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에서 바다로 향하는 기차가 지나간다
후루룩, 황급하게 면발을 집어넣는 고단한 입처럼
터널이 동해남부선을 빨아들인다
밤이 도계(道界)를 넘어간다
잔상으로 남아 있는 시린 차창
기차가 멀어지는 소리가 멀어진다
한바탕 눈이 퍼부울 것 같다
검은 산맥의 능선들이 뒤척인다


국군통합병원 나팔수가 홀로 자정을 밟고 있다
마우스 피스를 입에 대고 무슨 음정을 만든다
휘익, 어둠의 안쪽을 긁고 가는 한줄기 바람의 끝이 녹슨다
산악이 제 높이만큼 파 놓은 계곡보다
이 가을 밤이 훨씬 깊고 길다


돌연, 추락 직적에 생의 빛깔을 되찾은 선명한 나뭇잎들이
깊은 가을 밤의 맨 아래로 착륙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 쪽으로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지구가 한 칸, 자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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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도 밤 10시 가까이까지 일했다.즐겁게 하는 일도 아닌......뜬금없는 오더성 작업도 하나 있었다.팀원들이 다들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결론은 누가 그걸 하느냐로 이어졌다.내가 하겠다고 자원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가장 불만이 많고 가장 부당하다고 느끼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다들 그거 안해서 좋은 듯...그래...그럼됐다....로 상황종료.

오늘 아침 7시에 출근했다.아마 내일 모레는 새벽이 되어야 퇴근 가능할 듯.....못된 성질 부려서 덤쓴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이것도 내가  허수아비들과 싸우는 방법이다.몸이 좀 피곤한게 당당하지도 못한 꼭두각시 되는 것 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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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림자가 없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다……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
응응…… 응 …… 뭐?
아 그래 ……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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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아렌트가 그랬나..악의 평범성....김수영의 이 시를 보면 웃고 있는 내 안의 적이 보인다.난 아니야라고 하는 그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악이 보인다.선량한 아버지의 비굴한 굴종이 보이고 인자한 어머니의 속물적 욕심이 보인다.믿음직하고 착하고 남에게 폐끼지지 않는 생각없는 애새끼들의 웃자란 건강함도 보인다.

시인이 열심히 외치고..그림자가 없다고 외치는데.....그래 태고 이래 달라진게 뭐 있냐고 니 말 다 맞다고 그래 그래 하는  .... 착하고 믿음직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며 삐뚤어지지 않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며 남들처럼 열심히 살고 있고 사서 고생하지 말라는 ...그러고 있는 그 적 새끼들을 변기통에 넣고 물 내리고 싶다.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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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도 담아갈게요. 불쑥 들어와서... ^^;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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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이란 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하지만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그 감빛 선명한 이미지와 귀를 울리는 햇살 소리,아이들 소리에 읽고 있던 책이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졌다. 감탄,또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비가 오고...일은 진척이 없다....비에 젖은 산빛이 예쁘겠지.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대청마루에 기대앉아 이런 시 한편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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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라는 말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가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영영 물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여도 있다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 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개에서도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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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봤을 때....이청춘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어도>를 생각했다.언젠가 TV에서 본 그 섬은 평소에는 바다 밑에 있다가 폭풍이 치거나 하면 잠시 머리를 세상에 보인다고 한다.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보다 오랜 시간을 존재해왔다....바닷가에 있는 그 작은 바위들을 여라고 한단다. 어느 흐린 오후 바닷가에 앉아서 물 밑에서 살짝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그 바위들을  바라보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든다....심연에 가라앉은 상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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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에게 (미래의 착취자가 될 지도 모르는)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그 맹세가

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

....................................................................................

근래들어 가장 바쁜 어제였다.왔다 갔다 하면서 뉴스로 중계되는 대추리 만행을 보았다.저녘 뉴스시간에 TV를 보고.....코 끝이 찡하고 ...한숨이 나오고...답답했다.군인들 참 일도 잘하더군.주황색 체육복 입고 어찌나 빨리 철조망을 가설하는지..전경들도 참 열심히 쳐들어가고....

얼마나 순진했는가? 자신들이 모시던 몇 몇 의장님과 선배들을 여의도에 보내주면 달라져도 뭐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나의 현실적(?)인 대학선배님들은....그들을 믿어보자던 마음 착한 선배님들은...지금 어디서 저 화면을 보고 있을까...

어린이 날인데 회사에 나왔지만 그것 보다 하늘은 더 답답하다....

나 정말 따뜻한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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