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히 촛불을 잊었다.그렇다. 나는 잊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지난해 내가 촛불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 대략 살펴봤다. 내가 쓴 글 보다 비밀 댓글들이 많았다. 대략 세가지로 정리해보니... 

1) 무중심성이 가진 현실적 딜레마 

2) 비폭력에 대한 강박증 비판   

3) 과도한 낙관주의에 대한 경계   

이렇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나는 생각한다.특히 '전화'문제에 대해서는 그렇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니까...즉 대세에 아무런 지장없는 광인의 헛소리이니 딴지 걸지마라.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에 힘을 빼는 짓입니다..는 식으로 말이다.) 

촛불의 주체문제, 이게 사실 지금 촛불 논쟁의 쟁점이다. (그리고예측대로 인신공격으로 끝을 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의 3가지에 근원적인 모태가 되기도 하고,또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직접 관계하고 싶은 '현실정치 실천'문제와는 선이 다른 더 이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현재 논쟁은 '좌파' 내에서의 주체 논쟁이고 내가 관심을 갖는 영역은 '촛불'만의 영역이 아니다. 내 주변에 촛불에 참여한 이들보다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내 관심은 '촛불-비촛불'의 문제이며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 힘과 동원의 문제이다. 

내가 주체 문제에서 한가지 조금 수정-내지는 보완한-것은 최초에 나는 이 운동을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으로 파악했다. '비폭력'에 대한 강박은 정권이 허용하는 내에서의 시위라는 한계를 직접 보여주었기때문에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한계와 닮아 있기도 하다. (이 말은 자유주의 시민운동으로 이해했다는 말이지, 자유주의 시민운동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도대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 시민운동을 부정하고 어떻게 변혁을 만들 수 있는가? ) 그렇지만 나는 조금 더 열린 태도로 약간의 차이점에 밑줄을 그으면서 '다중론'과의 절합으로 이동했다. 어떤 분이 '자유주의적 자율주의'라고 하던데...자율주의입장에서는 자율주의가 받는 여러 비판중에 하나인 '자유주의=자율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하여간 내게 운동과정에서 주체범주에 약간의 수정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이 말은 내가 자율주의에 동의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자율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최근 논쟁에서 '다중'과 '대중'의 문제에서 나는 '대중'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건 이택광을 지지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택광의 어떤 부분,최원의 어떤 부분,조정환의 어떤 부분...(하여간 나와 이것을 가지고 논쟁하려 하지 마라. 너나 잘하시고 미친개가 짖나보다 해라.)

'대중'이라고 하면 '다중'에 비해 구태의연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쉬운데 그건 오래된 리비스주의 전통에서나 그런 것이다. 네그리의 '다중'에는 도대체 어떤 흠집이 없다. 내게 '대중'은 양날의 칼이다. 나게 이것은 검증된 진리와도 같아보인다.  내가 촛불 와중에 '대중'의 양가성과 그리고 그의 잠재성에 촛점을 맞추기 위해 다시금 들척였던 것이 그람시였다. 마르크스 전통에서 '대중'의 양가성과 그의 긍정적 전화에 최초로 주목한 사람이 그람시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해와 같은 거대한 촛불은 정권 말기에서나 가능해 보인다. 그 이유는 주체의 분열때문이 아니라 폭력적 정권의 항체 형성때문이다. 정권은 권력의 누수가 오기전까지 사전에 제압할 것이다. 이제 이어폰끼고 할 수 있는 시위는 MB정권 하에서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해보다 오해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저항은 끝났다는 말인가?'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푸코의 말처럼 "권력이 있는 곳에 어떻게 저항이 끝날 수 있단 말인가?" 운동은 촛불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그리고 다음 촛불이 있기 전에도 당장 내 눈 앞에,또 당신들 눈 앞에도, 촛불과는 다른 종류의 저항이 놓여있지 않은가? 죽창을 든 사람도, 죽봉을 든 사람도, 마이크를 내려놓은 사람도,거리에서 홍보전하는 사람도...촛불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계속 운동 중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면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내가 패시미스트라고?-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촛불은 잊어라. 너에겐 다른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맞게 과감하게 응해라." 

