독려한다. "그래 저런 놈은 죽어 마땅해."  부모들의 분노와 복수 사이에는 또 머뭇거림도 있다. 금자씨에게 복수를 대신 시키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여간 처음 머뭇거리다가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 응징의 폭력에 관객들은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며 동화해 간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행장면을 보여준 것은 감독의 눈에 보이는 작전이다.)그런데 어느 순간...박찬욱은 다분히 사실적이라 할만한 정지를 보여준다. 가해자들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하는 것이다....나는 그 장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타난 검은 무사처럼 느닷없는 한 번의 타격...   

 

.. 안전을 강조한다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폭력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의 핏빛 눈길에 의해 불가역적인 사건들은 어떤 안전 조치나 예방으로도 막을 수 없다. 사건은 벌어지고 우리는 어떨 때 아파트에서 정전이 만든 순간의 암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무용지물이 된다. 그 때 느끼는 건 무력감이다. 내가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에는 다분히 그런 무력감이 내재되어 있다. 이건 법적 조치를 강화하지 말자는 뜻도 아니고 그런 의지가 없다는 말도 아니다. 이런 류의 범죄적 폭력 앞에 드는 무력감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것의 한가지 해소방식이 '사적 복수'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사적 복수를 사회가 용인해야한다고 생각치 않으며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에 대한 내 입장이 바뀌지도 않는다.)만약 운명과의 다툼이 있다면 그건 다른 말로 불가역적인 무력감과의 쟁투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어찌 보면 함무라비식의 '대항적 폭력' 또는 '직선적인 복수'는 그런 무력감의 공적 확산에 대한 경계였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복수가 범죄를 줄이지도 또 피해자의 원한을 완전히 해소하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표층적인 해원에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건이든 역사든 해원을 위한 '살풀이'의 과정이 없다면 사실 존재의 구원을 위한 첫 단추는 여전히 단추 구멍 주변을 더듬고 있는 것이 될 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사건에 크게 분노한 내게도 그런 굿의 위안이 한 번 쯤 필요한 것 같다. 
 

..

 아내와 나는 가끔 저녁 무렵에 아파트 방송을 통해 "00동 000이나 알고 있는 분은 집에서 엄마가 찾고 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라는 내용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좌불안석할 부모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이고 또 조금 크면 우리 집 아이도 그렇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해 여름의 일이다.나와 아내는 예찬이와 함께 놀러온 4학년 짜리 처조카를 데리고 해운대 해수욕장에 갔다. 예찬이는 어려서 내가 돌보고 있었는데 조카 녀석은 바닷가에 들어가서 놀아도 되지요 하면서 물로 들어갔다. 앞에서만 논다고 약속하고 보내주었는데 잠시 후 바닷가에 나가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후 대략 1시간 가량 동안 아이를 잃어버린 셈이다. 방송을 하고 바닷가를 샅샅이 헤맸는데도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고, 막막했다. 눈에 뭐가 보이는지도 잘 모를 정도 였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파라솔은 모두 비슷하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어른들도 여차하면 자기 위치를 놓친다. 대략 1시간쯤 지나고 녀석이 태연히 돌아왔다. 오히려 어른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나있었는지를 어색해하면서 말이다. 자기 말로는 바로 앞에서 놀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내 아내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바닷물 속에 들어간 아이들은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도 못들었다고 말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들릴 턱이 없다. 하여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를 생각하면 ...후... 

몇 달 전에 서점에 들렀다가 아주 우연히 추적 60분팀에서 만든 책을 한 권 봤다. <당신의 아이는 안전합니까>라는 책이다. 아직 우리 집 아이들은 혼자 어디를 가거나 보낼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아이들의 안전사고에 민감한 편이다. 유괴같은 것은 아니다.난 어린 시절 끓는 물을 뒤집어 쓴적도 있고-다행히 상처가 거의 없다- 주인집 여자아이가 떠밀어서 옥상에서 바닥으로 널브러진적도 있다.부모님들 말에 의하면 정말 넙죽해져서 기절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기억 못한다.)  

이 책은 추적 60분 팀이 연기자를 이용하여 유괴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을 실험카메라 형식으로 방송한 것이다. 당시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유괴에 대한 안전 교육을 충분히 받은 아이들 중에도 어른 연기자들의 여러 유형의 꾐에 결국엔 넘어가서 승합차에 합승하더란 것이다. 당시 실험에 참가한 엄마들은 다른 곳에서 모니터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엄마들 중에는 충격에 말을 잃거나 펑펑 울거나...그런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게 만약에 실제 상황이었다면 그 아이들은 '유괴'된 것이다. 그러니 엄마들의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한 것이 윤리적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만큼 유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측면에서 그 정도의 비난은 감수할 만 하다.  

서점에서 대충 훑어본 것이어서 얼마나 효과적인 대처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방심한 곳에 허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알 수 있을 듯 하다.  

.. 

이런 류의 사건이 발생하면 교과서적으로 나오는 말이 '학교-가정-지역사회'의 연대이다. 나는 거의 십 년전에도 이런 말을 들어봤다. 이런 반복적인 구호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이런 연대가 가진 실효성이 그저 공염불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애정이 있다면 열번의 사건을 한번으로 줄 일 수 있는 가능성의 확률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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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기사를 보다가...못 볼걸 안볼 걸 보고 말았다. 

...가학적 내용은 보지 말았어야 한다. 

.. 

고통스럽다. 

... 

.. 

이런 새끼들은 정말 한 점 한 점 뜨고 싶다. 

..내 안에 존재하는 악을 부활 시키는 그런 '악'이다. 

.. 

선의 이름이 아니라 

악의 이름으로 응징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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