 다음번 촛불은 과거 촛불과 또다른 정세와 양상에서 펼쳐질 것이기에 해석적으로는 얻을 것이 있어도 반복을 통해 얻을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없다..라고써야하는데..이젠 뭔 말을 못하겠다.아주..끝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나는 회사 자료실에 가면 가끔 <행복이 가득한 집>이란 잡지를 본다. 건축,가구, 인테리어잡지이다. 세련된 요즘 트렌드에 맞게 편집도 글도 사진들도 배치된다. 그런데 잡지를 보면 눈의 호사와 함께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도 생긴다. 실제로 왠만한 경제력을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는 가구들,소품들, 라이프 패턴들이다. 음...이건 이쯤에서 말자. 어떻게 이야기하던 반가운 사람이 있고 또 불편한 사람이 있을게다. 이젠 이런 것 까지 감안하면서 써야된다. 내가 유명인사도 아닌데도 말이다.   

아이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가장 진정성 있다고 했더니 곧바로 달려드는 댓글이 '그럼 나머지는 진정성이 없다는 말입니까?' 였으니 할 말 다한 거다. 이런 류의 반응들은 여러가지 변주가 있는데' 당신의 의도가 무엇이냐?' 부터 진보자유주의자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당신이 무슨 파인지 의심스럽다'라는 이야기까지...내가 정치적으로 진보를 가장한 보수라는 거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지만...그런데 더 우습게도 어떤이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하더라. 하여간 '자기의 무엇'가지고 어찌나 여기 저기에 끼워놓고 싶어 안달인지...난 예술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보니 그것도 용납이 되지 않나보다. 그래도 예술가들에게는 좀 관대한 진보인사들 마저 나같은 일반인이 감히 그런 경계선 영역을 얼쩡거리는 것이 신성모독정도로 보인다. 어떨때는 차라리 내가 예술가였으면 싶다. 온갖 기행을 다 선보이게 말이다. 별 기행을 보인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퇴근하는데 명언이 나오더라. 최근 시점에서 내게 최고의 명언이었다. 배철수의 죽은 친구인 방송국 PD가 자주 하던 말이란다. 

 "이해는 바라지도 않는다 오해나 하지마라." 나도 그렇다.  

..하여간 이런 화들이 알라딘의 그 잘난 소통에 대한 최근의 분노의 원인이다.나귀님처럼 다 막아버리고 싶을만큼.  

<행복이 가득한 집>이야기하다가... 대개는 그 잡지에서 사진만 보다가 어제는 다니엘의 사진들 때문에 기사를 좀 읽었다.  

결혼 전에 부산에 있는 천주교에서 하는 재활원에 봉사활동을 다닌 적이 있다. 어떤 단체와 연결되어 간 건 아니고, 그냥 낮에 불쑥 찾아가서 '뭐 제가 낮시간에 좀 시간이 있는데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라고 시작되었다. 그땐 밤 근무를 하고 있어서 새벽 1시에 들어오고 낮 2시에 출근했다. 수녀님은 첫날 원래 자봉에게 시키는 일은 아닌데 오늘 담당자가 아파서 라며...지하 세탁장에서 기저귀 빠는 일을 시키셨다. 엄청나게 큰 세탁기에 엄청난 분량의 기저귀를 빨고 났더니 정말 머리가 어질 했다. 그 다음번에 갔을 때는 기저귀 널기 또는 아이들 밥먹이기 같은 일반 자봉들이 하는 편안한 걸 시켜주셨다. 대개 낮시간 자봉은 아주머니들이 많다. 그래서 가끔 내가 필요한 구석들이 있었다.  

내가 한 일 중 가장 즐거웠던 건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진행해준 거였다. 당시 함께 일하던 친구 몇명을 꼬득여서 음악도 준비해주고, 진행도 보고...^^  수녀님이 다음번 소식지를 보낼 때 손글로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다는 말을 해주셨을 때 함께 간 친구들과 좋아라 했었다. 이후 밤 근무가 낮근무로 바뀌면서 자봉은 뜸해지게 되었고 회사에서 분기마다 나오는 쌀지원을-현물로 준다- 그쪽 재활원쪽 주소로 바꾸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가보자고 했는데...아내는 사실 그런걸 보면 마음이 아파서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일상의 바쁨을 핑계로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이 기사가 그 재활원을 떠올리게 한 거다. 그 곳의 아이들 중 상태가 가장 심한 아이들이 뇌수종 아이들이었다. 머리가 정말 수박보다 더 큰 친구들이 쪼르르 누워있었다. 거기에 오는 아이들은 대게 버려지거나 부모가 양육이 너무 힘들어서 위탁한 아이들이다.뇌수종 아이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그 때 나역시 들었던 것 같았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부침성이 많다. 담당 선생님이 절대 안아주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모르고 안아주었다가 진짜 혼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너도 나도 달려들어 안아달라고 했고 원래 안긴 녀석은 안 떨어질려고 하고.....울고 성질 내고...담당선생님은 아이들이 정에 굶주려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애정을 표현하더라도 세심하게 해야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좋은 의도에서 한 일도 나쁜 결과를 불러 일으킬수 있다.'라는 인생의 한 진실을 진짜 깨달았던 때다.  

예찬이가 더 크면 아이와 함께 가 볼 수 있을까.예찬이에게 사전에 많은 설명을 해야한다.  

---------------------------------------------------------------------------  

저작권 이런 말때문에 링크만 걸어둔다...

http://happy.design.co.kr/in_magazine/sub.html?at=view&p_no=&info_id=47899&c_id=000100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업체난립→단가인하 출혈경쟁→택배노동자에 한계상황
택배비 평균 5년새 3638→2350으로 추락
수익악화…“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노동자몫 1건 8~9백원…10년전엔 1천원
 
 
한겨레 황예랑 기자
 








 

» 지난 16일의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폭력시위를 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대전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 법동 동부경찰서에서 경찰 버스에 오르고 있다. 대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죽음 부른 택배 노동자 현실


‘운송수수료 30원 때문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 결의, 노동자 457명 연행 등 최근 번지고 있는 극렬한 노-정 충돌의 불씨는 택배 운송수수료 ‘30원’이었다. 대한통운과 택배운송 계약을 맺고 있는 ‘택배노동자’ 76명은 운송수수료를 상자 1건당 920원에서 950원으로 올려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가 계약해지 당했다. 이들을 돕던 화물연대 박종태 광주지부 제1지회장은 “끝까지 싸워서 이깁시다”란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포화상태인 택배시장의 ‘단가 낮추기’ 경쟁이 결국 화를 불렀다”고 입을 모은다. 흔히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 개인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택배비 2500원. 대체 그 뒤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기에, ‘30원’ 때문에 사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일까? 왜곡된 택배시장과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배송비 무료!’

요즘 온라인 오픈마켓에선 1000원짜리 물건을 부산에서 주문해도 배송비가 무료다. 많이 받는 데라도 2500원을 넘지 않는다. 국내 택배업체들끼리 제 살 깎기 식으로 단가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업체들이 받는 운송단가는 2004년 건당 3638원에서 지난해 2350원까지 곤두박질했다. 업체들의 이런 출혈경쟁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택배운송 개인사업자’로 불리는 택배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 ‘택배비 2500원’의 비밀 택배 단가 2500원이 배분되는 구조를 보면, 택배노동자들이 왜 열악한 지경으로 몰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대리점이 수수료로 50%가량을 떼어간다. 이 가운데 800~900원가량이 물건을 직접 배송하는 노동자(사업자)의 몫이다. 하루 100상자를 날라도 겨우 8만~9만원 번다는 뜻이다. 기름값, 각종 보험료 등도 본인이 내야 한다. 더 많이 벌려고 하루 150상자를 배송하다 보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져 나중에 일감이 줄어든다.

2500원의 나머지 절반엔 터미널간 운송에 들어가는 간선비용과 화물 분류작업, 터미널·대리점 임차료 등이다. 간선운송과 화물 분류작업에도 인건비가 들어간다. 때로는 택배업체들이 많은 물량을 따내기 위해, 단가의 30~40%를 화주에게 다시 주기도 한다. 이런 리베이트 관행까지 포함하면 단가가 크게 낮아진다.

박찬석 미래물류컨설팅 대표는 “10년 전엔 건당 운송수수료가 1000원이었다면 지금은 800~900원대로 낮아졌다”며 “업체들은 이런 단가인하 경쟁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힘없는 택배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맷집 좋은 놈만 살아남는다? 무리한 단가 경쟁에 발목 잡히기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대형 유통업체와 전자상거래의 급성장을 등에 업고 2000년대 초 200여곳에 이르렀던 택배업체는 최근 30곳 안팎으로 줄었다. 대형 택배업체조차 영업이익률 1~2%짜리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있다.

국내 택배시장이 급팽창한 것은 1997년 이후다.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택배업 진입에 대한 법적 장벽을 허물면서, 중소업체들이 대거 택배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업체 난립에 따른 단가인하 경쟁이 결정적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래 버티는 회사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택배시장 규모는 약 2조6천억원(매출액 기준)으로 추정된다. 택배업 종사자는 약 2만9천명이다. 1인당 연간 매출이 1억원도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택배업체들은 휴일배송, 철도·편의점과의 연계 등 서비스 차별화로 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지난해 동원그룹이 택배업 진출 1년여 만에 철수하는 등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팔리고, 신세계그룹의 세덱스가 한진택배와 통합되는 등 택배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빅5 체제’로 재편됐다. 현재 택배시장의 절반가량은 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 씨제이 지엘에스(CJ GLS), 우체국택배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가인하 경쟁의 ‘덫’에 걸린 것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똑같다. 윤영삼 부경대 교수(경영학)는 “표준운임비를 도입해 택배비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 오늘 203,000원 어치 밀린 택배비를 지급했다. 3달치 밀린 택배비다. 아저씨는 밀린 것을 채근하진 않았다. 

그런데....이런 구조로 운영되었던거구나. 어차피 떼먹지도 못할 돈이고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도 아니지만 

내가 조금만 이런 사정을 잘 알았더라면 석달 밀려서 드리지는 않았을텐데.  

물론 우리 정산은 1달씩하는 것이고.. 내가 밀린 건 정확히 1달이다. 앞의 2달은 전임자가 누적해온 것을 

내게 넘긴거... 누락분의 영수증을 대차대조하느라고 조금 더 늦어졌다. 

아저씨가 채근할 수 없었던 것은 괜히 귀찮게 했다가 택배업체를 바꾼다고 하면 

곤란하니까가 아니였을까? 경쟁도 심하다고 하지 않나...

나 역시 그리 큰 돈도 아니니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거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바쁜 척하는지.... 뭔 더 큰일을 처리해야 된다고 ... 

한 사람의 생계와 관련된 일을 어떻게 그리 사소하게 취급했는지. .. ..몰라서 그랬다고 

용서될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러니까 더 나쁜거다. 자학의 채찍질을 삼세번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나는 페이퍼를 쓰면 곧잘 지운다. 반나절 넘기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지운다. 자기검열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검열은 애초에 쓸데부터 시작하는게 자기검열이다. 그런데 써놓고 지운다는 것은 무언가 장애가 있는 것이다. 그저 생각나는데로 몇 가지 단상을 적어 놓고 지우고, 어떨 때는 댓글을 달다가도 마지막에 생각이 바뀌어 올리지 않는다. 정말 짧은 '좋네요.' 이런거나 자신있게 올린다. 이유는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 때문이다. 이건 발화자와 수용자 둘 사이에 공히 존재하는 문제이고 그 틈새에 끼여버렸다. 결국 누구에게나 말을 던질 수야있겠지만 소통은 상호이해가 가능한 자들사이의 몫이다. 

갑자기 예전에 미선,효순 촛불집회-그러니까 2002년인가-<100분토론> 때 손석희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한총련인지,서총련인지,북부총련인지 소속 대학생 녀석이 생각난다. 100분토론을 잘 보지 않는데 우연히 돌리다가 봤다. TV 토론은 말초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쇼일때가 많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속되게 말하면 '싸움'이라는 스펙터클은 전체적이다. 구경하며 분노하고,열받고,전화 해보고 싶고 그런 관객으로 전락하는 자기를 못느끼는가? 주체적인 TV피플..THIS IS CITY LIFE!! 하여간 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소년이야기다. 열혈청년이 방청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촛불의 정당성에 대해 단상에 올라온 사람처럼 상기되어 열변을 토했다.거기까지 하고 앉았으면 최소한 '장하다.소년'은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애송이가 뭔 짓을 했냐하면....갑자기,뜬금없이,애드립으로 진행자 손석희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거다.  

"진행자님은 촛불집회에 나가보셨습니까. 얼마나 벅차고 가슴뛰는 현장인지 느껴보셨습니까...우리는 하나다.무언가 이룰 수 있다라는 그 뜨거운 열기를 느껴보셨습니까? "  손석희가 적지 않게 당황하며 머뭇거리니까 이 열혈청년은 정당성이 자기에게 있다는 듯이 "진행자님은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뜨거운 열기를 느껴보셨습니까?" 라고 재차 물었다. 손석희는 "네...알겟구요.그 질문은 답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대답해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구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으니..그럼 다음 의견있으신 분..좀 짧게" 

하여간 이런 이야기였다. 의협심에 불타는 그 소년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손석희처럼 손목에 수갑차고 수의라도 한 번 입었을까? 어디 어디 소속이었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빈정거리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잘 자라났기를 바란다. 솔직히 그 때 TV보면서 나는 '저런 빙신같은 애송이 새끼..'라고 해버렸다. 하지만 욕은 하더라도 젊은 날의 그런 치기어림은 이해해 줄 만큼은 된다. 언젠가 쪽팔린 짓이었음을 알기만 한다면..그 애송이새끼가 밑바탕부터 애송이였는지 아니면 젊음의 치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잘되었어야 하는데...  

밤도 늦고..또 쓰면서도 또 지울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면서 쓴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자기가 기억상실증이므로 지금 지시하는 대상을 잊게 될거라는 걸 아는 것 처럼... 

언제가 말했는데.. 알라딘에서 가장 진정성있는 소통은 알라딘의 주류인 엄마들 사이의 아이키우는 이야기다. 그런면에서 나도 오늘의 대미는 진정성있는 이야기를-사실 이야기는 그닥 없고 사진 몇장이다.  



자는 예찬이...딱 한번 이런 포즈로 잠을 잤다. 



1....첫돌 아니다. 예찬이는 7월이 되면 3돌이 된다. 그럼 1은 뭘까요?  예찬이와 미리 약속한게 있어서 잊지 않고 밤에 파티하러 갔다. 예찬이는 과자,케익같은 것을 먹지 않는다. 콜라,아이스크림,사탕 이런 것도 단 한번도 먹이지 않았다.(또 해보지? 무슨 근본주의자냐고 ^^) 그런데 왜 케익이냐고...야밤에 떡집은 안한다. 떡집 일찍 문닫고 새벽에 일찍여는거 아시지..^^ 예찬이는 케익은 안먹어도 케익 위의 촛불끄는 건 정말 너무 좋아한다. 예찬이는 아토피가 팔과 가슴언저리에 조금 남았다. 아내는 어린이집 식단을 매일 살피고 예찬이가 먹으면 좀 불안한 식단이 나오면 매번 도시락을 싼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가끔 과자나 사탕같은 걸 가지고 온단다. 우리에게 도움은 안되지만 막을 수도 없다. 예찬이는 조금 맛만 보고 '이건 먹는거 아니지요'라고 하며 눈길을 주지 않는단다. 대견한 녀석...언제까지 저럴거냐고 묻겠지 ^^ 평생 저러지 않는다. 어디서 보니까 5돌 정도까지 아이들의 입맛을 정크푸드에 길들이지 않으면 아이들은 나중에 저런 걸 먹긴 먹어도 입에 줄줄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한다.  ... 아...저 1 은 말이지...예찬이 키가 1M된 기념파티다. 대단한 일 아닌가? 정말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1M는 거의 모든 인류의 존재 높이이다. 물론 2M 넘는 사람도 가끔있지만. 그렇게 보면 예찬이가 1M에 들어선건 정말 존재론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다.인류가 된거다. 앞으로 뒤에 숫자만 바뀌겟지 예찬이는 평생 저 1M와 함께 간다. 그 높이에서 세상을 보고 그 높이를 넘는 꿈을 꾸며 다시 그 높이에서 실천을 할 것이다. 꿈보다 해석이라고...그렇다. 그런 해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1M파티를 해주었다.   


예찬이가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멀리 본다. '나...머얼리 본다' 라며 예찬이가 한 행동이다. 저런건 어디서 봤을까 ^^ 멀리 봐야지..그래 중요한 거다. 멀리 본다는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6.
사실 촛불이 변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진보진영 내지 조직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약소자들과의 거대한 합류였다. 촛불은 그야말로 '원군'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사실 작년 촛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 원군이 어디에서도 나타나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촛불은 (데리다적인 의미에서의) 보충대체(supplement)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진정한 의미에서의 데모스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 
나는 작년에 촛불의 중간계급적 성격을 지시하면서,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민중의 지원없이 촛불의 싸움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역설했었다. 참세상에 올렸던 '컨테이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서 내가 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거기에서 컨테이너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 힘이 반드시 요구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폭투냐 비폭이냐의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며, 그 자리에서 단순히 컨테이너를 넘어설 것인가 말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논의가 파업 등을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계급적 촛불 자신이 혼자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할 수 없는 바로 그 때에 노동자들이 나서서 그것을 급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 이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촛불이 스스로 원군을 거부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게 아닌가? 촛불시민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거부하는 어떤 이질적인 것도 시위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함께가 잘한 건 아니지만, 확성기녀 사건 이후로 운동권들은 철저하게 배척받았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시위에 나와도 말없이 촛불시민들이 하는대로 따라다녔다. 지인에게 들은 가장 웃기는 사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저씨들이 촛불시민들을 따라 열심히 경찰을 피해 다니면서 게릴라 시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파이 하나 쥐어주면 경찰은 우습게 뚫어버리는 그 무서운 전투력의 아저씨들이 “깝치지 마라, 운동권!” 정서에 짓눌려 시민들을 따라 뜀박질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촛불시위 전성기의 시위 환경이었다. 촛불시민은 물론 단일하지 않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이라 칭하면서 운동세력과 거리를 두었고 그들을 불순물처럼 취급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재밌었던 것은 운동권들이 그렇게 철저히 촛불시민들의 시위문법에 복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촛불시위가 시들해지자 우리 ‘시민’들이 그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과 운동권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끼어들어서, 혹은 민주노총이 끼어들지 않아서 시위가 실패했다는 식의 얘기는 촛불강경파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여기서 웃기는 점은 크게 세가지다.



1) 자신들은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 운동권 등에 돌리지만, 남들이 촛불시위의 실패의 요인을 분석한다고 말하면 “촛불이 실패했다니!! 이 반동!!!” 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


2) 자신들이 시위에서 운동권을 배제해놓고 시위실패의 책임을 운동권에게 돌린다는 것. 시위를 장악하셨으면 실패(?)의 책임도 스스로 지셔야지.

3)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나는 개인일 뿐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고 하면 성질낸다는 것. 자기가 한 거 아니라면서 성질은 왜?


촛불시위가 운동세력 때문에 타락했다는 얘기는 일부 촛불강경파와 조선일보가 같이 하는 얘기다.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김지하. 최원 님의 얘기는 물론 김지하의 얘기와 정반대다. 그리고 나는 그 얘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원 님도 운동권이 촛불시민들의 ‘외부’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래야 했다고 말한다면 동의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권은 촛불시위대의 내부에서, 자신의 색깔을 죽이고 숨죽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운동권이 유입되면서 촛불시민도 변하고 운동권도 변해야 했다. 물론, 그런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의 대체적인 의식은 그 ‘변화’를 순수함의 상실로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촛불강경파와 김지하가 만나는 것이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 그 무엇보다도 촛불 자신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기륭 현장에서 저 유명한 82cook 회원분들을 몇 명 만났다. 기륭을 위한 회의를 할 때 그분들이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 촛불시위대와 82cook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떠나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이고 정치적인 설득보다는 정서적인 공명을 강조하는 쪽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분들은 말했다. 촛불시위보다 한발 더 내딛어 기륭으로 온 그분들은 소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나는 어차피 이런 운동은 소수가 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논리적이니 정서적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힘이 센 상대편의 정책(?)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촛불시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들은 차라리 이런 분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운동권’의 탄생이다. 



촛불시위를 그 자체로 다중의 봉기로 예찬하려고 하는 조정환 류(정서적으로 조정환에게 공명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에게 해야 할 말은 이런 거다. 촛불에서 한발 더 내딛은 이분들은 촛불시민인가, 아니면 촛불시민이 아닌가? 그분들은 스스로를 촛불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어떤 촛불들은 그들을 불순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촛불이기도 하고 촛불이지 않기도 한 것이 아닌가? 촛불이 가야 할 길도 결국 이렇게 촛불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 길이 아닌가? 촛불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촛불의 긍정성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런 변화의 에너지를 가로막아 촛불을 박제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김지하의 촛불 예찬과 조정환의 촛불 예찬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것일까? 조정환이 촛불시위의 존재론적 승리를 운운할 때 그것은 일견 형이상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촛불의 스펙터클에 대한 현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7-8.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촛불이 패배한 시점은 정확히 민주노총의 파업이 흐지부지된 그 시점이었다. 바로 그 전에 백만을 동원하면서 명예가 걸린 마지막 전투를 치렀지만, 곧바로 촛불은 가시적으로 사그라져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촛불 자체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촛불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기층 운동들이 그만큼 붕괴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백승욱 교수와 같은 경우,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문제의 그 글에서 촛불이 87년보다도 못했던 것은 그것이 789 노동자들의 진출과 같은 것조차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정말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그 열린 공간에서 숟가락으로 떠주는 밥도 먹지 못한 것이 바로 기존의 운동진영들이었다. 87년에 노동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6월 항쟁이 열어놓은 정치공간 속으로 일거에 진입해 들어왔었다면, 2008년에 노동자들은 (이후 벌어진 조직내 성폭력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조직들의 파산을 향해 이미 나아가고 있었고(지금도 나아가고 있듯이), 이 때문에 그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촛불의 한계란 말인가?“ 



--> 그런데 촛불 자체가 이미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기존 운동권들을 무시한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시 자체에 대해 딱히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촛불시민 스스로가 그 운동권들을 갈구고 자기 내부에 편입시키면서 운동을 전개했다면, 당연히 촛불시위 정국의 한계는 촛불의 한계다. 촛불이 문제라서 뭐가 안됐다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 촛불밖에 없었고 촛불이 뭔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한계를 논한다는 것이다.



(운동권들이 무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에겐 "열린 공간"이 아니었고 그들은 밥그릇은커녕 숟가락도 지급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에 대한 분석과 별개의 문제다. - 참고로 내가 촛불시위 정국에서 가장 높이 치는 좌파의 활동은 칼라티비가 아니라 일부 촛불 시위대를 기륭으로 끌어들인 '릴레이 동조 단식'이란 기획이다.)


촛불의 한계를 심심해서 논하겠는가? 촛불을 통해 사회가 어느 정도 변했으면 좋았겠는데, 충분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이 없다면 손석춘 류의 ‘촛불정당’ 운운하는 코미디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조정환은 촛불시위가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는 것이며 존재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뇌내망상에 의한 정신승리로밖에 볼 수 없다. 촛불시위대가 거리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겠다는 지향을 피력한 것도 아닌 이상, 그네들의 요구는 권력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조건을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진 거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한편으로 조정환은 이명박 정부가 잠깐 스톱했고 조중동이 타격을 받았네 하면서 촛불의 성과를 논한다.  

--------------------------------- 

파란 글은 최원의 글이고 다른 건 한윤형의 글이다. 강조는 두 사람의 생각 중 내 생각과 닿는 부분이다. 최원의 글에 대해서는 한윤형이 거칠지만 할 말은 했다. 하지만 최원의 글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기존 운동권을 탐탁케 생각치는 않지만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경계선 밖으로 몰아야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외에도 촛불에 대해서는 나도 몇 마디 거들고 싶은 말은 좀 더 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안쓰겠다. 저 이야기들을 예전에 어떤 형태로든 했었던 것들이다. 이 말은 '촛불'이 별볼일 없었다거나 '촛불'이 별반 쓸모없는 한 번의 액션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촛불을 이간하려는 것도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중한 뜻에 침을 뱉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노동자로서 촛불에 참여했었고,또 생태주의 지지자로서 참여했었고, 그냥 아이의 아빠로 아이와 함께도 참여했었고...하여간 왠갖 경험을 빌미로 발언권을 갖을 정도의 물질화된 나의 투쟁의 토대를 만들 짓은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에서 되뇌였던 구절이다.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자청한 내 고난도.." 일상을 살며 투쟁해야 했던 시민들에게 촛불이 엄청나게 고난스러운 행군은 아니었다. 알아서 요령껏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물론 생업에 물적,심적 피해는 없을 수 없다. 그건 자랑스러워해야할 일은 아니고 당연히 감수해야할 필요조건이다. 그 정도의 피곤함의 누적과 지속적 분노상태로 인한 정서적 분열, 잡혀갈 수도 있다는 모종의 불안감마저 없는 시위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